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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11
마음이 청결한자
본문/마태5:8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토마스 주남 여사가 쓴 천국 지옥 간증문, “천국은 확실히 있습니다.”조용기 목사님이 번역한 이 책은 초 베스트 셀러로 각광 받았던 책이었습니다. 그 책에 보시면 5번이나 마음의 청결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갈 수 있는 곳,
주님은 내 기도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대답하셨습니다. “내 딸아 우리는 천국에 갔었노라. ”주님은 내 마음 속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금방 아셨습니다. ‘우리가 어떯게 거기에 갔을까?’ 그곳에 갈 수 있는 사람은 순종하고 마음이 청결한 자녀들 뿐이다.]
“다음에 예수님은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나는 그 강물이 얼마나 맑고 고요한지를 보았습니다. 그 강물은 내가 이제껏 본 중에 가장 순수한 수정처럼 빛났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기 원하고 주님과 함께 천국에 영원한 집을 갖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초청의 말씀을 되풀이하셨습니다. 오직 마음이 물처럼 청결하게 된 자만이 이곳에 올수 있다.”
“천국은 순종하는 사람들을 위해 예비되어 잇다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직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이 그곳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희고 정결하고 깨끗한 그곳에 있는 도로와 건물들은 흠 하나 없이 깨끗 했습니다.... 천국은 어느 곳이든지 해같이 밝았습니다. 주님은 내게 세상의 모든 바다와 온 당을 보여 주셨습니다. 흰 눈이 온 당을 엎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내 백성들을 나의 나라에 데려오기 전에 나는 그들을 정결케 해야 한다. 내 백성이 마음이 정결하지 않으면 나의 나라를 볼수 없다.’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때 나는 주님이 산상 수훈으로 주신 팔복 중의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5:8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말이 성경적입니까?
그러므로 첫째로 마음이 청결하다는 뜻은 무엇인가요?
마태4:17절에 근거할 때, 팔복은 회개하고 제자가 된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또 마가1:15절에 근거해서 생각해 보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과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모든 이들의 마음이 청결할까? 다 이런 수준일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합니다.
더글라스 헤어라는 학자는 마음이 청결에 대한 그의 해석을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청결은 카타로스는정한 세마포(마27:59)라는 용례에서처럼 정결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정금(계21:21)이라는 용례에서처럼 불순물이 섞이거나 합금된 것이 아닌 순전하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시24편에서 마음이 청결하다는 깨끗하다와 대구를 이루고 있으므로 혹자는 도덕적인 결점(손이 깨끗하다.)뿐만 아니라. 악한 의도(마음은 의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이라고 여겨진다)도 없는 순결한 자가 마음이 청결한 자라고 여기고 싶어질 것이다. 여기에는 마태5:28절의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와 여타의 악한 생각들(15:19절)까지 다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의미라면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문에 마음이 청결은 나누어지지 않은 순전한 마음을 뜻하는 것일 뿐 마음이 청결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청결하다는 말을 원어를 연구해 봅시다. 그 원어는 “카다로스”는 깨끗한, 순결한, 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거룩함이이나 순결함을 의미한다. 사람이나 사물의 제의적 육체적 혹은 도덕적 청결을 의미한다. 라고 씌어 있습니다.
카다로스의 신약성경에 씌여진 용법을 살펴보면 신약성경에 26회에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물리적 정결을 나타낼 때 사용했습니다.
둘째, 제의적 정결과 깨끗함을 나타낼 때,
셋째로, 도덕적 순결에 대하여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청결함은 마음의 청결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수 있었습니다.
한편 더글라스 해어라는 학자는 마음의 청결은 이 세상에 불가능하다고 해석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만물보다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이라고 했습니다.(렘17:9)
또한 사람의 마음에서 온갖 악이 기어 나온다고 말씀하였습니다. 마7:21-23절에 다음과 같이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인간의 마음이 청결해 질 수가 잇느냐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이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음의 청결이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순전한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들의 말처럼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합니까? 아닙니다. 마음의 청결은 이 땅에서도 가능합니다. 그 증거로
(1)예수님은 마음의 청결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3:25-28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마23:26절)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깨끗이”라는 단어는 마음이 청결한 자를 말할 때 사용한 단어와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마음(안)을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이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지 않앗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토록 심하게 정죄하지도 않으셧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마음의 청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셨음이 분명합니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마태23장은 지옥을 피할 수 없는 외식자들에게 한 경고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상태 즉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상태로는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들의 특징을 열거한 팔복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 무엇이 이상합니까? 그러므로 그것이 실제로 마음의 청결을 의미 함이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
(2)성경에 실제로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있습니다.
시편24:3-4절에 그 사실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마음이 청결함에 대한 말씀에 성경에 많습니다.
시73:1절 하나님이 참으로 이스라엘 중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나,
잠언22:11절에도 나옵니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딤후2:22절에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이처럼 성경에는 실제로 마음이 청결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런데도 이런 증거들은 무시하고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바른 것이 아닙니다.
(3)성경은 모든 신자들의 마음이 청결하다고 합니다.
앞에서 팔복은 회개하고(마4:17절) 복음을 믿은 사람들의 특징인데, 과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은 모든 이들 즉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청결할가요? 다 그렇고 그런 수준일까요? 의문이 생길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구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성경에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청결하다고 말하고 있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그런 구절이 본문 외에도 두 개나 더 있습니다.
먼저 행전15:9절입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 구절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라는 말씀이 실제로 청결한 마음을 뜻한다면 청결한 마음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이 되는 것입니다. 또 팔복처럼 이 구절도 구원받은 신자에 대해 말하고 있으므로, 팔복의 마음의 청결이 실제로 마음이 청결한 것을 뜻 한다고 증거가 됩니다. 여기에 부루스라는 학자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 이방인들을 받으시고, 그들이 복음을 믿자마자 자신의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들의 마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하셨다면]
어떤 학자는 (대럴 벅)
[하나님은 이방인의 마음을 깨끗하게 씻는 일을 행한다. 이 신적 씻음은 믿음을 배경으로 이루어진다.]
또 어떤 학자는 (에크하르트 슈나벨)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습니다.
[즉 이방인의 죄인의 부정함을 제거하고 죄를 사하고 정결함을 주셔서 이방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다.]
무엇보다도 이 구절의 배경은 베드로가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때 모든 이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마음의 깨끗함은 성령이 그들에게 임한 결과입니다. 즉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깨끗이 한 것을 죄 사함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딛1:15절입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깨끗한” 혹은 “더러운”이 실제로 마음이 깨끗하거나 더러운 것을 의미하면 청결한 마음이 가능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또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자가 모든 신자를 통칭하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을 묘사한 팔복의 청결이 실제로 마음의 청결을 의미한다는 증거가 될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구절의 의미를 추적해 보면
먼저,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의 깨끗한 자들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뜻하며 도덕적이고 내적인 마음의 청결을 의미함이 분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 구절이 부정하고 정한 음식들에 대한 규례가 페해졌으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음식들에 대한 규례가 페해졌으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 음식 즉 만물이 정결하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것이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깨끗한 자들”은 마음이 청결한 자들을 의미함이 분명한 말씀입니다.
딛1:15절의 해석을 존 스토트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내적이며 영적인 정결은 탁월한 것일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내적으로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개끗해 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따라서 바울은 여기서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 끗하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결혼과 음식이라는 창조주의 좋은 선물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그러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월리엄 마운스의 해석을 보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금욕적인 율법을 따름으로써 의식적 정결을 이룰수 잇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하지만 바울은 도덕적으로 부정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이 부정하기 때문에 의식적인 결정에 의해서도 하나님게 용날될수 없다고 확증한다.(도덕적으로 )부정한 모든 것이(의식적으로)부정하다, 그들의 진정한 문제는 의식이 아니라. 도덕에 있다.]
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이것 역시 그 앞에 잇는 “깨끗한자”가 마음이 청결한 것을 뜻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존 스토트는 이부분을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오직 저희 마음(그들이 믿는 것)과 양심(그들이 행할 수 있다고 느끼는 것)이 더러운 것이다.(15절하)
WBC주석에는(월리엄 마운스)이 부분은 각각 “부패한 마음”과 “화인 맞은 양심” 으로 이해했습니다.
어떤 학자의 주장도 팔펴 보시겠습니다.(두안 리드핀)
[외부적인 것은 그 어느 것이라도 내적으로 정결한 사람을 더럽힐 수 없다. 그러나 내적으로 불결한 자는 그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더럽히는 것이다. 거깃 교사들의 문제는 그들이 내적으로, 즉 마음과 양심이 더럽다는 사실에 있었다.... 그들의 내적인 불결로 말미암아 그들은 외적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딛1:10절) 모든 선한 일(딤후3:17)을 버린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도 역시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팔복의 마음이 청결한자를 실제로 마음이 청결한 자로 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것입니다.
(4)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처음에 더글라스 헤어라는 학자는 이 땅에서 마음의 청결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 말씀의 뜻은 마음의 청결을 말하고 있지 않다는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정말로 마음의 청결이 불가능 합니까? 그렇게 해석하는 자들이 많아도 주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장에서 예수님이 제7계명을 이렇게 해석해서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5:27-30절에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29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30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이처럼 행동으로 간음하는 자뿐 아니라. 눈(마음)으로 간음하는 자도 지옥에 던져집니다. 즉 마음이 청결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그렇게 해석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쓸데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다시 15장에서 장로의 유전을 따라 손만 씻고 마음은 씻지 않았던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리고 병행 구절에 보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에 생각으로 하는 음란과 간음과 음심이 들어 있습니다.
막7:21-22절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또한 예수님이 다시 한번 23장에서 대접의 겉만 씻고 속은 씻지 않는 바리새인들의 상태를 지적하면서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곳에도 마음에 가득한 방탕이 나타납니다.
마23:25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그렇다고 마음의 청결이 단지 음심에 대한 것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모든 악한 생각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음심이 대표적인 것이라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본문을 제외하더라도 마태복음에서만 세 번이나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뭐래도 마음의 청결하지 않은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청교도 신학자 토마스 왓슨은
[왜 청결이 마음속에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가?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그것이 바리새인의 청결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보다 낫지 않으면 안된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우리의 청결이 바리새인의 청결일 뿐이고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마5:20절)
옳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활적으로 중요한 마음의 청결을 불가능 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그것은 너무도 영혼들을 위태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목사님들은 마음의 청결은 필수 사항이 아니라 권면이다. 라고 가르치는 설교를 합니다.
이상 증명해 드린 바와 같이, 마음의 청결은 실제로 마음이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존 스토트의 견해를 보시면 다음과 같습니다.
[심령이라는 말이 예수님께서 뜻하셨던 종류의 가난함을 나타냈던 것처럼 마음이라는 말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청결함의 종류를 나타낸다는 것은 명백핟. 마음의 청결함이란 내적인 청결함 즉 도덕적-의식적에 반대가 되는-불결함으로부터 깨끗케 된 자들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리고 특히 이것에 대한 성경적인 훌륭한 전례가 시편에 있다. 누구든지 손이 깨끗하며 마음에 정결하지 않는 한 그는 여호와의 산에 오르거나 그의 거룩한 곳에 설수 없다는 것이 인정이 되었다.(시24:3-4절) ]
그렇습니다. “심령이”라는 말이 예수님이 말씀한 가난의 종류를 말해주듯이 “마음이”라는 말도 예수님이 말씀한 청결함의 종류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마음의 청결입니다.
또한 본문은 시24편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이렇게 기럭되어 있습니다.
시편24:3-6절에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본다는 표현과도 잘 조화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곳에 나오는 “여호와의 산”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그리고 “거룩한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여호와의 산은 시온산을 뜻하고 거룩한 곳은 시온산에 세워져 있었던 성전을 가리킵니다. 즉 마음이 청결하지 않은 자는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날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지 않으면 성전에 올라갈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자가 감히 천국에 들거갈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없지요,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이 청결한 자들만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한 상태에 기준을 맞춰 하향 조정한 잘못된 해석에 절대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누가 뭐래도 반드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야 하고 또 될 수 있다는 것을 굳게 믿으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반드시 들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약속은 어떤 뜻입니까?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약속을 하셨습니다.
마태5: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토마스 아켐퍼스는, [만약 네 마음이 정녕 깨끗하다면 천사들과 함께 기쁨 중에 하나님을 뵈올 수 있으리라.]
유명한 영성가인 스랜시스 프랜지팬 목사님의 사모님이 홀로 주님을 전심으로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모님의 간절한 소원은
“주여 주님을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사모님에게 주님은 그녀의 잘못된 부분들을 보여 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볼멘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이게 아니잖아요, 저는 주님을 보기 원해요 제가 아니고요.”
그러자 성령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가 있단다.”
맞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만 하나님을 볼 수가 있는 좋은 간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 약속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요? 이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얼굴을 뵙기 때문에 그분의 친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잠언22:11절에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는 세상 왕이 아니라. 영원한 임금의 친구가 됩니다. 엄청난 특권이지요, 다음 성구에도 암시되어 있듯이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방해합니다. 시편51편은 다윗이 범죄 하였을 때 회개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11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마음이 청결해 지면 그런 방해가 사라집니다. 그것은 욥기29:4절에서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내가 원기 왕성하던 날과 같이 지내기를 원하노라 그 때에는 하나님이 내 장막에 기름을 발라 주셨도다.
시편29:14절에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요한복음15:14절에도 주께서 친히 하신 말씀 속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과 깊은 만남과 교제 그리고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약속이 실제로 그런 의미라는 것을 우리는 시24편을 통해서 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이 시편에 나오는 “하나님은 산”은 시온 산을 말하고 “거룩한 곳”은 성전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약속된 것은 성전에 올라가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 영적으로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만남을 뜻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싱클레어 퍼거슨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 즉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기를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은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시므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다고 말씀 하십니다.(요1:18,골1:15,딤전1:17,히11:27)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볼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에서 하나님을 볼 것을 약간 새롭게 표현한 것일까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이 무슨뜻인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단서는 마음이 청결한 사람의 경험을 묘사하는 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찾아볼수 잇을 것입니다. 시편24:3-6절에서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여호와의 산에 오르고 그 거룩한 곳에 서는 특권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고 잇다는 것과 하나님 앞에 있음을 아는데서 누리는 특권과 즐거움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하나님을 본다는 말씀의 뜻을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세상 모든 것에서 하나님을 봅니다. 또 마음이 깨끗ㄹ한 사람들은 누구에게서 보다 자신 안에서 더 하나님을 봅니다. 즉 자신들의 영혼과 육체 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반 행사에 있어서 특히 하나님을 봅니다. 즉 큰 회중과 함게 그의 이름에 합당한 존귀를 드리며 거룩한 분위기에 싸여 예배드릴 때나, 은밀한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 앞에 그들의 마음을 쏟아 기도드릴 때나,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할 때나, 그리스도의 사신들의 구원의 복음의 선포를 들을 때나, 그리스도가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때가그의 죽음을 나타내는 떠과 잔을 받을 때 등, 모든 기회를 통해 그들은 형언키 어려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며,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대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만남이야 말로 그들이 장차 저 천상 세계서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볼 준비라 할 것입니다.]
시편24편에서 시편 저자는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가는 자들을 “하나님을 찾는 족속”과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특징이 “손이 깨끗할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다음 성경을 통해서 그 의미가 연결됩니다. 시22:3절에,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마태18: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히11:6절에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역대하15:1-2,8-15절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찬양 중에나 홀로 기도하는 중에, 심지어 일상생활에서도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심을 압니다. 정말 사모할 만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누리며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마음이 청결한 자들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됩니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는 해석이 첫 번째 해석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일가요? 그렇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이미와 아직의 차원에서 완전한 구원은 아직입니다. 팔복에 두 번째와 일곱 번째의 복에 대한 약속은 모두 미래시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는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 뿐 아니라. 마음이 청결한 자들이 받을 궁극적인 구원을 뜻합니다. 때문에 양용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제자들은 장차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볼 것이기 때문에 더욱 행복하다.]
이런 의미라면 다음 성경 말씀이 그 사실을 더 확연하게 뒷밭침 해주고 있습니다. 고전13:12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히12:14절에도 같은 맥락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요일3:2-3절에도 그 사실을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계시록에서도 다음과 같이 그것을 잘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계22:1-4절에,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이것이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약속의 온전한 성취라고 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들에게 주신 주님의 약속은 이 당에서 누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영원한 기업인 천국 두 자기를 다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는 매우 정확하고 완벽한 표현입니다. 이제 확실히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청결한 자만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물론입니다. 그런 자만이 이 당에서도 마음의 천국을 누리고(롬14:17절)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벧후3:13절) 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가 있습니다.(계22:1-4절)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교제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뿐 아니라. 천국에 가서 영원히 하나님의 뵙고 영생복락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는어떻게 하면 마음의 청결을 만들 수가 잇는가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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