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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환경을 걱정해야 하는 인류의 사명 때문에 우리가 갈망하는 대배기량 엔진의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2.0L 밑의 엔진은 살아남기 위해 과급 기술로 똘똘 뭉쳤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여기 있는 2.0L 터보 엔진 넷은, 다른 녀석들보다 좀 특별하니까
Volvo S60 Polestar
안전하고 점잖기만 할 줄 알았던 볼보가 여기 나와서 의외라고? 아니다. 그건 요즘 볼보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오늘 모인 넷 중, 다운사이징 트렌드에 가장 깊숙하게 발을 들이민 메이커가 바로 볼보이기 때문이다. 5기통 엔진으로 유명했던 볼보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지난 2013년 드라이브-E 파워트레인 전략을 발표하면서부터.
볼보는 1969cc 4기통을 기본으로(1.5ℓ T2, T3 엔진도 있기는 하다), 배기 가스를 줄이면서 출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실린더에 공기를 밀어 넣는 과급 기술을 적극 받아들였다. 터보차저 하나만 품은 볼보의 다른 가솔린 엔진과 달리, 오늘 참석한 S60의 보닛 아래에는 슈퍼차저까지 아우른 볼보 최강의 T6 가솔린 엔진이 들어 있다. 이론상으로는 낮은 rpm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터보랙 대신 빠른 반응속도를 보여주기 위해 슈퍼차저가 열심히 돌아가다가, 터보차저가 돌아갈 수 있는 조건, 즉 배기 가스가 충분해지면 두 과급기가 힘을 모으는 식이다. 그 뒤에 3500rpm을 넘어가면 제 소임을 다한 슈퍼차저 대신 힘을 아꼈던 터보차저가 열심히 나서 힘을 몰아준다. T6 엔진 성능은 최고 306마력, 40.8kg·m.
하지만 오늘 나온 S60은 볼보의 고성능 브랜드 폴스타의 손길을 거친 특별한 녀석. 최대 부스트압 2.0바의 더 큰 터보차저를 시작으로 연료펌프와 콘로드, 캠샤프트를 새로 달았고, 더 많은 공기를 빨아들이도록 흡기구도 키웠다. 압축비를 8.6:1까지 낮추고 6000에서 7000rpm까지 한계가 높아진 폴스타 T6 엔진의 성능은 367마력, 47.9kg·m까지 훌쩍 뛰어올랐다. 강력한 성능을 뒷받침해줄 아이신 8단 기어박스와 보그워너 4륜구동 시스템, 브렘보 6피스톤 브레이크도 곁들였다. 약간 물렀던 승차감 대신 짱짱한 고성능 하체를 위해 올린즈 서스펜션과 카본파이버 스트럿바, 단단한 부싱류와 스프링까지 둘렀다. 볼보가 고성능 모델이라고 자신할 근거는 충분했다.
성능에 비해 겉으로 드러나는 과격함은 없다. 20″ 전용 휠과 리어 스포일러, 3.5″ 배기 파이프와 푸른빛 폴스타 배지만 도드라졌다. 무던한 실내는 가죽과 알칸타라 소재의 두툼한 버킷 시트, 플라스틱 커버를 두른 기어 레버만 다를 뿐, 고성능 모델다운 멋이 없다. 이 시대에 흔치 않은 슈퍼차저 음색은 특별했다. 그런데 스로틀을 활짝 열어 터보차저까지 불러내도 귓가를 사로잡을 만큼 신통방통한 사운드는 앞뒤 어디서도 부족했다. 조금만 더 소리를 가다듬었더라면 한결 고성능 모델을 운전하는 맛이 도드라졌을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가속력 하나만큼은 엄지를 치켜세우기에 충분했다. 두 과급기의 시너지로 꾸준히 강력한 힘을 터뜨렸고, 잔뜩 조여 단단한 하체와 4륜구동의 만남으로 고속에서도 든든했다. 30단계로 조절할 수 있는 올린즈 서스펜션만 입맛 따라 느슨하게 풀어주면, 일상에서 두루 쓰는 고성능 패밀리 세단으로 알맞았다. 그러다 코너 깊숙한 곳을 돌아나갈 무렵, 주황빛 포르쉐가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Porsche 718 Cayman
볼보의 뒤를 좇아 코너를 파고든 포르쉐는 다름 아닌 카이맨. 낮고 넓은 차체에 동그란 눈망울, 그래서 911이 다가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거리가 줄어들수록 6기통 엔진이 내는 것과 다른 종류의 소리가 또렷해졌고 S60 폴스타를 추월해 코너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자 카이맨이라는 걸 알아챘다. 치솟은 리어 스포일러 아래 보이는 숫자, 718. 그렇다, 4기통 엔진으로 새롭게 돌아온 718 카이맨이다. 718 카이맨과 박스터는, 그동안 써왔던 911 아래 급의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4기통 엔진과 함께한다. 실린더는 4개로 같지만, 배기량에 따라 나뉘는 엔진 종류는 두 가지다. 기본형 300마력짜리 2.0ℓ 그리고 고성능 버전인 350마력의 2.5ℓ가 바로 그것. 특히, 고성능 버전에는, 911 터보에 들어간 6기통 터보 엔진의 전매특허 가변식 터보차저 기술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는 필요한 힘에 따라 터보차저까지 흘러 들어가는 배기가스의 흐름을 조절하는 기술로, 낮은 rpm에서 빠른 반응속도를, 높은 rpm에서는 강한 힘을 약속한다. 오늘 나온 카이맨은 기본형 2.0ℓ 모델. 볼보의 트윈 차저나 카이맨 S의 가변식 터보차저는 없지만, 지금 내 눈앞에서 좌우로 이어지는 코너를 미친 듯이 돌아나가는 녀석의 달리기 실력은 도대체 뭘까?
포르쉐는 터보 엔진의 구조적 한계인 터보랙을 해결하기 위해 다이내믹 부스트 기술을 고안했다. 보통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면 공기를 집어넣는 스로틀도 닫히지만,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자연흡기 엔진 뺨치는 반응속도를 위해, 페달에서 발을 떼도 스로틀이 닫히지 않고 연료만 보내지 않도록 세팅했다. 덕분에 터빈으로 들어가는 공기압을 유지한 채, 언제든 가속페달을 다시 밟으면 빠르게 응답하도록 만들었다.
새로운 4기통 엔진은, 38.8kg·m의 최대토크를 1950~4500rpm까지 일관적으로 뿜어낸다(고성능 버전 2.5ℓ는 42.8kg·m). 페달에 발만 갖다 올려도 힘을 쏟아붓는다는 얘기다. 게다가 엔진을 운전석 뒤에 둔 미드십 구조. 수평대향 엔진의 낮은 무게중심과 앞뒤 무게 배분이 이상적이라는 미드십 구조가 어울려, 주행 안정성이 무시무시하다. 왜 카이맨이 코너링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911 터보의 스티어링 기어를 가져다 더 타이트하게 세팅하고, 스태빌라이저 바와 스프링까지 매만지는 등 차체 능력까지 업그레이드한 덕분에, 코너링 성능은 배가 됐다. 이제 포르쉐의 스포츠 성능과 감성을 원하는 이들에게는 꼭 911이 아니라, 카이맨을 돌아봐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Volkswagen Golf R
카이맨이 코너를 놀이터 삼아 홀로 날뛰고 있을 무렵, 익숙한 푸른빛 골프가 다가온다. 여전히 시대를 관통하는 상징, 해치백의 교과서로 불리는 폭스바겐 골프. 그중에서도 최상위 고성능 모델, 골프 R이 등장했다. 폭스바겐 안에서도 R 꼬리표는 몇 안 되는 고성능 모델에게만 주어진 특권. 이날 한자리에 함께 모인 볼보 폴스타와 메르세데스 AMG처럼, 폭스바겐 고성능 부서 R Gmbh에서 특별히 만들었다.
3.2ℓ V6 자연흡기 엔진을 쓰던 골프 R도, 대세에 따라 터보를 품은 4기통 엔진으로 갈아탄 지 오래다. 지금 쓰는 파워트레인은 2.0ℓ 가솔린 터보와 6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 조합. 같은 엔진이지만 골프 GTI의 211마력, 35.7kg·m 버전보다 한층 강력한 292마력, 38.7kg·m의 성능을 낸다. 그리고 터보 엔진의 장점인 토크를 GTI보다 1000rpm가량 더 넉넉하게 유지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엔 들어오지 않았지만, 유럽에 나온 페이스리프트 버전은 300마력이 넘는 성능과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들어간다.
이 같은 성능 업그레이드를 위해, 실린더 헤드부터 배기밸브와 고압 직분사 시스템, 최대 부스트압 1.2바 터보차저까지 손을 봤다. 열 관리가 중요한 터보 엔진을 위해 수랭식 배기 매니폴드를 실린더 헤드에 통합했고, 가변식 흡배기 밸브 타이밍 시스템과 듀얼 캠샤프트를 더하는 등 더 나은 성능과 효율성, 낮은 배출 가스를 위해 꼼꼼히 매만졌다. 그 결과, 역대 최강의 골프 R이 탄생했다.
300마력에 가까운 출력을 온전히 앞바퀴에만 쏟아붓기에는 부담이 생긴다. 고성능 전륜구동 차의 약점인 토크 스티어가 발생하는 것. 하지만 골프 R은 걱정 없다. 다른 골프와 달리, 할덱스의 최신 5세대 4륜구동 시스템을 갖춰 상황에 따라 뒷바퀴에도 힘을 슬기롭게 나눠 쓰는 덕분. 평소에는 전륜구동 성격이지만, 론치 컨트롤을 쓰기라도 한다면 뒷바퀴로 힘을 보내 출력 손실을 막아주는 영민한 시스템이다. 게다가 디퍼렌셜 록과 토크 벡터링 기능까지 꼼꼼히 곁들였다. 그야말로 누가 타더라도 매끄럽고 안전하게 코너를 돌파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만능 재간둥이다.
이토록 장황한 성능 업그레이드에 비해, 고성능 모델임을 암시하는 특별한 디자인은 다소 부족하다. 기껏해야 날 세운 범퍼와 19″ 휠, 좌우 2개씩 끼워 넣은 머플러 팁이 전부다. 실내는 더하다. 눈을 씻고 찾아봐야 알 수 있는 R 레터링과 푸른빛 바늘 너머 320까지 적혀 있는 계기반이 전부랄까. 전동 시트에 몸을 맡기고 앞서 사라진 카이맨을 뒤쫓기 위해 냉큼 시동을 걸었다.
순수한 스포츠 주행만을 위해 만든 차가 아닌 만큼, 배기 사운드는 덜 폭력적이다. 소리만큼은 좀 더 키워도 좋겠다 싶지만, 맹렬한 가속감은 확실히 인상적이다. 일반 골프보다 20mm 낮은 차체는 승차감을 진득하게 세팅해, 편하면서도 고속에서 믿음이 간다. 저만치 앞에서 코너를 신나게 돌아나가는 카이맨 꽁무니를 향해 가속페달을 더 밟자 4륜구동의 힘이 빛을 발한다. 이미 주행 모드는 가장 스포티하게 세팅한 레이스. 더 화끈하게 놀고 싶다고? 그럼 차체 자세 제어 장치를 완전히 꺼버리자. 어느 길에서든 롤러코스터처럼 신나는 박진감을 느낄 수 있을 테니.
Mercedes-AMG A 45 4Matic
카이맨과 골프 R이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코너를 쏘다니며 롤러코스터 놀이를 즐기기에 여념 없을 때, 저 멀리서 우렁찬 배기 사운드를 쏘아대며 해치백 한 마리가 다가왔다. 우악스럽게 벌린 입, 화난 듯 잔뜩 찌푸린 미간 사이로 빛나는 세 꼭지 별. 메르세데스, 그 안에서도 폭발적인 힘을 자랑하고 다니는 AMG의 막내, A 45였다. 말썽꾸러기 이미지는 한껏 추어올린 리어 스포일러에서 극에 달했다.
대배기량 엔진에서 뿜어 나오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유명했던 브랜드 명성은 잠시 뒤로하고, 젊은 소비자를 끌어들이려는 의지가 모여 2.0ℓ 터보 엔진을 품은 막내 AMG가 태어났다. 하지만 고성능 소형차 전장에 뛰어든 AMG의 각오는 남달랐다. AMG의 트레이드마크인 강력한 힘을 4기통 엔진으로 발휘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 함께 나온 폴스타, 카이맨, 골프 R을 압도하는 381마력과 48.4kg·m라는 숫자가 바로 그거다. 심지어 2.0ℓ 배기량으로 이만한 성능을 뿜어내는 엔진을 만든 건, 아직도 AMG가 유일무이하다. 리터당 190마력에 달하는 A 45의 엔진은, 최대 200바에 달하는 연료 직분사 압력과 최대 1.8바의 부스트압으로 배기 가스를 쏘아대는 트윈 스크롤 터보차저가 핵심. 거기에 실린더 안의 피스톤 마찰 저항을 줄여주는 나노슬라이드 기술을 곁들여 CO₂까지 덜어냈다. 무엇보다 A 45 엔진의 백미는, 스로틀을 여닫거나 기어를 바꿀 때마다 펑펑 터지는 우렁찬 사운드. AMG 스포츠 배기 시스템을 달아둬, 센터페시아에 달린 버튼 하나로 감성을 찌르르 울리는 배기 사운드를 신나게 들을 수 있다.
키를 꽂고 돌리자 엔진이 활기차게 기지개 켠다. 대배기량 엔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 정도면 2.0ℓ 엔진으로 누릴 수 있는 사치의 끝이다. 가속페달을 밟아 회전수를 높일수록 강력한 힘이 고개를 치켜든다. 생각보다 긴 터보랙을 넘어서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활기찬 기운이 샘솟고 속도계 바늘이 매섭게 치솟는다. 6000rpm까지 너무나도 쉽게 올라간다. 그런데 기어를 빠르게 바꿔나가야 할 변속기가 먹먹한 느낌이다. 진작에 톱니바퀴를 바꿔 물어야 하는데, 순하디순한 양처럼 곰살맞게 군다. 분명 변속기도 AMG 이름표가 붙은 7단 DCT인데? 차라리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돌리고 수동 변속 버튼을 눌러, 내 마음대로 패들 시프트를 당기는 게 속 편했다. 그럴 때마다 꽁무니에서 후련하게 터져 나오는 총성을 마음껏 즐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