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내한 공연 후기
(서울시향 명협주곡시리즈Ⅱ, 2011년 6월 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1.
작년 2월에 내한했던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1년 4개월 만에 다시 내한했다. 이번에 그가 꺼내든 곡은 브람스의 바이올린협주곡! ‘바흐’ 앨범에서 그가 보여준 색채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어떻게 나타날지, 이미 발매된 녹음이 실황에서는 어떻게 표현될지 작년 내한 공연을 접하지 못했던 터라 기대감은 더욱 컸다.
2.
함박눈 내리던 겨울 어느 날, 산 정상에서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었던 적이 있다. 무심코 꺼내 들었던 곡이 눈바람 맞으며 서있는 푸른 소나무 한그루와 어찌나 잘 어울리던지 해질녘까지 세 번 정도를 반복해서 듣다 내려왔다. 내게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이미지는 끊임없는 열정을 갖고 있으나 끝내 사랑에는 이를 수 없는, 지네트 느뵈가 말한 ‘눈부시게 빛나는 고독’ 그 자체였을 지도 모르겠다.
3.
실황 연주로 들었던 테츨라프의 연주는 이 같은 이미지를 바꾸기에 충분했다. 사랑을 표현하는 약간 어두운 그의 바이올린 색채는 ‘눈부시게 빛나는 고독’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봄을 맞이하기 시작하는, 그러나 (‘그라이너’ 본연의 음색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은 겨울이 공존하는 ‘3월의 태양’을 떠올리게 했다. 열정적이면서도 다소 소박한 그의 연주 스타일은 ‘벚꽃’이라기보다는 ‘동백’에 가까웠다.
차분할 줄 알았던 예감과는 달리 1악장부터 약간 거친 듯 느껴지는 보잉과 속도감 있는 연주에 놀랐다. 보스턴 글로브의 리뷰대로 ‘폭발적’이라고 할까? 특히, 3악장의 경우 생각보다도 굉장히 열정적이었다. 덕분에(?) 휴 울프와 호흡이 약간 어긋나기도 했지만, 이는 그의 열정을 잘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오히려 ‘실황의 묘미’라는 점에서 보면 ‘흠’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램 북에 실린 인터뷰 기사에서 그는 자신의 색채 보다는 곡 자체의 색채를 충실히 드러내겠다는 연주자로서의 가치관을 언급했다. 곡 자체에 충실하겠다는 그의 ‘소박한(?)’ 가치관은 이번 연주에서도 비교적 잘 드러났다. 필자도 그의 가치관에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렇지만, 어떤 연주든 연주자의 색채는 들어있기 마련이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보여준 그의 바이올린은 ‘3월의 태양을 맞으며 피어나는 동백’의 이미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3번 ‘라르고’는 한껏 열정을 불사르다가 이내 툭하고 떨어져 버리는 ‘동백’의 이미지 그 자체가 아닐까.
4.
올해 BBC PROM 콘서트에서 테츨라프는 총 3회 공연에 참여한다. 8월 7일에는 에드워드 가디너가 이끄는 BBC심포니와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하고, 9월 5일에는 라르스 포그트와 바르톡 &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협연한다. 9월 7일에는 데이비드 로버트슨이 이끄는 BBC심포니와 헤리슨 버트위슬(Harrison Birtwistle)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영국 초연한다. 바로크·고전·낭만은 물론 현대 음악까지 두루 섭렵한 그의 레퍼토리, 여름밤을 지새우게 할 그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 2011년 6월 마지막날,
Florestan -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
깔끔하고도 입체감있는 공연후기입니다! 특히 김선우시인의 멋진 시는 화룡정점입니다!!
부족한 글. 좋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