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산(衡山)에 가다.
양원수가 수부의 풍악을 듣다가 물었다.
“이는 무슨 곡조이오니까?”
용왕이 이에 대답하기를,
“옛날에 수부에 이 곡조가 없었는데, 과인의 맏딸이 경하왕의 세자비가 되자, 유생의 전하는 글로 말미암아 그 목양의 곤함을 만난 줄 알고, 과인의 아우 전당군이 경하왕과 더불어 크게 싸워 크게 무찌르고서 딸아이를 데려오니, 궁중 사람들이 이 풍악을 짓고 춤을 추며 아름하여 부르되 ‘전당군 파진악=破陣樂이니 귀주환궁악=貴主還宮樂’이라 일컬으며 궁중 잔치에서 때때로 아뢰더이다. 이제 원수가 남해용왕을 격파하고 우리 부녀를 서로 만나게 하니 전당군의 옛일과 흡사한고로, 그 이름을 고쳐 ‘원수 파군악’아라 하노라.”
원수가 다시 물어보되,
“유생은 어디에 있으며, 가히 만나볼 수 있사오리까?”
용왕이 대답하되,
“유생은 영주의 선관이 되어 바햐흐로 그 마음에 있으니 만날 수가 없나이다.”
술이 아홉 순 배가 되자 원수가 하직하되,
“군중이 다사하여 오래 머무르지 못하오니, 바라건데 대왕은 만수무강하소서.”
또 용녀를 돌아보며 일러두기를,
“낭자는 뒷 기약을 잊지 말라.”
하니 용왕이 대답하되,
“그것은 염려를 말라, 마땅히 언약대로 하리라.”
하고, 궁밖에 나아가 천송할새, 원수가 얼핏보니 앞에 선악이 우뚝 솟아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구름 사이로 솟아올라 경개가 아름다운지라, 이에 용왕께 묻기를,
“이 산은 무슨 산이오니까? 소유가 천하명산을 두루 구경하였으되 오직 형산(衡山)과 파산(巴山:중국에 있는 성)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용왕이 이르기를,
“원수는 이 산의 이름을 알지 못하느뇨? 곧 남악형산이니 신기하고도 아름다운 산인데 어찌 알아보지 못하겠느뇨?”
원수가 이에 간청하되,
“어찌 하오면 이 산에 오를 수 있나이까?”
하니 용왕이 대답하되,
“오늘 해가 아직 늦지 아니하였으니 잠깐 구경하고 돌아가도 저물지 않으리로다.”
원수가 사례하고 수례에 오르자마자 형산 아래 다다른지라, 언덕을 넘고 구렁을 건너니, 산이 높고 지경이 점점 그윽하며 일만 가지 경개가 널려있어 이루 다 구경할 수 없으니, 이른바 일천의 높은 봉우리가 다투어 솟아 있고, 일만의 깊은 골짜기 다투어 흘러가는 경치로다.
원수가 사면을 둘러보며, 탄식하여 홀로 뇌이기를,
“진중에서 오래 시달이고 정신이 고달프니, 이 몸의 속세 인연이 어찌 그리 중할꼬? 공을 이루고 물러가 초연하게 만물 밖의 사람이 되리로다.”
하니 이 때에 경종소리가 수목사이로 울려 오기에 원수가 지껄이었다.
“필시 절간이 멀지 않으리라.”
하고, 언덕에 올라보니 한 절이 있거늘, 전각이 깊숙하여 그윽히 보이고 여러 중들이 모여있는 자리에 노승 한 사람이 높이 앉아 바햐흐로 경문을 외우며 설법하는데, 눈썹이 길고 희며 골격이 맑고 파리하여 그 연세가 많음을 가히 알겠더라.
노승은 원수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제자들을 거느리고 당에서 내려와 맞으며 이르되,
“산속 사람들이 듣는바 없어 대원수께서 행차하심을 전혀 알지 못하와 문 밖에 나아가 영접치 못하였소이다. 청컨대 원수는 이를 용서 하소서. 그러나, 이번은 아주 오시는 것이 아니오니, 모름지기 전각에 올라 불전에 합장배례하고 돌아가소서.”
원수는 곧 부처님 앞에 나아가 분향재배하고 바햐흐로 전각에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발을 헛딛는 바람에 놀래 깨니, 몸은 진중에 있으며 책상을 의지하고 앉았는데 동녘이 이비 밝았는지라, 원수는 이상히 여겨 여러 장수들을 불러들여 묻기를,.
“제공들도 역시 꿈을 꾸었느뇨?”
하자, 장수들이 일제히 대답하되,
“소장들도 꿈에 원수를 따라 신출귀몰과 크게 싸워서 이를 격파하고 수괴를 사로잡을 길조로소이다.”
원수가 꿈에 겪은 일을 낱낱이 말하고, 제장들과 더불어 백록담에 가본즉, 부수러진 비늘과 깨어진 껍질이 땅에 깔리고 흐르는 피가 내를 이루었더라. 원수가 몸소 표주박을 들고 물을 떠서 먼저 맛보고서 뒤이어 병든 군사를 먹이니, 그 병이 깨끗이 낫는지라, 도적이 이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며 곧 항복하고자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