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마지막 수업 시간인 한자공부를 마치고 아이들은 가방을 싸면서 선생님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교실 저쪽 구석 쪽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렸다.
“어마나, 돈, 돈이 없어졌어.”
아이들의 시선이 전부 그쪽으로 집중되었다.
반장 아이가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채 주머니와 가방을 뒤적거리며 펄펄 뛰고 있었다.
“왜 그래? 왜?”
“돈, 돈이 없어졌어.”
“돈?”
“오늘 경희에게 전달할 돈이야, 분명히 조금 전 까지 있었는데 화장실 갔다온 사이 밖에 없었는데........”
“세상에,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 같은 반 친구 경희가 교통 사고를 당했다.
시골 외갓집에 갔다 오는 길에 마주 오던 차가 중앙선을 침범해오는 바람에 정면으로 충돌을 한 것이다.
운전석에 있던 아버지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할 정도로 혼수상태였고, 어머니 역시 두어 달을 입원해 있어야 하는 중상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던 경희 남동생은 그래도 좀 덜해서 다리가 부러져 기프스를 했고, 경희는 목과 가슴을 다쳐서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런 처지를 알게 된 반 친구들이 지난 주 학급회의 시간에 경희 돕기 문제를 꺼냈고, 한 주일 사이에 꽤 많은 돈이 모였다. 오후에 반장과 부반장이 대표가 되어 그 돈을 전달하려고 했는데, 반장이 화장실 갔다 온 사이에 없어진 것이다.
부반장과 그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차근차근하게 찾아보았지만 돈은 나오지 않았다.
부반장이 교무실로 쫓아 가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아니, 아무리 돈에 환장을 해도 그렇지 불우한 친구 돕자고 모은 돈을 그렇게 가져 갈 수도 있느냐고요?”
며칠 동안 계속 분실 사건이 나서 선생님도 신경이 잔뜩 곤두 서 있었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숫제 울음이었다.
아이들이 아직은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뒤져보자는 의견을 냈다.
선생님도 그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반장은 아직도 얼굴이 하얘진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고, 부반장과 1학기 반장이 대신 해서 아이들 몸수색을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지금 그 돈을 가져간 범인이 누구인지 대강 짐작을 하고 있다.
그 아이.
며칠 전이었다.
그 날도 준비물을 사려고 돈을 가지고 왔던 반 친구 하나가 지갑째 돈을 잃어버렸다. 울고불고 했지만 끝내 돈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날 오후 수업을 마치고 나는 그 아이와 함께 교문을 나왔다.
“뭐 좀 먹고 갈래?”
그 아이가 분식 집 근처에 오자 나를 돌아보며 싱긋이 웃었다.
“그래.”
우리는 나란히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아이는 분식집에 들어가다가 의자 다리에 걸리는 바람에 휘청하면서 몸의 중심을 잃었다. 바로 그 순간 아이의 주머니에 있던 지갑이 바닥에 털썩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어마나!”
아이는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재빨리 지갑을 주워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머, 너, 얼룩무늬 지갑 샀니?”
“너 지금 뭐라고 그랬니? 얼룩무늬 지갑이라니? 어머, 얘 좀 봐. 지갑은 무슨 지갑. 괜히 엉뚱한 소리는 하고 그래.”
“금방 떨어진 걸 집어넣었잖아.”
“이거 말이구나?”
아이는 재빨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눈앞에서 흔들었다.
나는 그 순간 깜빡 속은 것이다. 흡사 마술사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놓은 다음에 재빠르게 다른 물건을 꺼내는 것처럼.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부반장과 1학기 반장은 전체 아이들의 가방과 주머니를 뒤지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 아이 차례가 되었다.
나는 공연히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아이를 지켜보았다.
만약에 그 돈이 그 아이의 가방에서나 주머니에서 나온다면 순간의 교실 안은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분노한 아이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그 아이의 머리칼이며 옷이며 마구 쥐어 뜯어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머리칼은 쑤세처럼 엉망이 되어 흩어지고, 옷은 여기 저기 뜯어지고, 얼굴에는 손톱자국이 이리 저리 나고, 코피가 터지고......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가방을 들고 공부하러 친구들 앞에 고개를 들고 나타날 수 있을까?
언젠가 시골 외갓집에 갔다가 나는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이웃 집 돈을 훔치다가 들킨 아줌마가 온 동네 사람들에게 이리 뜯기고 저리 뜯겨 엉망으로 구겨지는 모습을........
그 아줌마도 상습범이었다.
웬만하면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해해 주고 용서해 줄만도 했건만 마을 사람들은 용서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 동안 쌓였던 마을 사람들의 분노가 컸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어느 새 그 아이의 처지를 동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아이의 소지품 속에서 돈이 나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돈은 결국 나오지 않았다.
일과를 마치고 교실 문을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다시 웅성거렸다.
“차라리 벼룩의 간을 내어 먹지.”
“누가 아니라니? 어쩌면 불우한 처지에 있는 친구 돕기 성금 모은 것도 가져갈 수 있어?”
“이건 인간이 되기를 포기하는 행위야.”
억울하고 분해서 울먹거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후 나는 교실 청소 당번이어서 조금 늦게 나왔다.
해질녘 하늘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왔다.
학교 둘레에 서 있는 미루나무 잎새에 와 닿는 마지막 햇살 때문에 넓은 운동장은 온통 미루나무 그늘로 덮여 있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아이의 집이 있었다.
이 층 양옥 베란다에는 꽃을 좋아한다는 그 아이의 아빠가 심어 놓은 베고니아, 데이지 따위의 꽃들이 화분 가득 피어 있었다.
담장 가에는 새빨간 장미가 바람에 물결처럼 넘실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나도 모르게 그 집 대문께로 휘적거리고 다가갔다.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인터폰을 통해 일하는 아줌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에도 가끔씩 와 봤던 집이었기 때문에 이 집 식구들은 다 아는 사람들이다.
“저, 미혜예요.”
찡,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응, 어서 와라, 그런데 우리 아가씨는 어디 잠깐 나간다고 나갔는데 어떡하지? 올라가서 기다릴래? 금방 올 텐데......”
“그럴까요.”
나는 아줌마가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가 2층에 있는 그 아이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평소에 하는 대로 커튼을 활짝 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다. 2층 방은 전망이 좋아서 나는 이 집에 오면 바깥을 내다보는 게 즐거웠다.
멀리 바위로 이루어진 뒷산이 보이고 바윗길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것이 보였다.
산자락에 내려앉은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햇살을 받은 나뭇잎들이 싱싱했다.
나는 다시 고개를 가까이 해서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정원 한구석에 있는 분수에서 맑은 물이 힘차게 솟구치고 있었다.
캄캄한 땅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인가?
물방울들은 갑자기 만난 작은 틈 사이로 아우성을 치면서 다투어 솟아 나오고 있다.
마음까지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고개를 방안으로 돌리다가 나는 무심코 침대 밑에 있는 쓰레기통을 보게 되었다.
꾸깃꾸깃 뭉쳐서 던져 놓은 하얀 종이 뭉치.
왜 나는 그 하얀 종이가 봉투라고 생각했으며 그 봉투는 또한 예사 봉투가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잠시 멍하니 그 쓰레기통을 바라만 보았다.
공연히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 아이가 들어오기 전에 빨리 보고 확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뛰어 내려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얼른 봉투를 주워서 펴 보았다.
그러면서 제발 아니기를 빌었는데, 그 봉투에는 「조경희에게」 2학년 5반 일동이라는 글씨가 원망스럽게도 씌어 있었다.
꾸깃꾸깃 구겨져서 버려진 빈 봉투.
그 속에는 우리들의 정성어린 우정이 들어 있었는데.
정성이 들어있는 알맹이는 어디로 빠져나가고, 지금은 흉하게 구겨진 채로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었다.
구겨져 버린 정성, 구겨져 버린 양심, 구겨져 버린 우정.......
나는 그냥 뛰쳐나왔다.
“왜? 곧 올 텐데. 시원한 물이라도 한 잔 하고 가.”
아줌마가 쟁반에 음료수를 받쳐 들고 올라오다가 나를 잡았다.
“아, 아니에요. 갑자기 머리가......”
“저런, 글쎄. 얼굴빛이 정말 좋지 않은 것 같애.”
아줌마가 내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가. 우리 아가씨 오면 왔다 갔다 그럴 게.”
울고 싶었다.
아이의 하는 짓이 야속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모른 척하고 있어야 하나?
그것도 안 될 말이다.
그러면 그 아이의 도벽은 점점 더 심해져서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 아니, 이미 그 아이의 도벽은 치료가 어려울 만큼의 단계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치료가 필요하다면 해 주어야 하겠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에게 사실을 이야기해도 그 아이는 내 진심을 들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때처럼 마술사가 마술 하듯이 구실을 붙여 빠져나갈 지도 모른다.
선생님에게 알려?
만약에 이 일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언젠가 시골에서 보았던 아줌마처럼 그런 꼴이 된다면.......
그가 해온 짓으로 보아서는 그런 꼴을 당해도 마땅하다.
남의 물건에 손을 대고 욕심을 부린 것은 나중에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그것은 본인의 책임이다.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나는 어느 새 내 집 앞까지 와 있었다.
‘아, 나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_()_
친구의 부모님께 사실을 말해서 친구의 나쁜 버릇을 고쳐야 합니다
도벽!!
오래전에 그런 친구가 있었더랬지
전생에 업연으로 도둑질하는 것은 타이르고 야단친다고 고쳐지지 안더군요
가난해서 하는 도둑질이 아님 가깝게 지내지않는것이 상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