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5.금.壬子일
편인 왕지, 정인 록지. 장성살
<집을 쫓는 모험>이란 건축 에세이가 신간으로 나왔다.
15년간 여섯 번 이사를 한 저자는 지금은 서울 서촌에 1층 8평, 2층 6평, 3층 8평짜리 협소주택을 지었다.
돌아보니 “집을 찾는 모험은 나를 찾아가는 모험”이었다고 고백한다.
나에게 집은 생존을 담보하는 숙제였다.
엄마가 싸준 이불가방 하나 들고 입성해, 아파트 방 한 칸에 세들어 살던 사촌동생에게 업혀서
서울살이를 시작한 것이 1992년.
지금은 사라진 700번 노선버스가 강서구의 논밭을 가로질러 여의도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승무원이었던 동생이 시집을 가면서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나는 다시 거리로 내몰렸다.
상도동 달동네 절집의 문간방에 깃들었다가 여성신도들의 겁박에 쫓겨나고
갈 데가 없어 사촌언니 집에 피신했다가 오래지 않아 언니의 시어머니가 당신 아들의 서재를 돌려 놓으라해서
다시 길 떠난 순이가 되기도 했다.
지하철도 뚫리기 전 버스 종점이던 방화동에서 종잣돈 백만원을 보증금 걸고 10만원 월세를 시작한 것이
나의 첫 집이자 마지막 월세살이였다.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한 칸 집을 반으로 나눠 두 가구를 들인 구조였는데
가벽 넘어 건넛방에서 티비 보며 식사하는 소리, 코고는 소리도 들리곤 했다.
부엌도 달랑 수도꼭지 하나 밖에 없고 여름엔 살인적인 더위에 시달려야했던 그 첫 번째 집에서
연애도 하고 일도 하며 질풍노도의 이십대를 보냈다.
이후 첫 전세는 천 만원짜리 옥탑방이었다. 겨울엔 수도와 보일러가 얼어 토치로 녹여했고
도둑도 왔다 가시고 불쾌하고 섬뜩한 사건도 벌어졌던 집.
이후 할머니와 장애인 아들이 사는 집 문간방에 들어가기도 하고
비탈진 지대 아래에 만든 반지하식 집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집 주인 노부부의 도움으로 30년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고
10년 동안 11평 임대아파트에 살며 남동생 결혼시켜 내보내고 엄마와도 영이별을 했다.
엄마와 지내던 집에서 살 수가 없어 낡은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했는데 4년 동안 추위로 고생한 기억도 난다.
오매불망하던 신축빌라를 거치고, 인성도 없는 년이 천재일우 시절인연을 만나 조그만 아파트 한 칸도 갖게 됐다.
정말 이불 보따리 하나로 출발한 서울살이 근 30년 동안
주변 모든 가족이 먹고살고도 내 집 마련까지 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그도 나의 분에 넘친 일이었는지 1년도 못살고 지금 나는 이 곳 영해의 원룸에 혼자 앉아있다.
돌아보면 꿈처럼 아득하다. 어떻게 그 시절을 건너왔는지... 알 수가 없다.
서울 생활에서 늘 절박한 것은 하늘 아래 내 몸 숨길 한 칸 집이었다.
그 허술하고 험하고 참담했던 집에서 여러 사랑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였고,
모든 사람이 지나간 후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집 하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나의 집이 내 재산임을 깨닫게 되었다.
집이 재화가 될 수 있다는 걸, 문득 알았다.
내가 가진 것으로 인해 나는 일말의 자유를 얻었다.
엄청난 반전이 시작됐다. 눈누난나!
첫댓글 집 없는 설움 온몸으로 겪으셨네요!
늦게라도 내집 마련의 꿈을 이루셨음을 축하드려요~^^
암요암요 무소유는 안됩니다
항상 넘쳐나는 이 소유욕때문에
아직도 아파트청약을 하나님.아버지.부처님 제~지 동원해서 넣고있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