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왔다.
허락도 없이,
늘 그랬다.
그렇게 여름을 밀어 내고 9월이 왔다.
그런데 이상하다.
추풍령이 생각난다.
뜬금없이 9월이 옆구리를 질러대면서 추풍령을 생각하라고 한다.
추풍령!
작은 간이역이 있고, 이따금 급행열차가 지나가던 곳,
누군가 구름도 쉬어간다고 했던가?
그때는 신작로 길이어서 차가 지나가면 한동안 뿌옇게 먼지가 일었다.
가난하고 가나하던 유년 시절, 거기서 2년을 보냈다. 추풍령초등학교를 다녔다.
아버님은 학교 앞, 문방구점을 하셨다. 앞에 서로 경쟁하는 가게가 있어서 과자도 하나씩 집어 주던 생각이 난다.
그런데 더 울컥 올라오는 그림은 엄마다. 이제 하늘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어머니라고 하면 어색하다. 엄마가 좋다.
어떤 아이가 쓴 동시가 늘 떠오른다.
제목은 엄마,
나는 엄마가 조오타.
왜냐면?
... ...
그냥 조오타.
좋은 이유가 있어서 좋은 건 정말 좋은 게 아니다. 그냥 좋아야지, 무슨 조건이 있어서 좋은 것은 언제 싫어 질런 지 모른다. 엄마는 그냥 좋다. 나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이때쯤일 거다.
낮에 복숭아를 먹었다. 설익었던가 보다. 배가 쑤알 거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너무무서워 집에 들어가면 일단 입을 닫고 살았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입을 닫았다. 밤
새 화장실을 드나들었다. 잠결에 엄마는 눈치를 채셨다. 탈수 증세를 보인 나를 엎고 추풍령 들판을 뛰셨다. 그때가 초등학교 4학년,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5리는 됨직한 둑길을 뛰셨다. 다 큰 아들을 엎고 뛰셔도 군소리 한마디 없으셨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다. 아버님은 똘똘치 못한 아들을 못마땅해 하셨다. 당신만큼 총명하지 못함에 대해서 구박을 자주 하셨다. 할 수 없다. 외아들이니까 입을 다물고 저녁을 먹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대항하는 길은 이 것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새벽녘이다. 도대체 배가 고파서 잠이 깨었다. 견딜 수 없는 허기가 새벽처럼 밀려온다. 그렇다고 자존심 때문에 부엌에 가서 무얼 뒤져 먹기도 그렇다. 그런데 엄마는 또 눈치를 채셨다. 부엌에 가시는 엄마를 이불 틈으로 바라봤다, 보리쌀 섞인 쌀밥에 간장 치고 참기름 바르셨다. 깨소금을 뿌리시더니 밤톨만 하게 뭉치셨다. 드디어 이불 속으로 엄마 손이 들어왔다. 이불 속이니 못이기는 척하고 입을 벌렸다. 눈물이 났다. 엄마는 내 마음을 어떻게 읽으셨을까? 배고프다는 걸 어떻게 아셨을까? 입을 오물거릴 때마다 깨소금이 진동했다. 눈물이 찔끔했다.
그때 기적소리가 들렸다. 추풍령 고개를 넘어가는 기차가 헐떠덕 거리는 소리다.
아! 9월이 오면 왜 엄마가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왜 추풍령이 생각나고 기적소리가 옆구리를 질러대는지 모르겠다.
사랑하면 눈치가 생기는 모양이다.
요즈음 나도 아이들 눈치를 살핀다.
잘 지내고 있는지, 가끔 전화하면 꺼내는 말이 뻔하다.
‘밥 먹었니?’
9월의 바람이 슬슬 나를 문질러 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