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연습*
'낮은 산이 낫다' 저자 남난희
1957년생,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 부산의 경남여상, 1981년 한국등산학교를 졸업했다. 산악활동을 시작하여 27세 처녀때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29세대 세계 여성최초로 희말라야 안나푸르나 산군인 강가푸르나(7,555m)를 등반했다.
30대 중반 그녀가 책을 발간하자 남편이될 남자가 서울로 달려와 청혼해서 결혼을 하였다. 두사람은 하동 청학동에 보금자리를 잡았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그러나 결혼 2년반만에 성격차이로 이혼을 해야했다. 남편은 세상 고뇌를 짊어졌고, 그녀는 역마살낀 산에 대한 열망이 끓어 올랐을까? 남편은 스님이 되어 절로 들어가고, 그녀는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 정선의 자연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러나 직책만 교장이지 경제적으론 매우 척박하고, 힘든 생활의 연속이었다. 겨우겨우 버티어 가던 중 어느해 태풍이 불어 학교의 지붕이 날아가 버렸단다.
좌절했고 더 이상 그곳에서 버티기 힘들었다. 비록 이혼을 하였으나,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스님인 남편(쌍계사쯤 있었으려나? 하는 생각...)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화개면의 외딴 황토집을 알아봐 주었다.
한적하고 시야가 툭트인, 토굴과 옹당샘이 있는집, 안팔려서 주인이 애를 먹던 그집을 보고 그녀는 첫눈에 이게 내집이다 싶더란다.
서둘러 이사를 하였고, 아이가 자연에 동화되어 맨발로 마당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느꼈단다. 그러나 당면한건 생계문제...
등산으로 단련된 건강, 이전부터 읶혀왔던 메주를 만들어 된장을 담고, 녹차잎을 따다가 가공하여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다시 산을 오르고, 나물도 채취했다.
그녀는 무소유, 바람과 기다림이 없는 산에 심취된 생할이 이어졌고, 새소리, 물소리, 짐승소리에 귀가 기우려졌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 어디에선가는 남편이 그러했듯 세상 허무를 느끼기 시작했다.
세월이 흘러갔고,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단다. 하나밖에 없는 피붙이인 사람하는 아들이 10년전에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다.(10년동안 서로가 아무런 소식도 없이 지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남지만 물어볼 수도 없다)
이후 7년간 통곡을 하며 일손을 놓다시피 하면서도 산을 오르는 것을 그르지 않았단다. 어느 누가 세월이 약이라고 말했던가?
말로서는 형용하지 못할 고통을 이겨내고, 이젠 평화스런 모습으로 남들앞에 섯지만 그녀의 얼굴 한구석엔 수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아니할 비애가 서려있더라고 전했다.
내가 그녀를 보았던때가 무주의 덕유산 등반이었던가? 한때 내가 다니던 산악회에는 희말라야 등반을 다니던 사람들이 몇몇 참가했었다. 그때 그녀를 보았고, 대화 중에 집이 하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시간나면 한번 들리라는 형식적 인사,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러다 어느 동영상에서 그녀의 근황을 보니 반가웠고, 전반적인 그녀의 삶을 알게 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동호인으로서 마음속 격려를 해주고, 들은 이야기를 한번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