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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류야화 황진이 <제25.26話>
초하루에 시작된 고려미인의 화장은 보름이 되는 날에 절정을 이룬다. 벽계수와 헤어진 후 송도팔경을 유람하고 진이는 고려미인 화장에 열중이다.
그동안 소세양·이사종·이생 등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몸이 다양하게 속물화 된 것을 정화하려는 속내다.
기생의 몸이 돈이 되는 사내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음이나 진이는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몸은 청루가 즐비한 청교방 거리에 있으나 영혼은 선계(仙界)에 있다. 진이가 기생이 된 것은 사내들의 성화에 못 이겨 신분이 바뀌면서 출발되었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어느 날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하지만 본래 서녀였으니 사대부집 며느리는 당치않은 일이라며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못 이겨 포기하고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진이가 기생이 된 사연은 또 있다.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상여가 집 앞에 와 멎어 옴짝달싹 하지 않아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 속곳으로 상여를 덮어주어 상여를 떠나보냈다. 영혼이지만 처녀가 총각의 여자가 되었다.
진이는 그 후 더럽혀진 몸으로 기생이 되어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삶으로 갔다. 기구한 삶이다. 지금 고려여인으로 곱게 몸단장과 화장을 하는 것은 천마산 지족암서 30년 벽면 수행을 하는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품으려 하는 것이다.
동그랗고 아담한 얼굴, 자그마한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 없이 가는 눈에 정적인 얼굴....
지금 진이가 그렇게 화장을 하여 30년 벽면 수행하는 지족선사를 보통의 세상으로 데려오려는 속내다.
그 동안 진한 화장으로 하루하루를 세상 남자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으나 지족선사는 사람 자체가 다르다. 청정 인간이다. 진이는 청정 인간이 원할 여인이 되려고 벌써 열흘째 몸을 꾸미고 승무(僧舞)까지 익히고 있다. 진이의 승무는 환상적이다.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갑, 흰 고깔, 붉은 가사, 양손엔 부채를 들어 마치 선녀의 학춤 같은 춤새다.
송도엔 여전히 고려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다. 도성에서부터 고을고을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언행이 아직까지 억불승유(抑佛崇儒) 정책이 착근되지 못한 상태다.
진이가 지금 고려여인이 되어 승무를 추면서 지족선사를 뜨겁고 화려하게 품으려 한다. 쉽지 않은 목표다. 이번엔 아름다운 여인의 승무가 무기다. 이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청상과부로 변장하여 유혹하려한다. 두 계획이 모두 불교와 연이 닿는다.
천마산의 봄은 아름답다.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엔 못 미치나 천마산도 계절마다 절경이다. 오늘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천마산 지족암으로 향하였다. 지족선사를 뜨겁고 아름답게 품으려는 속내다. 진이 옆엔 옥섬이모가 따랐다. “천천히 걷자! 이 늙은이는 숨이 차서 못 걷겠다!” “길이 멀어요... 자칫 가기도 전에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해요?” 진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지족선사는 오후 늦게는 매일 지족암 연못가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산책하는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진이가 손을 내밀어 거부한 사내는 없다. 지족선사도 그러하리라 믿고 지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산사의 오후는 짧다. 진이 일행이 지족암에 도착했을 때는 지족선사가 산책을 마치고 선방(禪房)으로 들어가려는 찰나다. 진이는 넙죽 큰절을 하고 제자로 삼아 달라고 애원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준비한 대로 옥섬이모의 거문고에 맞춰 승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냥 하고//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린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승무》다.
당시 진이가 지족선사 앞에서 추었을 《승무》는 더 고혹적 춤새일 것이다. 술에 장사 없다 하듯이 미녀를 막무가내로 손 사례를 칠 사내가 있을까? 더욱이 천하일색 진이의 고혹적 유혹을 30년 벽면수행의 지족선사인들 마지막까지 석남(石男)인 냥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당나라 헌종 때 위와 같은 역사가 있다. 대 문장가 한유가 불교를 배척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곳(潮洲)의 영산 축융봉에 태전선사가 있는데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유는 대학자답지 않게 울화가 치밀어 명기(名妓)로 이름난 홍련(紅蓮)에게 10일 내에 태전선사를 파계 시키면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위 미인계(美人計)다. 하지만 미인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 홍련의 치마폭에 태전선사가 써 보낸 시는 이러하다.
‘십년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色)을 관(觀)하고 공(空)을 관리하니, 색이 공일 뿐이네/ 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뜨리겠는가!’
이 시를 본 한유는 감탄하여 태전선사에게 불법(佛法)의 요지를 되려 배웠다는 아이러니 한 역사다.
아무튼 진이는 위의 역사를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가지고 주인행세 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싫어한다. 아니 저주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진이는 사내가 자신의 불두덩 위에서 씩씩대며 황홀경에 빠져 있어도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 정도의 재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해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속내다.
🔘 풍류야화 황진이 <제26話>
집으로 내려온 진이는 계절이 바뀐 어느 여름날 다시 지족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젯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중놈 주제에 내가 제자로 들어가겠다는데 거절을 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천천히 가자! 나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사실 진이도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지난봄에 지족선사에 당한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더 관능적으로 춤을 추려한다. 마침 연못엔 연꽃이 절정이다.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진이가 풍덩 빠졌다. 고혹적 춤을 한바탕 추면 지족선사도 물에 빠진 중생을 그냥 하산하라 매몰찬 말을 못할 것을 노린 계략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했듯이 진이는 기어코 지족선사를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하는 꿈을 접지 않는다.
진이에게 포기는 없다. 그녀가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의 신분으로 바뀐 충격에 장님이 된 역경을 거치면서 사내들에 대한 분노로 기생의 길을 택했으며 그 같은 생각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이기도 하다.
모녀는 똑같이 장님이 되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끝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진이는 기적적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다시 볼 수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지금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자유인으로 선언한 이후 숱한 역경 속에서도 남성위주 사회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는 것도 그 전략의 하나다. 승무는 독무(獨舞)로 고혹적인 동시에 예술성도 높다.
그 춤을 지금 진이가 춘다. 춤을 추는 주인공의 역량에 따라 춤의 예술성과 내용이 달라진다. 진이의 승무에선 그녀의 삶과 예술의 세계가 농축되어 나온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에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머리 등의 장단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의 춤이다.
신음하듯 움틀 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까지 범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법열(法悅)이 불변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은 장삼의 춤사위가 혼화(渾和)로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속에 신비로움과 정교로움의 조화의 극치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 매력이라고 하겠다.
진이가 결국 이겼다.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버티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졌다.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복자인 진이의 가슴이 뻥 뚫어진 느낌을 받으며 당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689~740)의 《만산담에서》를 번개처럼 떠올렸다.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30년이나 벽면하며 극락왕생을 꿈꾸었을 한 사내의 영혼을 울린데 대한 자책감과 옹졸함에 울고 싶어졌다.
‘낚시 드리우고 넓은 바위에 앉으니/ 물 맑아 한가롭기 그지없다./ 고기들은 연못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원숭이는 섬에 자란 등나무를 타고 논다./
그 옛날 여인의 허리의 옥을 풀어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산에서 전해졌던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달빛 타고 노래하며 노 저어온다.’
그랬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다. 어떤 삶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각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이가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하룻밤에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고 당나라 시인 맹호연 시를 떠올린 것은 의외다. 30년 벽면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거운 하룻밤의 운우지정으로 접수했으면 통쾌하여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불렀을 터인데 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맹호연은 화가이며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도 친교가 두터운 도연명을 존경하는 전원주의 시인이다. 그런데 유독 진이가 맹호연의 시를 떠올렸음은 좀 더 지조를 갖고 버텼으면 자신이 뜨겁고 향기로운 가슴으로 품기를 포기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레고리 한 것은 아닌지 보여지는 시다.
지족암에서 진이와 화촉동방의 뜨거운 밤을 보낸 지족선사는 그 후 종적을 감추었다.
조계(曹溪)에 부끄러웠을 것이고 스스로도 맑은 정신으론 대명천지 하늘 아래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기생으로 인해 30년 벽면 수행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상 사람들을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대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제 정신이 아닌 수도승이었을 터다.
아무튼 성리학 나라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진이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양곡 소세양·종실의 후예 벽계수 등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그녀의 품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명월(진이 妓名)의 신비다. 세상 사람들이 겪어 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명월의 신비는 겪어본 사람도 품을 떠나면 다시 그 신비함에 아리송해 하는 것이 바로 명월의 신비함이다.
진이는 지족암에서 하산 한 후 오늘로 열흘째 몸져누웠다.
“이 미음이라도 먹어야 하느니라.”
옥섬이모의 간곡함이다. 옥섬이모는 어머니 현학금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옥섬의 말엔 어머니가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요... 거기 놓고 나가 보세요...”
진이의 눈엔 지금도 지족선사가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천둥번개를 맞듯이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표시했던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맹수가 사냥하여 먹이를 한입 크게 물은 그런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놀라움과 경이로운 감흥이 함께 섞인 울음의 분위기였다.
진이는 그 표정이 가여웠다. 그리고 지족선사의
“이 작은 절이 움직인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겠소이까?”
의 말이 새삼 귓가에 생생하다. 다시 진이는 맹호연의 《국화담 주인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를 떠올렸다.
‘국화담에 다다르니/
마을 서편으로 해 이미 저물었네./주인은 높은 곳에 오르러 떠났고/ 닭과 개만 남아서 집을 지킨다.’
진이가 지족선사를 처음 지족암으로 찾아 갔을 때 위의 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애정 어린 간곡함에 그날 오후 흰죽 한 그릇을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이는 언제 자리에 누워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거문고 연습에 밤낮이 없다. 그런데 거문고 음률이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아닌 처연하고 가슴이 시린 황량한 음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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