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기만 했던 베르테르와 베아트리체들이 미소를, 희망을, 그리고 자아를 다시 찾았다. 7월 1일부터 9일까지 땅끝 마을 달마산 미황사(주지 금강 스님)에서 열린 조계종 ‘청년출가학교’. 출가학교에 참가한 41명(남 19, 여 21명)의 도반들은 자연과 호흡하며 20살 청춘의 고뇌를 스님들과 함께 씻어 내렸다.
7월 8일 저녁예불을 마친 출가학교 학인들이 미황사 대웅전을 돌고 있다.
젊은 영혼을 갈아먹은 모든 집착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린 청년들은 남이 아닌 내가 세상에 주인이 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8박 9일간의 미황사와의 인연을 뒤로 하고 다시 사회로 출가한다.
혜민스님 “너의 빛깔, 향기를 찾아라”
회향을 하루 앞둔 7월 8일. 출가학교의 모습을 담기 위해 미황사를 찾았다. “출가학교이니 만큼 엄숙한 분위기에서 수업이 진행되겠지”라는 생각은 출가학교 강의가 열리고 있는 자하루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혜민 스님이 출가학교 학인들을 대상으로 열강을 하고 있다.
자하루에서는 최근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광 받고 있는 혜민 스님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주제로 41명의 청춘들과 교감하고 있었다. 젊음은 이래서 좋은 것일까? 아무 거리낌 없이 스님의 강의에 빠진 청춘들. 8일간의 산사 생활을 통해 세속의 먼지를 씻어낸 청춘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자기만의 빛깔과 향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아류가 아닌 나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혜민 스님이 그들에게 남이 아닌, 나를 세우고 살아갈 것을 주문한다.
“사람들은 내가 말한다. 좋은 글 많이 써서 법정 스님처럼 훌륭한 스님이 되어 달라고. 그러면 나는 말한다. 나는 법정 스님처럼 될 수 없다고. 법정 스님이 아니라 혜민 스님이 되고 싶다고. 그럼 여러분은? 당신의 스타일, 빛깔을 찾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사람은 인생의 운전대를 내가 몰고 간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스님들, 24시간 수행만 하는 줄 알았다”
혜민 스님 강의가 끝난 후 휴식시간에 만난 청년들은 답은 한결 같았다.
박민지(25)행자는 “도시에서 벗어나 사찰에서 가장 오랫동안 지내고 있다”며 “핸드폰, TV 등을 볼 수 없지만 그것들에서 벗어나 도반들과 대화를 하고, 울력을 하면서 나를 얽매이게 한 것들이 없어도 세상에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출가라는 거창한 목표보다 열심히 수행하며 불교공부를 제대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인들이 스님들과 함께 점심강의 후 감자캐기 울력을 하고 있다.
김주선 행자(22)는 “불교를 접하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라며 “절에 생활하면서 스님들이 24시간 수행만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불교가 미신이 아니라는 것, 어렵게만 느꼈던 스님들과 대화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만족해 했다.
박민지 행자는 “출가학교에 들어오기 전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많았는데 과거와 미래가 아닌 현실에 충실 하라는 가르침을 듣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들 행자들의 소감은 출가학교 회향날인 7월 9일 ‘회향의 시간’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불교라는 것이 내 자신을 믿는 것임을 알았다. 나를 내려놓고, 내 자신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불교라는 종교가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간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세상에서 나만 제일 힘들고 아픈 줄 알았다. 남도 나만큼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삶이란 여행에서 이제 남이 아닌 내가 주인공으로 살아갈 것이다”
출가학교 지도법사로 학인들과 함께 호흡한 원영스님과 학인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8박 9일 만의 변화. 출가학교에 입학하고자 집을 떠나 미황사로 향했을 때 그들도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보는 눈, 불교를 보는 눈, 타인을 보는 눈, 그리고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다시 사회로 출가해야 하는 그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금강 스님 “출가학교, 불교와 청년의 접점 될 것”
청년출가학교장 법인 스님(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은 “출가학교는 조계종의 청년 멘토링 사업으로 확대 추진될 것”이라며 “단순한 출가자 영입이 아닌 자질과 역량을 갖춘 출가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종단차원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강스님이 학인들이 삭발의식 때 자른 머리카락을 담은 항아리를 보여주고 있다.
법인 스님은 “몇 년간은 종단차원에서 출가학교를 진행한 후 교구본사 단위로 출가학교를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은 “출가학교를 통해 청년들이 마음의 변화, 사고의 변화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대학교 입학을 위해 달려온 청춘들. 심신이 지친 그들에게 불교는 해답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불교는 그들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청년들과 접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가학교는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청년층과 소통하는 접점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학인들이 7월 8일 저녁, 미황사에서 스님들과 함께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
자하루에서의 회향식을 끝으로 출가학교 첫 이야기는 끝이 났다. “미황사에 장금이가 살고 있다”며 8일만에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변모한 학인도, 도반들과 장난을 치다가도 스님들의 말씀에 금새 눈물을 훔치던 학인도, “9일간 큰 딸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것”이라며 부모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던 학인도 모두 다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달마산을 내려와야 한다.
‘출가학교’ 청년 맨토링사업으로...
조계종도 내년 청년출가학교 개설을 위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번 출가학교 운영을 통해 젊은 출가자 양성기관으로 출가학교를 운영해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다. 불교의 ‘불’자도 모르는 사람들, 엄마가, 할머니가 불자라 불교를 믿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출가’를 말하는 것은 지나친 자가당착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출가학교를 조계종의 청년 맨토링 사업으로 진행하겠다며 사업 방향을 선회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걱정이 된다. 혜민 스님 등 출중한 강사진이 계속 유지될 것인지. 그렇다고 첫 해 강사진이 계속해서 법담을 이어가는 것이 바람직한지. 미황사가 아니면 어느 사찰에서 출가학교를 운영할 수 있을지.
“천주교 신자지만 출가학교에 들어와 천주교만이 아닌 불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이제 반은 천주교 신자로, 반은 불교신자로 살아야겠다” 출가학교 마지막 날 ‘회향의 시간’ 중 한 남자 학인이 한 말이다. 불교를 통해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는 그들을 위해 조계종은 무엇을 해야 할까? 좋은 말만 해주면, 그들의 고통을 들어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나? 어찌 보면 쇄신보다 가장 큰 과제가 조계종에 부여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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