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와 좌표를 구분하여 삶의 GPS를 삼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다.
목표(目標)라는 건 한 마디로, 달성하려고 하는 바람직한 미래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시간, 비용 및 인력을 쓴다. 목표는 살아가는 방향을 제시하고, 현재 행동의 정당성과 평가 기준을 제공한다. 보통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의 안을 표내(標內)라고 부른다. 유의어로 目的이 있다. (나무위키)
목표를 갖는 것은 내재적, 내면적 지향성을 띈다. 주체가 나다.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내재적으로 각오 또는 결심하는 목적성을 갖는 미래지향적 내면의 이루고자 하는 욕구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긴 여정의 종착점이기도 하다.
좌표(座標, coordinate) - 르네 데카르트가 처음으로 발명하고 발전시켰다. 발명하게 된 계기가 아주 재미있는데 파리가 천장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 그 파리의 위치를 나타내려다가 만들어 진 것이 바로 좌표의 발명이다. 평면좌표(2차원 직각좌표계)와 공간좌표(3차원 직각좌표계)가 있으며, 공간좌표는 이과용 과목인 기하와 벡터(또는 기하)에서 볼 수 있다. (나무위키)
좌표는 공간에서 특정 위치를 지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값을 말하다. 좌표는 외재적이다. 내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에 시공간에 자리학 기하학적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동차에 사용하는 GPS는 지구 대기권에 인공위성을 사용하여 내가 자리한 위치 즉, 위도 경도 상에 놓여있는 정확한 값을 네비게이션에 100만분의 1초 단위로 송수신한다. 현재 위치와 목적지의 정확한 좌표를 입력하면 빠른 시간 안에 경로를 탐색해주는 기능이다. 인간이 만든 학문 중 경제학이 좌표계를 무척 선호한다. 좌표를 통해 수학적 모델을 도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좌표는 찾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에 존재해 있던 정확한 한 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점이 부분이라면 인공위성의 GPS는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다. 부분과 전체가 만나 정확 길을 인도해주는 것이다.
목표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와 같다. 그래서 미래지향적이다. 정확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목적지의 정확한 좌표가 필요하다.
목표와 좌표를 인생에 적용시켜보자! 나는 지금 어느 자리, 어느 점에 있는가? 좌표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철학적인 질문과도 상통한다.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에 어느 시공간에 존재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내가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것이 인생의 좌표와 목표를 달성하는 길이다.
인간이 맹목적으로 하는 교육에는 좌표와 목표가 정확하지 않다. 모두의 목표는 교육과 시험을 통한 안정적인 계급장을 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계급장을 달고나면 그것으로 목표와 좌표는 사라진다. 그 이후로는 생각이라는 걸 포기하고 산다. 인간의 목적은 무엇일까?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대로 우리는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확장돤 표현형에 불과할까? 내가 삶의 주인이 아니라 조상들이 물려준 DNA가 내가 살아가는 목표일까? 나와 유전자가 40%나 같은 양파와 내가 다른 게 무엇일까? 양파나 나나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주는 똑같은 존재인데 말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이자, 감정이 있는 기계이다. 주어진 좌표와 유전자의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양파와는 다른 좌표와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고 찾아가는 고도의 기계이다. 그리고 감정도 있고 후회를 통해 성찰과 반성할 줄 아는 그런 기계이다. AI가 감정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기에너지에 의해 그 동력을 얻기 때문이다. 전기코드를 뽑아버리거나 전기를 생산해내는 또다른 에너지원이 없으면 끝이다. 인간은 창조주가 설계도에 위해 만든 기계가 아니다. 노자의 표현대로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의 산물이다. 스스로 그러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그러한 좌표와 목표를 끊임없 재설정하고 좀 더 나는 삶과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도덕적 산물이다.
인간 중에 제일 나쁜 새끼들이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쓰레기들이다. 인간의 생각은 관계에 의해 생겨난 우연한 결과물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게 된 것이다. 내가 네가 우리가 있기에 사고와 생각하는 능력 도덕성과 이타성이 강화되었다. 인간은 그 어떤 동물보다 협력할 줄 아는 동물이다. 하버드대 생물학과 마틴 노왁은 인간을 '초협력자'라 불렀다. 협력은 도덕성과 이타성이 배제되어서는 효율이 떨어진다.
이기적인 인간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더불어 목적지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목적지에 먼저 가기위해 주변의 협력자들을 조지고 때리고 협박하는 것이다. 내가 목적지에 가기 위해 너와 그들은 나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좌표와 목표가 나에게만 머물러 있기에 이기심은 더욱 강화된다. 이기적인 인간만 세상에 가득하면 인간은 멸종이다. 내가 밥을 굶건 고통을 받건 이기적인 개체들은 관심이 없다. 나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남은 그저 귀찮고 짜증나는 존재이다. 우리의 좌표와 목표를 거시적으로 확장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생각과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에 더더욱 절실하다.
이번주는 거의 매일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티벳부터 한반도 뜨거운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로 합쳐져 지속적으로 장마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구 한편에는 초고온과 가뭄 때문에 고통받도 있다. 400만 년 이후 가장 뜨거운 지구에 우리는 살고 있다. 나만 잘 먹고 잘 살 수 없는 것이 지구 시스템이다. 함께 노력하고 함께 고민해야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지구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 공동체로서 좌표와 목표를 재부팅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은 화석연료를 죄책감 없이 사용해 왔다. 무심코 나의 편리를 위해 사용한 화석연료가 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지구를 뜨겁게 만드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에서 420ppm으로 증가했다. 오늘날 인류는 연간 화산에서 자연방출되는 이산화탄소 100배를 대기에 내뿜는다. 과학자들에 의하면 지구의 한계 이산화탄소의 농도는 350ppm이라고 한다. 그러나 매년 이산화탄소의 증가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500ppm이 넘으면 지구에는 혐기성 박테리아을 제외하고는 더이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대멸종은 지구상 최상위포식자를 노린다.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대멸종(mass extinction)으로 인도할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
인류에게 주어진 도덕심과 이타심 그리고 자비심으로 이젠 덜 먹고 덜 쓰는 지혜를 모을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가 새로운 목표, 새로운 좌표가 설정되어야 할필요가 있을 때다. 인류의 공동 운명을 멧돼지와 원숭이에게 맡길 수는 없다. 정치는 국민의 집단지성으로 변화 유지시킬 수 있다. 공공선과 집단지성이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지구에 좀 더 남겨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