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 연혁
평산(平山)은 황해도 남동쪽에 위치한 지명으로 평주(平州)의 다른 이름이다. 고구려 때에는 대곡군(大谷郡) 또는 다지실(多知悉)이라 하였으며, 747년(신라 경덕왕 6) 대곡성을 설치하였고, 757년(경덕왕 16)엔 영풍군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783년(선덕여왕 4)에는 진(鎭)을 두고 한주(漢州)에 예속시켰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명칭을 평주로 바꾸었고, 성종 때 방어사(防禦使), 현종 때는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 1272년(원종 13)엔 복흥군(復興郡) 즉 배천(白川)에 잠시 예속되었다가 충렬왕 때 다시 복구하였다. 1413년(태종 13)에 평산으로 바꾸고 도호부(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평산군으로 개편하였고, 1914년 군면 폐합으로 남서부의 일부를 연백군에 이속시켰다.
성씨의 역사
평산신씨(平山申氏) 시조는 고려의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이다. 신숭겸은 궁예가 세운 태봉(泰封)의 기장(騎將)이었으나 궁예의 폭정이 계속되자 배현경(裵玄慶), 홍유(洪儒), 복지겸(卜智謙)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개국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 공로로 고려 개국원훈대장군(開國元勳大將軍)에 올랐다. 하루는 왕건이 장군들과 평주(평산)에 사냥을 나가는 도중에 기러기 세 마리를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맞힐 수 있는가?”하니 신숭겸이 나서서 왕건이 지정한 세 번째 기러기를 명중 시키니 태조가 탄복하여 땅 300결과 평산을 본관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927년(태조 10) 후백제와의 대구 공산동 전투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어 전세가 위급하자 태조 왕건과 풍채가 비슷하여 대신 어차를 타고 출전하여 전사하였다. 태조는 무사히 빠져나왔다. 이에 태조 왕건은 순절한 신숭겸에게 벽상호기위태사개국공삼중대광의경대광위이보지절저정공신(壁上虎騎衛太師開國公三重大匡毅景戴匡衛怡輔砥節底定功臣)을 추봉하였다.
분적종 및 분파
파명(派名)을 살펴보면, 군수공파(郡守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판윤공파(判尹公派), 감찰공파(監察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판사공파(判事公派), 이상공파(貳相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제정공파(齊靖公派), 온수감공파(溫水監公派),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사간공파(思簡公派), 한성윤공파(漢城尹公派), 정언공파(正言公派), 문희공파(文僖公派), 장령공파(掌令公派), 봉상윤공파(奉常尹公派), 밀직공파(密直公派)로 나뉘어졌다.
주요 세거지
강원도 이천군 방우면 가여주리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리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 중현리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경상북도 상주시 내서면 서만리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복성동
전라북도 완도군 소안면 미라리
전라북도 임실군 신덕면 수천리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대지리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산리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대장리
충청북도 괴산군 불정면 신흥리
평안북도 영변군 남송면 봉지동
황해도 금천군 구이면 관문리
2011년 9월 추가 (카페내 평산신씨 자문회원의 의견)
경상북도 문경시
경상남도 사천시
인구분포
2000년 통계청이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평산신씨는 154,612가구 총 496,874명이 있는 것으로 되어있다.
첫댓글 주요 세거지란에 경북 문경시와 경남 사천시를 추가하여 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