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서울시장공관을
나와 혜화동 재능교육쪽으로 몇 발짝 가다모면
왼쪽에
있는 대문 문패에 정해영이란 글자가 보입니다.
부산지역
석탄석유재벌로 유명했고 국회의원 7선을
지낸
전
국회부의장이 살던 집입니다.
대문안을
자세하 들여다보면 안쪽에 한옥이 한 채 있고
오른쪽에
2층
단독주택이 있습니다.
꽤
넓은 집인데 아마 후손들이 사나 봅니다.
오른쪽
성북동쪽으로 가다보면
쪽진 귀부인 같이 위엄있는 한옥 대문이 눈에 띕니다.
고려대학교
총장을 거쳐 제5공화국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김상협가입니다
.
김상협
전총리는 모택동 사상을 연구하고
고려대를
상징하는 <지성과
야성>이란
책을 써서 유명했던 분이지요.
한옥은
대지가 높아 축대를 쌓고 돌계단을 올라야 대문이 있습니다.
1930년대
지은 한옥이니 조선말기 한옥의 변천사를 연구하는데도
중요한
민속자료입니다.
이렇게
고즈넉하면서도 기품있는 한옥을 보러
이
동네를 방문하는 사람이 늘어간답니다
혜성교회를
거쳐 경신고등학교 담장을 끼고 걷습니다.
천주교외방선교회가
보입니다.
성북동이
천주교 시설로 덮혀간다고
걱정을
하는소리가 자주 들릴만큼 종교시설이 많습니다.
서울과학고등학교
후문 옆에 있는성북동 쉼터입니다.
이경환 회장님과
근처 편의점에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나눠드렸습니다.
벌써
박화서표 인절미가 쉼터 곳곳을 따라 한바퀴 도는 중이군요.
그런데 한양도성 성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돌의 모양에 따라
쌓은
시대가 다른 걸 알 수 있어요
처음
태조시대에는 들쑥날쑥한 모양의 자연석이나 흙을 빚어 쌓았고
세종대에는
아래는 직사각형 위에는 옥수수알 모양같이 다듬어 쌓았지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성이 무너지지 숙종은 45cm 정도
정사각형 돌로
보수를
했고, 순조
때에는 60cm정사각형
돌로 보수를 했으니
성을
지키기 위해 백성들의 애환도 끊이지를 않았을 테지요.
--
서울과학고와
서울국제고 뒷산을 지나 와룡공원 오르기 전
오른쪽으로
난 작은 암문이 있습니다
암문을 나서면 바로
북정마을이 시작됩니다.
도성
바로 옆이라서 재개발도 재건축도 피해갔기에 6,25 전쟁
이후
만들어진
판자촌 모양의 독특한 형태가 보존된 곳입니다.
요즘에는
지붕과 벽을 단장하고 예술인들이 많이
살면서
성북동의
또하나의 공동체 마을로 부상하고 있지요,
한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골목을 돌고 돌아 심우장에 닿았습니다.
심우란
인간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단계를 동자가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묘사한 심우도의 첫 번째 그림에서 따온 말이랍니다.
방문
위에 걸린 심우장 (尋牛莊)이란
편액은 오세창선생님이 쓰신 걸로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사실은 근처 사시던 서예가 유치웅 선셍님의 초서글씨랍니다.
만해선사는
3.1독립선언문
공약 삼장을 집필하며 독립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셨지요.
<조선불교유신론>을
간행하여 불교계를 혁신하시며
<님의
침묵>이라는
순우리말 시를 쓰신 민족시인이셨으니
마음놓고
자랑해도 될 큰어른입니다.
한사모에서도
심우장 (尋牛莊)을
그냥 갈 수 없지요.
지난번 걷기에 참석하셨던 이창조회원님이
(만해영감님 고집도 대단하시지. 그렇게까지 북쪽으로 돌아앉을게 뭐람)
하고 투덜거리듯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시던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했습니다.
만해선사님의
시 <님의
침묵>과
<일
수 없어요>>.
<복종>을
함께 낭송했습니다.
그
사이사이로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내려온 푸른 산빛이
단체사진을
찍는 우리 모습을 살짝 엿보고 올라가는 걸 눈치 채셨는지요?
오늘은
다른 날과는 다르게 일찍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햇볕
이글거리는 곳에서 계속 땀을 흫리며 걷기보다
일찍
저녁을 드신 후 음악감상을 하기로 했으니까요.
성북동
맛집 누룽지 백숙 2층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늘의
건배사는 <한사모,
한사모>
선창에
<복종,
복종>으로
화답합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만해의
시 <복종>를
음미할 때마다 저는 저절로 한사모에 복종하고 싶었습니다.
자유보다
달콤하고 그 무엇보다 행복한 순간순간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음식점은 주류 반입이 불가능하여
물처럼
차처럼 음료수병에 담은 곡차를 따로 준비하여
조금씩
입술을 적시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대신
리우식 백숙사장님이 수박을 후식으로 내놓으셔서
시원하게
식사 마무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3층
‘리홀’음악감상실로
올라갔습니다.
더운
초저녁 실내는 꼭 기분 좋을만큼 쾌적하게 서늘합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공관 스피커로 퍼지는 소리가
온몸으로
음악을 감상하게 합니다.
무대정면에
배치된 스피커를 중심으로
벽
양쪽에는 7만5턴여
장의 LP가
장르별로
분류되어 있어요.
최근
다녀가신 스웨덴 할머니가 항공편으로 보네주신
비틀즈
곡을 포함한 판이 619장이
있고
일본사람이
7년
동안 한국을 오가며 손수 가져온 판이 차지한
자리를
가리키시는 리사장님 얼굴이 약간 상기되어 있군요.
이런
맛에 돈들여 문화사업을 하시나 봅니다.
천정을
요철로 특수장치하여 흡음효과와 함께
머무는
누구에게나 가슴 뛰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큰뜻이 실감납니다.
1945년
진공관 스피커를 보유하고 있는 ‘리홀’은
신청곡에
따라 네 개의 스피커를 바꿔가며 음악에 맞는 소리를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