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명을 '다비드'라 쓰는 목사의 궤변(7)
"신약성경엔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없습니다”
- 다비드-
'다비드'가 목사가 맞다면 생각을 좀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
만약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신약성경엔 없”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옳다면
밀 이삭뿐만이 아니라 사사건건 안식일에서의 예수님의 행위를 문제 삼는 바리세인들이나 그게 아님을 해명한 예수님이나 간에
모두가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에 참견하고 또 이를 해명하는 일에 적극적인 것 자체가 일반상식도 모르는 사람들이란 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어진다.
'다비드'는 예수님을 이렇게 주제넘은 분으로 저락시켜도 괜찮은 모양이다.
반복하거니와 다비드의 주장에서처럼
평소 예수님은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았으며, 또 이를 모를 리 없었던 유대인들이라면
평소 안식일을 구별하는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일에 참견하는 주제넘은 꼴불견이며, 또 이러한 참견에 대해
“본래 우린 안식일을 지키지도 않는데, 무슨 쓸데없는 참견이냐”며 한마디 응수하면 될 것을 도리어 그게 아니라는 것을 적극 해명하고 설명하는 예수님의 행위 또한 바리세인들이랑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얘기이다.
결국 다비드는 예수님을 바리세인들이랑 조금도 다르지 않는 주제넘은 분으로 저락시키고 말았다.
해서 다비드는 정신 좀 차려야 한다. 신약성경을 조금만 정신 차리고 읽어 보았더라면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이 신약성경엔 없”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창피해서도 입 밖으로 내어 놓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의 증언들을 좀 잘 살펴보시고 정신 차리시길 바랄 뿐이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바리세인들과 예수님과의 안식일 논쟁은
예수님 쪽이 안식일을 구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유대 쪽이 정해 놓은 안식일준수 방법에 따르지 않아서 생긴 마찰이었음을
알 수가 있는데, 그 확실한 증거는 유대의 준수 방법이 틀렸음을 조목조목 열거하는 예수님의 적극적인 설명과 반문(cf 마12:5; 12: 11-12; 막2:27; 3:4; 눅6:9; 13:5)에 대해 아무런 대꾸는커녕 “잠잠”(눅14:4)하다 못해 “부끄러워”(눅13:17) “대답지 못”(눅14:6)했을
만큼 자신들의 폐쇄적인 안식일 준수행위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한 결과에서 확인이 되고 있다.
- 김종성 -
첫댓글 “다비드‘가 목사가 아니길 빌어본다. 너무 어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다비드’란 사람처럼 앞과 뒤가 꽉 막혀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 대책이 없는 사람 같다는 얘기이다.
하긴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다비드’뿐만이 아니다. 평신도들이야 차차치하고 서라도 수많은 목사님들이
죄다 똑 같으다. 앞뒤 꽉 막힌 사람들이란 얘기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명색이 그리스도인이라 치고서라면 생활의 불가피한 패턴으로서의 “7일 일주일”제도에 매주(每週)마다
반응헤야 하기 때문이기에 이를 실행하고 있으면서도 이 제도의 생성과정(cf 창1:1-31; 2:1-3)이나
운행지침(cf 출20:8, 11; 신5:15) 등, 즉 이 제도를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굴 위해서, 왜,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예 살펴볼 생각조차도 않기 때문이다.
이를 좀 살펴 보든가 했드라면 챙피해서라도 “7일 제도”에다 일요일을 기준 하는 등의 몰상식한 짓은 하지도
않했을 거란 얘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명분으로 “7일 일주일”제도를 만드시고 그 기준으로
안식일을 제정하사 그 준수를 명하시었다.(cf 출20:8,11) 여기에다 예수님의 부활도 아니고 부활하신 당해
날자인 일요일을 대입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7일 일주일”제도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는 무식함의 극치일
뿐이다.
왜냐하면 주(主)의 부활은 그분의 탄생하심과 십자가에서의 희생하심과 마찬가지로의 의미인 “구속의
경륜”이기 때문이다. “7일 일주일”제도의 기준일에 걔입 할 하등의 요소라도 없다는 얘기이다(cf 출2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