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오로지 돈일 때 비극은 알을 품는다. 프로야구 스타플레이어 출신 이호성이 지난주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을 저지른 걸 보면서 또 한번 그런 생각에 확신을 갖는다. 추구하는 것이 돈일 때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다. 다른 걸 보지 못하고 오로지 돈만 보고 앞으로 나갈 때 가치관의 혼란이 야기되며 그 결말이 순탄치 못하다는 거다.
프로스포츠에 운동능력·경기력·승부근성보다 더 기본적으로 필요한 건 인성(人性)이다. 지식이다. 그게 있어야 품위라는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 그 품위는 사회로부터 존경을 가져다주고 그 존경이 다시 프로스포츠의 품위와 가치를 높여준다. 해리 왕자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영국 왕실만의 이슈가 아니다. 경제적 상류층이 사회적 상류층으로 인정받기 위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할 이슈다. 외제차 트렁크에 야구 방망이 넣고 다니며 술에 취해 그걸 휘두른다면 제아무리 돈이 많아도 존경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 테니 말이다.
그런 비극을 저지른 이호성은 ‘비극의 세대’다. 그를 감싸주거나 애틋하게 여기는 듯한 의미를 준다면 그럴 의도는 전혀 없다. 1년 전, 지난해 3월 26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전직 야구선수 박동희가 떠올라서다. 둘은 86학번 동기였고, 야구를 무지 잘했다. 박동희는 영남(부산고), 이호성은 호남(광주일고)에서 그 세대를 대표하는 야구 아이콘이었다. 그래서 프로에 진출해서도 롯데(박동희)와 해태(이호성)를 챔피언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야구를 잘한 것만으로 둘의 인생이 해피 엔딩이 되지는 못했다.
그들의 인생은 비극이었다. 사업을 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보겠다던 박동희는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사업 실패로 빚에 쪼들린 이호성은 참혹한 사건을 저지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들 인생이 비극으로 끝난 데는 그들이 앞서 말한 인성·지식·품위 등의 가치를 추구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 됐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가치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기보다 그런 기회를 원천 봉쇄당했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비극의 세대다. 그들은 그런 가치를 기본적으로 얻었어야 할 ‘학교’에서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왜?
운동만 하길 강요받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건 남보다 빨리 뛰거나 멀리 던지기, 오래 참기 등 남을 이기는 방법뿐이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우리나라 프로스포츠가 PGA 투어(존 댈리 말고 최경주를 떠올려주시길), 메이저리그(배리 본즈 말고 칼 립켄!) 정도의 품위를 갖추려면 그 노력은 리그 자체의 인성교육이나 선수협회 차원에서의 프로그램이 시작일 수 있다.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리그에서 그 품위를 높이기 위한 소양교육을 하거나 선수협회에서 은퇴 이후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우리의 학교스포츠다. 학교스포츠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정상적인 교육 기회를 조성해주지 않는다면(이 말은 다시 한번 읽을 만큼 중요하고 주체가 누구인지 자세히 봐야 한다), 기형적인 프로스포츠는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겁나고 섬뜩한 말이지만 비극의 세대는 계속 태어날 것이다.
이태일 네이버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