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욜2:12-14)
2021.12.12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오랫동안 지방에 살다가 어쩌다 서울같은 복잡한 도시를 가면 답답함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 그러다 다시 우리들이 사는 바닷가에 오면 얼마나 마음이 뻥 뚫리도록 시원한지 모른다. 우리 앞에 있는 아름다운 바다가 늘 우리를 반기면서 그 자리에 있듯이, 하나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정상적인 부모와 자녀는 평생 동안 서로를 그리워한다. 왜 이렇게 변함없이 서로를 그리워할까?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부모와 자녀는 피라는 생명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아주 긴급한 상황이 되면 자신도 모르게 거의 본능적으로 “하나님”, “주님”, “(하나님) 아버지”라는 소리가 나온다. 얼마 전에 우리교회 어떤 집사님이 중앙선을 넘어온 차량과 정면충돌한 사고를 만났다. 그런데 상대편 차량이 정면으로 달려오는 그 짧은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하나님) 아버지”라는 외마디였다고 한다. 아마 우리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버지”를 외치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생명을 보호해 주셨다고 확신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사람은 벼랑 끝에 섰을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찾게 될까? 역으로 왜 하나님은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나(우리)를 찾아내셨을까? 그 이유는 본래부터 사람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창1:27), 하나님의 숨결(루아흐, “생기”, 창2:7)을 부여 받은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이다(사43:1). 이것이 바로 우리들 모든 사람의 본래 모습(정체성, Identity)이다.
다만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창세기3장) 하나님의 품을 떠나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의 것이고, 잃은 양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못하면서, 마귀 사단의 끊임없는 미혹을 받으면서 온갖 죄와 삶의 고통에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모든 고통의 시작은 하나님이 안계시거나 하나님이 사람을 떠났기 때문이 아니고,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난 것에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있다면 왜?”, “왜 하나님은 보고만 계신가?”라고 말한다. 얼마나 삶이 고통스러우면 이렇게 말하겠는가? 충분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잊지 않고 변함없이 사랑하고 계셨다. 그래서 우리를 영원한 불 못으로부터 구출해주시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들(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셨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피는 단절되었던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다시 연결해준 생명의 끈이다. 성도들이란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과 다시 연결된 존재들이다.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수많은 이 땅의 방황하는 생명들을 기다리고 계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전에 TV방송 프로그램 중에 “TV는 사랑을 싣고”, “꼭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것들이 있었다. 만약 여러분이 그런 프로에 출연한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어린 시절 OO친구?, 동창생?, 선생님?, 아니면 현실 속에서는 불가능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가족? 실제로 작년(2020년) 초에 MBC에서 VR(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해서 희귀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린 딸과 엄마가 만나는 장면이 방송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던 일도 있었다(MBC “특집 VR휴먼다큐멘터리 - 너를 만났다”).
*** 특집 VR휴먼다큐멘터리 - 너를 만났다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IQk2ZaWh1Es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이지만, 만약 주님께서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면, 누구를 제일 만나고 싶어 하실까? 다 같이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면서 따라서 하자(복창).
“나!”
그렇다! 하나님은 다른 누구보다도 나를(우리들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만나고 싶어 하신다. 왜 그럴까? 우리들 모두는 본래부터가 ‘하나님의 것’이었고, 십자가의 피로 연결된 “피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입자에서 본다면, 여러분 한 분 한 분은 예외 없이 하나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해서도 안 되는, 독생자를 희생시켜서라도 반드시 찾아내야할 가장 소중한 주님의 딸이고, 아들이고, 하나님의 것이고, 잃은 양들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간절함 마음 때문에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마지막까지 먼저 믿은 성도들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강조하신 것이다(행1:8).
오늘 본문인 요엘 2장 12-14절 말씀에서도 사랑의 하나님은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극한 죄악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또 이 시간 우리들을 향해 주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올 것을 말씀하신다.
“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욜 2:12-14)
“너희는 이제라도”,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라는 글귀 속에서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고의 슬픔의 표현은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옷보다 마음을 찢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13절). 하나님은 입에 발린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진실한 회개를 원하신다. 오늘 본문 13-14절 말씀을 보면, 이처럼 마음을 찢으면서 하나님께 돌아오면,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복을 내려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이것이 이 시간 그래도 변함없이 우리들 모두를 사랑하고, 늘 함께 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이다.
우리들 애창하는 찬송가 중에 “나 주를 멀리 떠났다 이제 옵니다”라는 찬송이 있다(273장). 이 찬송이 지어진 배경에는 마음을 찢으며 눈물로 회개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가 있다. 이 찬송은 작사 작곡한 분은 미국의 유명한 교회음악 교수이자 지휘자였던 커크패트릭(W. J. Kirkpatrick, 1838-1921)이다. 이 분이 작곡한 곡이 우리 찬송가에도 여러 곡이 있다(찬송으로 보답을 수 없는(40장), 신랑 되신 예수께서(175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391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370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539장) 등).
1892년 커크패트릭이 펜실베니어의 로우린스빌(Rowlinsville)에서 열린 부흥캠프집회에서 찬양대를 지휘할 때였다. 그 집회에 우렁찬 목소리로 독창을 하는 청년가수 있었다. 그 청년은 신앙보다는 단지 경제적인 수입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커크패트릭은 그 청년을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 했다. 그런데 커크패트릭은 기도하는 중에 하늘의 찬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하며 주님 앞에 돌아오는 환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그는 즉시 그 자리에서 기도 중에 들었던 선율과 가사를 종이에 적었다. 그 곡이 바로 “나 주를 멀리 떠났다”라는 찬송이다. 커크패트릭은 이 곡을 청년에게 주고 그날 저녁 집회 때 부르게 했다. 그날 밤 특송 시간에 청년이 힘차게 이 찬송을 부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회개하면서 강대상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었다. 그때 찬송을 부르던 그 청년에게도 성령님께서 임재 하셨다. 그는 찬송의 3절에 접어들면서 부터 목이 메기 시작했다.
“(3절) 나 죄에 매여 고달파 이제 옵니다. 주 크신 사랑 받고자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4절) 이 병든 맘을 고치려 이제 옵니다. 큰 힘과 소망 바라고 주여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5절) 나 바랄 것이 무언가 우리 주 예수 날 위해 죽임 당하심 믿고 옵니다.“
나 이제 왔으니 내 집을 찾아 주여 나를 받으사 맞아 주소서.
그 청년은 찬송을 부르는 중에, 진짜 회개하고 돌아와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지막 5절을 부르기 전에 그 자리에서 통곡하며 무릎을 꿇었다. 그 날 밤 그의 찬송으로 인해 그곳은 은혜의 도가니가 되었다. 그 후 이 찬송은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찢게 하는 회개의 찬송이 되었다. 우리도 마음을 찢으며 주님 앞에 가면, 주님은 기꺼이 환영하며 받아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우리의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때로는 죽을 것처럼 힘들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고 두 팔 벌리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므로 최소한 어제 보다는 오늘, 오늘 보다는 내일, 매일 한 걸음씩 평생 동안 마음을 찢으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가자.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더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주님이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