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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5년 그렇죠 새해이고 1월 5일 첫 주일이에요. 2024년이 지나갔습니다. 우리가 교회적으로 2024년에는 이런 비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나요? 믿음에 관한 것인데 구원하는 믿음 살게 하는 믿음 역사하는 믿음이었어요. 2025년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볼 교회가 가질 목표로 받았습니다. 이겁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바라라.
네 저만 아니고 여러분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교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한다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 피를 가지고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그렇게 해 주셨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해 주시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바라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이러한 삶이 이미 시작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평생에 잘 이어지기를 바라고 아니라면 이 2025년에 배우고 또 확인하고 확실하게 세우는 여러분의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서로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바라는 이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라고 하는 거예요. 이게 사적인 관계가 아니라 비인격적 관계가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갖는 관계다 하는 거죠. 영어로 퍼스널 릴레이션십이라고 하죠. 그때 말하는 퍼스널은 프라이빗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관계는 릴레이션십 뷰티 퍼센스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격과 인격의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부모와 자녀 또 남편과 아내, 친구와 친구, 성도와 성도의 관계가 그렇죠. 서로 기뻐할 수 있고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 바랄 수 있는 관계를 말하는 거예요.
반대로 인격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서로 싫어할 수 있고 서로 미워할 수 있고 서로 포기할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이게 인격적인 관계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물과 비인격체와 갖는 관계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심지어 동물과 갖는 관계도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인격체는 아기 때부터 절대 쉽지 않지요. 그러나 그만큼 보람이 있는 것이고 그런 만큼 높은 것이 인격적인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가리키는 참 믿음의 삶이라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찬송을 드리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참 믿음의 삶은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서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우리에게 매일매일 호흡을 주시는 그 하나님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바람으로써 살아 있는 하나님과 살아 있는 교재를 갖는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포기하는 그러한 악한 영의 역사를 이겨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해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바라는 그런 관계를 원합니다. 질문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그런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것이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도 않아요. 가서 만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를 기뻐하고 사랑하고 바랄 수 있는가 여러분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지만 오늘 설교를 통해서 한번 꺼내내고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질문입니다.
이것을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것들이 우리가 함께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으로는 아니면 사람 혼자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면 할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 길을 만들어 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는 오늘 이미 말씀이 가리키듯이 말씀이 육신이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육신이 된 그 말씀은 앞에 1절 3절에서 말씀하듯이 태초부터 그러니까 모든 것 이전에 하나님과 함께하신 분이고 그로 인해서 만물이 지음을 받은 하나님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비슷한 하나님 같은 그런 존재가 아니고 그 말씀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지는 이 말씀과의 교제는 말씀과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정말로 진짜 하나님과 교재를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말씀하시잖아요. 사람이 되었다 하지 않고 육신이 되었다 이렇게 말씀을 하셔요. 이 말씀의 뜻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이 아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이 진짜로 하나님 사람이 진짜 우리와 같은 살과 피의 사람이 되셨다 하는 것을 강조해서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진짜 사람인 우리와 관계를 교재를 가질 수 있는 것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나사렛 예수는 신이 아니다 하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지만 진짜 사람은 아니다.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지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의 영에는 신의 영이 들어 있다 이렇게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또 다른 생각들도 있지만 거기까지 하면 복잡해지니까 이 두 개만 놓고 우리가 생각을 해볼 수가 있어요. 이 두 가지 생각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님은 참 사람이 아니다. 이 생각은 틀린 것이고,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의 메시지하고도 맞지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참 하나님이 아시거나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고 우리의 구원이라는 것은 헛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사람이 아니시라면 우리 죄를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절대로 따를 수 없는 신이거나 초인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하나님이 아니시라고 한다면 죄인을 용서하실 수가 없습니다. 성탄절은 없을 것이고 있다 해도 부처 공자 마음의 트 그런 자들의 탄생일과 본질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말하는 이 성육신 인카네이션은 신비가 아니라 신화가 될 것이라는 것이에요.
그러나 감사하게도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지요. 성경이 전하고 우리가 전해받고 우리가 믿는 바대로 그리스도는 완전히 사람이오 또한 참으로 하나님이시다. 영어로 하면 트리 거드이고 퍼펙틀리 휴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람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서로 기뻐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 바라는 인격적인 관계를 가질 수 있다 하는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런 관계를 갖기를 원하신다는 것이죠.
둘째로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하심 거하다. 이 거하심은 구약에서 나오는 장막 있죠. 타버나크 혹은 텐트 이 장막과 연결된 말이에요. 구약 성경에서 장막이라고 하면 광야에서 있었던 것인데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상징적인 의미를 장막은 하나님이 임하시고 그의 백성 가운데 임하시는 곳 또한 장막은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 만나는 곳, 그리고 장막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 자기 자신을 보여주시는 것 말씀하시는 곳이에요.
그래서 이것을 배경으로 우리가 말씀이 육신이 되고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면 그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곳이오 하나님이 자신을 보여주시는 곳이라고 할 수 있어요.
누가요? 예수 그리스도가 그러나 장막과 예수 그리스도의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장막은 비인격체이고 인퍼스널 한 거고 예수 그리스도는 퍼슨이라는 거죠. 하나는 비인격체이고 다른 하나는 인격체이 비인격체가 감당하던 일을 이제는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감당하시는 것이에요.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영광을 보고 또 그의 말씀을 듣는 것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합니다. 장막이 아니고요. 인격이신 참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 그 안에서 우리가 더불어서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바랄 수 있다 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다 그렇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제가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하나님이라고 다 같은 하나님이에요. 아니에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바라라고 이렇게 말하는데 하나님이라고 해서 다 같은 하나님이 아니에요. 이게 많은 생각들이 있는데 그중에 오늘 한 가지만 생각해 보면 이겁니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말하면 많은 종교들이 다 똑같이 말해요. 하나님 하나님 특별히 영어로 보면 더 분명합니다.
거즈 그죠? 거즈라고 하니까 다른 종교들이 다 드러 하나님이라고 말하는데 사실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은 유대교가 말하는 하나님, 이슬람이 말하는 하나님, 힌두교 불교 유교가 말하는 하나님, 또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하나님하고 같지가 않습니다. 기독교 안에도 기독교 안에도 이 교단에서 말하는 하나님하고 저 교단에서 말하는 하나님과의 차이가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고 섬기고 예배하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우리 각 사람 안에 가지고 있어야 돼요.
여러분은 하나님이라고 하면 그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례 받을 때 받은 내용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 좀 더 자세하게 나의 삶에 연결해서 말해줄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하나로 우리가 지난 성탄절을 살펴본 부분이 있죠.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냐 그 하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의 수준에서 보시고 느끼시고 경험할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연약한 몸으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 대해서 잘 아시고 우리의 아픔에 공감하실 수 있고 우리의 마음을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어서 올바른 길로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다. 그렇게 전했죠. 이 말씀은 믿는 우리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이고 또한 우리가 전도할 때 기쁘게 사용할 수 있는 하나님이 되는 거죠.
오늘은 그에 더해서 오늘 말씀에 따라서 다음 세 가지를 더 생각을 해 보기로 해 보려고 합니다. 무엇이냐면 그리스도의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요 사위의 하나님이요 사랑의 하나님이라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우리 하나님을 전하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내용이니까 잘 이해하고 여러분 마음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다. 인격이라는 말 앞에서 벌써 말했어요. 무슨 뜻입니까? 인격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우리 하나님은 비인격체가 아니다 하는 거예요. 돌이나 금 같은 그러한 사물, 태양과 같은 자연 중력과 같은 힘, 또 만유 인력의 법칙 같은 우주적인 법칙, 사람이 만들어내는 도덕이나 기계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는 거예요. 그것들은 여러분이 알지만 우리보다 힘이 셀 수 있고 사람보다 강할 수 있지만 그들은 사람의 인격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태양이 아무리 위대하다고 하더라도 태양이 우리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만들어내고 발견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은 그러한 사람보다 더 크시고 더 높으시고 더 선하시고 더 능하신 인격이라는 것이에요. 유대교나 이슬람도 그렇게 주장할 수 있어요. 우리 하나님도 인격의 하나님이다.
그런데 두 번째에서 볼 수 있듯이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삼위의 하나님이라는 것이에요.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하나님이라는 거예요. 이슬람의 신이나 유대교의 신처럼 단일 인격 싱글 퍼슨이 아니에요. 또 힌두교의 신들처럼 여러 신들이 하나님이 아니에요.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이다 하는 것이 우리가 믿는 사미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다. 사랑을 주는 하나님이지만 스스로 사랑이신 하나님이에요. 이 사랑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신들처럼 사랑이 필요해서 세상을 지은 신이 아니고 사랑할 사람이 필요한 신도 아니에요. 사람이 없어도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도 이미 그 안에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에요.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사랑,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의 사랑 그 사랑은 성령으로 교통하는 영원한 사이. 세상이 없어도 우리가 없어도 여전히 사랑이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정말로 큰 위로가 되는 여러 측면이 있습니다. 거기까지는 가지 않고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이 하나님 곧 인격의 하나님, 사위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이 하나님은 세상이 그냥 머리로 알 수 있는 하나님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하나님이고 그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이다 하는 거죠.
생각해 보셨어요?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지, 여러분 삶과 신앙에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오늘을 기회로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배울수록 그리스도를 알수록, 그리스도를 생각할수록, 그를 경험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바랄 수 있게 되는 그의 자녀들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용을 해서 보자면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을 기뻐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바라지 않는 것 그거는 뭔가 좀 이상한 겁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나 자매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포기하는 것 그것은 요한이 말한 대로 거짓말을 하거나 아니면 믿고 있는 하나님을 잘 모르거나 아니면 다른 신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돼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4년은 여러 면에서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태로 지나갔습니다. 시작할 때는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그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새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세상은 항상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도 있지만 또 기대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이 그런 일들이 생겨날 수도 있는 겁니다. 그 안에는 즐거운 일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슬프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있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어둡고 나라가 복잡하고 삶이 곤고할지라도 모든 고난과 슬픔을 능히 견디게 하시는 이 하나님과의 견제는 1년 360을 5일을 지나면서 꾸준히 늘어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중에는 이미 2024년을 그렇게 보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과 형편 중에도 믿음을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섬김을 통해서, 회개를 통해서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께 더 가까워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죠.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이 2025년에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2025년을 마칠 때에는 열두 달이 지나고 360이 5일이 지나고 마치는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는 우리가 하나님을 더 기뻐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데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갔습니다라고 고백하고 그 안에서 주시는 모든 기쁨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서 감사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 뜻으로 2025년 표어를 우리 마음에 선포하면서 새겨보겠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하나님을 기뻐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바라라.
아멘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