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아침 - 호텔
시계를 7:30'에 맞춰 놓았기 때문에 잠잔 시간은 대략 2시간 남짓이 되나 보다. 머리가 머-엉. 개구리, 개구리 엄마를 깨워 식사를 하러 갔다. 부페식이다. 나와 개구리 엄마는 부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은 것도 별로 없이 배만 부르기 때문이다. 아니, 배가 부르다기 보다는 더 먹고 싶은 생각을 없애 버리기 때문이랄까. 차라리, 촌국수를 한 그릇 먹는 편이 뭔가 식사를 했다는 느낌이 나고 흐뭇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순수 국산이다.
식사에 대해서는 포기를 한 상태이므로 빵 한 조각, 베이컨(이것도 별로다. 삼겹살 구어 먹다 아무도 손대지 않아 바싹 마른 고기와 무슨 차이가 있담. 그 좋은 삼겹살로 베이컨이나 만들어 먹다니. 무식한 놈들. 이건 돼지 고기에 대한 모독이다.) 두어 점, 스크램블드 에그, 그리고 쌀밥 몇 숟가락(뱅기보다는 훨씬 낫긴 하지만 그래도 입안에 넣기 힘든 상태다.), 맹고 주스 한잔. 후식으로 과일을 먹으려 했더니... 이런, 멜론에서 약간 상한 냄새가 난다.
사실 내가 음식 냄새에는 민감한 편이다. 집에서도 음식이 상했을 거란 생각이 들면 개구리 엄마가 아뭇소리 않고 내 입에 우선 한 숟가락 퍼 넣고 나서 맛있는 지 묻는다. '맛있다.' 그러면 '아직 괜찮은가 보네.'라고 하고는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럴 때면 마루타가 되는 기분이다.
커피를 달랬더니 또 사약같은 커피를 가져다 준다. 가져다 준 사람 성의를 봐서 한모금 반을 마셨다. 개구리는 잘만 먹는다. 반숙된 계란 노른자 깨서 베이컨 조각과 함께 밥과 비비고 마구 퍼 넣는다. 완전 체질이다.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날이므로 반바지와 슬리퍼로 복장 체제를 바꾼 후 체크아웃을 하러 갔다. 뭐라 그러더니 현금으로 지불할 건지 카드로 할 건지 물어 본다. 뭐시라? 지불할 게 뭐가 있다고? 어디 보자. 이런! 개구리 식사비를 내 놓으란다. 다행히 넷투어의 현지 전화 번호를 적어 왔기에 즉시 전화를 했다. 20분 쯤 지나자 다시 카운터로 전화가 걸려 온다. 캐셔가 그냥 가란다. 나쁜 눔들.
공항으로
메터 택시를 타려 물어 보니 조금 걸어 가야 한단다. 비행기 시간이 별로 여유도 없고 안전을 기한다는 생각에 호텔 택시를 탔다. 공항까지 350페소. 가는 동안 길 옆 커다란 나무에 짙은 주홍빛 꽃들이 피어 있다. 길은... 엉망이다. 어디 촌 동네 뒷 길을 가는 것 같다. 12시 30분 아시안 스피릿이라 마음이 조금 급하다. 10시 30분까지는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시각이 10시 15분. 길이 콱 막힌다.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니 택시 기사 염려 말랜다. 거짓말같은 솜씨로 밀어 붙이기식 곡예 운전을 하더니 도착. 시각은 10시 25분.
체크인 카운터로 가니 시간을 아크릴 판으로 표시하는 모양인데 아크릴 판을 꽂는 곳이 깨져 있어 직원이 숫자판 뒤에 유리 테이프를 엉성하게 발라 붙이려 시도를 하고 있다. 두어 번 떨어지니 그냥 포기한다. 뱅기표 받고 $200 환전하고 별 구경할 게 없어 대기실로 들어가니 후니유니님과 꼬뿌니님 일행이 반겨 준다. 같은 뱅긴가 싶었으나 우리만 남겨두고 30분 일찍 출발해 버린다. 의리없는 사람들. 흥.
지루한 시간을 때우려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랑 제로 게임(엄지 손가락 가운데 모으고 돌아 가며 숫자 불러 맞추면 사정 없이 패는 게임. 아시죠?)을 하고 있으려니 옆에서 다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쳐다들 본다. 그렇다면 또 쇼맨싶을 발휘해야지. "자, 이제부터는 스페인어로 하는 거야. 우노, 도스, 뜨레스...... 알겠지?" 더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들 본다. 개구리 엄마 차례다. 힘차게 "도스!". 개구리만 엄지 손가락 두 개 다 들었다. 하지만, 개구리 엄마 그냥 넘어간다. ㅋㅋㅋ.
아시안 스피릿
셔틀 버스가 왔다. 멀리 가야 하나 보다 싶었더니 20미터 정도 떨어진 뱅기 옆에 내려 놓는다. 장난치는 건감?
아시안 스피릿의 기내는 우리 나라 시외 버스와 별반 다를 게 없다. 40인승. 좌석도 너덜너덜.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자 말로만 들었던 야채칸 에어콘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옆에 앉은 개구리가 쳐다보더니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이 킬킬댄다. 구름 사이로 들어가자 진동이 장난이 아니다. 바이킹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개구리 엄마 얼굴이 새파랗다.
비행기가 어느 정도 상승하자 승무원이 나와 물수건을 플라스틱 소쿠리에 담고 나와 하나씩 나누어 준다. 다시 되돌아 가더니 과자를 또 한 묶음(치즈 넣은 죠리퐁 같은 과자, 빵 같은 쿠키 한 개)씩 나누어 준다. 다시 되돌아 가더니 물과 립튼티를 가지고 와서 하나씩 나누어 준다. 개구리 또 잘 먹고 마시고 있다. 개구리 엄마가 먹기를 포기한 죠리퐁도 달래더니 잘 먹고 있다. 내가 갖고 있던 과자를 줬더니 그건 잘 보관해 둬란다. 사촌 동생 줄 거란다. 창 밖으로 구름이 예쁘다. 아래로는 만화 영화에나 나올법한 섬이 홀로 파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이 보인다.
비행기 고도가 꽤나 낮아졌다.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지만 "알랑 꼴랑 멜랑". 뭐라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200미터 정도 아래 좌측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해변이 지나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보라카이 화이트비치다. 저기는 아마도 프라이데이즈일거고 저기는 보트스테이션 1이고...... 뱅기는 나의 이런 생각을 그냥 지나쳐 더 날아간다. 아닌가? 5분 후 뱅기는 90도 선회 후 지상에 착륙한다. 공항이 아니다. 시골학교 운동장.
까띠끌란 - 방카
다들 찍어놓는 아시안스피릿과의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사람이 제법 있었으나 2-3분이 지나자 어디론가 다 떠나고 우리 가족 외에는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레드코코넛에서는 픽업 서비스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일부러 내가 알아서 들어갈 거라 했기 때문에 이제부터 알아서 가야 한다. 하지만 이거 어케 해야 하나? 바로 앞에 보이는 안내 센터로 가서 무작정 물어 봤다.(참, 제가 영어 꽤나 하는 걸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지 몰라 밝혀 둡니다만 저 영어 잘 못합니다. 아니 거의 못합니다. How much?, Where can I..., I'd like to... 정도가 다입니다.) 트라이시클 타고 배 타러 가랜다. 첨타보는 거라 가슴이 두근 거렸지만 20페소로 가격을 흥정하고 트라이시클을 탔다. 500미터 쯤 가니 바다가 보인다. 20페소를 트라이시클 기사에게 주려했더니 갑자기 두어 사람이 포위를 하더니 30페소 주라고 한다. 얼른 주고 선착장으로 갔다. 배표를 끊고(1인당 20페소) 30미터 정도 걸어 사람들이 많이 선 곳으로 갔다. 아마, 저기서 배를 타나 보다. 우리 나라 어촌에서도 느낄 수 있는 약간의 비린내가 바람에 섞여 있다.
방카라는 놈을 탔다. 우리 말고는 모두 현지인으로 보인다. 파도가 조금 심하다. 건너편에 있는 쉰 쯤 되 보이는 촌동네 아줌마 같은 사람이 개구리를 보고 "네 일롬이 모야?"라고 한다. '먼 말?' 다시 "네 일롬이 모야?" 한다. 아하! 우리말이구만. 하지만 개구리 당황해서 말을 못한다. "멧 쌀?" 할 수 없이 영어로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아줌마 나를 보고 "아뇽하쎄요?" 한다. 내가 질 수 없지. "까무스따까" 아줌마 눈을 똥그랗게 뜨더니 이번에는 "꼬맙슴미다.". 지체없이 "살라맛!" 되돌려 줬다.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모두 깔깔대고 웃는다. 아줌마와 몇 마디 영어로 얘기를 나눴다. 한국사람이 많이 온단다. 패키지로 온 거냐고 묻길래 아니라 그랬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바다 색깔이 짙푸른 잉크색이다. 방카는 파도에 맞춰 속도를 줄였다 높였다 하며 한 걸음씩 보라카이로 다가가고 있다.
보라카이
보트스테이션 3인가 보다. 야자수가 눈앞에 서 있다. 하지만 아직도 별로 실감이 안난다. 모두 내린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냥 앉아 있으니 선장(?)이 "온리 원 드랍"이라고 한다. 허걱! 스테이션 2까지 가야 되는데...... 일단 내렸다. 젊은 총각이 잽싸게 우리 짐을 받아 든다. '레드 코코넛' 간다고 하니 따라 오랜다. 5분 정도를 좁은 골목길로 걸었다. '이거, 잘못 온거야. 그냥 제주도나 가는 건데.' 걸으면서 개구리 엄마 얼굴을 보니 나와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표를 내진 않지만 엄청 실망한 눈치다. 짐꾼(?)이 30페소 달랜다. 기냥 주고 트라이시클을 다시 탔다. 길도 엉망이고 공기도 엉망이다. 매캐한 오토바이 배기 때문에 숨을 못 쉴 정도다. 주변의 나무들에는 희뿌연 먼지가 누룽지처럼 앉아 있다. 트라이시클은 구석 으슥한 곳에다 우리를 내려 주더니 30페소 받고 가버린다. 이런 젠장. 이거 뭔가 잘못된 거야.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20킬로가 넘는 가방을 메고 망연자실에 가까운 개구리 엄마를 재촉해 다시 골목길을 걸어 해변 쪽이라 생각되는 방향으로 나갔다. 덥기도 덥고 짜증도 나고...... 5분쯤 가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레드 코코넛'이라고 하니 조금만 더 가란다. 다행히 몇 발 걷지 않아 레드코코넛이라고 쓰여진 간판이 보인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히 바다쪽일 건데 바다가 보이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이다. 아항, 후관이구나. 열 걸음 정도 걸어가자 골목끝의 조각 같은 틈을 비집고 바다가 보인다. 왼쪽에 레드코코넛이라는 조그만 문이 있다.
레드코코넛
기대보다는 좀 작은 풀장이 있고 풀장 주변에는 예쁜 꽃들과 빨간 열매들이 포도알처럼 열린 대추야자도 보인다. 카운터로 가서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하니 뭐라뭐라 그러더니 209호 키를 준다. 항공권 리컨펌을 하려 하니 국내선은 무료지만 국제선은 100페소란다. 100페소를 주고 항공권을 맡겼다.(나올 때 200페소를 더 줘야만 했다. 1인당 100페소란다.) 얼굴은 그런대로 예쁘장한 아가씨가 많이 무뚝뚝하다. 방으로 들어가니 개구리 엄마가 좀 놀랜다. 기대보다 방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베란다 밖으로 꽃들이 피어있고(209호 베란다 위치에 옥상 정원?이 있다. 바다는 안 보이지만 레드코코넛에서는 가장 위치가 좋은 방이 아닐까 싶다.) 커다란 더블 베드가 두 개, 충분한 거실 공간도 있다. 대략 20평은 되어 보이는 것 같다. 바닥은 깔끔한 대리석 무늬로 되어 있다. 숙소가 마음에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일이나 모레 마닐라로 다시 나가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 보아야겠다.
2시가 넘었다. 거지같은 아침밥(우리에게만)을 먹은 터라 배가 무지 고프다. 밥 먹으러 나가쟀더니 개구리 엄마는 침대에 퍼져 일어날 수도 없단다. 룸서비스에 전화를 넣어 뜨거운 물과 젓가락을 부탁했다. 컵라면 세 개와 햇반 세 개가 마지막 희망이다. 다행히 가져다 줄 거란다. 기다리란다.
한없이 기다렸다. 행여나 오려나, 이제나 오려나...... 방밖에 조그마한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놀라 뛰어 갔었다. 그렇게 우리는 굶어죽어가고 있었다.(표현이 너무 비약이 심했지만 어쨌든 그 때의 우리는 보라카이에 대한 실망감이 배고픔과 피곤함과 함께 겹쳐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조금만 기다리란다. 울고 싶었다. 그러나, 30초 후 방문이 열리더니 아줌마가 커피포트만한 자기 주전자에 담긴 뜨거운 물과 젓가락을 주며 방금 막 끓인 물이란다. 그렇구나, 물을 끓이느라 늦었구나. 고마워라, 고마워라.(비록 카운터가 매우 무뚝뚝했지만 실제로 레드코코넛의 식당 서비스는 나쁘지 않았다.)
컵라면과 익지도 않은 햇반(익지않은 햇반은 펄펄 날아다니는 것이 그 동네 밥과 별 다를 게 없었다.)과 준비해 간 김치와 맛김으로 흡족한 점심 식사를 마쳤다.
딸리파파 시장으로 가는 길
잠시 숨을 돌린 후 딸리파파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나가자마자 가무잡잡한 총각 하나가 달라 붙더니 "호핑, 서(sir)?"라고 한다. 이런 건방진 녀석, 왕족의 후손에게 겨우 귀족에게나 붙이는 '경(sir)'이라니. 몰라서 그런 거니 용서해 준다.
호핑투어 $50이면 된단다, 크랩과 새우 포함한 점심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대로 괜찮은 가격이다. 하지만, 섬처녀님을 만나기 전에는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사항이다. 일행(꼬뿌니님)을 만나고 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고는 다시 길을 걸었다. 바람이 시원하긴 했지만, 낡은 비닐로 바람막이를 한 음식점들과 조악한 기념품을 팔고 있는 행상들과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깎은 과일을 파는 아줌마들과 '짜가'일 것이 분명한 시계 파는 남자들...... 내가 생각했던 보라카이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발앞에 새파란 야자가 하나 떨어져 있다. 얼른 줏어 차고 있던 맥가이버 칼로 따보니 물이 가득 차있다. 한 모금 마셔보았더니 우리 나라에서 마셔본 것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아니다. 개구리도 한 모금 마시더니 포기한다. 길 옆에 다시 고이 세워두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꼬뿌니님 일행을 만났다. 숙소는 구했고 맛사지도 벌써 받았다면서 꼭 해보라 그런다. 어차피 개구리 엄마는 하루에 한 번씩 맛사지를 받게 해줄거라 생각했던 것이므로 딸리파파 시장을 구경한 후에 해 볼거라 얘기하고 7시에 아쿠아리우스에서 만나기로 한 후 다시 길을 걸었다.
딸리파파 시장은 생각보다는 멀었다. 이상하다 싶어 꼬마를 잡고 시장이 어디냐고 물으니 말도 없이 바로 옆의 골목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폭이 2.5미터 남짓한 골목을 따라 우리 나라 60년대 과자를 팔고 있는 구멍 가게들과 바틱과 수공예품들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보인다. 메인로드로 가는 길에 망고 네 개를 사고 비치로드로 다시 오면서 물과 음료수를 샀다. 창원에서도 5일장을 자주 보고 시골 5일장도 가끔 구경가는 우리에게는 그리 별다른 느낌은 없었다.
코코넛 맛사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맛사지 아줌마가 우리를 부른다. 옷을 갈아입지 않은 터라 어쩔까 망설이다 더 늦으면 선셋을 놓치겠다는 생각에 드러누웠다. 이런, 나더러 아줌마가 반바지도 벗으란다. 팬티만 입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기야 어때, 여기서 나 아는 사람 만날 일도 없고. 하지만, 꼬뿌니님 일행이 다시 지나간 것으로 안다. 쥐도 알고 새도 알고...... 맛사지는 구석구석을 주물러 주는 것이 그런대로 시원했다. 하지만, 바람에 날리는 모래를 닦느라 실제 맛사지하는 시간은 30분 조금 넘을까 말까다.
맛사지를 받고 나니 개구리가 보이질 않는다. 뒷골이 쭈뼛했다. 맛사지 받는 동안 바닷가에 있겠다고 했는데...... 바닷가를 보아도 보이질 않는다. 맛사지 아줌마가 숙소가 어디냐고 물어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봤다고 했다. 이 사람들의 이런 류의 말은 믿지않는 게 좋다는 것을 듣고 왔지만 비치로드를 통해 레드코코넛으로 뛰어갔다. 다시 해변을 따라 헐레벌떡 온갖 불안한 생각을 떨쳐버리며 뛰어 오다보니 개구리가 엄마랑 같이 털래털래 걸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쁜 녀석. 맛사지 받고 다리 근육 좀 풀었나 싶었더니 더 모이게 만들어.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있었다.
선셋
여기에는 쓸 말이 없다. 항상 낮에는 화창하다 선셋 무렵에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손바닥만한 주황색이라도 본 적이 없다. 유명하다는 찰리스바 구경도 못했다.
밤하늘
마찬가지이다. 별 두 개만 봤다. 아마 목성과 토성이었을 것이다.
시 러버스 - 망고
숙소로 돌아와 간단히... 샤워를... 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는다. 온 몸에 묻은 코코넛 오일이 잘 씼어지질 않는다. 비누를 잔뜩 칠하고 박박 밀어 씻어냈지만 잠시 있으니 고소하면서 달콤한 코코넛 오일 냄새가 솔솔 난다. 기왕 기름 발랐으니 내일은 알맞게 구워나 볼까?
옷을 갈아입고 칭찬이 자자한 시러버스(싫어 버스 아니다.)로 갔다. 레드코코넛에서 대략 20미터 정도 거리다. 개구리는 치킨을 좋아하니 치킨 필레미뇽, 개구리 엄마는 레드 페퍼 스테이크, 나는 해물 카레를 시켰다. 평균 140페소 정도. 우리 돈으로 3,500원 정도. 산미겔, 콜라도 함께 시켰더니 음료수 다 마실 때 쯤 음식이 나왔다.
이런! 주문할 때 '짜지않게'라고 하는 걸 깜빡했다. 스테이크도 짜지만 치킨 필레미뇽은 장난이 아니다. 짠 것을 잘 먹는 개구리도 이건...... 껍질인 치킨만 벗겨 먹고 안쪽의 오징어는 포기한다. 게다가 개구리는 해물은 잘 먹질 않는다. 다행히 내 해물 카레는 입에 짝 달라 붙는다. 짜지도 않다. 덕분에 카레는 개구리랑 개구리 엄마가 잘 먹었다. 양은 조금 모자라는 듯 하다.
문독스를 가서 스틸 스탠딩 어쩌구를 해보려 했으나 내가 잠이 모자라 포기하고 숙소로 다시 돌아 왔다. 베란다에 있는 등나무 의자에 앉으니 온 몸이 좌아악 풀린다. 9시 조금 넘었지만 풀장에는 사람이 없고 붉고 푸른 조명들만 은은하다. 난간 바로 옆에 있는 야자 나무의 열매 하나에 빨간 전등을 감아 '레드코코넛'을 만들어 놓았다. 바람에 약간 습기가 묻어 있지만 시원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건 아니다. 여행이 아니라 휴가라면 그런대로 만족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베란다에서 잠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기가 많다던데 아직 접선을 못했다. 개구리는 잠이 올때까지 만화 채널만 붙잡고 있다.
나가기 전에 냉장고에 넣어 차게 식혀둔 망고를 하나 깎아 입에 베어 물었다. 음...... 이 그윽한...... 맛이...... 아니다. 향이 비위에 몹시 거슬린다. 개구리도 개구리 엄마도 한 입 먹더니 더 안먹는다. 뒷날 저녁에 깎은 망고는 조금 나았지만 그래도 아니었다. 돌아올 때 쯤 개구리 엄마는 망고에 익숙해져 식당에서는 먹을만하다 그러더니 요즘은 말린 망고 혼자 다 먹는다. 어제 밤에도 한 봉지 거의 혼자 다 먹었다.
그렇다! 개구리 엄마 없을 때 말린 망고 혼자 먹어 보자.
망고 먹으러 감다. 망고 다 먹으면 다시 오겠슴다. 아마 며칠 걸릴 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