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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2월 24일 자라나는 부산 샤론교회 성도들.hwp
자라나는 부산 샤론교회 성도들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와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3·1 혁명(三一革命) 또는 기미년에 일어났다 하여 기미독립운동(己未獨立運動)이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인산일(=황제의 장례식)인 1919년 3월 1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대표 33인으로 부르며, 그밖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대표 48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 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 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 한편 뉴라이트 신복룡 교수나 일본의 야마기 겐타로는 약 50만 명 정도가 3·1 운동에 참여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3·1 운동은 현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 3·1 운동을 계기로 다음 달인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한편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총독부는 민족분열책인 일명 문화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되었다.
3.1 운동, 독립만세 시위는 3월 2일부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서울의 여러 지역을 비롯하여 조선 8도 전지역에서 조직적으로 또는 자발적으로 벌어졌다. 민족대표들은 비폭력ㆍ일원화ㆍ대중화의 3대원칙을 제시했고, 시위군중은 이에 따랐다. 비폭력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진행되었다.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3개월 동안 전개된 시위 상황을(박은식의 <한국통사>)보면 다음과 같다.
집회 총인원 2,023,098명, 사망자 7,509명, 부상자 15,961명, 피검자 46,948명, 불탄 교회당 47동, 불탄 학교 2동, 불탄 민가 715호 등이다. 일제는 이보다 훨씬 축소하여 통계를 조작하였다.
- 신앙 선배들의 수고와 선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이 나라를 사랑으로 가꾸어 가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