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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5)
교회의 직분② : 교회로부터 나와 교회로 향하는 직분
I. 교회로부터 나오는 직분
1) 교회를 위한 선물로서의 직분
교회에 항상 있어야 하는 직분 곧 항존직은 목사와 장로와 집사이다. 그런데 이 직분들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직분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주신 선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에베소서 4:7-16절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래 낮은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다(엡 4:7-16). 여기서 보면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8-9). 그렇게 올라가신 이유는 원래 계신 곳이 하늘이었고, 그 하늘에서 땅 아래로 내려 오셨기 때문이다(9). 이렇게 됨으로 인해서 높이 되신 그리스도임을 드러내셨다(행 2:33-36). 즉 왕으로 등극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땅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때에 그냥 올라가신 것이 아니라 8절에 의하면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이것을 사도 바울은 시편 68:18절을 인용하여서 말씀하고 있다(8). 여기에서 ‘사로잡혔던 자’는 마귀 곧 사탄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죽음, 부활, 승천을 통틀어)을 통해서 마귀를 사로잡으셨다. 그리고 그 결과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렇다면 그 선물은 무엇인가? 선물이라는 말은 ‘은사’라는 말과 같다는 사실을 우리가 지난 시간에 봤는데 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는 11절에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직분’(은사)이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하여 교회를 세우셨고, 그 교회를 위하여 각 사람에게 선물을 은혜로 주셨는데(7), 그것은 곧 교회를 위한 은사인 직분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과의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이다. 이 전리품은 각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주셨다. 11절에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했다. 주님께서 이런 은사를 주신 것은 결국 한 몸 된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게 하시기 위함이다. 12절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했다. 그렇다.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이런 은사를 주신 것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곧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직분이 교회를 위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은 이미 구약시대에 예언되어져 있었다. 민수기 8:19절에 보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고 했다. 이 말씀에 보면 제사장의 직분이 곧 선물임을 밝히고 있다. 민수기 18:7절에도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고 말하면서 직분을 주신 것이 곧 선물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4) 이것은 민수기 3:9절에도 암시되고 있다. “너는 레위인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맡기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아론에게 온전히 맡겨진 자들이니라”고 했다. 여기에서 “맡기라”는 표현은 곧 선물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2) 교회로부터 나오는 직분
이상의 말씀에 근거해 볼 때 모든 직분은 반드시 교회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교회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한다. 교회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직분은 없으며, 교회와 연관되지 않는 직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는 종종 교회와 연관되지 않고 스스로 직분자임을 자처하는 경우들이 간혹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안타깝게도 모든 직분은 철저히 교회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다.5)
직분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곧 그리스도의 교회를 충만(완성)하게 하시기 위해서(엡 4:10-13) 교회의 머리께서 주신 선물이다. 이 선물은 오직 교회를 위한 것이며,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상속하여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 허락하신 주님의 은사이다.6) 그렇기 때문에 직분은 반드시 교회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3)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것의 실천적 적용 - ‘회중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그렇다면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 ‘교회’라는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적용되는가? 우리가 ‘교회’라고 할 때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나,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온다’라고 할 때는 ‘회중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앞서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설명함에 있어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측면을 살펴봤다. 그렇다면, 직분은 분명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그런데 왜 ‘회중의 선택에 의한’이라고 말하는가?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자신께서 주시는 직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회중의 선택에 의한 방식을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우리는 신약 교회가 처음으로 직분자를 선택하였던 사도행전 6장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사도행전 6장 이전만 하더라도 직분자를 뽑는 방식은 ‘제비뽑기’였다. 그래서 사도행전 1:26절에 보면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사도행전 6장에서 최초의 신약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직분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제비뽑는 방식이 나오지 않고 그 대신에 회중이 선택하는 방식이 나온다. 사도행전 6:3절에 보면 “일곱을 택하라”고 되어 있고, 사도행전 6:5절에도 “...니골라를 택하여”라고 되어 있다. 이 두 구절에 의하면 예루살렘 교회는 회중이 직접 직분자를 선택한다.7) 회중의 선택을 통하여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선물을 받는다. 또한 사도행전 14:23절에는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택하여”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도 제비뽑는 방식이 아닌 회중에 의한 선택의 방식이 나온다.
특히 위의 두 본문에 나오는 ‘택하여’라고 표현된 말의 헬라어 원어는 ‘케이로토네오’(χειροτονέω)인데, 여기에서 접두어 ‘케이르’(χειρ)는 ‘손’이라는 뜻을 갖고 있고, 어원적으로는 ‘손을 들어 표시하게 해서 선택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8) 이 때 중요한 것은 손을 드는 주체는 회중이라는 것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신약 교회에 직분자를 주실 때에 그 행위 주체를 회중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고 할 때에 그 실제적인 적용은 바로 ‘회중의 선택에 의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 사실은 개혁 교회의 신앙고백서 중에 하나인 벨기에 신앙고백서 곧 벨직 신앙고백서 31장 ‘교회의 직분자들’이라는 조항에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들과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와 선한 질서를 따라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라는 내용으로 표현되어 있다.
네덜란드 개혁 교회(해방파, 소위 31조파)9) 교회 헌법 (1982년 판) 제3조에 ‘합당한 부름의 필요성’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느 누구도 그 직분에 합당한 부름을 받지 않고 스스로 그 직분을 취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직분은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 임직 되어야 한다. 목사는 반드시 전체 회중에 의해서 선택되어야 하며, 장로나 집사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전체 회중에 의해서 선택 되어야 한다. 즉 모든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10) 하지만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는 ‘서리집사’와 같은 성경에 없는 임시직분들이 회중이 아닌 ‘당회’에 의해 ‘임명’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부목사나 강도사, 전도사와 같은 말씀 사역자조차도 ‘당회’에 의해서만 청빙되는 바람직하지 못한 방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11) 이는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제대로 드러내는데 부족함이 있는 방법이므로 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특히 직분을 당회가 주도적으로 임명하는 방식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직분자를 위에서 임명하는 방법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비 개혁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12) 모든 직분은 반드시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는 전체 회중을 위해서 봉사하는 직분이므로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13)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사실은 회중에 의한 선택이라는 것이 회중이 자기들이 원하는 사람을 직분자로 선택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이 회중에 의해 확인된다는 의미임을 기억해야 한다. 직분이 회중에 의해 선택되었다고 해서 회중이 직분을 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다.
4) 장로주의에 잘 드러나는 위의 원리
위에서 다룬 내용들은 장로주의에서 잘 드러난다. 장로교는 주님께서 교인들이 선택한 목사와 장로들이 교회를 돌보며 다스리게 하셨다는 점을 강조한다(참조. 행 14:23; 20:28). 목사와 장로들은 주께서 교회에 주신 권세를 위탁받은 자들이므로, 교회는 그들을 성경에 교훈된 자격 조건(딤전 3장; 딛 1장)에 따라 매우 신중히 선택하고 세워야 하며, 교회의 모든 형제, 자매들은 세움 받은 감독자들을 존중하며, 그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장로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다.
II. 교회로 향하는 직분
1) 교회로부터 나와 교회를 향하여
교회로부터 나온 직분은 철저히 교회를 위해 봉사한다. 곧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교회로부터 나온 직분은 교회를 향한다. 직분이 교회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그것이 결국 교회를 향하지 않는다면 그 직분은 직분이 아니다. 모든 직분은 교회를 위한 봉사자이다. 이런 점에서 협동직분, 명예직분, 은퇴직분 등은 바람직하지 않다.
2) 예배를 위한 직분
교회로부터 나온 직분이 교회를 향한다고 할 때에, 그렇다면 교회의 무엇을 위함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이다. 왜냐하면 교회의 가장 큰 핵심은 예배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교회는 경배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서 모이는 공동체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함께 모여 삼위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교회가 모이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예배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으며, 교회는 예배를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예배는 교회의 여러 활동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모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위한 직분인 목사, 장로, 집사의 역할은 예배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사실이 가장 잘 드러나는 교회는 장로교회이다. 로마 가톨릭은 예배 중에 회중(의 역할)이 없다. 오직 직분자만 있다. 반면 회중 교회는 예배 중에 직분자(의 역할)가 없다. 회중만이 있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장로’+‘교회’라는 그 표현에 잘 나타나 있듯이 직분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이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직분을 절대화하는 감독 교회와 다르며, 직분을 아예 무가치하게 보는 회중교회와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교회의 예배는 직분적 봉사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배이다.
3) 예배 중에 직분자의 역할
예배 공동체로서의 교회에서 직분자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는가? 가르치는 장로14)인 목사는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증거 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목사는 예배에의 부름에서부터 시작하여 강복선언에 이르기까지 예배 순서 전체를 인도한다. 특히 목사는 예배의 순서 중에 ‘은혜의 방편’에 해당하는 말씀 선포, 성례 집례, 목회 기도를 담당한다.
장로는 예배 전반과 말씀 선포를 감독한다. 장로는 예배 시간에 회중들이 예배에 충실한지, 바른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를 살핀다. 이를 위해 장로는 회중들이 앉아 있는 자리의 곳곳에 앉아서 살핀다. 또한 장로는 예배 중에 선포되는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고 있는지, 기록된 말씀에 충실한 지를 살핀다. 또한 장로는 성찬에 참여함에 있어서 아무나 참여하지 못하도록, 즉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아 성찬회원이 되지 않았거나, 교회로부터 공적 징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성찬 상에 나아오는 것을 막는 일을 한다.
집사는 예배 중에 헌금의 수집을 감당한다.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헌금을 교회를 위해 쓰며, 그 중에 일정 부분을 예배를 돕는 말씀사역자의 생활에 지원한다.
이렇게 교회의 직분자는 철저히 교회로 향하고, 교회로 향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예배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예배를 인도하지 않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설교하지 않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성례를 집례하지 않는 목사는 목사가 아니다. 예배 인도자가 목사요, 설교하는 사람이 곧 목사요, 성례를 집례 하는 자가 곧 목사이다. 마찬가지로 회중을 감독하지 않는 장로는 장로가 아니며, 교회의 재정을 위해 수고하지 않는 집사는 집사가 아니다. 회중을 감독하는 자가 장로요, 교회의 재정을 위해 수고하는 자가 곧 집사이다. 이렇게 장로교회의 직분은 예배를 위해 수고하는 이들이다. 직분자들인 목사, 장로, 집사들이 각기 자기가 받은 은사와 소명을 따라 예배의 각 순서를 위해 봉사한다.
참고로, 이 모든 예배 전반의 고유 권한은 당회에 있다. 오늘날 교회들에 당회가 제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므로, 제직회 부서 내에 ‘예배부’를 두어 예배에 관한 일을 논의하게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배의 준비와 질서에 관한 책임이 당회에 있음을 알지 못하여 생겨나는 경우이다. 예배는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로부터 위임받은 치리회인 당회가 주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사실은 장로교회의 헌법에 잘 나타나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헌법(2011년 판) 예배지침 제3장 제8조에 보면 “주일공예배의 순서는 당회가 정하되 그 기본적인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라고 되어 있다.15) 또한 동 헌법(2011년 판) 교회정치 제10장 당회 제121조 ‘당회의 직무’에는 제2항에서 “제반예배를 주관하는 것”이 당회의 직무라고 언급하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통합) 헌법(2006년 판) 제4편 예배와 예식 제1장 교회와 예배의 1-1-4에도 예배의 준비와 질서를 당회가 맡아 수행한다고 되어 있다.
III. 결론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는 교회를 위한 은사로서의 직분을 허락하셨다. 그러므로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오며, 교회로 향한다. 그렇게 교회로부터 교회로 향하는 직분과 그 직분의 봉사는 결국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역할을 한다(엡 4:7-12). 그런데 이 직분적 봉사는 무엇보다도 예배를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직분은 교회로 향하기 때문이다. 직분은 교회로 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직분은 교회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벗어난 모든 직분은 잘못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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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개역개정판은 민 18:7절의 번역에서는 “너와 네 아들들은 제단과 휘장 안의 모든 일에 대하여 제사장의 직분을 지켜 섬기라 내가 제사장의 직분을 너희에게 선물로 주었은즉 거기 가까이 하는 외인은 죽임을 당할지니라”라고 함으로써 직분이 ‘선물’이라는 점에 대해서 민 8:19절과 달리 제대로 번역하고 있다.
5) 요즘 한국에서는 신학교에만 다니면 전도사라고 부른다. 신학생들 자기들 끼리도 그렇게 부른다. 그런데 그 중에는 실제로 교회로부터 ‘전도사’ 직분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교회에서 봉사하지 않고 있는 이들도 많다. 곧 그냥 ‘신학생’이기만 한 이들도 많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하여 ‘전도사’라고 부르는 것은 직분이 ‘신학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또한 우리가 신학생과 신학교를 나온 사람들을 대우해 주기 위해 전도사라고 부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것 역시 ‘전도사’라는 직분이 교회의 부름으로 주어지는 것인데도 그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6) 이광호, “직분에 관한 개혁주의적 이해-한국교회 직분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조직신학연구』, 제6호 (서울: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2005), 194.
7) Lawrence R. Eyres, The Elders of the Church (Phillipsburg: P&R, 1975), 홍치모 역, 『하나님이 세우신 장로』(서울: 총신대학 출판부, 1985), 36.
8)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homas Nelson, 1998), p. 897, n.3; G. H. C. Macgregor, “Exegesis of the Acts of the Apostles”, in The Interpreter‘s Bible, vol. 9 (Nashville: Abingdon Press, 1954), 193; David John Williams, Acts, Tyndale 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Peabody: Hendrickson, 1985), 255
9) 정식 명칭은 Gereformeerde Kerken in Nederland (vrijgemaakt) 이다.
10) 한국 교회 가운데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문제 중에 하나가 목사를 세우는 문제다. 장로와 집사는 공동의회를 통해 투표로 세우지만 목사는 자기 하고 싶은 사람이 신학공부를 하여 목회자로 세움을 받는다. 이것은 비성경적이다. 이 문제가 교회가 교회답게 세워져 가지 못하는 큰 요인 중에 하나이다. 목사도 반드시 교회 전체 회중의 선택에 의해 세움을 받아야 한다.
11) 불과 1-20년 전만 하더라도 부목사의 청빙도 당회가 아닌 공동의회가 담당하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부목사의 공동의회 청빙이 사라지게 되었고, 대신 당회가 공동의회의 역할을 위임받아 시행하고 있다.
12) 로마교회는 상회에서 직분자들을 임명한다. 즉, 교황이 추기경과 주교를 임명하고, 주교는 지역교구의 사제들을 임명한다.
13) 장로교회(고신, 합신, 통합, 기장. 개혁, 국신) 헌법의 교회정치부분에 보면 교회의 ‘직원’보다 ‘교인’이 앞에 나온다.
14) 목사는 에베소서 4장 11절과 디모데전서 5장 17절에 근거하여 ‘가르치는’ 장로라 할 수 있다. 간혹 칼빈의 주장(institutes, Ⅳ, ⅲ, 4.)에 근거하여 에베소서 4장 11절의 ‘교사’를 ‘신학교 교수’로 보는 이들이 있는데,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신학교 교수’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교회 역사에서 신학교 교수가 등장하는 것은 seminary가 등장하고부터 이기 때문에 ‘교사’를 ‘신학교 교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벌코프는 에베소서 4장 11절의 “목사와 교사”라는 말은 “두 종류의 다른 직임들(two different classes of officers)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연관된 기능을 지닌 한 종류의 직임(one class having two related functions)을 구성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강조한다.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41), 권수경, 이상원 역, 『조직신학 (하)』(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845; Cormelis Van Dam, The Elder: Today’s Ministry Rooted in All of Scripture (Phillipsburg: P&R, 2009), 114. 웨인 그루뎀은 아예 “목사-교사”(pastor-teacher)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다고까지 한다.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Grand Rapids: Zondervan, 1994), 노진준 옮김, 『조직신학(하)』(서울: 은성, 1997), 111.
15) 이전 판(1992년 판)에는 “교회의 예배의식은 개체교회의 권위로 작정하는 것이나 그 기본적인 순서는 다음과 같다”라고 되어 있다.
*강의자 : 손재호 교수
*본글은 2024년 8월 16-17일에 부천개혁성경신학교 2024년 봄학기 집중강의 겸 부천개혁교회 제직교육을 '개혁교회의 목회와 실제'란 주제로 실시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