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트럼프가 중국을 들먹이며 파나마운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파나마운하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통로 역할을 맡고 있다. 가뜩이나 속도도 느린데 위 아래로 길쭉한 아메리카 대륙을 빙 돌아가야 하는 화물선의 운항시간 단축에 큰 획을 그은 운하이다.
다만 현대의 배들은 크기가 워낙 거대해져 통과 선박 크기에 제한이 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겠다는 구상은 기원전부터 존재했다. 최초의 운하 시도는 기원전 19세기 세누스레트 3세 때였다.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본은
“세누스레트 3세가 나일강을 150㎞가량 떨어진 홍해와 연결하려 했고, (이집트를 점령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도 똑같은 시도를 했다”
고 기록했다.
이런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작으나마 물길을 내는 데 성공한 사람은 기원전 3세기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다.
그는 나일강에서 현재 수에즈운하가 지나가는 비터호까지 90㎞의 길이에 폭 30m, 깊이 10m의 물길을 냈다.
근대 들어서는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이집트를 점령한 뒤 운하 건설을 시도했다.
그러나 홍해의 수위가 지중해보다 10m나 높다는 조사 결과 때문에 공사를 포기했다. 갑문을 만들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조사였다. 파나마운하와 달리 홍해와 지중해는 수위 차이가 없었다.
파나마 운하와 수에즈 운하는 둘 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로부터 노략질을 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 이유는 지금도 변함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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