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신앙의 아버지처럼 사는 아들로 살아봐요 = 요한복음5;19-29(191124)
PW : 믿음 BIW : 아버지처럼 살라 AG : 아들
TS : 믿음이란 아버지를 따라 신앙인의 가풍(家風)을 세워가는 것이다.
엄마! 그럼 나도 불량품이야?
한 사치스러운 가족이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빠 : 오늘 골프 치러 나갔다가 골찌했네. 역시 국산 골프채는 안돼. 불량품이야.
엄마 : 당신도 참... 국산은 못 쓴다고 수없이 말했잖아요. 전부 다 불량품이라니깐.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그럼 나도 불량품이야?”
생각해보니, 아빠, 엄마도 국산이니까 불량품이네요.
골프대회에서 골찌하는 것은 골프채가 국산이라서가 아니라 실력이 없어서입니다.
우리들 주변에는 생각 없이 허세만 부리는 이들이 아주 많습니다.
자신의 존재 값어치를 불량품으로 평가절하시키는 사람들입니다.
무조건 외국제품이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불량품이요 졸장부입니다.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존재라는 자긍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값어치를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존감을 세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애국, 애족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P4.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의미에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그러나 나쁜 의미에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다.
우리들은 좋은 의미에서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그 어머니에 그 딸이다.’라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전자전(父傳子傳), 모전녀전(母傳女傳)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가정이 있다면 신앙이 가풍이 제대로 세워진 가정이라 할 수 있다.
복잡다단하고 다양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중동지역에서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부전자전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중동지역뿐만 아니라 지구촌 어디서건 부전자전, 모전녀전의 모습으로 살아갔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으려고 하면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살았던 삶의 모습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들어가야만 가능하다.
적어도 성경은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중동지역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수님과 제자들과 성도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깨달으려고 하면 그 당시, 그 사회문화의 수준으로 내려가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 우리 한반도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그 당시에는 고조선이 망하고, 중국의 한나라는 BC 108-107년 고조선 옛 땅에 낙랑군, 진번군, 임둔군, 현도군이라는 한반도에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하고 관리를 직접 파견해 다스리던 시절이다.
부여, 옥저와 같은 부족연맹체들이 세워지고,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 가야연맹국들이 차례로 건국되면서 부족국가에서 초기 삼국시대가 열리던 시절이다.
그러니 그 당시의 삶이 어떠했을 것이라고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 시절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이해하다’라는 단어는 영어로 understand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밑으로 내려가서 서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의 처지와 상황을 이해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 당시에 살았던 군중들의 사회문화라는 범주 안으로 내려가지 않고, 오늘날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21세기 현대인의 눈으로 그들 세계를 바라보려고 하면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예수님 자신을 변론하고 있는 말씀을 묵상해야만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집단 공격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신분증을 제시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부자 관계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과 자기 자신은 부자 관계이기 때문에 자기는 아들로서 아버지가 하신 일을 자신도 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의 일을 한다라고 하실 때 어떤 일을 하신다는 말씀일까?
예수님도 하나님이라는 신성을 지니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 개인적인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일까?
D4.
① 하늘 아버지의 일을 하시고 계시는 아들이신 예수님.
아버지는 아들을 지극히 사랑해 주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아깝지 않고 다 내어줄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하늘에 올라가서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거절하지 않고 다 허락해 주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자식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이어서 그 가업을 이어가는 경우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는 아버지가 하는 일은 아버지 일이고, 아들은 아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 간다.
그러나 2000여 년 전에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그대로 이어받아서, 상속받아서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아들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서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들을 아들에게 전수시켜 주는 사람이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고 배워서 그 일을 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배우지 않으면 아버지의 일을 할 수 없다.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지 못하면 아버지의 일을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심판하여 살리는 일을 하신다면 아들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고, 아버지가 심판하여 죽이는 일을 하신다면 아들도 심판하여 죽이는 일을 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존경을 받는 것처럼 아들도 존경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다.
아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이고, 아들의 말을 듣는 것이 아버지의 말을 듣는 것과 같다.
아버지가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면 아들도 영생을 주신다.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역시 아들도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의 아들도 존경하지 않는다.
하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믿음으로 예배하며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늘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신뢰하고 믿음으로 예배하며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늘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신뢰한다고 하면서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아들이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존경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고, 배척한다면 역시 하늘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이요 존경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적어도 하늘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하늘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고 믿는 믿음으로 사람이 되는 것이다.
② 종말의 때에 심판하여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은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하늘 아버지와 예수님은 부자 관계이고, 하나이기 때문에 하늘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미 영생을 얻었다고 선포하신다.
아울러 심판에 이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이미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으로 옮겨졌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믿음으로 사는 이들에게는 심판하지 않지만, 믿음으로 살지 않는 불신자들에게는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심판이라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결하여 옳은 이들에게는 옳은 판결을 할 것이고, 옳지 않게 사는 이들에게는 불의의 판결을 하게 된다.
판결의 결과는 믿음으로 산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이라는 판결을 내릴 것이고, 믿음으로 살지 않고 불신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심판의 부활을 하여 영원한 지옥에서 영멸의 부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본주의와 세상의 법과 규칙을 따라서 인간적인 윤리 도덕에 맞추어서 심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신본주의와 하나님의 법칙과 규례를 따라서 믿음과 불신의 기준을 구별하여 심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심판의 주인으로 아들이신 예수님께 위임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구세주로, 메시야로, 주군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 영생의 심판을 하신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구세주로, 메시야로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의 권세를 가지라고 아무리 권면하고 타이르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설득해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고 대적하고 배척하는 이들에게는 영멸의 부활이라는 심판을 받아서 영원한 지옥, 영원한 영멸의 지옥으로 가야만 한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불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 1:17에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선언하신다.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믿는 믿음 하나면 된다.
다른 것들은 하나도 요구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믿음 하나로 의인이라고 칭해 주신다.
그야말로 슈바이쳐 박사나 테레사 수녀처럼 선행의 삶을 사는 것도,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뛰어난 철학도, 아인슈타인 박사나 에디슨 같은 발명가들이 온 세상을 뒤덮는 뛰어난 학문이나 사상도, 이건희 삼성그룹의 회장처럼 많은 재산도, 날아다니는 독수리도 떨어뜨린다고 하는 권력도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조건이 되지 못한다.
비록 우리들이 떵떵거리면서 사는 부자 영감의 집 대문에서 얻어먹으면서 사는 거지 나사로처럼, 동전 두 닢밖에 드릴 수 없는 가련한 과부처럼 산다고 해도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영원한 주님이라고, 구세주라고, 메시야라고 믿음으로 고백하면 그 믿음의 고백 하나가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아들이신 예수님은 영생이라는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신다.
L4 & B4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가는 사람이다.
아버지가 살았던 것처럼 아들이 살아가고, 그 아들이 아버지를 따라서 살고, 그 아들이 그 아버지를 따라 살면서 자연스럽게 가문의 가풍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영혼의 아버지, 하늘 아버지를 닮아가는 삶,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1000번제라고 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아주 쉽게 솔로몬 왕이 드린 1000번제를 생각한다.
그러면 솔로몬 왕이 어떻게 1000번제를 드릴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솔로몬 왕이 1000번제에 대하여 아무것도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는데 불현듯 갑자기 ‘여호와 하나님께 1000번제를 드려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가 1000번제를 드리는 모습을 솔로몬 왕이 보았거나 들었거나 하여 자기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1000번제를 드려야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솔로몬 왕의 아버지 다윗 왕에게 있다.
역대상 29:21-22에 보면 다윗 왕은 “이튿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또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니 수송아지가 천 마리요 숫양이 천 마리요 어린 양이 천 마리요 또 그 전제라.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풍성한 제물을 드리고, 이 날에 무리가 크게 기뻐하여 여호와 앞에서 먹으며 마셨더라. 무리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을 다시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 하고,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제사장이 되게 하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윗 왕은 아들 솔로몬 왕이 보는 앞에서 1000번제를 3번에 걸쳐서 드린 사람이다.
솔로몬 왕은 아버지 다윗 왕이 3번에 걸쳐서 1000번제를 드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에 ‘자신도 아버지처럼 1000번제를 드려야겠구나.’라는 마음을 먹고 1000번제를 드리는 것이다.
다윗 왕은 살아 계실 때에 수송아지로 1000번제를 드렸고, 숫양으로 1000번제를 드렸고, 어린양으로 1000번제를 드린 사람이다.
이미 아버지 다윗 왕이 3번에 걸쳐서 1000번제를 드리는 모습을 본 솔로몬 왕이 자신도 하나님 앞에서 1000번제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곧 아버지가 했던 일을 아들이 하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하늘 아버지께서 하는 일을 아들인 자신도 아버지가 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육신의 아버지 요셉을 따라서 목수의 일을 하면서 살았다.
고고고고고대사회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전자전의 원칙으로 사는 민족이다.
그 당시에는 도제제도(徒弟制度, Apprenticeship System)에 의해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을 손자와 아들이 하는 것이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는 일을 손녀와 딸이 배워서 그 일을 하면서 가정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부의 집에서 어부가 되는 것이고, 목수의 집에서 목수가 되는 것이고, 랍비의 집에서 랍비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가 하는 일을 아들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양하고 급변하는 현대사회는 아버지의 일을 아들이 배워서 그렇게 사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각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 달란트와 꿈과 비전을 따라서 다양한 직업꾼을 형성하여 살아가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가정에는 그 가정에 흐르는 정신적인 가계도가 있어서 그 가계도를 따라서 가정의 전통이나 규율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의 가정에서 신앙의 가계도가 제대로 흘러내려 가도록 하기 위해서 믿음의 본을 보이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은 가정예배를 생활화하는 것이 좋겠다.
가정예배를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한 주간에 한 번이라도 온 가족이 모여서 찬송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면서 가족간에 서로 서로의 아픔도 나누고 교제하면서 기도하는 영적인 흐름을 이어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과 기도의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흘러내릴 수 있는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자신의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후서 2:15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성경을 잘 배우고 잘 깨달아야만 올바르게 가르치고 전할 수 있다.
성경을 올바르게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게 되면 신령한 하늘나라에 대하여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여 지옥으로 들어가는 어리석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전수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께서 살으셨던 삶의 흔적을 가르치고 전하고 몸소 말씀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식들이 오직 성 삼위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릎 꿇고 기도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할 의무와 권리가 있다.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존중해 드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수많은 신앙의 사람들은 신앙의 부모님들이 계셨고, 그 신앙의 부모님의 영적인 유산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신앙의 가풍을 이어간 사람들이다.
신앙의 가정에서 신앙의 자녀들이 잘 자라서 신앙의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로 세워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가정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가정예배를 충실하게 드림으로서 나라와 민족의 일꾼으로,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졌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우리 하나님은 가정예배를 충실하게 드리는 가정을 반드시 들어 사용하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가정예배에서 말씀과 기도와 찬양을 먹고 자란 자녀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와 뜻을 회복하고, 나라와 국가와 교회의 충실한 일꾼으로 세워갈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의 하나님이 아니라 +의 하나님이심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결단코 패배의 하나님이 아니라 승리의 하나님. 역전의 명수이심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간곡하게 권하고 소망한다.
와우리교회 http://cafe.daum.net/GRACEOFJESUS
♥♥♥ 프레임 설교를 하시려는 분들에게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출판되어진 책이 아니라 제본된 책입니다.
① 프레임설교의 이론과 실제(1권, 2권)
② 청중마음열기 2권(유머편, 예화편)
③ 감(感)으로 읽는 성경 이야기
④ 은혜로운 물붓기
⑤ 성경의 여인들 이야기 3권(구약1권, 2권, 신약1권)
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010-5797-9094(한상원목사)로 연락 주시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