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레인리포트,
향기로 기억을 낚아채다
나는 준비 기간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두 개의 매장 오프닝 파티를 담당하게 된 적이 있다.
GFFG 이후 '글로우서울'이라는 공간 브랜딩 컨설팅 회사로 들어가 받은 첫 번째 미션으로, 경리단에 새롭게 오픈하는 호우주의보(레인리포트)와 살라댕엠버시라는 두 개의 매장 오프닝을 파티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짧은 기간 동안 우선 난 브랜드들의 탄생과 정체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 호우주의보는 습도에 의해 커피가 더 맛있다는 이유와 경리단길 프로젝트들이 남산대학교라는 프로젝트들에 연결되어 대학교 학과 중 기상학과라는 주제로 호우주의보란 이름이 정해졌다고만 들었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브랜드의 히스토리나 정체성이 너무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대표에게 호우주의보를 만들게 된 이유와 목적을 집요하게 묻기 시작했고 드디어 내가 원하던 알맹이를 찾을 수 있었다.
과거의 대표가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던 집은 창밖으로 지하철역이 보였다고 한다.
여느 날과 같은 아침, 대표는 그날의 연차여서 출근을 안 해도 되는 날이었고 창밖으로 엄청나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같이 살던 지인은 출근하지 않은 대표를 엄청나게 부러워하며 불편한 표정으로 출근길에 올랐다고 한다.
대표는 장대 같은 비로 일그러진 얼굴들이 섞인 출근길과 집 앞 지하철역을 바라보았다.
그는 가장 안락하고 거기에 뽀송하기까지 한 자신의 방에서 따뜻하게 내려 먹는 커피의 고소함을 느끼며 '오늘따라 커피가 왜 이렇게 맛있지?' 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 경험이 호우주의보에 숨겨진 창작 의도라는 것이다.
'그래. 이거다!'
난 이런 이야기를 토대로 파티와 소비 경험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우선 파티하면 DJ가 음악을 틀고 맛없는 케이터링에 정신없이 있다 인사만 하고 금방 나가는 그런 의미 없는 구성이 싫었다.
게다가 호우주의보라는 카페는 당시 45분당 15분씩 비를 내리기 때문에 비를 보려면 무조건 1시간은 있어야 한번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파티가 정신없이 얼굴만 비추는 식이라면 내리는 비는 고사하고 매장 자체도 경험하기 어렵기에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상주하고 더 많이 경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난 비오는 날 친구들과 뭘 하는지를 생각하게 되었고 친구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비디오게임이나 카드게임을 하던 모습이 떠올라 바카라 게임을 파티에 세팅했다.
사실 '얼마나 참여하겠어?" 했지만 신기하게도 가장 인파가 많이 몰렸던 컨텐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어릴 때 하던 모래 뺏기 게임을 만들었다.
모래 속에 간 커피콩을 섞어 자기 쪽으로 모래를 끌어올 때마다 커피 향이 물씬 나게 하였으며, 살라댕과 호우주의보 두 곳에 타로카드를 배치했다.
그런데 같은 타로라면 두 곳을 모두 갈 의미가 없어지기에 호우주의보에서는 비가 그치고 맑게 갠 날씨에 착안해 '내 인생에 해 뜨는 날'이란 의미로 성공운만 보게 했고 살라랭은 로맨틱한 무드가 있어 애정운만 보게 하며 두 곳을 모두 경험하도록 설계했다.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경험
비 오는 날은 향조차 중요하다고 판단, 당시 TF 인원들이 생각한 향수 브랜드의 향 중 비 온 뒤 숲에서 나는 향을 선택해 손님들에게 선물로 드렸다.
더 나아가 입장 전 종이백에 그 향수를 뿌리고 맡게 해 우선 비가 온 뒤라는 연상을 만들어주고, 매장으로 들어가 아까 말한 바카라에서 딜러를 이기면 커피콩이 든 샤쉐를 선물로 줬다.
샤쉐를 종이백에 넣고 즐겁게 보낸 후 집으로 가서 자고 일어나면 그 종이백에서 향수와 커피향이 섞여서 비 오는 곳에서 즐기는 커피 향이 자연스럽게 난다.
그때 전날 또는 낮에 경험한 호우주의보의 인상을 한 번 더 떠올리게 만든 것이다.
이런 다양한 컨텐츠들을 다 경험하는 데에 정확히 120분 정도가 걸렸으면 최소 비 두 번에 운이 좋으면 세 번까지 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되었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모두가 넋을 잃고 창밖을 봤다.
그리고 여기에서 특별한 경험 설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모든 미션을 수행하면 주려고 만든 투명 장우산 굿즈를 활용해 비 올 때 인증샷을 남길 수 있게 해보면 어떨까 싶어 팀원에게 내 모습을 찍게 했다.
그것을 SNS에 바로 올리며 당일 방문하는 업계 사람들과 인플루언서 모두에게 포토존을 직간접적으로 알렸다.
그 후,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곳에서 비가 올 때마다 우산을 들고 뛰어 들어가 인증샷을 찍기 시작했으며 평소라면 피하고 싶은 비를 유일하게 기다리는 진풍경이 생겼다.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의 비를 맞는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방문했으며 SNS에는 인증 후기들로 넘쳐났다.
매장 안에서 쾌적하게 혼자 여유롭게 커피를 즐기는 손님들에게는 창밖에 비가 내릴 때마다 우산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대표가 그날에 느낀 안락함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물론 창밖에 있는 사람들은 인증을 하려고 환하게 웃으며 포즈를 취했지만 창 안에서는 그냥 비우는데 밖에서 우산을 쓰는 쓴 사람들이고 자신의 안전함과 안락함은 더욱 편안한 즐거움으로 돌아온 것이다.
호우주의보를 통해 소비 경험의 중요성에 대한 경험을 견고히 굳혔다.
처음 노티드를 통해 선물이라는 경험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고, 이때 나의 경험과 소비자들의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배울 수 있었다.
이후 모든 전략과 방향은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그 좋았던 경험을 어떻게 소비자들에게 집중시키고 같은 경험을 설계해 줄지를 많이 고민했다.
또한 우리가 어릴 때 경험하고 추억하는 부분들을 브랜드의 경험에 녹이고자 노력했다.
저는 브랜딩을 하는 사람입니다 중에서
허준 지음
첫댓글 향기로 기억을 낚아채다 ~~짧지않는글 끝까지 읽게 하는것도 브랜딩의 힘인가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제주 지부장님 덕분에 볼거리가 많아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