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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찰의 기능은 어디까지였을까.
단순히 전법과 포교, 수행이라는 종교본연의 위치만을 담당했을까, 아님 다른 어떤 특수한 기능도 가지고 있었던 것인가.
지난 1년여 동안 부석사에 살면서 새로운 유물들을 확인할 때 마다 사라진 부석사의 역사를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석사 동쪽(부석면 북지리 178번지 일대) 절터에서 발견된 ‘천장방(天長房)’이라는 명문 와편이다. 고문헌이나 사서(史書)를 열심히 검색해 보았지만 도무지 그 존재를 알 수 없는 명칭이다.
부석사 동쪽에 있었던 ‘천장방’은 과연 무엇을 하던 건물이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새로운 의문을 만들고 그 답은 전혀 입을 열지 않았다. ‘천장(天長)’이라는 말의 뜻에서 필시 ‘하늘’과 관련이 있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지만 보다 구체적인 뜻은 기록에 남아 있는 단편적인 편린을 모아 추정을 할 수 뿐이 없다.
‘천장방’ 명문와편이 발견된 부석사 동쪽의 절터. 이곳은 현재 부석사 경내에 세워진 경북유형문화재 제130호 쌍탑이 있었던 곳이다.
천장방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와편.
현재 ‘천장방’과 연계시킬 수 있는 기록으로 이색(李穡:1328~1396)의 『목은고(牧隱藁)』에 ‘종이 열세폭을 사천대(司天臺)의 장방(長房)에 보내서 역일(曆日)을 베껴오다.’ 라는 시와 『보한제집(補閑齋集)』에 고려의 사천감(司天監) 이인보(李寅甫)가 1198년 경주도(慶州道) 제고사(祭告使)로서 산천을 돌며 제사지내고 돌아가려던 길에 부석사에 머물렀다는 일화가 전한다.
사천대(사천감)는 이인보의 경우처럼 제고사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지만 왕이 재앙을 물리치는 방법을 묻기도 하고 왕릉의 개장(改葬) 및 택일(擇日) 등을 비롯하여 역법(曆法), 천문(天文), 기후관측 등의 일을 관장하였던 기관으로 삼국시대에도 이미 존재했었다.
위의 두 기록으로 볼 때 ‘천장방’이 사천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중요한 유물이 있다.
2010년 2월에 보물 1647호로 지정된 경북 성주 심원사 소장 「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吉凶逐月橫看 高麗木板)」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목판은 고려 고종 6년(1219) 6월에 부석사에서 원당주(願堂主) 중태사(重太師) ‘지○(知○)’스님이 간행한 것으로 현존하는 유일의 고려 역서(曆書)이면서 가장 오래된 농업관련 기록이다.
앞서 이색이 사천대에서 역일을 베껴오게 한 이유는 모종을 하기 위해 길일(吉日)을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나무나 약초(藥草) 등을 심는 데 있어 꺼려야 할 불길한 날을 말하는데 이를 사천대 관리들에게 택일을 해달라고 한 것은「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의 농력부분과 내용면에서 일치하는 대목이다.
따라서 ‘천장방’은 부석사에 사천대 기능을 담당했던 시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동국이상국전집》에 1202년(신종 5) 경주와 청도 운문산 일대의 민란이 발생했을 때 진압군의 수제원(修製員)으로 자원하여 종군한 이규보(李奎報:1168~ 1241)가 부석사에 와서 ‘浮石寺 丈六에 올리는 祝願文’을 지어 불력(佛力)으로 난리가 진압되기를 기원한바 있는데 그가 왜 곧바로 경주로 가지 않고 부석사에 들렸는지 의문이다. 물론 부처님의 가피로 민란이 평정되기를 기원함이 목적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석사에 있던 ‘천장방’에서 민란 진압의 길일을 선택하기 위함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부석사에서 간행된 「길흉축월횡간 고려목판」에는 ‘장단성일(長短星日)’과 ‘천지앙일(天地殃日)’조에는 장문의 주석을 달아 이날을 범했을 때 따라오는 모든 재앙을 설명하며 실수로 장단성일을 범한 경우에도 광수공덕(廣修功德)의 방법으로 재화(災禍)를 면할 수 있다고 한 것인데, 이는 불교를 통하여 공덕(功德)을 쌓으면 재앙을 면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어 이규보가 부석사를 참배한 이유가 설명이 된다.
한편 불교와 천문역법(天文曆法)과의 관계에 있어 역사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에 효소왕(孝昭王) 원년(692) 도증(道證)스님이 당에서 귀국하여 천문도를 바쳤다고 하였으며, 《고려사》에는 공민왕(恭愍王) 15년(1366년) 8월 왕이 봉선사(奉先寺)에 가서 성상도(星象圖)를 보았다고 한 내용으로 미뤄 부석사에 ‘천장방’이라는 사천대 소속의 기관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천문관련 자료들로는 조선 영조 18년(1742)에 제작된 보물 제848호 「報恩 法住寺 新法 天文圖 屛風」과 1652년에 三角山 文殊庵 比丘尼 仙化子가 제작한 통도사 소장 보물 1373호 「金銅 天文圖」등이 있어 조선시대까지 불교와 천문학은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천장방명(天長房銘) 와편’을 통해 부석사와 직접 연관된 천문기관이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와 관련된 문헌과 기록이 없어 향후 이 지역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져 고대 한국불교와 천문학과 관련된 명쾌한 단서가 출현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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