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대산교회 임직 말씀>
1. 여러분들에게 주신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입니다.
여러분들이 오늘 받는 이 직분은 사람이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가지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흔들려서 직분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반드시 여러분들의 직분에 대한 정체성을 흔들 것입니다.
이 직분을 감당 못하게 말입니다.
1) 사탄은 예수님도 그의 정체성을 흔들었습니다.
사역 처음부터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것입니다.
▶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시험받으실 때에 사탄은 예수님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렇게 시험합니다 (마 4:4-6).
그리고 – 사십일 동안 주리신 예수님에게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 성전 꼭대기에 세워놓고
“뛰어 내려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이라는 말을 하여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정체성을 흔드는 시험의 형태는 다를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와 정말 하나님이 아들인지 시험하기 위하여 돌들을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은 하나님 말씀의 떡보다도 육적인 떡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구원이 없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들이 되었으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롬 8:6)
또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이 흔들려 시험하고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았겠지만, 그를 믿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슈퍼스타가 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신 것입니다.
▶ 또 공생애 기간 내내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임에 대하여 공격을 당했습니다.
“어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네 어머니도, 동생들도 있지 아니하냐?” (마 6:3) 그러면서 오히려 신성모독으로 고발하는 것입니다.
▶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 27:40)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 때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 오셨다면 우리들의 구원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정체성을 흔드는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지 않으신 것입니다.
에수님이시니까 그러시죠? 그렇습니까?
2)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도 사실은 정체성을 흔드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며, 아담과 하와는 피조물입니다. 그것을 구분한 유일한 것이 “선악과”입니다. 다 먹게 했는데 유일하게 먹지말라고 한 것입니다.
선악과는 하나님의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뱀, 사탄은 그에게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는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유혹하는 것입니다. (창 3:5)
피조물인 하와의 정체성을 흔든 것입니다. 피조물인 하와는 하나님과 같이 될 수 없습니다. 피조물의 지위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것을 벗어나고자 하니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 직분의 기름 부으심을 벗어나면 안됩니다.
고라의 일당이 모세와 아론을 대적한 것도 자기들의 기름 부으심을 넘어간 일입니다. 레위인으로서 제사장직을 구하는 자기들의 정체성을 넘어가고자 한 것입니다.
3) 사탄은 사도바울도 그의 사도직에 대하여 엄청나게 흔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예수님께서 직접 세우신 12 제자, 12사도가 아니라고 얼마나 공격을 했습니까?
사도바울의 변명을 보면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자기가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개척한 고린도교인들에게 이렇게 변명합니다 (18개월).
[고린도전서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그렇게 사도권을 흔들었지만 그의 서신서를 보면 1:1절에서 자기의 정체성을 분병히 밝히고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나 바울은” (고후 1:1, 골 1:1, 딤후 1:1, 디도서 1:1)
누구의 뜻으로 되었다고요?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뜻으로 된 것입니다.
<나와 다른 이들의 간증>
오늘 여기 장로로 임직을 받는 마장로님의 경우에도 이 교회에서 직분을 받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그의 간증을 통해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하나님께서 주신 목사의 직분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임을 가르쳐 주었는데, 교회가 위기가 처했을 때 저의 부족함이 느껴지면서 “하나님 나는 목사의 자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차라리 나가 돈을 벌겠습니다” 하고 흔들렸던 것입니다.
막상 나가보니 수치를 당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굶어 죽어도 하나님 안에서 죽자”
▶ 여러분들도 두 가지 방식으로 흔들 것입니다.
사탄은 부족하다고, “그래가지고 네가 장로야, 권사야? ”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또 하나는 잘한다 잘한다하여 교만하게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마치 하와와 같이 말입니다. 그러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기름부으심 밖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라일당이 갈라지는 땅속으로 다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높아지려고 하다가 오히려 땅속으로 들어가는 낮아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
부족하다고 흔들 때, “떠나가라“ ”이 직분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선포하십시오.
▶ ▶▶ 지금도 제가 목사의 “깜”이 돼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두 번째 여러분들이 기억할 것은
2. 여러분들이 이 직분을 받는 것은 깜이 되어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 직분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말로 “깜”이 되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받으시고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바울도 자기의 부족함을 고백하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들이겠습니까?
고전 15:8-10절을 보면, 자기를 만삭되지 못한 자와 같다고 했고, 사도라 칭함을 감당하지 못할 자라 하면서 그럼에도 지금의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전 15:8)
▶ 디모데전서, 디도서를 보면, 감독, 장로, 집사 직분에 대한 자격이 나오는데, 그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제가 걸림이 많습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읽어보세요, 과연 자격이 되어서 오늘 직분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가정의 아들의 예>
아들이 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그는 그 집의 아들의 옷을 입습니다. 아들이라고 부름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직 아들을 구실을 전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성장하기를 기다립니다. 이제 어느 정도 자라니 부모의 마음도 알고 부모의 일을 대신해주기도 합니다.
이와 같이 지금은 그 직분의 옷을 입혀도 여전히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직분의 옷에 맞도록 성장해야 가야 하는 것입니다.
▶ 계속 부족한 모습이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항상 연약하고 부족한 것을 깨닫고 신앙의 정진을 위하여 영적 승급을 위하여 애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 그렇지 않으면, 어린 양들이 나로 인하여 “실족”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많은 분들이 여러분들을 교회의 지도자, 앞선 자로 보고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하면서 다가올 텐데 그들에게 본이 안된다면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집사님이 세상 사람과 도덕적 수준, 영적 수준이 같다면 그들은 여러분들과 교회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게 만들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려고 할 것입니다.
나로 인해서서 영적으로 작은 자 하나가 실족한다면 성경은 “연자 맷돌을 목에 메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 18:6)
무서운 말씀입니다.
▶▶▶또 우리들이 계속 성장해야 할 이유는 그들이 우리를 보고 “닮는다”는 것입니다.
전도를 잘하는 사람이 전도를 하면 그 새신자는 전도의 일꾼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맨날 들로 산으로 다니는 사람이 전도하면 그 새신자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보고 그들이 따르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교회에 덕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께로부터도 칭찬을 받아야 하지만,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특히 외인들에게서 말입니다.
나로 인해서 교회공동체가 욕을 먹어서는 안되는 것 당연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주신 직분을 앞에 놓고 다시 언행심사를 살펴보아야 하고 삶을 다시 정돈해야 합니다.
이 직분 받기 전에는 가능한 삶이 지금은 아닌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승급할 수도록 점점 그 길이 좁아지고 문이 좁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길은 좁은 문, 좁은 길인 것입니다.
▶▶▶ 그리고 오늘 말씀과 같이
3. 그들을 먹이고 돌 볼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요 21:15)
내 양을 치라 (요 21:16) / 돌보다
내 양을 먹이라 (요 21:17)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을 앞두고 유언처럼 제자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먹일 수 있는 젖이 없는데 영적 양식이 없는데 어떻게 어린 양을, 양을 먹이갰습니까?
없다면 아직 함께 어린 자인 것입니다. 아가서 8장에 나오는 “작은 누이”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 8:8) 아가서에 술람미 여인처럼 영적 유방이 꼴 먹은 쌍태 어린 사슴 같아야 합니다(아 4:5), 열매송이 같아야 합니다, 포도송이 같아야 합니다(아 7:7-8), 망대와 같이 (아 8:10)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많이 마시라”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 5:1)
오늘 말씀을 잘 들으시고 마음에 새기어 평생토록 하나님께서 주신 이 영광스럽고 선한 일의 직분을 (딤전 3:1) 잘 감당하셔서, 칭찬을 받는 충성스러운 종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