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ESPN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성민(35)에게는 한때 '풍운아'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신일고, 고려대 재학시절 청소년대표와 국가대표의 주축 투수로 활약하면서 메이저리그와 일본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받았다. 96년 일본프로야구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야구인생의 절정을 경험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요미우리에서 선발투수로 나섰고 98년에는 올스타 선발의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팔꿈치 부상과 그 후유증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해 요미우리에서 방출된 뒤 선수생활을 접었다가 2005년 한화에 입단해 마지막 불꽃을 태웠다. 국내무대에서 통산 3승4패, 방어율 5.09의 성적을 남겼다. 2년여의 공백기를 딛고 현역에 복귀해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하는 모습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야구 외의 인생에서도 톱배우 최진실과의 결혼과 이혼 등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굴곡많은 삶을 살아 '풍운아'로 불렸던 그는 요즘 '큰 꿈'을 키워가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올해초 야구 해설가라는 직업을 새로 얻었고, 한번 결혼에 실패한 아픔을 딛고 인생의 배필도 다시 만났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던 지난달 28일 광주구장에 선수들보다 일찍 나와 해설을 준비하던 그를 만나 지나온 야구인생과 현재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원대한 꿈에 대해 들어봤다.
◇초보 해설가의 고민
지난 3월부터 야구 해설가로 활약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잠깐 해설을 해본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해설가의 길에 접어든 것은 올해부터다. '초보'이다 보니 힘든 게 한두가지가 아니고 고민도 많다. 보통 경기 개시 3시간전에 야구장에 나와 훈련하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인터뷰를 한다. 초보의 한계를 부지런함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다.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과 야구경기를 해설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 예상치 못한 작전 등 갑작스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당황한다. 고민도 있다. 시청자들의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해설을 하고 싶지만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 마음 속에 있는 말을 다 해버리고 싶을 때가 종종 있죠. 그러나 그게 어디 쉽나요. 야구계가 좁고, 현장에 계신 코칭스태프가 다 선배님들이고 스승님들이라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요. 근질근질한데 둥글둥글하게 말하고 있죠. 그래도 해설은 야구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청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비평할 것은 비평하고 있어요. "
◇폼이 예뻐야 오래 간다
선수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다. 특히 아마추어 때 유망했던 선수들이 프로에서 제대로 기량을 꽃피우지 못하는 것을 볼 때면 아쉬움을 느낀다. 청소년대표나 국가대표는 세계 최강 수준인 한국야구가 프로로 접어들면서 미국이나 일본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름대로 진단도 내렸다. " 우리는 힘으로 야구를 해요. 아마추어 때는 그게 통하거든요. 그런데 프로에 오면 달라지죠. 힘은 기술을 절대로 이길 수 없거든요. 우리가 힘으로 미국 애들 이기겠어요? 그래서 저는 타자나 투수나 폼이 예뻐야한다고 말하곤 해요. 폼이 예쁘다는 건 기본기가 잘 갖춰져 있다는 얘기고, 그래야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이 늘거든요. " 그는 일본에서 선수로 뛸 때 데뷔 초기에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선수들이 몇년이 지나 대형스타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기본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고 했다.
◇야구사랑, 그 원대한 꿈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선수생활을 그만 두고 해설을 하고 있지만 그것에 만족하고 있을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해설가들이 그렇듯이 지도자로 현장에 복귀하는 것을 바라고 있을까?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속내를 털어놓지 않고 " 그냥 야구관련 일이에요 " 라고만 말했다. 1시간 넘게 인터뷰를 하면서 수차례 화제를 바꿨다가 다시 돌아와 묻자 말미에야 마음 속을 털어놨다. " 지도자 생각은 없어요. 적어도 지금 현재는요. 먼 훗날 그런 기회가 오면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계획하고 있는 것은 유소년야구와 관련된 거예요. 요즘 그것 때문에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구요. 아직 다 무르익지 않아서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런 거죠. 유소년 야구팀들이 체계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매뉴얼도 만들고,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기본기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유소년팀 10개만 그 시스템에 따라 배워도 100명, 200명은 혜택을 볼 거잖아요. 조금 전에 말했 듯 기본기를 잘 배워 '폼이 예쁜' 꿈나무들을 키우는 일을 하는 게 목표이자 꿈이죠. "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강하게 느껴져 " 나중에 유소년팀 10개를 두고 있는 구단주가 되는 것 아니냐? " 라고 묻자 " 글쎄, 그렇게 되면 꿈을 이룬 거죠 " 라며 활짝 웃었다.
◇'머리 아픈' 큰 꿈
일단 말문이 열리자 자신의 꿈을 펼치는데 수반되는 고민도 털어놓았다. " 요즘 그 일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와이프는 돈이 한두푼이 드는 일이 아닌데 왜 골치아프게 큰 일을 벌이려고 하느냐고 야단이거든요. 그렇다고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일도 아니구요. "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할 일이고, 유소년야구 육성에 뜻이 있는 사람들의 경제적인 도움도 필요한 일이지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된다고 했다. 조성민의 큰 꿈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팀 형태를 띤 일종의 '야구교실'에 피칭스쿨과 재활클리닉 등까지 갖춘 대형 프로젝트다.
◇박수칠 때 떠나라
지난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그에게 선수생활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은 남아있지 않을까. 마침 이날 광주구장에는 그와 동기인 이재주 김종국 박재홍 정경배 등이 나와 훈련을 하고 있었다. " 어제 재홍이가 만루홈런을 치는 것을 봤는데 아직도 파워가 안떨어졌더군요. 그 나이에 어린 친구들에게 밀리지 않고 몸관리를 잘 하며 뛰는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지금 은퇴했지만 미련 같은 것은 없어요. 그냥 끝날 뻔 했는데 김인식 감독님 덕분에 국내무대에서 선발승도 거뒀고, 구원승도 따냈으니 운이 좋은 거죠. 아마 그 과정이 없었다면 미련이 남았을 겁니다. " 조성민은 당시를 회상하면서 " 1군 마운드에 올라 단 한개의 공이라도 힘차게 던지고 그만 두고 싶었어요 " 라고 밝혔다. 스포츠선수들이 현역생활 막바지에 겪게 되는 가장 큰 고민은 은퇴라는 선택이다. 그는 " 정말 결정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박수칠 때 떠나라'라는 말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 라며 소신을 밝혔다.
이평엽기자 yuppie@ 사진 | 최승섭기자 thund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