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
깨달음에 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지와 조사의 경지가 어떻게 다른지
우리 선가(禪家)의 중흥조이신 조선시대의 서산대사께서는
'선가귀감'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의 마음이 극락인데
새삼스레 극락에 가서 날 것이 무엇이며,
자기 성품이 아미타불인데
따로 아미타불을 보려고 애쓸 것이 무엇인가' 라고 한다.
이 말이 옳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저 부처님은 탐내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데,
그럼 나도 탐내거나 성내지 않는가?'
저 부처님은 지옥을 하늘나라로 바꾸기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하시는데,
나는 오히려 죄악으로 지옥에 떨어질까 겁만 내면서도
그 지옥을 바꾸어 하늘나라로 되게 할 수 있는가?
저 부처님은 한량없는 세계(지옥에서 하늘에 이르는 삼천대천세계)를
눈앞에 놓인 둣 보시는데, 우리는 당장 담 바깥일도 모르면서
어떻게 시방세계를 본단 말인가.
그러므로 사람마다 성품은 비록 부처이지만 실지 행동은 중생인 것이다.
그 이치와 현실을 말한다면 하늘과 땅 사이처럼 아득한 것이다.
규봉 선사가 말하기를
'가령 단박 깨쳤다 할지라도 결국은 점차로 닦아가야 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옳은 말씀이다."
이와 같이 서산대사께서는 말씀하시어
조사의 깨달음의 경지가 분명히 부처의 깨달음의 경지와 다름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 불자들도 이제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마음과 부처와 성품자리를 말하지만
행동은 부처의 경지가 아닌 중생인 사람의 깨달음에 대해서 말입니다.
깨달음을 위와 같이 부처와 조사의 경지로 나누었을 때는
'돈점' 논쟁이 있을 수가 없으며,
왜 누구는 인가를 해주고 누구는 인가를 해 주지 않는가도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도송을 읊은 뒤에 왜 누구는 막행막식을 하고,
왜 누구는 더욱 참선수행에 몰두를 하였는지도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방세계(중생이 윤회하는 6도의 세계)를 눈앞에 보기는커녕,
당장 담 바깥일도 모르면서
'마치 부처와 같은 깨달음 운운하는 요즘의 스님 네들께
다음과 같은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에 나오는 말을 덧붙이고 싶군요.
"아, 불자여,
그대의 한 그릇 밥과 한 벌 옷이 곧 농부들의 피로 된 것이요,
베 짜는 이들의 땀이거늘,
도(道)의 눈이 밝지 못하고서 어떻게 받을 것인가?
'전등록'에 써 있기를
'옛날 어떤 스님은 도의 눈이 밝지 못한 탓으로
죽어서 버섯이 되어 시주의 은혜를 갚았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털을 쓰고 뿔을 이고 있는 것이 무엇인줄 아는가?
그것은 오늘날 신도들이 주는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서
거저 먹는 그런 부류들의 미래상이다.(즉 죽어서 소가 된다는 뜻)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배고프지 않아도 먹고
춥지 않아도 더 입으니 무슨 심사일까?
참으로 딱한 일이다.
눈앞의 쾌락이 후생에 괴로움인줄을 도무지 생각치 않는구나."
* 지금부터 약 400여 년 전의 서산대사의 말씀이었습니다.
출처 :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