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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계속
서구교회 기반 약화와
서구 선교 기관과 한국선교사 존속(存續)관계 가계(家計)시대
현재 세계는 서구권 선교 시대가 막을 내렸다. 서구권 교회들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유명무실한 상태에 들어가 있다. 즉,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할 기반을 이미 잃어 버린지가 오래 전의 일이다. 아직은 미국이 그 역할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미국교회 역시 신앙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는 서구사회가 인간중심의 미래세계를 실현 해가는 세계 바벨탑 구조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 같은 영향은 교회를 부정하고 그 자리에는 이상한 종교현상들이 다시 자리 잡기 시작하는 과도기로 들어 가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를 샤머니즘 경향으로 몰면서 과학적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추앙하고 상대적으로 교회 경시 풍조가 만연해지는 데서부터 일어나는 탈기독교 사회 현상이다. 즉, 기독교 전파 이전의 사회로 복귀하는 종교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자리는 근본적으로 인간 저변에 깔려 있는 저속한 종교 현상들로 채워지기 시작하고 있다. 그 이유라 한다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종교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종교성은 타락한 기반으로 사단적인 경향으로 나아가는 힘이기 때문이다.
유럽사회 안에는 바로 이 같은 현상들이 힘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왜 유럽에서 종교현상을 괴기한 모양들로 그려내기 시작하는가? 그 만큼 유럽사회 정신구조가 매우 더럽고 추잡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는 타락의 기운이 더욱 인간의 성향을 극대화 시켜가는 과정임을 나타내는 증세이다.
이에 따라서 교회가 약화 되었다. 선교주도 국가들에서 이제는 선교를 받아야 하는 지역이 된 것이다. 즉, 미국을 제외하고서는 선교사를 제대로 보내는 국가가 없는 시대이다. 미국조차 장기 선교사는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이 1~2년 기간의 단기 선교사들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회현상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성경이 예고한 대로 일어나는 유럽교회 현상이다.
이것이 바로 세속의 힘이 주도하는 교회 시대로 들어 온 것으로부터 나타나는 유럽교회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본질적 교회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 중심의 정치적 교회 기반이 바로 유럽교회 종말로 연결 된다는 증거이다.
물론 이것은 영적으로 죽은 교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교회의 약화는 바로 이 같이 세속화 되어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땅에 버림을 당하여 짓밟힘을 당한다고 했던 것이다. 이 같은 교회가 선교를 경시하거나 선교가 왜곡되어 진행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서구교회들은 순수한 기독교 성경적 전통으로부터 멀어 진데서부터 교회를 지속할 수 있는 영적 힘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물론 친서구 성향을 가진 제3국 그리스도인들은 서구교회를 긍정적으로 여전히 미화시켜서 말하고자 한다. 기독교 전통 개혁주의 신앙을 고집하는 교회들이 많다고 주장한다.
물론 많을 것이고 여전히 주님을 사랑하는 교회적 마인드로 자리를 지키고자 분투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주류가 아니라 너무나 미세한 힘이고 주님께서 예고한 대로 끝까지 믿음을 따르는 신앙의 남은 자들이다.
하지만 유렵의 시대적 정황을 만들어가는 주류가 아니다. 유럽의 시대적 정황은 주님 종말의 마지막 시점에서 나타나게 될 사악하고 더러움과 혼돈이 시대적 경향성의 주류이다. 이로부터 고난 받는 교회로써 남아 있는 소수의 참 된 교회인 것이다. 오히려 수많은 교회들이 이 같은 종말론 적 세속의 힘에 제압당해서 세속적 교회로 전락한 왜곡 된 교회 시대가 주를 이루는 서구사회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 조직에 속한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변호하기 위해서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아직도 유럽의 전통교회들은 우리보다 더욱 더 보수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뻔한 서구 교회적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단한 기독교 중심 사회가 지금도 진행되는 냥 자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권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의 세를 불리고 지속하기 위한 긍정론 이상 아무런 의미는 없다. 결코 시대의 흐름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화시키고 긍정론을 펴고자 함은 끊임없이 한국 선교사들을 서구선교기관의 일원으로 채워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코 단순하게 바라보아야 하는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서구교회는 그리스도의 신격에 대해서 버린 지가 오래 전의 일이다. 교회사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단 시비를 거치면서 지켜오던 전통적인 신앙과 신학이 사라 진 것이다. 그 자리에는 유럽과 소아시아의 정령숭배나 샤머니즘적인 토속 신앙이 주도하거나 모슬렘이 점진적으로 차지해 오고 있다.
심지어 미국조차도 이상한 복음주의로 흐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같은 모든 현상들은 그리스도를 부정하는데서 부터 일어나는 서구 기독교의 왜곡 현상인 것이다. 그 결과는 지금과 같이 서구 교회의 황폐 시대를 가져온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위치를 공고(公告)히 하고자 하여 적극적으로 거짓 변호를 펴는 것이다. 서구 선교단체는 솔직히 말해서 “사단의 회”나 다를 바 없다. 왜냐하면 이미 정치적 도구로 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교회를 그리스도와 성경 중심으로부터 멀어지도록 내모는 역할들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단체의 소수자들은 세속의 나라의 영광을 추구하는 정치적인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세계를 하나의 통치체제로 이루어가고자 하는 바벨탑 종사자들이다. 그러니 계시록이 말하는 사단의 회와 같은 역할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이런 내막을 모르고 들어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철저하게 비밀에 붙이고 외관상으로 기독교 전통의 선교마인드로 끌어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집을 하는 과정에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검토하고 시험하고 등, 복잡한 훈련 과정들로 꼼수를 부리는 것이다.
특히 이 같은 과정을 통해서 한국적 경향의 사고나 의지들을 모두 거두어 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출입의 자유를 막아버리고 결국 한국적 경향을 경시하는 하부구조의 세포들로 만들어 가는 선교 가계(家計)가 형성 된 것이다. 이는 서구선교기관과 한국선교사들 간의 가족에 준하는 관계와 선교 관련한 계획이 세워졌다는 차원으로 바라 볼 수 있다.
이것이 세상에서 은밀하게 결합되는 성질이고 이 같은 배경에 어쩔 수 없이 옭아 매인 자신의 처지를 숨기고자 긍정론을 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현대는 이 같은 거짓 된 배경들에 의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에 저당 잡혀서 살아가는 공간 시대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가계(家計)에 붙잡혀서 오랜 세월 인내라는 의지로 올무에 스스로 빠져서 허송세월을 보내다 죽음의 순간이 가까워 질 때에야 인생에 후회가 짙어지는데 그 후회는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가기 시작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잘못 된 가계 형성이 이 같은 부조리한 관계 구조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우리 한인들에게 바로 이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가는 것이 현대 공간이다. 이는 다른 무엇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그렇게 선택을 한 것이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과 사회를 방임한데서부터 오는 현실 문제인 것이다.
매우 은밀한 조직에 속해 있는 이들이다. 다만 대부분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하여 순수한 복음처럼 유도할 뿐이지 실상은 내부적으로 세계화의 도구들로 활용하는 선교 단체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구선교기구와 한국 선교사의 가계(家計)조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습지 않는가? 서구권 교회가 무너지면서 선교사들이 없어졌는데 선교기구들은 건재하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서구 선교사들이 사라진 그 자리에 우리 한국 선교사들로 대신하도록 설정한 것이다. 대신하되 자신들과 똑같은 멤버들이 아니라 하부조직원들, 즉 자신들의 세포로 그 위치를 두는 것이다. 들러리 역할에 충실한 이행 자들인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기독교 전통적인 교회 본연의 선교를 지향하는 삶이 아니다. 1960년대 초부터 본격화 된 포용주의, 즉 종교다원화 되고 문화화 된 휴머니즘적 종교 행위자들로 살아가야 하는 세계화 선교에 충실하게 임해야 하는 하부 구조로써 세포들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적인 선교를 지양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한국교회 관계와 선교기관들에 대한 경시 풍조가 조성되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선교지에서 한국 선교사들 사이를 이질화 시키는 유린 작업까지 단행하는 것이다.
물론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할 뿐만 아니라 외관상으로는 오히려 한국 선교사들과 가까운 것처럼 연막을 잘 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랜 시간 함께 하는 과도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한국 선교사들, 즉 유능한 선교사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비밀들을 숨기고 미화하면서 훈련 된 선교사로 지칭하는 것이다. 변질 된 선교방향에 따라 충실하게 살아가는 선교사들을 가리켜서 훈련 된 선교사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순전한 성경적 기독교 전통의 선교가 아니다. 세상과 인간적 목적 사회를 위한 인류애 차원의 선교사로 포괄적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는 세계화의 전도사 역할로 전락 된 선교를 의미한다. 인간 중심의 교회적 현실 공간을 만들어 가는데 충성 된 자들이다. 이 같은 배경은 서구 선교가 정치기반으로 전락하였고, 현지구 특정한 부류들이 추구하는 일체제 국가주의 배경의 선교인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20세기부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서구권이 선교 중심 시대였다. 하지만 20세기 중반이후부터 서구권 선교가 철저하게 정치기반으로 전락하게 되면서 선교가 정복개념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이 같은 배경은 이미 19세기 접어들면서 성행하기 시작했고,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 전세계 안에 제도권화 되어버린 것이다.
여전히 선교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기반을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서구권의 교회들을 급격하게 사라지도록 하였고, 선교사를 파송하던 서구교회 시대가 종결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과정에서 선교기구는 세계를 지향해서 무언가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정치력으로 재편되었다. 선교기구는 그대로 존속하면서 그 힘이 교회 중심의 선교 기구가 아니라 세속의 문화적 결합을 위한 선교기구로 변질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자 이들은 자신들이 전파한 제3국 선교대상 국가의 교회와 그 교회들이 파송하는 선교사들을 그대로 허입을 하여 맥(脈)이 끊긴 서구 선교사들의 자리를 대신 하게 하는 전략을 운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뒤틀러진 선교 관계 가계(家計)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한국 교회 선교는 불합리한 굴레를 안고서 선교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한국 중심의 선교 시대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예속 되는 선교 기구로 출범을 하였고, 한국 선교사들은 성경중심의 교회 본연의 선교에 대한 정체성 모호 시대에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 처음부터 뒤틀려지는 선교로 출범하고, 축복으로 연결이 안 되는 불법의 선교지대로 전락 되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좀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수고는 직살 나게 하고 선교는 불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사랑이 식어지고 불법이 성행하리라고 이미 예고를 해 주었지 않는가?
지금 이 같은 외국 선교 단체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에 의하면 오엠, 오엠에프, 웩, 와이엠(예수 전도단), 후발주자로 기아대책이나 카터 미전대통령이 만든 사랑의 집짓기 운동, 해외 우리 한국인들이 세운 국제선교 단체, 혹은 한국인 선교사들과 외국 선교단체들 간 결합 된 선교 단체 등, 크고 작은 수많은 선교 단체들이다.
여기에 작게는 20% 많게는 70%까지 우리 한국인들이 소속 되어서 활동하고 있다. 둘로스와 같은 선상선교부는 대부분 주요한 인물들이 우리 한국인들로 구성 되어 있다. 정말 웃기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르실 때, 이스라엘 민족과 역사라는 옷을 입혀서 부르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에다 애굽이나 블레셋의 옷을 입혀서 부르신 것이 아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서 민족적으로 부르심은 그 민족이란 옷을 입은 대로 부르시는 것이다. 즉, 지상 각 나라 안에서 실존하는 지역교회들은 그 나라 현실 안에서 부르시는 것이다. 이는 각 국가별로 부르셔서 구속하시는 영적 질서이다.
오직 성령이 진행해 가시는 방향 따라 나타나는 복음의 순서인 것이다. 헌데 이것이 서구 선교 기구와 같은 인위적인 힘이 작용되어 한국 교회와 선교사들을 하부구조로 활용하는 것은 이 같은 영적 질서가 확립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현대는 탐욕에 의해서 지구를 하나로 만들고자 하는 집단들이 문화라는 컨셉으로 인위적인 바벨탑을 만들고자 하는 공간 안에 놓여 있다. 그래서 기독교도 그 같은 배경에 의해서 한국 선교사들이 외국 정치화 된 선교 기구의 하부 구조들로 들어가서 활동하는 불합리한 선교 관계가 가능해진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외관상으로는 철저하게 기독교 선교라는 이름으로 진행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종교다원주의적이고 다양화 된 배경으로 성경의 독특성과 절대성을 파괴하면서 진행되는데 이에 한국 선교사들이 그 역할들을 충실하게 자행하는 자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적 개념으로 휴머니즘적인 행위이지 성경에서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뿌리심의 복음이 아닌 것이다. 즉, 외국선교기구는 이미 이 같은 기독교 본연의 선교개념을 버린 지가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는 다양성이 신처럼 되어 있는 거대한 지구적 힘의 배경아래 철저하게 순응하는 정치적 복음주의가 주도하는 선교기구 시대인 것이다.
이는 반성경적 선교 정서로써 선교 가계(家計)인 것이다. 여기에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소속되어 있다. 모든 비용은 한국교회로부터 받으면서 세속화 된 선교기구의 하부구조로 전락 된 현실이다. 얼마나 이상한 현실인가? 그러니 우리 한국선교사들이 어떻게 결합되고 연합되는 선교적 환경이나 구조 같은 환경을 이루어 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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