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청300.hwp
노자 도덕경 읽기 50강 (68장)
(1) 제68장 원문
善爲士者, 不武. 善戰者, 不怒. 善勝敵者, 不與. 善用人者, 爲之下.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
선위사자, 불무. 선전자, 불노. 선승적자, 불여. 선용인자, 위지하. 시위부쟁지덕. 시위용인지력. 시위배천, 고지극.
-------------------------------------------------------------
선(善) : 착하다. 좋다. 훌륭하다. 잘하다. 옳게 여기다. 아끼다. 친하다. 사이좋다.
사(士) : 선비. 무사. 관리. 사내. 남자. 군사. 병사. 일. 직무. 벼슬하다. 일삼다.
무(武) : 무인. 무사. 병사. 군대의 위용. 무위(武威). 병법. 전술. 무예. 무술. 병장기. 무기. 발자취. 발자국. 굳세다. 용맹스럽다. (군사를)부리다. 지휘하다.
여(與) : 더불다. 같이하다. 참여하다. 주다. 베풀어주다. 허락하다. 인정하다. 간여하 다. 간섭하다. 돕다. 협조하다. 마주치다.
배(配) : 나누다. 짝짓다. 짝지어주다. 걸맞다. 견주다. 귀양 보내다. 종사하다. 딸리다. 예속하다. 보충하다.
고(古) : 옛. 예전. 옛날. 선조. 묵다. 오래되다. 예스럽다. 순박하다. 잠시. 우선.
극(極) : 지극하다. 다하다. 이르다. 다다르다. 이르게 하다. 미치게 하다. 극. 근본.
-------------------------------------------------------------
(2) 번역
관리를 잘 하는 자는 무위(武威 : 무력의 위세)를 사용하지 않고,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적을 가장 잘 이기는 자는 적과 마주치지 않고,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그들의 아래에 몸을 둔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사람 쓰는 능력이라 하며, 이것을 하늘과 짝할 수 있는 옛날부터 전해온 지극한 이치라 한다.
(3) 해설
훌륭한 무사(武士)는 무기(武器)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무공이 뛰어나기 때문에 맨 손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상서롭지 못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므로 아예 싸움을 일으키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모든 조직관리로 확대하면, 훌륭한 관리자는 무력(武力)의 위세(威勢)를 사용하지 않고도 부하들을 잘 다스릴 수 있다. 그러나 관리능력이 부족한 자는 조직의 위력(威力)을 빌려서 다스린다. 조직의 위력을 빌리는 것은 강제력을 동원한 방식이다. 이 방식은 부하들을 스스로 따르도록 만들 수 없을 때 사용한다. 부하들에게 강제적인 방식을 쓰지 않고, 그들을 스스로 따르도록 만드는 자가 훌륭한 관리자이다. 그래서 노자는 이번 68장에서 “관리를 잘 하는 자는 무위(武威 : 무력의 위세)를 사용하지 않고”(善爲士者 不武)라고 말한다. 조직관리를 아주 잘 하는 사람은 강제적인 방식을 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 사람들의 아래에 몸을 두어(善用人者 爲之下) 스스로 따르도록 만든다.
이 원리를 개인에게 적용했을 때, 상대보다 기량이 뛰어난 자는 상대가 싸움을 걸어왔을 때 성을 내지 않는다. 충분히 여유 있게 제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싸우는 상대에게 성을 낸다는 것은 그런 여유가 없다는 것이고, 여유가 없다는 것은 상대를 제압할 만한 기량의 부족함을 드러냄에 불과하다. 상대에게 성을 낸다는 것은 상대의 존재를 강하게 의식하는 행위이다. 힘이 약한 어린아이가 어른에게 싸우자고 할 때, 대부분 어른은 가볍게 웃어넘긴다. 적개심을 품고 상대해야 할 적(敵)으로 여기지 않는다. 적수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잘 싸우는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자신은 성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싸움을 잘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善戰者 不怒)라고 말한다.
어린아이와 어른이 싸움 상대가 되지 않듯이 어른 같은 마음과 지혜의 힘을 지닌 사람은 자신이 대하는 사람들을 어린아이처럼 보호해주고,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적을 만들지 않는다. 도덕경 67장에서 노자가 말한 자애(慈愛), 검소(儉素), 겸양(謙讓)의 세 가지 보배를 몸에 지닌 사람은 적이 생길 수 없다. 자애의 마음은 우선 상대가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라니 원한이 없으며, 검소의 마음은 분배에 있어 적게 차지하기 때문에 마찰할 일이 없으며, 겸양의 마음은 남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고, 좋은 것을 양보하니 싫어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정말 잘 싸우는 사람은 아예 적을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노자는 “적을 가장 잘 이기는 자는 적과 마주치지 않고”(善勝敵者 不與)라고 말한다.
노자는 싸움을 해서 이기기보다 적을 처음부터 만들지 않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훌륭한 무사는 무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기를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는 싸움의 대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제일 잘 하는 것은 상대를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것이 좋고, 그것이 안 된다면 그를 최소한 적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상대가 무기를 지니고 있으면서 위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고, 싸우면 이겨야 한다. 다만 싸워서 이기더라도 기뻐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무기를 들고 싸우는 싸움, 특히 전쟁은 많은 희생이 따른다. 적이든 아군이든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한 애도를 자신의 승리보다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31장에서 “이기더라도 불미스러운 일로 여긴다”(勝而不美)고 하였다. 그리고 69장에서는 “군대를 일으켜 서로 싸울 때는 슬퍼하는 자가 이긴다”(抗兵相加 哀者勝)라고도 하였다.
이번 68장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일생을 남과 다투지 않으면서 사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을 노자는 싸우지 않는 덕(不爭之德)이라고 말한다. 둘째는 나에게 쓰임이 있도록 사람들을 잘 다루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을 사람 쓰는 능력(用人之力)이라고 말한다. 셋째는 하늘을 내편으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것을 하늘과 짝하는 오래된 근본(配天 古之極)이라고 말한다. 사람들과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을 잘 다루며, 하늘까지 내편(짝)으로 만든다면 옛날부터 미래까지 이어져 오랫동안 내려갈 인생의 근본이치라 말할 수 있다.
68장은 가장 오래된 죽간본(竹簡本)에는 보이지 않고 백서본(帛書本)과 왕필본(王弼本)에 나타난다. 백서본과 왕필본은 68장의 뒷부분에 다소 차이가 있다. 왕필본은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이라 하고, 이것을 사람 쓰는 능력이라 하며, 이것을 하늘과 짝할 수 있는 옛날부터 전해온 지극한 이치라 한다(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 古之極)로 되어 있다. 그런데 백서본에는 이것을 다투지 않는 덕(德)이라 하고, 이것을 사람을 쓰는 것(德)이라 하고, 이것을 하늘과 짝하는 것(德)이라 하면서 옛날부터 전해오는 지극한 이치라 한다(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 是謂配天 古之極也)로 되어 있다. 백서본에 의하면 옛날부터 전해오는 지극한 이치가 세 가지 임이 더 분명히 드러난다. 세 가지는 다투지 않음(不爭), 사람을 씀(用人), 하늘과 짝함(配天)이다. 따라서 이 세 가지에 모두 덕(德)을 붙여 해석할 수 있다. 즉 다투지 않는 덕(不爭之德)처럼, 사람을 쓰는 덕(用人之德), 하늘과 짝하는 덕(配天之德)이라 할 수 있다.
다투지 않는 덕(不爭之德)을 지닌 사람을 보고 흔히 원만(圓滿)한 성격이라고 말한다. 이것과 반대되는 성격은 모난 성격이다. 모난 성격은 모난 부분 때문에 주변과 자주 부딪치게 된다. 거기에 비해서 원만한 성격은 원만함 때문에 부딪치지 않는다. 원만한 성격을 지닌 사람은 남에게 강제를 쓰는 방식을 차마 하지 못한다.(不武) 거의 웃는 얼굴을 하고 있으며 성을 잘 내지 않는다.(不怒) 남 앞에 잘 나서지 않으며 잘난 체하지 않는다.(不與) 왜냐하면 혹시 자신이 잘난 체하여 상대를 위축시키지 않는지 조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만함은 만나는 사람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쓰는 덕(用人之德)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을 다스리는 술수(術數)로 생각하면 용인술(用人術)이 되고, 오늘날 용어로는 조직관리 및 경영기법이 된다.
그런데 노자는 이러한 덕성(德性)을 하늘과 짝(配天)하는 덕이라고 왜 하였는가? 일반적으로 짝이 된다는 것은 유유상종(類類相從)이기 때문에 비슷한 수준에 있다는 의미가 된다. 즉 인간의 덕이지만 덕의 수준이 높아져서 하늘과 짝할 만큼의 수준이 된다. 다른 의미로는 짝으로 맺어지면 짝이 된 그 사람은 내편이 된다. 따라서 하늘과 짝이 되면 하늘이 내편이 되어 나를 돕는다고 볼 수 있다. 하늘이 돕는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順理)에 맞으며, 우주의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의미도 있다. 결국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다툼이 없는 덕’(不爭之德)은 모든 사람을 내편으로 만들 수 있을(用人之德) 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내편으로 만들 수 있다.(配天之德) 그러므로 옛날부터 내려오고 미래까지 이어질 만고(萬古)의 지극한 이치라 보아도 무리(無理)가 없는 것 같다.
(4) 문제 제기
1. 상대가 싸움을 처음부터 걸어오지 않게 함이 최선이라는 말은 알겠는데, 만약 싸 움을 걸어 왔을 때는 무기도 없이 성내지도 않고 이기려면 평상시에 무술을 많이 익혀놔야 하는 게 아닌가?
2. 다투지 않는 원만한 성격이 모든 사람들과 하늘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 의 힘이 있는가. 있다면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 다음 주 강의 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