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류동 계곡의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그림 속 풍경에 들어온 기분이다. 계곡길 따라 걸으며 새들과 눈인사를 한다. 어느덧 해인사 입구에 다다른다.
해인사는 법보사찰이다. 유네스코 등재 팔만대장경을 봉안하고 있다. 진입부가 일주문을 거쳐 봉황문과 불이문 등으로 연달아 배열돼 있다. 일주문에서 봉황문에 이르는 길 양 쪽으로 키 큰 소나무들이 도열한다.
봉황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국사단이 있다. 가람을 수호하는 국사대신을 모신다. 인간세상을 손바닥 보듯이 하는 신이다. 해인사에 재앙을 없애고 복을 내린다. 그 옆으로 불이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계단을 오르면 대적광전을 만날 수 있다. 대적광전은 화엄종 최고의 부처인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다. 뒤편의 가파른 계단 위로 높은 건물이 하나 있다. 이곳이 바로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영역이다.
팔만대장경은 8만1천350판의 목판으로 돼 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과 주석서가 새겨져 있다. 가로 길이 약 70cm, 세로 길이 약 24cm. 무게는 약 3.25kg이다. 글자는 목판 양면에 돋을새김(양각)이다.
약 240여연 동안 3차에 걸쳐 판각됐다. 고려의 불교문화 융성의 정신적 지주였다. 인쇄문화와 기록문화 발전에도 공헌했다. 이런 가치로 장경판전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됐다. 그리고 장경판은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팔만대장경이 간행된 지 자그마치 1천년이 됐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난 2011년은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고려대장경이 제작된 지 1천년이 되는 해였다. 1011년 대장경을 제작하기 시작해 1087년 초조대장경이 완성됐다.
하지만 1232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불타 버렸다. 현재의 팔만대장경은 1236년 새로 제작에 들어가 1251년 완성됐다. 판들을 차곡차곡 쌓으면 높이가 약 3천200m라고 한다. 백두산(2.744m)보다 높다.
팔만대장경은 역사와 문화적으로 중요한 자산이다. 하지만 과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세계의 인쇄술과 출판물 발전을 가져왔다. 양 때문이 아니다. 목판 하나하나의 판각수준이 아름답고 뛰어나다. 한 명의 숙련공이 새긴 것 같은 일정함은 신비다.
팔만대장경은 천년의 신비다.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산물이다. 지금까지 1천년은 앞으로 2천년, 3천년으로 이어져야 한다. 다행히도 올해는 팔만대장경이 해인사의 가을을 깨웠다.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이 4년 만에 열리고 있다.
해인사 경내에도 오색빛깔이 들어선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 절집을 물들이고 있다. 해인사가 가을빛으로 물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