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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관 입구에는 석오선생 大義 휘호 기념비와 대형 태극기를 뒤로 하고 있습니다.
흉상은 국회의사당 흉상을 참조해 제작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석오의 일대기를 통해 삶과 사상을 알 수 있는 연대별 활동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석 오 연 보
● 제1시기(1869~1899)
- 천안에서 탄생한 후 한문을 익히고 상경하여 응제진사에 합격한 뒤 독립협회에 참여했던 때
- 민권운동과 개화운동에 투신 한 뒤 제국신문의 논객을 역임하여 언론창달에 눈뜸
- 을사늑약으로 외교권박탈되자 상동교회에 들어가 기독교인으로서 조약폐기에 애를 태움
- 이후 북간도(용정)에가서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서숙을 설립운영, 귀국하여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섬
● 제2시기(1900~1918)
- 국권을 강점당한 전후 해외에 나가 독립투쟁을 전개한 시기
- 부민단, 권업회, 신흥무관학교를 설립 운영
- 대종교를 민족의 정통사상으로 받아들이고, 동포에게 민족적 긍지와 자존심을 체계적으로 견지
● 제3시기(1919~1940)
- 50대 ~70대까지의 20여년 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조직, 국내외를 효과적으로 다스려왔던 결산기
- 군주제 청산, 민주공화제를 처음실시하여 의회민주정치의제도적 장치와 그 실천을 진두 지휘했던 법통성의 첫주자
- 세 번의 의정원의장 등 입법부 수반을 역임
- 그 외 각부 총장(장관), 국무총리, 국무령, 대통령대리, 주석(1935.10~1940.10) 등 행정부수반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한 우익단체의 지도자
- 김구 등과 같이 독립투쟁과 한국독립당 등을 운영조직하면서 10여곳의 임정 수도를 여건에 맞게 이동함
- 이봉창, 윤봉길의사의 의거를 막후에서 商決한뒤 김구로 하여금 계획지도케함 →임시정부의 내정, 교통, 군사, 외교,
교육, 문화, 사법, 재정 정책을 적당히 조절 집행하며 내외동포에게 자신감과 용기, 신념을 불어넣어 줌
선생의 유품은 그동안 손자인 이석희씨가 보존해 왔으며, 유품은 친필 휘호 5점, 임시정부 문서 4점, 친필서신 7점,
초상화 4점, 자료사진 4점 등이 기증되었다고 합니다. 친필 휘호는 선생이 평소 조국 광복의 염원을 담아 즐겨 써왔던 ‘광명(光明)’, ‘대의(大義)’와 ‘산류천석(山溜穿石)’의 글귀가 써져 있습니다.
석오이동녕 기념관을 기념할수 있는 스템프와 사진촬영하기도 마련되어있었습니다.
천안 지역출신의 뛰어난 독립운동가 이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큰 획을 그었던 석오 이동녕 선생의 생애와
나라사랑의 마음, 그리고 올곧은 정신을 배우고 느낄수 있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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