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호텔 출발
지중해와 마주서서, 우리를 꿈꾸듯 품어주었던 이 호텔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약간의 비가 내린 아침, 아프리카 건조한 사막의 나라 이집트에서 비를 보는 것은 황홀하다고 모두들 아이처럼 들뜬 마음이다. 여기는 아프리카지만 유럽문화다. 거리도, 건물도, 차량들도 세련된 편이다. 햇살이 나오고 비는 다시 그친다. 화사한 아침이 열린다. 오늘 일정은 몬타자 로얄가든, 폼페이 기둥, 도서관, 콰이트베이 요새, 파로스 등대, 중식 그리고 공항으로 간다. 먼저 몬타자 로얄가든에 간다. 로만극장 대신 바꾼 일정이다.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는 지중해의 진주로 일컫는다. 이집트 제2의 도시이며 중동에서 여름이 가장 멋진 곳이다. 삼각주 지대 북서쪽의 지중해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의 분위기는 중동보다는 지중해 쪽에 좀 더 가깝다. 카이로에서 225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이곳을 둘러싼 환경과 문화유산은 국내의 다른 지역과 거리가 있다. 알렉산드리아라는 이름은 기원 전 331년 원정 중 라코티스라는 작은 마을에 이 도시의 건설을 명령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즉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다. 후에 이곳은 그리스 로마시대 이집트의 수도이자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리아 건설 이후 이 도시는 수십 세기 동안 전 세계에 방사형으로 퍼져 있던 문화의 집배지로 군림했으며, 문화의 횃불로서 이 도시의 위상은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전설의 파로스 등대로 형상화되었다. 대왕 사후 이집트는 프톨레미우스 왕조가 다스리게 되는데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았다. BC 4세기, 어떤 한 남자에 의해 세계는 크게 바뀌었다. 그 남자의 이름은 알렉산드로스 3세다. 흔히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고도 불리는 이 남자는 마케도니아의 왕으로 광대한 대제국을 건설하고, 헬레니즘 문명을 일으켰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BC 356년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소년시절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교육받은 그는 철학과 의학, 과학적 탐구에 강한 흥미를 가졌다. BC 336년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암살된 뒤 그리스에서 발생한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참전하면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BC 334년에는 페르시아 원정을 위해 소아시아로 건너갔으며, BC 331년에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대를 크게 물리치고 왕도 페르세폴리스에 입성했다. 그 후 동방 원정군을 재편성해 파르티아, 소그디아나, 인도 북서부 펀자브 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하여 광대한 세계 제국을 건설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원정한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는데, 그로 인해 각지에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가 건설되었다. 당시 알렉산드로스라는 같은 이름의 도시가 서른 곳 이상 존재했으며, 그 중에 가장 번영을 누렸고,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이집트 나일 강 유역에 위치한 알렉산드리아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던 중 병에 걸려, BC 323년 33세의 짧은 일기로 찬란한 생을 마감했다.
오늘 우리는 알렉산더 대왕의 족적이 서린 그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여행하는 것이다. 교과서에서나 만났던 위대한 인물의 역사적 유적을 찾아온 것이다. 지난해 가을에 발칸반도 여행에서 그의 고향인 마케도니아에 갔을 때도 알렉산더 대왕에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다. 클레오파트라와 마크 안토니의 열렬한 사랑의 무대이기도 했던 알렉산드리아는 고대 세계 지식의 중심지였으나 결국 쇠락의 길을 피하지 못했다. 이집트 북부 도시 알렉산드리아, 가슴 뭉클해지는,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될 소중한 여행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