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이 많으신 분들은 본문을 다 읽으셔도 되고, 긴 글이 싫다 하시는 분은 맨 밑에 요약본만 읽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싸줄은 대부분 이강인 미발탁을 이해하는 쪽이라 굳이 올릴 필요는 없지만서도... 아직 의구심이 남아있는 분들을 위해 가생이에 올렸던 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일단 본론에 앞서 연령별 대표팀의 생리에 대해서 논해야 한다. 현대축구가 발전하면서 연령별 대표팀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은 구태여 거론하지 않더라도 축구팬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혹자는 우리나라에서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연령별 대표팀 감독의 승격을 ' 감독 키워주기 ' 라며 부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감독 밀어주기는 선진국에서 오히려 장려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스코를 필두로 한 스페인의 U21 세대의 부흥을 이끌었던 로페테기가 그렇다. 로페테기는 스페인의 전략적 육성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한 케이스고 실제로 로페테기는 자신들이 이끌었던 이스코 세대를 필두삼아 스페인 감독으로 부임한 후 성공적인 세대교체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월드컵 전 불미스러운 일로 잘리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의 스페인은 이전의 티키타카와 이스코를 중심으로 한 스피드를 가미하며 새로운 대표팀으로 탈바꿈했다는게 세간의 평가였다.
또 다른 예시로는 사우스게이트가 적절하겠다. 미들즈브러를 맡아 팀이 강등된 전력이 있는 사우스게이트는 사실 감독의 경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잉글랜드의 유스 정책 일환으로 연령별 대표팀을 맡은 사우스게이트는 기존 잉글랜드의 색채에서 속도감을 더했다. 비록 대외적인 우승컵을 따내지는 못했지만 그의 지도를 받은 해리 케인, 존 스톤스, 제시 린가드, 델리 알리 등은 이제는 대표팀의 주축이 되어 사우스게이트의 지도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프로팀 감독으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사우스게이트를 전략적으로 밀어준 잉글랜드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 결실을 거둔 것이다.
연령별 대표팀을 논하기에 앞서 두 성공사례를 예로 든 것은 이들이 연령별 대표팀의 생리를 매우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연령별 대표팀은 성인 대표팀과 다르다. 성인 대표팀은 결과를 보여야 하는 자리라면 연령별 대표팀은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가의 철학과 국가에 알맞는 전술, 그리고 성인 대표팀에 적합한 선수들을 육성하기 위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령별 대표팀들은 대체로 그 나라에 걸맞는 선수 육성 방법과 전술, 그리고 철학을 갖고 운영되기 마련이다. 주로 감독들은 그 철학을 잘 구현할 수 있는 감독들로 선임되고, 설사 감독들이 바뀌어도 연령별 대표팀들은 비슷한 기조에서 운영되어 전술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시도가 분명 있었다. 모두가 잘 아는 이광종 감독이 그런 감독이었다. 이광종 감독은 2009년 U17에서 2011년 U20, 이후 아시안게임 대표팀과 올대를 맡으면서 일관된 전술 기조를 가지고 팀을 운영하는 감독이었다. 그의 4231 기반의 점유를 중시하는 축구와 최전방에 포스트 플레이가 좋은 원 톱을 박아놓고 민첩한 2선들로 공간을 노리는 플레이는 분명 그 시절의 성인대표팀 전술의 주축이었다. 비록 이 기간동안 성인 대표팀의 4231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이광종 감독의 지도 아래에서 4231의 대한민국 청대는 르네상스를 꽃피운건 사실이다.
이광종 감독의 팀 운영은 이러했다. 일단 4231의 기본 골자 위에 연령별로 핵심이 되는 선수들을 각 자리에 박아넣는다. 그리고 그 선수들을 오랜 기간 손발을 맞춰(최소 1년 이상) 조직력을 극대화한다. 그 와중에 새롭게 두드러지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대표팀에 불러 몇 차례 훈련과 경기 실전을 통해 전술에 맞는 선수인지 점검하고, 쓸만하다고 판단되면 대표팀에 더한다. 이것이 기본 골자이다. 이것은 이광종 감독 뿐 아니라 로페테기나 사우스게이트 감독도 마찬가지다. 대다수의 연령별 대표팀은 이렇게 돌아간다. 즉, 선수 이전에 먼저 철학과 전술이 있고 그 전술에 최적화된 선수들을 맞춰 이후 성인대표팀까지 이어지는 철학에 걸맞는 선수들을 길러내는 방식이다.
실제로 이광종 감독은 원톱 자리에 이상하리만치 포스트플레이에 치중된 선수들을 고집했다. 예컨대 2011 청대에 데려가 2014년 아시안게임까지 함께한 이용재나 2013년 청대를 함께한 김현같은 스타일이다. 이런 선수들은 사실 평소에는 욕을 엄청 들어먹는 스타일이었다. 특히 김현의 경우 아시아권에서도 특출난 모습을 보이지 못하며 조롱을 사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광종 감독은 한번 자리를 잡은 원톱자원은 웬만해선 바꾸지 않았는데, 그것이 이광종 감독이 청대에 전반적으로 깔아놓은 전술 기조에 맞는 자원이었으며 조직력을 극대화하면 그 위력이 올라가는 타입의 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김현은 결국 조직력이 올라가는 청대 월드컵같은 본대회에서는 경기력이 부쩍 올라 ' 국제용 공격수 ' , ' 김현도프스키 ' 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여기까지 길게 돌아온 이유를 이제 설명하겠다. 우리나라는 이런 이광종 감독의 별세 이후, 또한 축협의 일관성 없고 기준을 알 수 없는 청대 감독 선임으로 이러한 기조가 끊겨버렸다. 이전 U23을 맡은 김봉길은 아무리 봐도 어떤 철학이나 기조를 갖고 팀을 운영하는 감독이 아니었다. 김판곤은 이러한 판단 아래 이전 기술위가 똥을 싸놓은 김봉길을 빨리 경질하고 김학범을 앉히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문제가 있었다. 김학범 감독은 대회 1년도 남지 않아 감독 자리를 이어받았고, 그나마도 청대가 가져야 할 전술 기조나 선수 구성은 아예 無에 가까운 상태였다. 선수선발마저 김봉길이 개판을 쳐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이광종 감독처럼 기본적인 셋팅이 되어 있는 상황에서 그 전술 위에 어울리는 선수들을 얹는 형태로 구성되었어야 할 U23은 맨땅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김학범 감독은 그대로 주저앉을만큼 멍청한 감독이 아니었다. 실제로 김학범 감독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전술적 바탕을 셋팅하는 일보다 선수들부터 찾아다니는 일이었다. 대회까진 1년도 남지 않았고, 전임감독이 어떤 전술적 유산도 물려주지 못한 상황. 여기서 김학범 감독은 과감하게 리셋을 선택한 것이다. 즉, 최대한 선수들을 불러모으고 그 선수들을 훈련시키며 이것저것 시도해 어떻게든 대회에 어울리는 팀을 구성하려 한 것이다. 김학범 감독은 원래 전술욕심이 강한 감독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전술구성에 시간을 들이는 순간 실패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김학범 감독이 선수 찾기에 몰두했다는 사실은 그가 포르투갈리그 2부리거였던 황문기란 생소한 선수마저 해외파 발탁 후보로 거론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해외,국내, 그리고 나이도 불문하고 선수들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찾아낸 선수들을 한데 모아 전지훈련을 여러차례 돌려 최대한 선수들을 솎아내려 한 것이다. 김학범 감독 체제에서 소집훈련이 상당히 많고, 반면 이 시기 즈음 되면 으레 많이 잡았던 평가전은 현지적응 차원에서 인도네시아와의 경기 한 경기에 그쳤다는 점만 봐도 얼마나 김학범 감독이 팀 구성에 몰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시간이 촉박했고 기반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김학범 감독에게 선수들을 불러다 쓰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모든 선수들이 제로베이스부터 다시 시작했고 어떤 강점이 있고, 또 어떤 전술에 어울리고,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첫 소집에서는 전세진,조영욱을 비롯해 아주 어린 선수들도 불러다 실험을 했다. 그리고 2차 소집때는 시즌 중 소집이 어려웠던 해외파들까지 적극 소집하며 역시 어울리는 파츠를 찾아내려 했다. 그리고 3차 소집 때는 그러한 전술을 인도네시아의 평가전에서 구현해보고 선수들의 강점을 평가하려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차례차례 선수들이 솎아졌다. 1차 소집에서 불렸던 선수 중 대다수가 2차소집때는 걸러졌다. 그리고 이 2차소집 때 소집된 해외파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현지적응훈련 역시 마다하지 않고 치뤘다. 그야 그렇다. 김학범 감독은 팀을 완성시키기 위해 온갖 것을 다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강인은 분명 고려대상이었다. 툴롱컵을 치룬 이강인에게 바로 소집통지를 부른 것만 해도 이 선수들을 발탁하는 알고리즘에 이강인을 넣어보려는 계산이 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발탁이란건 결코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가 수치화되어 숫자 높은 선수를 집어넣기만 하면 되는 축구게임같은 것이 아니다. 그 선수를 불러 자신이 고려하는 전술에 넣어보고 그 전술을 잘 수행하는지, 또 무더운 현지 날씨에서 악명높기로 소문난 김학범 감독의 체력훈련을 잘 소화하는지, 또 수개월간 합숙을 한 선수들 틈새에서 새롭게 들어온 선수가 조직력을 허물어뜨리지 않고 잘 맞춰나갈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을 판단하고자 선수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소집에 응하지 못한 순간, 이 플랜은 모두 소용이 없어진 것이다.
연령별 대표팀은 앞서 말했듯 잘하는 선수들 모아다 잘 조립만 하면 되는 곳이 아니다. 어느 대표팀보다 조직력과 전술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곳이고, 따라서 선수들이 수개월간 발맞춰 철학과 비전을 공유하고 조직력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자리인 것이다. 이광종 감독도 일단 예선에서 윤곽이 드러난 대표팀의 스쿼드를 본선 대회까지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았다. 그리고 김학범 감독은 분명 시즌 중반에 이강인을 소집하고자 했을 정도로 이강인을 이 시스템에 넣어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에 들어가지 못한 순간 이강인의 미발탁은 어찌보면 당연하게 된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한다. 뛰어난 선수는 뽑아써야 하지 않나? 해외파들이 훨씬 기량이 뛰어난데?
미안하지만 백승호, 김정민, 이진현(오스트리아시절), 서영재같은 해외파들도 전부 이 발탁 과정을 거쳤다. 그들 역시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 엄격한 판단을 받고 조직력 구성에 최선을 다했으며, 소속팀이 달가워하지 않는 와중에도 묵묵히 땀을 흘려 본선에서 선택받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그 바늘같은 구멍을 뚫은건 김정민 뿐이었다.(이진현은 국내복귀) 그렇다. 오히려 이강인을 이러한 시스템에 넣지 않고 발탁하라는건 되려 이강인에게 일종의 특혜가 되는 것이다. 조직력과 김학범 감독이 구상한 전술을 해쳐가면서까지 그런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없다.
더더군다나 아시안게임은 소집 이후 2주 후 바로 본 대회가 시작이다. 월드컵처럼 한달 전에 소집해 평가전을 여러번 돌려보며 시험할 시간이 더더욱 없는 것이다.
그러한 시스템을 무시할 정도의 선수라면 이미 성인국대에 준하는 선수들만이 그럴 수 있다. 손흥민, 황희찬, 김민재, 이승우 등이 그렇다. 이강인이 이런 발탁 시스템을 완전히 무시하고 대표팀에 발탁될 정도로 성인 국대에 준하는 기량을 가졌는가? 뭐, 그렇게 주장해보시던가.
난 이강인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강인을 불러다 써도 충분히 제 몫을 해줬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 입장에서 보면 미발탁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히려 합리적으로 보자면 미발탁이 더 옳은 선택이다.
김학범은 제로베이스부터 시작해 전술 구성과 선수 발탁, 전술에 맞는 훈련방식까지 단 7개월만에 모두 해내야 하는 악조건 속에서 3차례 소집훈련과 현지훈련을 통해 철저히 옥석을 가려냈다. 현재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손흥민같은 선수들을 제외하면 모두 이 과정 속에서 김학범 감독이 직접 테스트를 합격시킨 선수들인 것이다. 이강인을 뽑게 된다면 이러한 발탁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선수를 뽑게 된 것이고.
차라리 황의조를 석현준과 견주어 까는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이강인 미발탁을 까는 건 그야말로 연령별 대표팀의 생리를 고려하지 않았음을 증명한 꼴이다.
[7줄 요약]
1. 연령별 대표팀은 본디 그 나라의 철학과 전술의 토대 위에 선수들을 얹는 식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2. 축협의 이해할 수 없는 김봉길 선임과 그 김봉길이 난장판을 쳐놓음으로서 U23은 전술도, 시스템도 없는 무주공산이 되었다.
3. 후임인 김학범 감독은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했고 7개월만에 성과를 내야 했다. 덕분에 전술 위에 선수를 얹는게 아니라 일단 선수들을 다 끌어모아 훈련을 시켜 경쟁하도록 해 그 중 좋은 선수들을 가려내 그 선수들로 전술을 구성해야 했다.
4. 이 과정은 백승호,김정민,이진현(오스트리아시절) 등 해외파들도 예외없이 거쳐야 했던 과정이었고, 이 과정에서 이강인도 테스트하기 위해 훈련소집요청을 보냈으나 구단이 거부했다.
5. 3차례의 소집훈련 끝에 김학범이 자기의 훈련을 잘 견디고 수준이 높다고 판단한 선수들을 토대로 전술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 여기서 그 선발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이강인을 뽑는건 아예 구상부터 새로해야 한단 소리. 특히나 조직력이 중요한 연령별 대표팀에서 이는 어려운 일이다.
6. 그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는건 손흥민, 황희찬, 이승우, 김민재처럼 이미 성인국대급 실력을 갖췄음을 증명한 선수들만이 가능한 일.
7. 만약 우리나라 청대 시스템이 정상적이어서 전술과 철학이 기반이 되었거나, 이강인이 훈련에 소집되어 저런 과정을 거쳤다면 발탁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의 특수성과 김학범 감독 특단의 조처로 어쩔 수 없이 발탁에서 배제되었다.
|
첫댓글 그러고보니 김학범도 소방수. 개같은...
우리나라도 고정된 철학이 있어야함
이광종감독이 별세하지 않고 쭈욱 이어가서 성인대표팀이 됐다면 어땠을까 싶네요
중간에 무조건 발목잡혔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아서 여론의 뭇매를 맞으셨을듯 ㅠㅠ
@손채영 그렇죠... 결국은 축협이 제대로 운영되어야 하겠죠.
딴소리지만 김판곤이 감독 선발 프로세스 만들어서 뽑는다고 했으니... 그건 기대해보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학범이 올림픽까지 가기로 되어 있는 거 같구요.
로페테기, 사우스게이트처럼 굳이 안써도 됨....철학만 공유하면 그에 맞는 감독만 축협이 데려와도 사단이 안나죠
애시당초 스페인이나 잉글이 특이 케이스지 모범케이스라고 볼수는 없다고 전 느낍니다.
이거 공감되네요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