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봤을 때, 이런 생각은 내가 소설을 대하는 근본적인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남들과 어떻게 다른 건지는 잘 모르겠다.
설령 나에게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어서, 그게 [폭우] 에서 꽤 성공적으로 발휘되었다 하더라도, 과연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없다. 더군다나 위해서 말한 대로, 폭우를 쓰는 과정 자체가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촛불 하나만 들고 걸어가는 것처럼, 순간순간 불이 꺼지지는 않을까, 다음 모퉁이를 돌아서면 길이 막혀버리거나 심지어 바닥없는 구멍이 나오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과 혼란의 연속이어서, 그것이 나만의 것이고, 올바른 작법이라 해도 반복하는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물론 내가 바라든 바라지 않든,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나는 어쩌면 그런 식으로밖에 쓸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숨이 나올 만한 결론이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다음번에는 초가 아니라 횃불이거나, 하다못해 충분한 양의 초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또한 내게 필요한 것은, 아주 단순한 생각이다. 죽,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폭우]를 쓰면서 배운 것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것뿐이다. 헤밍웨이처럼 "쓰는 것은 마치 영원과 마주하는 것과 같다"라는 식의 비장한 각오는 아니더라도, 작품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바로 앞이 칠흑 같은 어둠이더라도 멈추지 말고 어쨌든 써야 한다는 것. 그렇게 억지로라도 쓰다보면 언젠가는, 저 멀리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빛이 새어들어오는 입구가 보이기 시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