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산 운흥사(最頂山 雲興寺) / 전통사찰
-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오리
832년 7월, 신라 흥덕왕 때 운수화상이 창건하여 동림사(桐林寺)라 하였다.
1620년(광해군 12)에 무념대사(無念大師)가 중창하고, 수암사(藪巖寺)라 하였다.
1751년(영조 27)에는 치화대사(致和大師)가 현재 자리에 중건하고, 운흥사라 하였다.
1760년(영조 36) 무렵에 간행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운흥사가 실려 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이곳에서 승병들과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1954년 윤조께서 큰 법당에 후불탱화를 봉안, 1969년에 영봉이 대웅전과 요사를 보수하였다.
(운흥사 안내문에서 내용을 가지고 옴)
몇 년 전에 이곳에 왔지만 운흥사 앞산에 큰 불이 나서 절에 들어갈 수 없었다.
산 중턱에 있어 절은 조용하며 전각은 눈을 어지럽게 하진 않는다. 다리를 건너기 전 왼편에 약수가 있다.
운흥사 사적비
종각
대웅전
대웅전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세 칸이다.
심검당
암반 위로 물이 흐른다.
심검당 뒤편이다. 심검당이 ㄱ자 건물이다.
삼성각
요사 겸 종무소
벚나무, 보호수이며 150년이 넘었다고.
운흥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상 / 보물
조성발원문에 1653년이란 정확한 조성시기, 봉안사찰, 조성주체, 제작자 등을 알 수 있고, 17세기 불상연구의 기준작.
대좌 아랫면에 벌목(伐木)부터 불상 제작까지의 모든 과정을 기록하였다. 그때 불상제작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다.
귀염성이 느껴지는 얼굴, 당당하고 장대한 신체비례, 변화가 거의 없는 강직한 선묘, 무릎 앞에 넓은 주걱모양의 주름을 중심으로 좌우로 밀도 높게 새긴 세밀한 주름 등은 조각승 도우(道祐)의 제작 특징이다.
도우는 17세기 중엽 대표적인 조각승으로, 무염(無染)의 조각전통을 계승하면서 자신만의 개성을 잘 살려 작품을 제작했다.
이 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지금까지 밝혀진 불상 가운데 도우가 수조각승으로 제작한 첫 작품이다.
낙가산(향산) 관음사 (洛迦山(香山)觀音寺) / 전통사찰
- 대구시 동구 도동
신라 문무왕 10(670) 의상대사가 창건하였고 전한다. 고려 광종 때 심지왕사가 중창하였다.
1933년 해인대사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관음사는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 역사를 가진 절이다.
(관음사 안내문에서 내용을 가지고 옴)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심지왕사는 신라 때 사람, 파계사 창건하신 분이고 동화사를 중창하신 분. '고려 광종 때 심지왕사~'는 오류다.
관음사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을 수도 있다. 사적기가 경내에 있지만 그 사적기를 읽지는 않았다. 근래 쓴 글일 것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한 대구 도동 측백나무숲이 이 절과 함께 있다.
측백나무숲을 거닐고 싶었지만 시간에 쫓겼다. 사찰여행에서 시간에 쫓기면 안 된다. 여유가 있어야 한다.
관음사는....... 안내문에 적힌 내용을 신뢰할 수는 없겠다. 흔적이라도 남았다면 모를까.
정문과 후문을 구분할 수 없지만 다리를 건너는 게 후문인 느낌이다. 정문으로 가야 주차할 곳이 있다.
무설전, 안에 들어가진 않았다. 이 전각은 근래 세운 것 같다.
절벽 아래 관음암이 있다.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을까?
관음전이니 당연히 관음보살이겠다. 무엇으로 만든지 모르겠지만 매우 투박하다. 석불에 금색 칠을 한 것 같다.
측백나무
주위 주택 담에 그려진 그림
신무동 마애불 좌상 / 대구시 유형문화재
- 대구시 동구 신무동
파계사에서 나와 동화사지구로 가는 길에 이정표(안내판)을 봤다. 오후 6시가 넘었다.
마애불이 있는 곳에 구룡사란 절이 있다.
감실 모양으로 얇게 파고 돋을새김한 석불 좌상이다. 안내문엔 어느 시기에 만든 것인지 설명이 없다.
바위 뒤
2024년 4월 25일
청도박물관..운흥사...국립대구박물관..관음사..파계사..신무동 미애불좌상..수태골 주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