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이 바라다보이는 숙소에서의 시간들은 평온합니다. 화창하게 펼쳐지는 여름초입의 반짝이는 날씨들, 한참 물오르는 나무들이 펼쳐내는 초록의 지천풍경들, 동해의 모래해변과 수평선이 근사한 깊어보이는 바다풍경 등등 강원도 동쪽의 전형의 모습들이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대포항을 중심으로 바닷가 풍경의 스카이라인이 너무 바뀌어서 어제 깜짝 놀라긴 했습니다. 마치 밴쿠버의 바다풍경이 바라다 보이는 지역을 따라서 만들어진 고층 주거지의 스카이라인과 비슷해지는 것 같아 밴쿠버같은 아름다운 풍경만 보장되면 좋겠다 싶습니다.
하긴 백만평 이상의 고색창연 스탠리공원이 밴쿠버의 상징이기도 해서 속초 면적 상 그런 대형급 공원과 풍경은 가능할 수가 없겠지만 바닷가를 중심으로 정비되는 모습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태균이랑 스탠리공원에서 신나게 자전거탔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2000년 여름 때 일이니 벌써 23년이 흘렀네요. 스탠리공원이 그립네요.
어제 속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바닷가 스카이라인이 밴쿠버를 연상케하니 문득 2000년 여름 밴쿠버에서 있었던 우울증 엄마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이 때는 우리가 아직 대구에 있을 때고 태균이 침치료의 마지막 해였습니다. 대구에서 3년 살면서 일을 쉴 리가 없었던 저는 그해 여름 어린아이들을 위한 해외어학연수 캠프 인원 모집을 했고 무려 30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 저한테 영어배우고 있던 아이들도 모두 같이 가서 신나게 즐기다왔죠. 참가인원 중에 '귀동'이란 유치원급 아이가 있었는데 이름에서 풍기듯이 엄청 과잉사랑을 받는 외동아들이었죠. 이 아이는 너무 어려서 엄마가 같이 동반해서 가기로 했는데 그 엄마는 중1 조카까지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이 엄마는 영어공부에 목말라했고 영어향상을 위해 단독아파트가 아닌 홈스테이를 배정해 달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이 엄마가 배정된 홈스테이 집이 아프리카에서 이민온 흑인가정. 밴쿠버 도착 하루만에 홈스테이 집에서 야멸차게 짐을 싸가지고 도저히 못있겠다고 하니 하는 수없이 제가 머물러야 했던 아파트를 내 줄 수 밖에 없었는데요...
졸지에 갈 곳을 잃은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캠프가 진행되었던 어학원의 한국매니저 아파트를 점령하는 수 밖에... 원룸이었던 그 아파트에서 어찌나 불편하게 살았는지 당시 대학생이었던 시댁조카까지 데리고 갔기에 죽을 맛이었습니다.
암튼 수시로 요청하는 여러가지 주문들, 요구들에 불평까지... 사실 정신적으로 피곤한 사람이긴 했습니다. 한번은 밤늦게 연락이 왔는데 조카가 사라졌다는 것이였습니다. 난리가 났죠. 저는 911에 우선 신고부터 했습니다. 아이의 연령을 듣더니 그건 가출이다 거의 단정을 하는데 암튼 같이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온 거리를 다 뒤지고 가 볼 수 있는 곳은 다 가보았는데... 결국 새벽에 아이를 찾긴 찾았는데...
놀랍지만 그 아이는 이모랑 살고있는 아파트 비상계단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성인인 저도 견디기 어려웠던 그녀의 변덕스럽고 요구많고 불평많고 잔소리많은 스타일을 어린 조카가 얼마나 견디기 어려웠을까요?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아이는 홈스테이집으로 다시 배정받고 그녀와 떨어진 생활에 너무 즐거워하며 마무리되어서 보는 저도 흐뭇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녀의 잦은 면담요청도 없어졌습니다.
어제 그래서 귀동이엄마를 많이 생각했습니다. 귀동이는 벌써 30살이 다 되었을텐데요, 엄마바램대로 영재의 길을 걷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교육이라는 분야에 오래 있다보니 일반아이들 중에서 엄마가 좀 이상하다 싶으면 기피하는 부류와 엄마핑계대고 그냥 망가져 버리는 부류로 나뉘어지더라고요. 기피하는 부류 중에는 의외로 독립적으로 잘 해나가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몇 년된 사건이지만 1등에의 강박에 너무나 강한 우울증엄마의 매질과 굶김에 견디다못해 엄마를 살해하고 몇년간 엄마의 시신과 동거했던 우등생 아이의 스토리는 많은 걸 남깁니다. 솔직히 저는 형편이 된다면 이 아이를 데려다 기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사랑만 주어도 너무 잘 자랄 아이인데 그 쉬운 사랑주기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주는 일만큼 쉬운 게 어디있을까요? 그 쉬운 작업을 자기중심적 사랑법으로 왜곡시키는 것이 우울증입니다.
요즘 자살소동을 벌인 신창원이란 범죄자에게도 저는 많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나은 환경에서 자라고 교육받았다면 서울대 정도는 가뿐히 들어갔을 바탕 소유자입니다. 'Catch me if you can' 실화영화에서처럼 사회적 구제제도가 없다면 운나쁜 머리좋은 아이들이 범죄자의 길로 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야기가 딴 데로 흘러갔네요. 제가 오래 생각하고 한번 책으로 엮어보았으면 하는 주제가 우울증이었고 특히 다른 민족보다 우울증 유전자가 강하다고 보이는 한국인의 특성상 이 지역의 원인을 한번 규명해보고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내 안에서라도 타인을 힘들게하는 우울증 증세들이 있다면 얼른 깨닫고 버리고 싶습니다.
첫댓글 어머 신창원이 자살 소동요? 뉴스에 어두운 저는 금시초문이네요.
대표님은 참 열정적으로 성실하게 사셨네요. 정말 아무나 흉내 못 냅니다. 어린 시절 태균씨 참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