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이 해상사격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항상 하는 훈련이지만 대원들 모두가 대피호에 사격훈련이 끝 날 때까지 들어가 있어야 된다.
대피호는 땅 밑에 있기 때문에 먼지도 많고 습기도 많아 장시간 있기에는 짜증이 난다.
나는 그 짜증에 이기지 못해 간부에게 가서 말하였다.
"반장님 저 정비고 에 할일이 많아서 내려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럼 직속간부한데 보고하고 가봐라."
"예, 전화기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
"그래 연락해봐."
나는 정비반장한데 전화를 해서 "상황이 이러니 내려가서 과업을 하겠다." 라고 하였다.
정비반장은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반장님 허락 받았으니 저는 내려가서 과업 하겠습니다."
"그래, 가서 일해라."
나는 그길로 후임 한명과 선임 한명을 데리고 정비고로 향했다.
배가 고파서 라면 물을 올리고 계란을 삶았다.
라면 물이 끓을 동안 선후임과 대화를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쉬이익' 이란 소리가 들리더니 '쾅 !' 하는 소리가 들리며 창문이란 창문은 다 깨졌다.
순식간에 50여발 정도의 폭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바로 귀 옆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것 같은 소리였다.
우르르르 쾅쾅쾅! 섬 전체가 내려앉을 것 같았다. 그 정도의 진동을 동반하였다.
나는 놀란 마음에 선임과 후임을 데리고 정비고 안에 있는 탈의실로 들어갔다.
한참 생각을 하다 '아! 북한이 대응사격을 하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후임과 선임이 당황하여 안절부절 하였다.
"김동건 해병님, 우리 X된 거 아니야 ? 전쟁 나는 거 아이가? 아 미치겠네"
"괜찮을 끼다. 조용히 좀 해봐."
"아 미치겠다고. 우찌 해봐 좀."
"안되긋다. 대피호 가자"
1차 포격이 끝나고 후임과 선임을 데리고 대피호로 다시 올라갔다.
가는 길에 보니 여러 명이 쓰러져 있었다.
대피호 입구에 1명, 반대편 나무아래 1명, 쪽문에 2명 총 4명이 쓰러져 있었다.
일단 대피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부상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파편에 맞아 머리두피가 다 찢겨진 사람, 어깨에 맞아 탈골된 사람, 가슴에 맞은 사람, 등 여러 명이 다쳤다.
모두가 같은 건물을 쓰는 사람들이다.
피의 향이 비릿하게 올라오며, 사방에 피가 다 튀어있었고, 전우들의 전투복에 피범벅이었다.
그렇게 대량의 피를 보자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해 지기 시작했다.
부상당하지 않은 대원들이 부상자들을 지혈하며 가슴과 팔 등을 눌리고 있었지만 그 사이로 흘러나오는 피를 보며
나는 당황하여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지만 순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공병간부에게 말하였다.
"부소대장님, 밖에 대원들이 쓰러져있습니다."
"아직도 밖에 있는 사람이 있어? 알았다."
아직 다치지 않은 인원들을 데리고 빠르게 부상자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들어와서 보니 더 당황하였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가슴과 팔, 다리 등에서 피가 꿀럭꿀럭 쏟아졌다.
그 순간, 또 다시 2차 포격이 시작되었다.
나는 소대의 책임자로 와서 소대원을 챙겨야했다.
"우리 소대원들은 이쪽으로 다 모여봐."라고 하니 평소에는 말 안 듣던 후임들이 잘 따라 주었다.
구석에 있는 좁은 공간에 소대원들을 다 밀어 넣고 소대 간부가 올 때 까지 기다렸다.
2차 포격이 끝나고 나서 잠시 후에 행정관님이 왔다.
행정관님이 와서 인원파악을 하고나니 우리소대원들은 희생자가 한명도 없었다.
공병에 부상자 9명 정비소대에 부상자 6명 이 있었다.
위급한 환자는 바로 헬기를 태워서 이송하였다.
한참을 대피호에 있다가 생활관에 가서 완전무장을 들고 거점으로 들어갔다.
거점에 짐을 풀고 대기하는데 소대장님과 거점 안 까지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이 뛰어다니며 전달하여야 했다. 나는 아무도 없길레 내가 하겠다며 나섰다.
밤새도록 소대장님 옆에 있다가 전달사항이 있을 때 마다 거점까지 뛰어가 알려주고 복귀했다.
다음날 교대하여 침낭에 들어갔는데 전 날 쌓였던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피로가 겹쳐져 완전 쓰러졌었다.
그렇게 며칠을 거점에서 살다가 안전하다 판단되어 소대로 복귀하였다.
소대로 가서 희생자들 명단을 보는데 두 칸 옆 생활관에 생활하던 후임 한명이 전사하였고,
같은 생활관 쓰던 선임들과 후임들이 수통에 입원하고 다친 인원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북한의 화력이 그렇게 크지 않아 희생자가 이 정도에서 그쳤다.
만약 북한의 화력이 대한민국의 화력과 비슷하였으면 연평도는 그 짧은 30분 만에 대한민국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전사한 故문광욱 후임과 故서정우 선임의 소식이었다.
故문광욱 후임은 같은 건물을 쓰고 같은 병과 후임이었다.
처음에 들어와서 운전을 못하여 직접 운전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가르쳐 주며, 사소한 것들 까지 물어보며 일주일을 같이 보냈었다.
그런 후임이 전사를 한 것이다.
내 가슴 속에 항상 기억 될 것이며,
해병대 연평부대 전 부대원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 될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기억 될 것이다.
첫댓글 해병님들 화이팅
그래그래 해병대 화이팅이다.
잘읽었습니다! 현실감 있네 살아있네~
현실이었으니깐.
와~ 식겁 했네... 저때 진짜 전쟁 터지는줄 알앗다
군인 님들 남은 군생활 힘내셈 ~
저는 직접해서 바로옆에 터졌습니다.
아이때 기억난다 ㅋㅋㅋㅋㅋㅋ 낸 차에 기름넣고있었는데
땡보로 할끼가 군생활
역시 민영이랑 다른군생활이네
비교하시믄 안되지요
난 100일 남았을 때 식겁했다고.
나도 저때 130일정도 남았었다고.
죽다 살았긋네 ㅋㅋ 닌 군생활 평생 기억날끼다
기억하고 살아가야됩니다. 기억에 남을 추억입니다.
진짜 피가 그리나오나 ?
어! 미칫다니까. 가슴관통한데 피못나오게 막고있는데 손가락 사이로 꿀럭꿀럭 넘친다.
짱~!
당연하지.해병댄데
필승 해병1102기 인사드립니다. 저도 포항서 연평도로 폰탄제거반EOD로써 2개월간생활 했었습니다.
나는 폭탄 찾으러 댕깄다.ㅋ 진짜 길다. 1미터 20센치 정도 ? ?
주민영.. "폰탄제거반" 나는 잠시 "탐폰제거반"으로 읽었다.
폭탄 보고 싶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면 아무것도 없는데 터지면 박살남.
이런 귀중한 경험을.. 이리 간단히 처리하지 말고 상세한 상황묘사(폭탄소리, 냄새, 피..)를 해서 기록으로 한 번 남겨봐라.
언제 평생을 두고 이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겠노.
술 자리가서 술 안주로만 삼지말고..
필승 해병 1122기 인사드립니다. 꾸벅 ㅋㅋ
오냐! 해병화이팅
동거이 요번에도 군대이야기가?? 해병대 안갔으면 우짤뻔했놐ㅋㅋㅋㅋㅋ
큰일날뻔했다.
수정 완료 하였습니다.
고 문광욱 해병과 고 서정우 해병과의 추억이 있으면 같이 넣어서 적어 봐라.
적어서 수정 하였습니다.
육군 왔으면 더 고생 했을껄? ㅋ
민영이한데 물어봐. 육군은 취급 안합니다.
20943024
예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