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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의대인 인불부아(仁義待人 人不負我)
내가 인의로 사람을 대하면 그 사람은 나를 저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仁 : 어질 인(亻/2)
義 : 옳을 의(羊/7)
待 : 기다릴 대(彳/6)
人 : 사람 인(人/0)
人 : 사람 인(人/0)
不 : 아닐 불(一/3)
負 : 질 부(貝/2)
我 : 나 아(戈/3)
출전 : 삼국연의(三國演義) 第062回
이 성어는 유비(劉備)가 익주(益州)의 유장(劉璋)을 도와준다는 명분하에 촉(蜀) 땅을 정복할 때 한말로 삼국연의(三國演義) 62회에 나오며,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유비(劉備)가 방통(龐統)을 군사(軍師)를 삼아 촉(蜀) 땅을 정복할 때, 방통의 계책대로 해 부수관(涪水關)을 점령하고 낙성(雒城)을 공격하고자 했다. 이에 유장(劉璋)은 유괴(劉璝), 장임(張任), 냉포(冷苞), 등현(鄧賢)에게 5만 군사를 주어 낙성을 수비하게 하였다.
이때 유괴(劉璝), 장임(張任)은 낙성에 들어가 지키고, 냉포(冷苞), 등현(鄧賢)은 낙성에서 60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워 돕기로 했다. 유비가 이 소식을 듣고 냉포, 등현이 세운 영채를 누가 쳐부수어 공을 세우겠냐고 하니, 황충(黃忠)과 위연(魏延)이 서로 가겠다고 해 두 사람이 영채 하나씩을 공격하게 했다.
그런데 위연이 공을 세우고자 미리 출발하여 두 영채를 혼자 쳐부수고자 미리 출발했다. 그러나 냉포에게 발각되어 패하면서 죽게 되었을 때 황충의 부대가 도착하여 적을 쳐부수고 위연을 구했다.
유비는 방통의 계획에 따라 후원군을 인솔하여 관망하다가 황충의 출격으로 촉군이 무너지자 후원군을 이끌고 쳐들어갔다. 이 와중에 위연은 자기의 잘못을 알고 매복해 있다가 냉포가 도망 오는 것을 잡았다. 유비가 영채를 점령하고 투항한 서천 군사를 안정시켰다.
황충이 곧 영채에 도착해, 바로 유비를 만나, '군령을 어긴 위연을 참형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덕이 위연을 급히 부르자, 위연은 냉포를 압송해 왔다. 유비가 말했다. '위연이 비록 죄를 지었으나, 냉포를 사로잡은 공으로 속죄할 만하오(延雖有罪, 此功可贖).'
이어 유비는 위연에게 명령하여, 그 목숨을 구해준 황충의 은혜에 감사드리게 하고, 앞으로 다투지 말라고 했다. 위연이 머리를 조아리고 복죄(伏罪; 죄를 인정함)했다. 유비는 황충에게 크게 상을 내리고 사람을 시켜 냉포를 장하로 압송했다.
유비는 냉포의 포박을 풀어주고 술을 내리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물었다. '그대는 기꺼이 투항하지 않겠소?' 냉포가 이르기를 '이미 살려주신 은혜를 입었는데, 어찌 투항치 않겠습니까? 유괴와 장임은 저와 생사지교(生死之交)의 사이오니, 저를 풀어 돌아가게 해주시면, 바로 두 사람을 불러 투항케 해, 낙성을 바치게 하겠습니다.'
유비는 크게 기뻐하며, 의복과 말과 안장을 주어 낙성으로 돌려보냈다. 위연이 걱정하며 말했다. '저 사람은 놓아 보내시면 안 됩니다. 만약 여기서 몸을 빼어 가버리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此人不可放回. 若脫身一去, 不復來矣).'
유비가 이르기를 '내가 인의로써 사람을 대우하면, 그 사람도 나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吾以仁義待人, 人不負我).' 결과는 위연의 말처럼 냉포는 돌아오지 않았고, 나중 다시 사로잡혀 처형되고 말았다.
요즈음 인간들은 어떠한가?
믿는다는 말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믿는다는 말을 한다. 믿는다는 말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그 말로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모두가 다를 것이다.
"엄마는 아들 믿어.”
“당신을 정말 믿었는데…”
“자기 나 믿지?”
이처럼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믿는다고 하거나 믿으라고 말한다. 믿는다는 말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나? 사전적인 뜻은 '어떤 것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뭔가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때 '믿는다'고 말하는 주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문장의 주격 보어인 사람이나 어떤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언행이나 모습이다. 우리가 어떤 존재 자체를 믿는다고 말하려면, 그것은 절대자나 종교적 이념 정도는 되어야 가능하다. 즉, 우리는 친구, 자녀, 선생님을 그저 '믿는다'고 표현하지만, 그가 절대적인 신 정도나 되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그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기대하고 그 기대가 맞을 거라는 예상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혹여 절대적인 존재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 믿음은 대상의 특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주체의 의지나 다짐에서 비롯되어서 그의 태도나 언행을 결정해야 한다. 부처를 믿는 사람이 때마다 절에 가서 예불을 하고 부처의 가르침에 따라 살고자 애쓰는 것처럼.
내가 믿었던 것은 무엇이었나?
언젠가 나의 내담자가 상담실에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낮게 읊조렸다. "그 사람을 정말 믿었거든요. 그래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어요."
깊은 슬픔이 역력한 그에게 물었다. "우리가 믿는다는 말을 할 때에는 목적어가 있어요. 그리고 그 목적어가 신이 아닌 다음에는 주로 명사가 아니라 서술어, 즉 동사나 형용사가 되어야 해요. 다시 말하면 상대방이 절대적인 존재가 아닌 이상, 우리는 보통은 그 사람이 어떻게 하거나 하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는 걸 믿는다고 표현해요. OO님이 그 사람에 대해 믿은 것은 무엇인가요? 그 사람이 어떻게 하기를 기대했나요?"
나의 내담자는 나를 향해 있지만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듯한 눈으로 한참 생각에 잠겼다. 이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할 차례다. 그가 믿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그 사람이 어떻게 하기를 기대했는지, 그 기대를 했던 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건지, 언제부터 그런 마음이 생겼는지… 그리고 그 사람을 그저 믿고 싶었던 절실한 마음에 대하여.
믿는 마음도 실망하는 마음도 나의 것이라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속담이 있다. 어느 날 도낏자루를 들어서 휘둘렀는데 도끼날이 자루에서 빠져서 발등으로 떨어졌다면, 나는 세상에 과연 믿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한탄해야 할까? 그 도끼가 그렇게 될 거라는 생각을 왜 미처 하지 못했을까?
최근에 새로 산 명품 도끼라 굳이 상태를 확인할 필요를 못 느꼈거나, 전에 썼을 때 튼튼한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아니면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라 아버지를 대하듯 애틋하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거나, 일상이 바쁘다 보니 도끼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번 한 번은 괜찮겠거니 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발등을 찍은 도끼에게 말한다. 내가 너를 믿었는데 정말 실망했다고. 또는 도끼를 휘두르기 전에 말한다. 내가 너를 믿으니 실망시키지 말라고. 그러나 쉽사리 실망하거나 슬퍼하기 전에 내 마음을 살펴볼 일이다. 나는 무엇을 왜 믿었으며, 그 기대가 어긋난 것이 왜 이토록 실망스럽고 아픈지를.
그리고, 믿는다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
"엄마는 너를 믿어"라는 말에 담긴 은근한 강요와 자칫 맹목적일 수 있는 기대를 조심하고 싶어서 아이를 키우며 믿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자 신경을 써왔다.
어느덧 딸이 초등학교 갈 나이가 되어, 입학을 앞둔 어느 주말이었다. 오랜만에 아이는 할아버지와 백화점 나들이를 했다. 할아버지는 아이에게 가방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는 헤어지면서 "할아버지는 우리 OO 믿는다. 우리 OO가 학교 가서 잘할 거라고 믿어"라고 하셨다.
언짢아졌다. 왜 아이한테 저렇게 부담을 주시지? 집에 돌아와 이런 저런 정리를 하고 나서 잠자리에 들려던 무렵, 딸이 느닷없이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울먹거렸다. "할아버지 보고 싶어. 할아버지는 나를 믿는다고 했어. 내가 잘할 거라고 믿는다고 했어. 나는 할아버지 좋아." 아, 정말 당황했다. 뭐지, 이 상황은?
딸은 입학을 앞두고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하기는 워낙 새로운 것, 낯선 것에 쉽게 다가가지 않는 기질이 있는 아이다. 젖먹이일 때 요람을 새로 사서 눕히니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아이,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 바닷가에 놀러 가 모래사장에 내려놓으면 놓인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서 한참을 주변을 관찰하며 돌아다니지 않던 아이였으니, 생전 처음 겪을 학교생활이 상상도 안 되어 겁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아이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하며 우리 딸 믿는다고 등 한번 토닥여 주지 않았던 거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을 앞둔 어느 날의 아버지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빠, 나 어느 대학 가면 좋겠어?" 하고 물었더니, 지방만 아니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학생이라 타지역에 가서 집 떨어져 지내면 위험하니 그것만 피하라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늘 자식들에게 순리대로 살라고 하며 앞서 무엇을 계획하여 제시하거나 기대하는 법이 없었다. 진학이나 결혼, 취업 등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에도 역시 어떤 의견도 보태지 않아서, 나이가 들수록 덜해졌지만 어린 날엔 이유를 알 수 없는 외로움과 불안, 서러움들이 뒤엉켜 겉으로는 센 척을 하느라 냉소하기를 익혔던 것 같다.
누군가의 믿음이 되는 일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의 맹목적인 믿음, 희망이 되고 싶다. 불안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향해 갖는 기대에 기대어 힘을 얻는다.
우리 엄마가, 애인이, 언니가, 선생님이 나를 믿는다고 했던 걸 떠올리며, 그 기대하는 마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힘을 내는 것. 나도 믿을 수 없는 내 자신을 믿어주는 그 마음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것. 때로는 특별한 기대로 부담 주지 않을 테니 편히 있으라는 쿨한 시크함을 대하기보다 "나는 너를 믿어"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
서로 믿고 싶은 것과 믿어지고 싶은 것이 같다면 참 다행이다. 그 행운을 누리려면 나무꾼이 살뜰하게 도끼를 살피듯 서로를 살펴서 믿고 싶은 것, 믿음을 주고 싶은 마음을 알아차려야겠다.
그리하여 내가 너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는지, 내게 어떻게 해주기를 기대하는지, 그래서 종국에 나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주기를 기대하는지, 그 믿음을 비로소 구체적으로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혹여 원한에 사로잡혀 나무꾼의 발등을 찍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그런 살뜰한 믿음을 받고도 부러 발등을 찍을 도끼는 아마도 지구상에 한 자루도 없을 것이다.
공자사상의 핵심 '인(仁)'
공자사상의 핵심은 '인(仁)'이다. 논어에는 '인(仁)'자가 백 아홉 차례나 나온다고 한다. '인(仁)'은 곧 사랑이다.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인(仁)'의 바탕이다. 이는 크게 보면 인간주의이며, 이타주의이다. 자신보다 남을 더 생각하는 마음이 '인(仁)'이다.
그러나 사실은 가장 어렵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본성을 바꾸어서 이타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 수양과 교육이 필요하다.
사실 혼자 사는 세상에는 '인(仁)'이 필요 없다. 그러나 인간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 인간은 모듬살이를 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인간세상에서는 '인(仁)'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살기 어려워진다. 먹을 것은 옛날보다 훨씬 풍족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살기가 어렵고, 재미도 덜하다고 한다. 그것은 '인(仁)'하는 마음이 무디어진 때문이다.
어쩌면 '인(仁)'은 애초부터 인긴들에게 맞지 않는 신의 옷을 억지로 입히려는 신의 과욕으로 인간들에게 고통만 안겨주려는 과욕이었다. 신은 인간을 지신의 모습대로 만들었다. 그러나 외형이 같다고 내성도 같을 수는 없었다.
신은 본성이 이타적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기적이다. 사물은 저마다 각기 다른 천성이 있다. 그 천성을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 불가능성을 신들은 인간들에게 바꾸도록 강요한 것이다. 이것은 신의 엄청난 과오다.
아무튼 '인(仁)'은 人이다(仁者人也). '인(仁)'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렇다. 사람은 본래 '인(仁)'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징표가 四端이다. 맹자가 말하는 四端之心, 즉 惻隱之心, 羞惡之心, 辭讓之心, 是非之心이 그것이다. 맹자는 이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측은지심이란 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다. 수오지심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다. 사양지심은 양보하는 마음이며, 시비지심은 옳고 그름을 따질 줄 아는 마음이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라고 강조하고 있다(無惻隱之心非人也 無羞惡之心非人也 無辭讓之心非人也 無是非之心非人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공자는 仁者無敵이라고 했다. 仁者는 적이 없으며(仁者無敵), 따라서 근심도 없다(仁者不憂) .'인(仁)'을 실천하는 가장 핵심은 한 마디로 '서(恕)'라고 했다. 恕란 '베풂'이며, '용서'다. 이 또한 아낌없이 주는 마음이 없으면 성립하지 못한다.
또한 仁者는 외롭지 않다. 천지에 모든 사람들과 이웃이 되고 형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仁者의 마음가짐은 내가 원치 않는 바를 남에게 하지 않는다(己所不欲勿施於人)는 것이다. 그런 마음은 '忍'에서 비롯된다. 참는 마음, 자제하는 마음이 없으면 '인(仁)'을 실천하기 어렵다. 따라서 '인(仁)'은 곧 忍이다. 나를 이기고 예를 세워 사람을 대하면 그것이 곧 仁이다(克己復禮爲仁).
'인(仁)'은 人과 동의어이며, 忍과 상통한다. 그리고 결국은 사랑이다. 안연이 극기복례(克己復禮)가 무엇인지 그 세목을 묻자 공자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했다. 결국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진 사람(仁者)에 대하여 비유한 것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어진 이는 오래 산다 - 仁者壽
어진 이는 고요하다 - 仁者靜
어진 이는 산을 좋아 한다 - 仁者樂山(知者樂水)
어진 이는 적이 없다 - 仁者無敵
어진 이는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 - 仁者不孤 必有隣
어진 이는 근심이 없다 - 仁者不憂(仁者不憂 知者不惑)
어진 이는 용기가 있다 - 仁者必有勇
어진 이는 의리가 있다 - 仁者義之本也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공자의 '인(仁)'은 사람에게만 필요한 것인가? 다시 말해서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는 함부로 해도 인간에게만 잘하면 인은 완벽하게 실천한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공자의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연유된 것이다.
공자가 하루는 조정에서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보니 마구간에 불이 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묻습니다."사람이 다쳤는가(傷人乎)?" 그리고 말에 대하여는 묻지 않으셨다(不問馬).
이 논어의 구절은 공자의 인간 중심주의를 설명하는데 자주 인용되는 구절이다. 공장에 불이 나서 물건이 다 타버려 손해가 나더라도 사람만 안전하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사랑의 범위는 결국 사람에 국한하는 것이다.
불이 났다는 말을 듣고 '사람이 다쳤는가?'라고 묻고 말의 안위에 대해서는 묻지 않음을 두고 지극한 인간존중사상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을 한다. 그건 아마도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래도 다친 사람이 없음을 확인했다면 다음으로 말에 대해서도 물어보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요즘 자연보호론자들에게는 책잡힐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자가 자연보호에 대해서도 결코 소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공자가 '낚시는 하되 그물로 물고기를 잡지 말고, 새를 새총으로 잡지 말라'고 하는 말이 역시 논어에 나온다는 것으로 증명이 된다.
논어는 공자 사상을 집대성한 책이다. 논어는 인간학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되기 위해서 배워야 할 내용을 정리해 놓은 것이 논어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이 사람답게 되면 ‘군자’라고 일컫는다. 논어는 군자의 학이며 군자가 되기 위한 방편을 기술해 놓은 책이다. 논어는 결국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를 군자가 되는 것이며, 군자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할 덕목이 ‘仁’이라고 설파한다.
仁은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사랑’이요, 불교식으로 말하면 ‘자비’다. 논어는 인을 갈고 닦으면 군자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군자는 완성된 인격체로서의 인간을 지칭한다. 군자가 되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군자는 ‘修身齊家治國平天下’할 수 있는 완성된 인간이다.
군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자신을 수양하여 仁을 실천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체가 되어야 힌디. 연후에 가정을 다스릴 수 있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으며, 마침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자질을 갖게 된다. 말은 쉽지만 인간완성의 길은 멀고 험하다. 평생토록 배우고 때로 익히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며 매일 세 번씩 자신의 언행을 반성하고 되잡아야 한다.
공자와 맹자의 인(仁)의 수사학
인(仁)은 사람 인(人)자와 두 이(二)자로 이루어 진 것으로 보아, 최소한 두 사람이 모여 서로를 소중하게 대하고 아껴주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해석할 수 있겠는데요. 공자와 맹자는 말하기가 인(仁)의 전달이면서, 인(仁)의 실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공자와 맹자가 어떠한 말하기를 통하여 인을 전하려고 했는지 살펴봄으로써 기교와 술수를 강조하는 오늘날의 설득 전략서가 담아내지 못한 말하기와 처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공자, 자신의 주장만을 주장하는 비관용을 극히 경계
공자는 제자 염옹이 말주변이 없다는 어떤 이의 말을 듣고 "말주변을 어디에 쓰겠는가. 사람을 말주변으로만 대하면 자주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될 뿐"이라고 평하였습니다.
또한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자들에게는 인이 드물고, 수수한 질박함과 어눌함이야말로 인에 가깝다고 여겼으며, 군자는 말에서는 어눌하고 행동에서는 민첩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이처럼 공자는 지나친 기교가 섞인 조악한 말이나 가벼운 언행을 멀리하고, 우직하고 진실 된 언어를 구사하려 했습니다.
공자는 말하는 이의 유연한 태도 역시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공자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억측을 하지 않았고, 반드시 하겠다는 게 없었고, 고집을 부리지 않았고, 나만이 옳다고 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즉 막무가내로 자신의 주장만을 강요하는 비관용을 극히 경계하고, 타인의 의견과 새로운 학파에 대한 열린 마음을 중시한 것이죠. 그러므로 공자는 무언의 상태, 즉 침묵의 가치를 높이 샀습니다.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오로지 제 말만 늘어놓는 자는 비관용과 아집으로 빠질 위험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발화와 침묵의 순간을 잘 조율하는 안목도 필요할 것입니다. “더불어 말할 만한데 말하지 아니하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할 만하지 못한데 말을 하면 말을 잃는다.” 즉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마저 입을 닫으면 상대의 신뢰를 잃어 소원한 관계가 되고, 반면에 누울 자리도 보지 않고 눈치도 없이 계속 하는 말은 쓸데없는 실언만 낳게 될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공자는 꾸밈없고 소박한 말하기를 추구하였던 반면, 맹자는 섬세한 기교를 활용한 뛰어난 변론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양혜왕장구'에 수록된 맹자와 제선왕이 나눈 대화에서 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맹자는 재물을 좋아하는 결점 때문에 좋은 군주가 되지 못할 것 같다며 제선왕이 고민하자 재물을 무척 좋아했던 공유(주 문왕의 선조) 이야기를 꺼내면서 “공유는 자신의 길을 떠날 때는 남아있는 이들에게 창고 가득 곡식을 남겨두었고, 행군을 떠나는 자들이 있을 때는 이들에게 먹을 것이 가득 담긴 자루를 마련하여 보냈다. 재물을 좋아하는 제선왕도 공유와 같이 백성과 함께 재화를 나눈다면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습니다.
맹자는 ‘왕이 재물을 좋아하면 백성들과 이를 함께 나눌 것이다’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상황을 재해석한 것이죠. 제선왕의 고민도 해결하면서 덕치의 비기도 함께 제시했던 맹자의 지혜로운 변론이었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 제선왕은 주나라의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정벌한 사실을 들며 “신하가 자신의 군주를 시해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서 만약 맹자가 단순히 그렇다고 대답하면 제선왕이 유가에 등을 돌릴 우려가 있고, 그렇다고 주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할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맹자는 “인과 의를 해치는 사람을 가리켜 일부(一夫)라고 할 뿐이니, 저는 주나라 무왕이 일부인 주를 주살하였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가 자기 군주를 시해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맹자는 인의를 해친 자는 군주의 자격이 없어 주는 군주가 될 수 없으므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 것이죠. 제선왕의 염려도 불식시키고 유가 사상도 전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공자와 맹자가 추구하는 말하기의 방식은 달랐지만 그들이 입을 모아 강조했던 인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상대방에 대한 감화일 것입니다. 인은 부드럽게 상대를 감동시켜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가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헤아려보는 인과 덕을 베풀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듯합니다.
▶️ 仁(어질 인)은 ❶형성문자로 忈(인)과 忎(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二(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하는 데서 어질다의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특히 仁(인)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로는 자기에게는 엄하게 하지만 남에게는 어질게 하는 정신을 인(仁)이라고 설명한다. ❷회의문자로 仁자는 '어질다'나 '자애롭다', '인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仁자는 人(사람 인)자와 二(두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仁자에 쓰인 二자는 '두 사람'이라는 뜻을 위해 쓰인 것이다. 仁자는 본래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했던 글자였다. 그러나 공자가 仁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부터는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을 대표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仁(인)은 (1)공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 이념, 또는 정치 이념 오상(五常)의 하나로 모든 덕의 기초로서 공자는 이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사랑 또는 박애가 그 내용으로 됨. 천도(天道)가 발현하여 인이 되고, 이를 실천하면 만사 모두 조화, 발전된다는 사상임 (2)애정(愛情)을 타에 미침. 곧 어짐, 착함, 박애(博愛) (3)식물의 씨에서 껍질을 벗긴 배(胚), 배젖의 통틀어 일컬음 (4)세포(細胞)의 핵(核) 안에 있는 작은 구형(球形)의 구조. 핵 하나에 한 개 또는 몇 개 들어 있고 리보 핵산과 단백질을 함유하여 단백 합성을 하는 것으로 생각됨. 비교적 큰 입상체(粒狀體)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질다, 자애롭다, 인자하다 ②감각이 있다, 민감하다 ③사랑하다 ④불쌍히 여기다 ⑤어진 이, 현자(賢者) ⑥인, 어진 마음, 박애(博愛) ⑦자네 ⑧씨 ⑨과실(果實) 씨의 흰 알맹이, 속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랑 자(慈), 어질 량/양(良), 어질 현(賢)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어진 사람을 인자(仁者),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자(仁慈),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타고난 성질이 어질고 착함을 인선(仁善), 인덕이 있고 수명이 긺을 인수(仁壽), 인덕의 감화를 인화(仁化), 어질고 후덕함을 인후(仁厚), 어진 덕을 인덕(仁德), 어질고 명철함을 인명(仁明), 인자스러운 마음을 인심(仁心),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애(仁愛), 어질며 은혜가 있는 일을 인혜(仁惠), 어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 구제함을 인휼(仁恤),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어질고 덕망이 있는 성인을 인성(仁聖), 성질이 어질고 순함을 인순(仁順), 어질고 착하지 아니함을 불인(不仁), 너그럽고 어짊을 관인(寬仁), 어질다고 소문난 명성을 인문(仁聞), 친소의 차별없이 널리 평등하게 사랑하는 일을 동임(同仁), 복숭아씨의 알맹이를 도인(桃仁),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일컫는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천하에 적대할 사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자무적(仁者無敵), 어진 사람은 살생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인자불살(仁者不殺), 인의의 본질이나 어짊과 의로움의 인간 본성을 일컫는 말을 인의지정(仁義之情),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는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함을 이르는 말을 인자은측(仁慈隱惻), 인과 의와의 도를 일컫는 말을 인의지도(仁義之道), 의를 위하여 나서는 어진 사람의 용기를 일컫는 말을 인자지용(仁者之勇), 어진 사람은 도리에 따라 행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자불우(仁者不憂), 인자는 의리에 만족하며 생각이 깊고 행동이 신중함이 산과 같으므로 자연히 산을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인자요산(仁者樂山) 등에 쓰인다.
▶️ 義(옳을 의)는 ❶회의문자이나 형성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义(의)는 통자(通字), 义(의)는 간자(簡字)이다. 나(我)의 마음 씀을 양(羊)처럼 착하고 의리있게 가진다는 뜻을 합(合)하여 옳다를 뜻한다. 羊(양)은 신에게 바치는 희생의 양으로 양을 바쳐 신에게 비는 의식(儀式)이 나중에 바르다, 의로운 일의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義자는 '옳다'나 '의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義자는 羊(양 양)자와 我(나 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我자는 삼지창을 그린 것이다. 義자의 갑골문을 보면 창 위에 양 머리를 매달아 놓은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양 머리를 장식으로 한 의장용 창을 그린 것이다. 이러한 창은 권위나 권력을 상징했다. 상서로움을 뜻하는 양 머리를 창에 꽂아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이다. 義자는 종족 내부를 결속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역할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옳다'나 '의롭다', '바르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義(의)는 (1)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하고 정당한 도리(道理). 오상(五常)의 하나임 (2)남과 골육(骨肉)과 같은 관계를 맺음 (3)글이나 글자의 뜻. 의미(意味) (4)경서의 뜻을 해석시키던, 과거(科擧)를 보일 때의 문제 종류의 한 가지 등의 뜻으로 ①옳다, 의롭다 ②바르다 ③선량하다, 착하다 ④순응하다 ⑤맺다 ⑥해 넣다 ⑦섞다, 혼합하다 ⑧간사하다(마음이 바르지 않다), 옳지 않다 ⑨의(義), 정의(正義), 올바른 도리(道理) ⑩의리(義理), 우의(友誼) ⑪뜻, 의미(意味), 의의(意義) ⑫거둥(擧動: 임금의 나들이), 예절(禮節), 의식(儀式) ⑬정의에 합당한 행동, 의로운 일 ⑭명분(名分) ⑮법도(法道) ⑯용모(容貌), 행동거지(行動擧止: 몸을 움직여 하는 모든 짓) ⑰의로 맺은 친족 관계, 의리(義理)의 관계 ⑱공적인 것, 공익을 위한 것 ⑲인공적인 것 ⑳가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의로운 사람을 의인(義人), 義로 맺은 형제를 의형제(義兄弟),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일을 의무(義務), 정의를 위하여 거사함을 의거(義擧), 수양 아버지를 의부(義父), 글이나 학설의 뜻을 설명하여 가르침을 강의(講義), 굳게 지키는 일정한 방침을 주의(主義),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정의(正義), 믿음과 의리를 신의(信義), 표의 문자에서 글자의 뜻을 자의(字義), 같은 뜻나 같은 의미를 동의(同義), 사람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덕 상의 의리를 도의(道義), 갚아야 할 의리와 은혜를 은의(恩義), 의리나 정의에 어긋나는 일을 불의(不義),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교훈을 이르는 말을 의방지훈(義方之訓), 의기에 불타 일어나는 용맹을 일컫는 말을 의기지용(義氣之勇),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 당연함을 이르는 말을 의리당연(義理當然), 의가 있는 사람은 어버이를 거역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의불배친(義不背親), 의로써 이利의 근본을 삼음을 이르는 말을 의이건리(義以建利), 의는 바다와 같고 은혜는 산과 같다는 뜻으로 은의恩義가 대단히 크고 깊음을 이르는 말을 의해은산(義海恩山), 목숨을 버리고 의리를 좇음의 뜻으로 비록 목숨을 버릴지언정 옳은 일을 함을 일컫는 말을 사생취의(捨生取義), 눈앞에 이익을 보거든 먼저 그것을 취함이 의리에 합당한 지를 생각하라는 말을 견리사의(見利思義),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다는 뜻으로 의형제를 맺음 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목적을 향해 합심할 것을 결의함을 이르는 말을 도원결의(桃園結義), 봉건시대 여자가 지켜야 할 세 가지 도리 곧 어려서는 아버지를 좇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좇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좇음을 이르는 말을 삼종지의(三從之義), 남남끼리 의리로써 형제 관계를 맺음 또는 그런 형제를 일컫는 말을 결의형제(結義兄弟),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이르는 말을 인의예지(仁義禮智), 큰 의리를 위해서는 혈육의 친함도 저버린다는 뜻으로 큰 의리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의를 버림을 일컫는 말을 대의멸친(大義滅親), 임금과 신하 사이에 의리가 있어야 함을 일컫는 말을 군신유의(君臣有義), 눈앞의 이익을 보면 탐내어 의리를 저버림을 일컫는 말을 견리망의(見利忘義), 남의 시문 중에서 전체의 뜻과는 관계없이 자기가 필요한 부분만을 따서 마음대로 해석하여 씀을 일컫는 말을 단장취의(斷章取義), 예절과 의리와 청렴한 마음과 부끄러워하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예의염치(禮義廉恥) 등에 쓰인다.
▶️ 待(기다릴 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寺(사, 대)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寸(촌)은 손, 寺(사, 대)는 손에 물건을 가짐으로, 가만히 멈춰 있음과 손으로 무엇인가 함을 나타낸다.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행동하는 일, 즉 무엇인가 행동하기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일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待자는 '기다리다'나 '대우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待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寺(절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중국이 불교를 받아들이기 이전까지는 寺자가 '관청'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待자는 이렇게 '관청'을 뜻하던 寺자에 彳자가 결합한 것으로 '관청을 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지금의 待자는 왜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된 것일까? 관청은 행정을 담당하던 곳이었으나 업무를 처리하는 속도가 매우 더디었다. 그래서 待자는 '관청을 가다'를 뜻하다가 후에 '기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待(대)는 ①기다리다 ②대비하다, 갖추어 놓고 기다리다 ③대접하다, 대우하다 ④모시다, 시중들다 ⑤돕다, 거들다 ⑥의지하다, 기대다 ⑦더하다, 더해 주다 ⑧저축하다, 비축하다 ⑨기대(期待)를 걸다 ⑩지속하다, 지탱하다 ⑪임용하다 ⑫막다, 방비하다 ⑬때, 기다리는 때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손님을 맞음으로 음식을 차려서 손님을 대우함을 대접(待接), 접대로 예의를 갖추어 대함을 대우(待遇), 기회가 오기를 기다림을 대기(待機), 위험이나 난을 피하여 기다리는 일을 대피(待避), 바라고 기다림을 대망(待望), 약속을 기다림을 대기(待期), 명령을 기다림을 대령(待令), 관원이 과실이 있을 때에 처분의 명령을 기다림을 대명(待命), 죄인이 처벌을 기다림을 대죄(待罪), 손님을 대접함을 대객(待客), 시기를 기다림을 대시(待時), 병세가 대단하여 살아날 가망이 없게 됨을 대변(待變), 사람을 기다림을 대인(待人), 반갑게 맞아 대접함을 환대(歡待), 희망을 가지고 기약한 것을 기다림을 기대(期待), 몹시 괴롭히거나 사납게 대우함을 학대(虐待), 푸대접으로 소홀히 대접함을 홀대(忽待), 특별히 잘 대우함을 우대(優待), 업신여기어서 푸대접함을 천대(賤待), 매우 기다림을 고대(苦待), 사람을 불러서 대접함을 초대(招待), 손을 맞아서 대접함을 접대(接待), 정성을 들이지 않고 아무렇게나 하는 대접을 냉대(冷待), 후하게 대접함 또는 그러한 대접을 후대(厚待), 너그럽게 대접함을 관대(寬待), 높이 받들어 대접하는 것을 존대(尊待), 손님을 대접함을 객대(客待), 예로써 정중히 맞음을 예대(禮待), 불친절한 대우를 박대(薄待),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을 일컫는 말을 수주대토(守株待兔),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몹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학수고대(鶴首苦待),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죄과에 대한 처분을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석고대죄(席藁待罪),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월을 아껴라는 의미의 말을 세월부대인(歲月不待人), 어찌 명년을 기다리랴의 뜻으로 기다리기가 매우 지루함을 이르는 말을 하대명년(何待明年), 가만히 앉아서 죽기만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처지가 몹시 궁박하여 어찌할 대책도 강구할 길이 없어 될 대로 되라는 태도로 기다림을 이르는 말을 좌이대사(坐而待死), 창을 베고 기다린다는 뜻으로 항상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는 군인의 자세를 비유하는 말을 침과이대(枕戈以待), 정당한 이유없이 남보다 나쁜 대우를 함 또는 그 차별을 두고 하는 대우를 일컫는 말을 차별대우(差別待遇), 말에 기대어 서서 기다리는 동안이라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빠르게 잘 짓는 글재주를 부러워하여 이르는 말을 의마가대(倚馬可待), 인정없이 몹시 모질게 대함을 일컫는 말을 문전박대(門前薄待), 편안함으로써 피로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여 전력을 비축하고 나서 피로해진 적을 상대한다는 말을 이일대로(以佚待勞) 등에 쓰인다.
▶️ 人(사람 인)은 ❶상형문자로 亻(인)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것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 옛날에는 사람을 나타내는 글자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썼으나 뜻의 구별은 없었다. ❷상형문자로 人자는 '사람'이나 '인간'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기도 하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 중국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이전에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했었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었다. 소전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人(인)은 (1)사람 (2)어떤 명사(名詞) 아래 쓰이어, 그러한 사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사람, 인간(人間) ②다른 사람, 타인(他人), 남 ③딴 사람 ④그 사람 ⑤남자(男子) ⑥어른, 성인(成人) ⑦백성(百姓) ⑧인격(人格) ⑨낯, 체면(體面), 명예(名譽) ⑩사람의 품성(稟性), 사람됨 ⑪몸, 건강(健康), 의식(意識) ⑫아랫사람, 부하(部下), 동류(同類)의 사람 ⑬어떤 특정한 일에 종사(從事)하는 사람 ⑭일손, 인재(人才)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진 사람 인(儿),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짐승 수(兽), 짐승 수(獣), 짐승 수(獸), 짐승 축(畜)이다. 용례로는 뛰어난 사람이나 인재를 인물(人物), 안부를 묻거나 공경의 뜻을 표하는 일을 인사(人事),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인권(人權), 한 나라 또는 일정 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세상 사람의 좋은 평판을 인기(人氣), 사람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여 이르는 말을 인류(人類),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능력을 인력(人力),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활을 인생(人生), 학식과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인재(人材), 사람의 수효를 인원(人員), 사람으로서의 됨됨이나 사람의 품격을 인격(人格), 사람에 관한 것을 인적(人的), 사람을 가리어 뽑음을 인선(人選), 사람의 힘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인위(人爲), 사람의 몸을 인체(人體), 사람의 얼굴의 생김새를 인상(人相), 한 사람 한 사람이나 각자를 개인(個人), 나이가 많은 사람을 노인(老人), 남의 아내의 높임말을 부인(夫人), 결혼한 여자를 부인(婦人), 죽은 사람을 고인(故人), 한집안 사람을 가인(家人), 장사하는 사람을 상인(商人), 다른 사람을 타인(他人), 널리 세상 사람의 이야깃거리가 됨을 일컫는 말을 인구회자(人口膾炙), 인간 생활에 있어서 겪는 중대한 일을 이르는 말을 인륜대사(人倫大事), 사람은 죽고 집은 결딴남 아주 망해 버림을 이르는 말을 인망가폐(人亡家廢),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있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이나 오래 살고 못 살고 하는 것이 다 하늘에 달려 있어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산과 사람의 바다라는 뜻으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모인 모양을 이르는 말을 인산인해(人山人海),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른 것은 얼굴 모양이 저마다 다른 것과 같음을 이르는 말을 인심여면(人心如面), 여러 사람 중에 뛰어나게 잘난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인중사자(人中獅子), 여러 사람 중에 가장 못난 사람을 이르는 말을 인중지말(人中之末), 사람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인금지탄(人琴之歎),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을 인사유명(人死留名), 사람은 곤궁하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사람은 궁해지면 부모를 생각하게 됨을 이르는 말을 인궁반본(人窮反本),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의 도리를 벗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인비인(人非人), 인생이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무상(人生無常), 사람의 근본은 부지런함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인생재근(人生在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이 짧고 덧없다는 말을 인생조로(人生朝露),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아주 못된 사람의 씨알머리라는 뜻으로 태도나 행실이 사람답지 아니하고 막된 사람을 욕하는 말을 인종지말(人種之末), 남이 굶주리면 자기가 굶주리게 한 것과 같이 생각한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기의 고통으로 여겨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말을 인기기기(人飢己飢), 인마의 왕래가 빈번하여 잇닿았다는 뜻으로 번화한 도시를 이르는 말을 인마낙역(人馬絡繹), 얼굴은 사람의 모습을 하였으나 마음은 짐승과 같다는 뜻으로 남의 은혜를 모름 또는 마음이 몹시 흉악함을 이르는 말을 인면수심(人面獸心), 사람은 목석이 아니라는 뜻으로 사람은 모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목석과 같이 무정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인비목석(人非木石), 정신을 잃고 의식을 모름이란 뜻으로 사람으로서의 예절을 차릴 줄 모름을 이르는 말을 인사불성(人事不省)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부적절(不適切),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나 죽여 없애야 할 원수를 일컫는 말을 불구대천(不俱戴天), 묻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가히 알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불문가지(不問可知), 사람의 생각으로는 미루어 헤아릴 수도 없다는 뜻으로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오묘한 것을 이르는 말을 불가사의(不可思議),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일컫는 말을 부정부패(不正腐敗), 지위나 학식이나 나이 따위가 자기보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을 불치하문(不恥下問),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라는 뜻으로 마흔 살을 이르는 말을 불혹지년(不惑之年), 필요하지도 않고 급하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불요불급(不要不急), 휘지도 않고 굽히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어떤 난관도 꿋꿋이 견디어 나감을 이르는 말을 불요불굴(不撓不屈),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등에 쓰인다.
▶️ 負(질 부)는 ❶회의문자로 负(부)는 간자(簡字)이다. 사람 인(人=亻; 사람)部와 貝(패; 돈, 물건)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금품(金品)을 메어 나르다, 등에 지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負자는 '짐 지다'나 '빚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負자는 貝(조개 패)자와 (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절자는 㔾(병부 절)자가 변형된 것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貝자는 조개를 그린 것이지만 주로 '재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이렇게 사람과 재물이 함께 결합한 형태인 負자는 '빚'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재물 위에 허리가 굽은 사람을 그려 빚의 부담에 허덕인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負(부)는 ①짐을 지다 ②떠맡다 ③빚지다 ④업다 ⑤힘입다 ⑥부상을 입다 ⑦저버리다 ⑧패하다 ⑨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⑩짐 ⑪지는 일 ⑫빚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승(勝), 이룰 성(成)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이나 의무나 책임 따위를 떠맡음을 부담(負擔), 남에게 빚을 짐 또는 그 빚을 부채(負債), 몸에 상처를 입음을 부상(負傷), 종이나 피륙 등으로 만든 큰 자루를 부대(負袋), 남에게 빚을 짐을 부책(負責), 등짐 장수를 부상(負商), 약속을 어기거나 저버림을 부약(負約), 무는 세금을 부세(負稅), 뺄셈을 나타내는 기호를 부호(負號), 물품을 등에 지고 다니며 팖을 부판(負販), 전기의 음극을 부극(負極), 자기의 기력을 믿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함을 부기(負氣), 병이 듦을 부병(負病), 대기압보다 낮은 압력을 부압(負壓), 백성이 부담하는 공역을 부역(負役), 짐을 등에 지고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매우 힘드는 일을 함을 부대(負戴), 땔나무를 진다는 뜻으로 사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을 부형(負荊), 이김과 짐을 승부(勝負), 마음속에 지닌 앞날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이나 희망을 포부(抱負), 스스로 자기의 가치나 능력을 믿음을 자부(自負), 물건을 어깨에 멤을 견부(肩負), 뽐내며 자부함을 과부(誇負), 등에 지고 어깨에 멤을 담부(擔負), 재능을 자랑하고 즐김을 긍부(矜負), 빚을 짐 또는 그 빚을 채부(債負), 남에게 진 신세를 소부(所負), 사람의 등에 짐을 지움 또는 그 지우는 짐을 인부(人負), 땔나무를 지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부신구화(負薪救火), 가시 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부형청죄(負荊請罪),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좇는다는 뜻으로 먼 곳으로 유학감을 이르는 말을 부급종사(負芨從師), 무거운 물거운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을 이르는 말을 부중치원(負重致遠), 남에게 진 빚이 산더미 같음을 일컫는 말을 부채여산(負債如山), 남자는 짐을 등에 지고 여자는 짐을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 다니는 것을 이르는 말을 남부여대(男負女戴), 이길지 질지 분간이 가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불분승부(不分勝負), 공자의 제자인 자로는 가난하여 매일 쌀을 등짐으로 져서 백 리 밖까지 운반하여 그 운임을 받아 양친을 봉양했다 함을 이르는 말을 자로부미(子路負米), 승부가 서로 같음 즉 서로 비김을 일컫는 말을 상승상부(想勝相負), 갖옷의 털이 상할까하여 뒤집어 입고 나무를 등에 졌더니 도리어 갖옷이 못쓰게 되었다는 뜻으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나 생각이 좁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반구이부신(反裘而負薪) 등에 쓰인다.
▶️ 我(나 아)는 ❶회의문자로 手(수)와 창 과(戈; 창, 무기)部를 합(合)한 글자라고 생각하였으나 옛 모양은 톱니 모양의 날이 붙은 무기(武器)인 듯하다. 나중에 발음(發音)이 같으므로 나, 자기의 뜻으로 쓰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我자는 '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我자는 톱니 모양의 날이 달린 창을 그린 것이다. 이것은 서유기(西遊記)에서 저팔계가 가지고 다니던 삼지창과도 같다. 我자는 이렇게 삼지창을 그린 것이지만 일찍이 '나'를 뜻하는 1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갑골문이 만들어졌던 은상(殷商) 시기에도 我자를 '나'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본래의 의미는 일찌감치 쓰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我자가 왜 '나'를 뜻하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은 없다. 다만 서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웠다는 의미에서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한자에는 余(나 여)나 吾(나 오), 朕(나 짐)자처럼 본래는 '나'와는 관계없던 글자들이 시기에 따라 자신을 뜻하는 글자로 쓰였었기 때문에 我자도 그러한 예 중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我(아)는 ①나 ②우리 ③외고집(자기의 생각을 굽히지 아니하는 일) ④나의 ⑤아집을 부리다 ⑥굶주리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나 오(吾),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저 피(彼)이다. 용례로는 소아에 집착함을 아집(我執), 나의 뜻을 아의(我意), 우리 나라를 아국(我國), 우리 여러 사람이나 우리들을 아등(我等), 우리 나라를 아방(我邦), 자기 의견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아견(我見), 우리 편 군대나 운동 경기 등에서 우리 편을 아군(我軍), 자기를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번뇌를 아만(我慢), 나에게 애착하는 번뇌를 아애(我愛), 자기의 이익을 아리(我利), 참 나가 있는 것으로 아는 잘못된 생각을 아상(我想), 자기 혼자만의 욕심을 아욕(我慾),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식이나 관념을 자아(自我), 육체적인 나를 소아(小我), 남과 구별된 개인로서의 자아를 개아(個我), 저편과 우리편 또는 남과 자기를 피아(彼我), 스스로를 잊고 있음을 몰아(沒我), 어떤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자기 자신을 잊음을 망아(忘我), 바깥 사물과 나를 물아(物我), 나 밖의 모든 것을 비아(非我), 자기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아를 실아(實我),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여 행동함을 위아(爲我), 오직 내가 제일이라는 유아(唯我), 남이 자기를 따름을 응아(應我), 다른 사람과 자기를 인아(人我), 자기 논에만 물을 끌어 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함 또는 억지로 자기에게 이롭도록 꾀함을 이르는 말을 아전인수(我田引水), 내가 부를 노래를 사돈이 부른다는 속담의 한역으로 책망을 들을 사람이 도리어 큰소리를 침을 이르는 말을 아가사창(我歌査唱),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형편이라는 뜻으로 후손이나 남을 걱정할 여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아궁불열(我躬不閱), 내 마음은 저울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의 공평함을 이르는 말을 아심여칭(我心如秤), 자기네 편의 무위가 드날림을 이르는 말을 아무유양(我武維揚), 이 세상에 나보다 존귀한 사람은 없다는 말 또는 자기만 잘 났다고 자부하는 독선적인 태도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유아독존(唯我獨尊), 바깥 사물과 나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한 몸으로 이루어진 그것을 일컫는 말을 물아일체(物我一體), 어떤 생각이나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자신을 잊어버리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망아지경(忘我之境), 본디 내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뜻밖으로 얻었던 물건은 잃어 버려도 서운할 것이 없다는 말을 본비아물(本非我物), 자기가 어떤 것에 끌려 취하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을 자아도취(自我陶醉), 잘못이 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는 말을 곡재아의(曲在我矣), 옛일에 구애됨이 없이 모범이 될 만한 일을 자기부터 처음으로 만들어 냄을 이르는 말을 자아작고(自我作古), 어떤 사물에 열중하여 자기를 잊고 다른 사물을 돌아보지 않거나 한 가지에 열중하여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림을 일컫는 말을 무아몽중(無我夢中), 자기 때문에 남에게 해가 미치게 됨을 탄식함을 일컫는 말을 유아지탄(由我之歎), 인신人身에는 항상 정하여져 있는 주제자 즉 아我가 없다는 말을 인아무상(人我無想),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흠뻑 취함을 이르는 말을 무아도취(無我陶醉),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상을 일컫는 말을 자아주의(自我主義), 남 잡이가 제 잡이로 남을 해하려 하다가 도리어 자기가 해를 입는 다는 뜻의 속담을 착타착아(捉他捉我), 상대방인 저쪽은 그르고 나는 올바름을 일컫는 말을 피곡아직(彼曲我直), 자기의 생각이나 행위에 대하여 스스로 하는 비판을 일컫는 말을 자아비판(自我批判)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