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던 인월은 고려초(940년)부터 역원이 설치되어 운봉현(雲峰縣) 인월역(引月驛)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인월역(引月驛)은 서쪽의 운봉·남원 방면과 동쪽의 함양 방면을 연결하는 교통로였는데 서쪽으로는 남원 이백에 있던 응령역(應嶺驛), 동쪽으로는 함양 제한역(蹄閑驛)과 연결되었으며 역노(驛奴) 15명, 역비(驛婢) 13명, 역마(驛馬) 4마리가 배속되어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인월의 옛 기능은 지금도 이어져 오고 있으니 남원의 읍면 지역에서 유일하게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어 동서울, 인천, 대구, 함양, 남원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신라와 백제의 경계지역이었으며 서울에서 경상도를 잇는 경유지 역할을 했던 인월은 자고로 오가는 길이자 길목이었다.
인월은 산으로 들어가는 지리적 경유지이다. 지리산 둘레길의 영호남 거점으로 남원과 구례의 경계점인 앞밤재를 지나 주천, 운봉을 지나 인월에 도착하여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인 둥구재로 나가는 길목인 것이다. 또한 지리산 태극종주 (90.5km) 코스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구인월 마을을 지나서 덕두봉을 넘어 노고단으로 가는 길에 쉬어가지 않을 수 없는 길목이다.
인월에는 이야기가 서려 있는 두 개의 길이 있다. 향토사학가 김용근 소장에 의해 로선이 규명된 염두고도(鹽豆高道)는 남해의 소금을 지리산 촌락에서 나온 콩과 바꾸기 위해 인월장에서 출발한 지게꾼들과 하동장에서 올라온 지게꾼들이 이용했던 길로써 인월에서 산내를 거쳐 벽소령을 넘어 하동에 이르는 교역로라고 하겠다. 다른 하나는 올 초에 개통한 흥부 대박길인데 흥부가 태어난 인월 성산마을에서 흥부가 세상살이의 역경을 벗어나 복덕촌을 찾아가기 위해 아영 성리마을로 찾아가는 로선이다. 총 14km 구간인 이 산 길은 흥부의 인생역정에 따라 고난길, 희망길, 고진감래길로 부르는데 상처를 딛고 일어나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의 자기성찰 코스로 적합하다.
또한 인월에는 호젓한 야행길이 있다. 람천이 흘러내가 가는 구 인월다리를 지나면 영월정(迎月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이 곳에서 옛 사람들은 음풍농월(吟風弄月) 하며 야행을 즐겼다. 여기에서 람천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물소리를 들으며 2km 벚나무 오솔길을 돌아오면 달빛에 흠뻑 젖는다.
인월은 다른 시골에서 볼 수 없는 도회풍의 소도읍이다. 버스에서 내려 마냥 걷다보면 크고 작은 가게들이 “옹기종기”들어서 있다. 인월의 가로를 걷다보면 시골 속 도심에서 느끼는 이방감(異邦感)과 함께 낯선 곳에서 느끼는 친밀감이 섞여 걸음이 지루하지 않다. 고작 2,800여명이 사는 면 지역이지만 시골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인월엔 없는 게 없다. 대형마트 3개, 병의원 6개, 식당 30여개, 카페 10여개 그리고 아직도 16개에 이르는 다방들까지 성업하고 있다.
길목의 특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 인월은 1080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족적이 새겨진 길과 길목이 살아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구수함을 담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