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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설맥
엘리의 자녀 교육
(가정의 미래는 자녀 교육에 달려 있다)
사무엘상 2:22-36
네 가지 교육 스타일
사회학자 르우벤 힐은 수 천 명을 대상으로 부모와 십대 자녀와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를 했습니다. 수평축은 훈계, 수직축은 사랑의 정도를 표시하였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가지는 4가지 자녀 교육 스타일에 대해서 발표했습니다. 네 가지 자녀 교육 스타일은 허용하는 부모, 태만한 부모, 권위주의적인 부모, 권위 있는 부모입니다.
첫째, 허용하는 부모는 자녀를 두려워하는 부모입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 수치는 높지만 훈계 수치는 낮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존감이 매우 낮습니다. 반면 이런 부모에게 교육 받은 자녀는 열등감이 큽니다.
둘째, 태만한 부모는 자녀를 돌보지 않는 부모입니다.
이 스타일은 자녀에게 사랑도 표현하지 않고 훈계도 일체 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방목, 아예 내다 버린 스타일입니다. 신앙적으로 자녀를 하나님께 맡겼다고 하면서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런 자녀는 부모에게 친밀감을 못 느끼고 버림받았다고 느낍니다.
셋째,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자녀와 싸우는 부모입니다.
권주의적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은 잘 표현하지는 않지만 훈계는 매우 엄격하다. 의사소통은 주로 말다툼으로 나타납니다. 자녀를 못살게 만듭니다. 자녀가 가출하지 않고는 못 견딜까지 자녀를 쥐어 짭니다. 이런 자녀는 부모에 대한 애정은 전혀 없고, 늘 반항심만 가득합니다.
넷째, 권위 있는 부모는 자녀와 교제하는 부모입니다.
권위 있는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과 훈계를 잘 조합합니다.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자녀에게 횡포를 부린다면, 권위있는 부모는 자녀에게 따뜻하면서도 엄격한 권위를 지닙니다. ‘하라’와 ‘하지 말라’의 분명한 선은 있지만 매우 따뜻합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교육 받은 자녀들은 자존감이 높고 부모를 본받고 싶은 마음이 가득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은 어떤 자녀들이 되기를 원합니까? 나는 어떤 부모 스타일입니까? 신앙적으로 권위 있는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을 말씀과 기도, 사랑으로 교육하면, 자녀들은 자존감이 높아지고, 부모를 존경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이 될 것입니다.
불량한 엘리의 두 아들
본문은 엘리 제사장의 자녀 교육과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엘리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홉니와 비느하스입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이었기 때문에 율법에 따라 두 아들도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은 불량자였습니다. 12절을 보면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두 아들의 악행은 무엇입니까? 제사 제도를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솥에 넣고 고기를 삶을 때에는 이 두 아들은 제사장의 종을 보내 갈고리로 맛있는 고기를 건져왔습니다. 이 고기를 먼저 하나님께 드린 다음에 먹을 수 있는 고기였습니다.
또 고기를 태우기 전에 제사장의 종은 와서 우리 제사장은 삶은 고기를 원하지 않고, 날 고기를 원한다 하면서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 먼저 가로채 먹는 악을 행했습니다.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악을 행했습니다. 여인들이라고 했으니 한 두 명도 아닙니다. 혼잡한 삶을 살았습니다.
자녀 교육에서 1차적인 책임자
왜 엘리의 두 아들은 이런 사람이 되었습니까? 왜 이들은 이렇게 행실이 나쁜 사람이 되었고,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를 짓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자녀 교육에서 있어서 1차적인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부모에게 있습니다. 에베소서 6:4절에서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왜 어미들아- 하지 않고, 아비들아-라고 합니까? 아버지는 한 가정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축복을 받았으니 축복을 전달하는 통로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신명기 32: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 이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역할과 책임이 큰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버지가 이 책임을 못하면 어미라도 해야 하고, 더 나아가 아버지가 한 가정의 축복의 대리자로서의 그 역할을 회복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엘리의 자녀 교육
엘리는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했습니까? 4가지 자녀 교육 스타일 중에서 살펴보면, 자녀를 두려워하는 허용적인 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만한 부모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름대로 자녀들을 훈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렇다고 엄격한 권위주의적인 부모도 아니고, 오히려 엘리의 두 아들 경우에는 권위주의적인 부모가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으로 양육하는 권위있는 부모도 아닙니다.
영향력을 상실한 엘리
22-23절을 보면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그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하면서 훈계합니다.
엘리는 두 아들에게 훈계를 했지만 때를 놓친 훈계였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이들은 아버지의 훈계에 귀를 막았고,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22절 앞 구절에 보면 ‘엘리가 매우 늙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늙었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힘이 없어졌다. 영향력이 상실 되었다. 시기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엘리는 두 아들의 악행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 듣노라”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반복해서 들려오는 악한 일에 대해서 그냥 듣기만 합니까? 영향력 있는 부모라면 사건의 내막을 알기 위해서 직접, 현장에도 가보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어야 하는데 엘리는 자녀 일에 무관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판을 작정하신 하나님
엘리의 훈계에 약발이 없었던 두 번째 이유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은 왜 이 두 아들을 죽이기로 작정했습니까? 엘리의 훈계 속에 알 수 있습니다. 자녀를 향한 엘리의 훈계의 영향력은 사라졌지만 그 훈계는 전적으로 옳습니다.
24-25절을 보면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더라”
이 두 아들의 악행은 자신들의 죄에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짓게 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주로 행한 악행은 성전에서 일어난 악입니다. 그래서 17절에는 “이 두 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4:3절을 보면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허물이라는 말은 개역 성경에는 ‘죄얼’이라고 했습니다. 죄얼이란 무엇입니까? 죄악에 대한 재앙, 죄의 씨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대리자인 제사장의 죄는 백성들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죄의 씨가 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의 죄를 사해주는 제사를 집행하는 직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엄격한 정결을 요구했습니다. 포도주를 금하고, 부정한 것을 접촉하지 말고, 성적으로 거룩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위치에 있는 엘리의 두 아들은 하나님이 정결 명령을 우습게 여기고, 성소에서 하나님의 제사를 우습게 여기며, 악을 행했던 것입니다. 윗물이 깨끗해야 아랫물도 깨끗합니다. 그런데 윗물이 죄로 더러워짐으로 백성들은 그 더러운 죄의 물을 먹게 되었습니다.
샤마=듣는다
하나님은 더 이상 두 아들을 살려두게 되면 자기 백성이 더 큰 재앙을 받고, 더러운 죄에 빠지게 됨을 아셨기 때문에 이 두 아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습니다. 죽이기로 뜻하셨다는 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뜻이 아닙니다. 36절을 보면 불량한 두 아들과 비교해서 하나님을 위한 충실한 제사장, 사무엘을 의미합니다.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뜻’은 네페쉬, 영혼, 생명이라는 의미입니다. 또 원하다, 바라다의 의마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두 아들을 죽이고 뜻하셨다고 할 때에 뜻은 ‘샤마’입니다. 샤마는 영어로 ‘hear’, ‘듣다’ 입니다. 민수기 14:27-28절을 보면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에게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가데스바네아에서 열 두 정탐꾼 중에 10명의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후에 백성들이 하나님께 반역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들은 대로 심판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두 아들의 악행에 대해서 들은 대로 그들을 죽이는 것으로 심판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예언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서 엘리 가정에 임할 심판을 예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전한 말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 가문에 제사장이란 특별한 직책을 주었다. 그러나 예배를 소홀히 하고 사람을 중히 여겼다. 그래서 축복을 취소하겠다. 또한 환난이 임하여 노인이 없을 것이고, 두 아들은 한 날에 죽을 것이다. 대신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사무엘,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을 일으키겠다.
심판의 결과
사무엘상 4장을 보면 이 예언대로 두 아들은 블레셋 전쟁에서 죽습니다. 언약궤도 빼앗겼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의자에 앉아 있다고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는 아내는 놀래서 갑자가 아파서 해산합니다. 해산하고 죽어가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불렀습니다. 이가봇이란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을 떠났다고 말하면서 죽었습니다.
엘리 가문이 왜 이렇게 불행하게 끝났습니다. 그 원인은 신앙 교육의 실패에 있습니다. 이런 실패를 경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신앙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상 교육 방식은 더 이상 소망이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좋은 학교 교육이 필요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자녀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 교육을 해야 합니다. 29절에서 하나님의 사람은 엘리에게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해 여겼다”고 지적합니다. 인간 중심의 교육에만 계속 집중한다면 결국 우리 자녀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로서 아직 영향력이 있다면 영적으로 깨어, 더 늙기 전에 좋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둘째, 예배를 잘 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엘리 두 아들은 제사장입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교회에 간다고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교회에 와서 예배를 잘 드리지 않는 자녀도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처럼 하나님을 잘못 섬기면 곤란합니다. 가인과 아벨도 함께 예배를 드렸지만 가인은 동생 아벨을 돌려 쳐 죽였습니다. 자녀들이 예배를 드렸다면 어떤 마음으로 드렸느냐를 물어야 합니다. 어떤 말씀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셋째, 은총 받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26절을 보면 엘리의 두 아들과 비교해서 사무엘이 어떤 사람인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고 했습니다. 은총이라는 단어는 ‘토브’입니다. 이 말은 좋다, 선하다, 즐겁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시고 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한 뜻이 충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의 두 아들을 볼 때에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은총이 떠났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받고,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한 가정의 미래
교육은 백년대지계요, 인류지대사입니다. 인류지대사란 사람이 해야 할 가장 큰 일을 말합니다. 한 가정의 미래는 자녀 교육에 있습니다. 자녀 교육에 실패하면 가정의 미래는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으 신앙으로 자녀를 교육해야 성공하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했습니다. 부모의 권위를 회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녀를 신앙으로 잘 교육하기를 원합니다.
(대림동 예일교회 이동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