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 뒤, 잠마저 떠나버린 모질이의 독백.
🙏🎋幸福한 삶🎋🎎🎋梁南石印🎋🙏…
어느 모질이의 삶이 녹아든 인생이라는 역작을 탈고한
유한의 삶에 구구절절한 얘기를 품은 사람들을 위해
오래전부터 인생이라는 무대 하나 세워지고 있었다.
누가 감독인지,
왜 대본을 썼는지,
어떤 첫 장면을 열지
마지막 연출 어떻게 장식될지는
감독조차 엿보지 못한
센세이셔널한 휴먼드라마가 펼쳐질 무대가 세워졌다.
다만 사람들은
저마다 단 한 번뿐인 배역을 맡아
울고 웃으며 무대 위를 걸어갈 뿐이었다.
주인공의 자격은 아무것도 없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예외 없이
누군가는 주인공으로 불리고,
어떤 이는 조연으로 남게 되며,
또 누군가는 이름조차 남지 않는
엑스트라로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나 또한 예외 없이 주인공 때론 엑스트라 중 하나였다.
그가 어제와 다름없이 콧노래 부르며 출근한 어느 날,
숙명으로 뒤엉켜진 인연이라는 원고를 탈고한
무명작가의 낡은 노트를 심술궂은 감독 손에 들어왔다.
그 감독이 공개한 작품마다
눈길을 붙잡지 못해 초조해하고 있을 때
그의 눈에는 마그마가 뿜는듯한 빛이 났다.
그는 무릎을 “탁” 치며 옳다 꾸나! 이거다.
손가락 끝에 침을 묻혀 가며
원고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구겨진 종이 사이사이 읽을 때마다
눈을 파르르 떨 때도 찡그릴 때도 있었지만
행복한 모습에 웃음도 띠었고, 눈물도 흘렸다.
둘만의 달콤한 입맞춤과
죽어도 좋을 듯한 사랑도 적혀 있었고,
서로의 탓만 하던 갈등을 이겨낸 장면도 있었으나
책임을 떠넘기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려
끝내는 돌이킬 수 없는 이별도 적혀 있었으며,
컴컴한 골방에서조차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뼛골이 녹아나는 후회까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감독은 한번 두번 진지하게 원고를 들여다보다
마침내 그의 역작인 한 편의 드라마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렇지만 그가 내놓은 작품은 명작도
해피엔딩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눈물을 씹어 삼켜야 했던
어느 모질이의 구질구질한 삶을
무대 위에 올려놓은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역할을 맡았다.
주인공도 있었고,
조연과 소품도 있었으며,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도 있었다.
그렇게 내 인생이라는 드라마도
소란스럽지 않게 첫 장면을 시작했다.
발길에 채이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평생 해로할 한 사람을 찾아가는 장면은
감독이 가장 공들여 연출한 장면이었다.
조연출은 러브레터 편지 한 장을
핑크빛으로 채색해 곱게 수놓았다.
그 편지는 두 사람의 마음을 이어 주었다.
행복이라는 꽃은 소리 없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향기에 취해 그의 흔적만 보여도 좋았다.
눈만 마주쳐도 미소 꽃이 피어났고,
손끝만 스쳐도 황홀경에 빠져
세상이 모든 것이 내 것 같았다.
혹시라도 누군가 먼저 낚아채 갈까 봐
잽싸게 품에 안았을 때까지만 해도
어리석게도 그 행복이 평생 내 것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알 수 없었으나
꽃술 아래 줄기에 날카로운 가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그 가시는 처음부터 있었는데
뭐에 홀려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라면….
아름다운 꽃을 떠받치고 있던 줄기에
다름을 가볍게 여긴 내 욕심과 고집이 먼저
날카로운 가시를 돋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 생각은 세월이 흘러도 내 가슴 복판에 머물러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저게 괜찮아 보이는데 어때
그는 아니야 실용성을 따질 때 요것이 괜찮아
사소한 소품 하나를 가지고 말을 이어가다!
우격다짐으로 끝맺는 순간도 있었다.
어느 날은 무거운 침묵이 흐르다가
날 선 눈빛으로 사사건건 부딪쳤다.
대수롭지 않은 말에도 마음이 상했고,
별것 아닌 표정에도 서운함이 쌓였다.
가시를 품지 않은 것 같은 말에도
서로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고,
이해해 달라는 말은 변명으로 들렸으며,
미안하다는 말은 입안에 오물거리다 끝났다.
쬐끔만 참으면 될 일을 끝까지 이기려 들었고,
웃어넘기면 될 일을 굳이 옳고 그름을 가려내려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으로 희한하게도 알 수 없었다.
붙잡아야 할 사람에게는
따뜻해야 느껴지도록 해야 하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경계를 두지 않고 주절였던 말들이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가 될 줄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이틀 반복되다 보니 불만이 쌓인
서로의 목소리는 담장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해야 할 말은 톤이 높고 날카로워져
둘만 들어야 할 이야기는 담장 너머로 새어 나갔다.
바로 그때였다.
대본 한쪽에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엑스트라 하나가
두 귀를 쭝긋이 세우고 걸음을 멈추었다.
담장 너머로 새어 나온 작은 다툼의 소리에 이끌려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더니,
끝내 우리 둘만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작은 틈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그저 스쳐 지나갈 작은 갈등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때로 이름 없는 엑스트라 하나가
주인공보다 더 오래 한 장면을 차지하기도 한다.
마치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보게 된 듯
담장 너머를 슬쩍 들여다본 엑스트라는,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누구도 청하지 않았음은 서로가 더 잘 알고 있으나
그는 슬그머니 우리 둘만의 인연 속으로 끼어들었다.
지나가는 조연이면 조연답게 쓱 지나가면 될 것을,
엑스트라는 어느새 주인공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지난날을 헤집어
한마디를 보태고, 두 마디를 얹고,
사실보다 큰 말로 갈등에 불을 지폈다.
입김처럼 가벼운 바람 한 점에도 흔들리던 마음은
그 말 몇 마디에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았다.
둘 사이 작은 금은 어느새 틈이 벌어지고
절벽에서 내리꽂는 폭포 줄기가 되었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였던 우리는
끝내 서로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그날이었다….인생이라는 드라마는
예고도 없이 이별이라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주인공도 조연도 카메라 각도를 돌려
더 멋진 장면을 연출하자며 이끌어낼 연출자는
그 순간에 화장실이라도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서도 다툼이 이어질 때,
“컷! 하는”
능청스러운 감독의 외침도 없었고,
“자, 잘 해봅시다. 다시 한번 갑시다.”
그 흔한 말조차도 없었다.
훗날 곱씹으며 후회한 것은 대단한 이유가 아니었다.
다만 한 번 끝난 컷은 영원히 찍을 수 없다는 것을
정말이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날 이후 원망보다 그리움이 먼저 찾아왔다.
미움보다는 보고 싶음이 분별없이 앞질러 달려와,
지우려 할수록 사랑을 품은 추억은 더 선명해졌다.
밤이면 그 사람의 애교스러운 말이 들렸고,
새벽이면 그 사람의 몸에 다리를 얹었던 시늉을 했고
어둠이 사라진 아침이면 그 사람이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뒤늦게 후회하며 그때 다독여 줬더라면.
그때 한 번만 더 속삭이며 다정하게 껴안아 줬더라면.
그때 못 들은 척, 못 본 척, 조금만 더 품어줬더라면.
“입가에 맴돌던 그 말 자기가 참 좋아 사랑해.”
그 흔한 말 한마디가 내 삶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왜, 무슨 이유로 그토록 아끼다가 파국을 맞았을까.
잠 못 든 밤 그 생각만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하며
숫자를 헤아리고 기와집을 지었다 부셨다 하며
까만 밤은 어느새 새하얀 밤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약한 잠은 그날 이후
내 집 주소를 잊어버린 것처럼 통 찾아오지 않았다.
몸은 하루하루 야위어 갔고,
마음을 비우느라 게워 내도 그 사람만 가득 찼다.
울어도 우는 게 웃어도 웃는 게 아닌 서러운 삶,
친구가 맛있는 음식이라고 권해도 무슨 맛인지 몰랐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 속에 뒤섞여
태연한 얼굴로 아무 일 없는 듯 살아냈지만
밤만 되면 세상 사람들의 모든 외로움이
내 외로움과 공명이라도 하듯 방문을 두드리고,
나도 모르게 문 앞으로 달려가 잽싸게 열어본다.
별빛조차 스며들지 못하게
암막 커튼을 쳐도 잠은 오지 않고,
떨치고 싶어도 떨치지 못한 그리움이 찰 어쩌지 못해
후회만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내 옆자리를 차지했다.
추신 : 추후에 못다 한 후속편이 이어질 것입니다.
인생을 한 편의 서사 드라마로 비유해
소중한 인연을 잃어 잠마저 외면한 모질이의 독백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픈 마음을 보지 못해 상처 주었던,
지나간 시간을 붙들고 후회하는 못난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