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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부터 키재기
세우려 한다
세우려 한다
한없이 세우려 한다
오르려 한다
오르려 한다
한없이 오르려 한다
재려 한다
재려 한다
한없이 재려 한다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
한없이 세우고
한없이 오르고
한없이 재려 한다
누가 더 높이 쌓았는지
누가 더 높이 올랐는지
한없이 쌓고 오르고 재려 한다
사람은 땅에 사는 동물
사람은 땅으로부터 높이를 재는 동물이다
보이는 것의 기준은 땅이기에
허나 보이지 않는 게 있다
사람들은 그를 하느님이라 불렀다
하느님은 하늘에 사시는 분
하느님은 하늘로부터 높이를 재는 분이시다
오늘에야 사람들은 불현듯
하늘로부터 키재는 법을 알았다
하늘로부터 키재기를 시작한다
난쟁이의 키가 커져 보인다
바벨탑은 낮아지고
난쟁이의 키는 커졌다
내리고프다
무너뜨리고프다
오, 케노시스! *
갑자기 비가 내리고
세상이 바로 보인다.
※ 케노시스 : 어원은 희랍말의 kenosis로서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를 나타내는 의미로 많이 씌어지고 '스스로 낮아짐, 비움'이라는 뜻을 지닌다.
하늘로부터 키를 재는 지혜, 이러한 지혜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첫째 순결하고 다음은 평화롭고 점잖고 고분고분하고 자비와 착한 행실로 가득 차 있으며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지혜로운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답게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한 생활을 함으로써 그 증거를 보여주도록 하십시오" (야고 3, 13-18).
세상의 이치에서 볼 때 작아진다는 것, 내가 작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바보같아 보이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작아지는 그 곳, 바로 그 곳에는 낯설음이 있습니다. 왠지 어색하게 낯설은 그 곳에서 우리는 여느 세상과는 다른 새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작아지기를 어색해 하고 낯설어 하는 것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그 새로움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새로움과 낯설음, 바로 여기에 예수께서 육화하시어 우리와 같은 피조물로까지 작아지시고 십자가상에서 수모를 당하시면서까지 보여주고자 하셨던 세상, '새 하늘과 새 땅' (묵시 21, 1)이 자리하는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크게 되는 변화는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역사의 신비입니다(마르 4, 31).
정현종 선생의 「섬」이라는 단순한 시가 있습니다. 그 전문은 이렇습니다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저는 이 시를 대하면서 시인이 노래하는 이 '섬'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말씀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습니다. 이 섬은 사람들 사이에 있습니다.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사이에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곧잘 이런 말을 합니다 :
"사람이라고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디오게네스가 찾아 헤매던 사람이나, 정현종 선생이 노래 한 '섬'을 저는 같은 맥락에서 보고 싶습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다운 사람은 찾기가 어려운 만큼 우리 눈에도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동경하고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섬처럼, 한번은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일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 사이에 비록 드러나지 않아 우리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지 우리들 가운데, 우리와 함께 분명히 있습니다.
누구일까?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참으로 어렵습니다. 참으로 나 자신이 변화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여기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요청됩니다. 나의 삶의 자세를 세상의 상식적인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나 자신이 작아지고 또 작아져야 하는데 그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자존심을 뭉그러뜨려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일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 (루가 14, 11 : 18, 14)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낮아지게 됩니다" (마태 18, 4).
작음, 작아진다는 것, 작아지는 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 인간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이며 신앙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덕입니다. 작아지고 작아질수록 그만큼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공간, 우리의 시간, 우리의 공간을 비우면 비울수록,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면 여길수록, 세상의 눈으로 보아 바보가 되고 어리석어 보이면 보일수록, 하느님의 신비로운 역사, 하늘나라가 이 땅에 내려 오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우리 안에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 작아집시다. 우리가 작아질 때,
예수께서 우리 안에 육화 하실 것입니다."
(생활성서 100호 기념 특집호, 1991. 12)
(출처: 고 민요셉신부님 추모홈피 : http://min0319.com )
첫댓글 엊그제 같은데... 벌써 9주기네요.
가브리엘 축일인 지난 9월 29일 전임 천경훈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이임미사를 드리며
저희 성당 성가대에서 불러주는 "태양의 찬가" 노래를 들을 때
왠지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랐었는데, 오늘 아우 민요셉 사제를 위한 연미사를 봉헌하고
미사 후에 오늘이 민신부님 기일이지요. 라는 본당신부님(장훈철 바오로) 말씀을 듣고 집으로 내려와
카페에 들어와보니 새벽에 잠도 주무시지 않고 올려주신 글을 대했습니다.
저도 처음 읽는 작은 형제님의 글을 대하며 영원한 프란치스칸이기를 고집했던 아우가 생각났었습니다.
오늘 저녁엔 저희 가족끼리 모여 위령기도(연도)를 드릴 것입니다.
사실 내일 11일이 선종일이자 기일인데,
대연성당 고등부 때부터 함께 활동했던 친구가 통영 사량도에 지은 집 축성식을 내일 한다고 해서
그 당시 친구들 부부 함께 가야되기에 올해에만 옛날식으로 선종 하루전에 위령미사와 기일 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이번주 대연성당 주보에는 민신부의 기일 소식이 안내되었다네요....
대연동의 김효근신부님께서 미사중에 민신부님을 꼭 기억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