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63기의 계획에 따라 ‘댓재 → 목통령(통골재) → 두타산 → 청옥산 → 고적대 → 갈미봉 → 이기령 → 상월산 → 원방재 → 1,022봉 헬기장 → 백복령'의 29.1km 구간을 13시간 동안 달릴 예정이었다. 혹시 달리다가 지치면, 이기령에서 ‘삼화가든’ 방향으로 탈출할 수도 있다, 그럼 거리 24km, 소요 시간 10시간 코스가 된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기령에서 백복령까지 이어야 하는 숙제가 남지만!
1
두타산[頭陀山]
높이: 1,357m
위치: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삼척시 미로면
두타산은 청옥산과 한 산맥으로 산수가 아름다운 명산으로 사계절 등산 코스로 이름이 높아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깎아지른 암벽이 노송과 어울려 금세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물과 어울린 무릉계곡의 절경 골짜기는 비경이다. 동해와 불과 30리 거리에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기려는 피서객들에게는 이상적인 산이다.
산 이름인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두타산에는 두타산성, 사원터, 오십정 등이 있으며 계곡에는 수백 명이 함께 놀 수 있는 단석이 많아 별유천지를 이루고 있다. 두타산의 중심 계곡인 무릉반석을 비롯해, 금란정, 삼화사, 광음사, 학소대, 광음폭포, 옥류동, 두타산성, 쌍폭, 용추폭포 등의 아름다운 명소와 유서 어린 고적이 많다.
동북능 하산길 678고지 부분에 있는 이 오십정은 둥글게 패인 바위 위에 크고 작은 50개의 구멍이 있는데 이를 쉰우물, 오십정이라 한다.
두타산(1,352)과 4km 거리를 두고 청옥산(1,404)과 이어져 있어 두 산을 합쳐 두타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 산행을 할 수도 있다.
인기 명산[22위]
두타산은 무릉계곡의 쌍폭, 광음폭포, 용추폭포, 무릉반석 등의 아름다운 절경으로 7~8월에 많이 찾는 여름 산행지이다. 무릉계곡의 계곡 산행과 주변의 동해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바다 산행으로 인기 있다.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무릉계곡 등 경관이 아름다운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되었다. 삼화사(三和寺), 관음암(觀音庵), 두타산성(頭陀山城)이 있다. 바위에 50여 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패 산 이름이 붙여졌으며,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는 등 토속신앙의 기도처인 쉰움산(五十井山)이 유명하다. - 한국의 산하
청옥산 [靑玉山]
높이: 1,404m
위치: 강원도 동해시 삼화동
동해시의 남서쪽, 삼척과의 경계를 이루는 곳에는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북동쪽으로 쉰움산이 있다. 청옥산은 두타산 서쪽 3km 떨어진 능선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두타산보다 51m 높은 1,403.7m로 이 산 중 가장 높은 산이다.
두타산과 청옥산은 해발 1,300여m로 동해안에 가까이 솟아 있는 관계로 등반 고도차가 무려 1,200m나 되기 때문에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은 아니다.
청옥산과 두타산 산 아래 펼쳐진 국민관광지 1호, 무릉계곡은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무릉반석과 학소대, 선녀탕 그리고 계곡 양편에 깎아지른 듯한 병풍바위 등 웅장한 절경을 안고 있다.
산행 기점인 무릉반석의 바로 아래 상가마을까지 동해시에서 수시로 운행하는 삼화사행 시내버스가 있다. 그러나 산행 시간만 9시간 정도 소요되는 높고 험한 산이므로 1박 2일 코스로 하는 것이 좋다. - 한국의 산하
고적대[高積臺]
높이: 1,353m
위치: 강원도 동해시, 삼척시, 정선군
동해시, 삼척시, 정선군의 분수령을 이루는 산으로 기암절벽이 대를 이루어,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수행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쪽으로 뻗어진 청옥산, 두타산과 아울러 해동 삼봉으로 일컬어지며, 신선이 산다는 무릉계곡의 발원지가 되는 명산으로 높고 험준하여 넘나드는 사람들의 많은 애환이 서린 곳이다.
상월산[上月山]
높이: 970m
위치: 강원도 동행시
상월산은 백두대간 마루금 천수상이며, 서학골 진산이자, 마을의 수호산으로 용루폭포의 발원지다.
비룡음수형 혈지의 주봉으로 여의주인 수병산(괘병산) 천기를 받아 장수공깃돌바위와 망바위에 생기를 전했다는 신성한 산이다.
상월산 정상에는 장수가 올려놓았다는 공깃돌바위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이곳은 천연기념물 산양 서식지로로 유명하다.
2022년 12월 첫 주 산행은 일요일인 4일, 토요 무박으로 올해 3월에 시작한 21번째 백두대간 연결로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달린다. 이 코스는 30km가량의 거리로 인솔 대장에 따라 다르나, 대략 47~50으로 나눈 백두대간 구간 중 31km가 넘는 지리산 종주를 제외한, 가장 긴 코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팀이야, 대간 구간인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 지리산 성중 종주를 무박으로 달리나, 물론 그 역도, 세석이나 벽소령, 장터목 대피소가 아니라, 산장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1박 하며, 다양한 지리산 종주를 수없이 한 나야. 굳이 대간 종주라는 목적을 위해 다시 달릴 이유가 없으니, 댓재~백복령 구간이 가장 길다. 백두대간 연결 산행이란 게, 지리산 종주와 같이 국립공원을 비롯한 다양한 산을 오른 후, 이미 오른 산들을 연결하면 백두대간 종주와 다름없다는 걸 깨닫고 시작한 거라, 연결을 목적으로 종주 팀 계획에 따라 다시 오를 이유는 없다. 물론 이 산들은 대간 산행과 무관하게 앞으로도 계속 오른다!
백두대간 연결 산행 중 가장 긴 구간이라, 당연히 무박 산행이다. 처음 안내산악회에서 무박 산행이라는 걸 접하고,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감탄했다. 그런데, 막상 실행해보니, 깜깜한 새벽인 2~3시에 시작하는 게 대부분이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상황에서 코스가 길어 체력의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그리고 전체 거리의 1/3 이상이 랜턴 빛이 아니면 앞이 보이지 않는 일출 전이라, 등산이 아닌, ‘극기 훈련’ 기분이 들어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산행 방법이 됐다. 거기다 이 구간 중 댓재에서 연칠성령까지는 2017년 10월 봉 감독과 2박 3일로 덕항산에서 연칠성령까지 유유자적 즐겼던 산행[산행기]과 겹쳐, 나머지 구간만 달리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연구하느라 계속 미루고 있었다. 당연히 돈을 처들이면, 자본주의에서 쉽게 해결할 수 있으나, 그래도 가성비라는 걸 따져보니, 선택지 중 무박이 제일 낫다. 그리고 빨리 백두대간 연결을 종료하는 방법도 무박이라, 이 산행을 선택했다. 이외에도 두 번의 무박이 더 남아 있으나, 남은 두 번은 주어진 환경이 선택지가 아예 없어, 안 한다면 모를까, 애초 고민거리도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를 생활신조로 살아가는 인간답게, 즐기기 위해 대간 연결 산행에서 만난 산꾼 중 이미 이 구간을 다녀온 산친구에게 코스의 난이도를 포함 이것저것 물어봤다. 공통된 의견이 생각보다 길다는 것과 여름이라 물이 부족해 고생했는데, 12월에 가니, 물 걱정은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다, 지난주 속리산에서 만났을 때 한파가 온다는 데 괜찮겠냐고 묻는다. 산행 사흘 전인 12월 2일 금요일, 산행 당일인 일요일 코스에 있는 두타산 산악날씨를 보면, 기온은 영하 5에서 9도 사이, 체감온도는 영하 9도에서 15도 사이, 바람은 초속 3m에서 4m 사이로 강하다. 한마디로 이번 겨울 산행 중 가장 추운 날이다.
춥고, 코스가 길어 오랜만에 등산지팡이를 꺼냈다. 할 수 있는 한, 빨리 산행을 마치기 위함이나, 한파에 대비한 배낭이라 무게가 평소보다 더 나간다는 게 속도를 내는 데 장애 요소다. 날머리인 백복령에 일찍 도착해봐야, 허허벌판인 주차장에서 할 일이 없다는 것도 문제고. 백복령은 2020년 5월 천고지 석병산에 오르기 위해, 백두대간 종주팀을 따라 달렸었다[산행기]. 그런데 코스가 길고, 산이 높아서인지, 산악회 코스 설명을 보면, 백복령까지 1/3 정도 남은 이기령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과거 이기령을 기준으로 나눠서 진행했던 흔적이다. 해서 정 못 견딜 거 같으면 이기령에서 삼화가든 방향으로 탈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기령에서 백복령까지 연결하기 위해 같은 산행을 한 번 더 신청해야 하지만!
2 - 1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서 24시 정각에 출발하는 무박 산행이라,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잠을 잘 자기 위해 수면제를 곁들여 저녁을 먹고, 영하의 날씨에 대비해 겨울용 등산복 위에 패딩 조끼, 그리고 겨울용 바람막이를 입었다. 두꺼운 패딩보다 춥겠지만, 너무 따뜻한 것도 좋지 않고, 특히 몸이 둔해지는 게 싫어, 얇은 걸 껴입는 걸 택했다. 만약 생각보다 더 추우면, 늘 배낭에 넣어 다니는 조끼를 꺼내 입으면 된다. 물을 끓여 보온병에 넣고, 22시 40분에, 22시 53분 불광역발 오금행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서고 나서야 시간 계산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 시각에 맞는 마을버스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택시를 타려고 했으니, 이 또한 없어, 불광역까지 뛰다가 지치면, 속보로 걷기를 반복하며 가 22시 51분에 도착했다. 간신히 22시 53분 차를 타기는 했으니, 양재역 도착이 23:33분으로 너무 이르다. 역 밖으로 나가봐야 추위에 떨기만 할 뿐이라, 역 구내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나와 같은 등산객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들과 같이 역 구내에서 서성이다가, 산악회 버스가 23시 50분 사당에서 출발한 걸 확인하고, 12번 출구로 나가, 국립외교원 앞으로 갔다. 23시 57분에 외교원 알에 도착해 버스가 정차하는 곳을 보니, 10여 명의 등산객이 차를 기다리고 있어,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며, 같이 기다렸다. 이후 생각보다 이른 58분에 서해랑 길 버스를 선두로 무박 산행을 떠나는 4대의 버스가 줄지어 들어왔다. 그런데, 버스 앞창 LED 목적지 표시가, '서해랑길3-10'으로 나온다. 과거에는 들머리나, 주요 봉우리 명을 표기했는데, 최근에 정기산행이나 다름없는 산행에 대해서는 종주 명 다음에 기수, 구간으로 표기를 통일한 듯하다. 인솔 대장에 따라, 마지막 암호인 구간이 제각각이라, 나처럼 처음부터 같이하지 않은 메뚜기들은 목적지를 알 수 없고, 외우기도 쉽지 않다. 역시 메뚜기가 많은지, 인솔 대장에게 목적지를 묻는 등산객이 많다. 내가 타야 할 버스는 '대간63-20'이다. 백두대간 종주 63기가 20번째 구간을 달린다는 얘기다. 63기가 아니면, 어디로 가는지 알기 쉽지 않다. 물론 산행 신청 게시판에는 괄호 안에 들머리와 날머리가 있다. 지난주에 한 번 경험해 봐서, 집을 나설 때 외웠다. 그리고 오늘 출발하는 무박 대간 산행은 이 기수가 유일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배낭을 짐칸에 넣고, 내 자리로 가 자리를 잡고 앉아 잘 준비하자, 버스가 예정된 시각이 24시에 양재 국립외교원 앞을 떠나, 죽전에서 나머지 승객을 태우고 백두대간 댓재를 향해 달렸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한창 자고 있는데, 버스 실내등이 켜지더니, 휴게소로 들어갔다. 잠이 깨는 게 싫어 계속 잠을 청해 어느 휴게소인지는 모른다. 20분의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출발하자, 인솔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번 백두대간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산행의 코스와 주의 사항에 관해 설명을 시작했다. 익히 아는 얘기라 계속 자고 있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가 들린다. 인솔 대장이 백복령 식당에 전화했으니, 일찍 산행을 마친 대간꾼은 식사할 수 있다는 거다. "응? 백복령에 식당이 있어?" 2020년 5월 백복령~삽당령 구간 산행 때 못 봤는데, 그리고 지도에도 백복령 주변에는 식당이 없는데? 대장이 통화까지 했다니, 식당이 있는 건 분명하다. 그럼 추위뿐만 아니라, 산행을 빨리 마쳐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다시 잠을 청해 자고 있는데, 어느 순간, 도로가 너무 밝아 잠을 자는 것도 쉽지 않다. 와중에, 통로 건너 옆 뒷자리의 승객이 핫팩의 열을 내기 위해 흔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열이 날 때까지 흔드는 거 같다. 등산화에 하나씩, 그리고 주머니에 하나 해서 총 3개다. 차를 탈 때 보니, 혼자 온 게 아닌데, 옆의 동료나, 대장이 주의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열 받아서, '남들 잘 때는 같이 좀 잡시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고, 눈을 감고 인내하고 있는데, 버스가 급커브의 고개를 지그재그로 달린다. 목적지인 백복령이 멀지 않다는 얘기다. 해서 실눈을 뜨고 버스 앞 시계를 보니, 3시 20분 정도 됐다. 3시 이전에 도착하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멀다. 그리고 5분 정도 지나자, 실내등이 들어오고, 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이기령으로 탈출할 등산객이 있는지 묻는다. 없으면, 버스는 탈출로 주차장에 들르지 않고, 바로 백복령으로 간다고, 그러자 산행을 해봐야 알지, 지금 어떻게 결정하냐며 웅성거리기만 하지, 손을 든 사람은 없어, 차는 바로 백복령으로 가는 거로 결정됐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백복령까지 달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감 시각을 4시 30분으로 발표하는 거로 대장의 얘기가 끝났다. 그런데, 막상 버스가 댓재에 도착한 시각은 3시 38분이다. 해서 마감 시각을 수정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 말이 없다.
2 – 2
댓재 도착하기 전에 등산화 끈을 조이고, 미니 스패츠 착용으로 등산 준비를 마친 상태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짐칸에서 배낭을 꺼내 메고, 댓재 표지석이 있는 곳으로 갔다. 2017년 10월 이후 두 번째 방문을 기념해, 댓재 표지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본격적인 백두대간 연결 산행을 시작했다. 댓재 도착 직전 인솔 대장이, 댓재에서 두타산으로 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햇댓등'을 거쳐서 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두타산으로 향하는 거라고 했다. 바로 가는 게 20~30분 빠르나, 백두대간은 햇댓등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장은 은근히 바로 가는 길을 권했다. 나야, 댓재에서 연칠성령까지는 봉 감독과 달릴 때 햇댓등을 포함 백두대간을 그대로 따라갔었기 때문에, 이 구간을 다시 달리 생각이 없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어 댓재에서 시작하나, 연칠성령까지 최단 코스로 달릴 계획이었다. 댓재에서 연칠성령까지 바로 가는 길이 있다면, 두타산과 청옥산도 버릴 생각이었으니, 당연히 햇댓등을 버리는 빠른 루트를 택했다.
산행을 시작하고, 임도를 따라 조금 올라가자, 도로가 나기 전 댓재에 도착했다. 두타산과 햇댓등 갈림길로 이정표가 있다. 그 이정표 쪽으로 가며, 혹시 햇댓등 방향으로 가는 대간꾼이 있나 유심히 살폈으나, 내가 보는 동안에는 한 명도 없었다. 바로 두타산으로 향한 사람들은 대간꾼이라 불릴 자격이 없고, 인증꾼이라는 얘기다. 어쨌든 도로가 나기 전 댓재에 도착해, 등산 앱으로 현 위치의 고도를 확인했다. 해발 823m! 이번 댓재~백복령 구간의 가장 높은 봉우리가 청옥산으로 1,404m니, 표고차가 580m가량이다. 말인즉 수직으로 600m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는 거로, 다른 천고지 산행에 비하면 많이 오르는 건 아니라, 크게 힘들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구간 내 기복의 정도가 문제다. 지금까지 산에 다니며, 경험한 바에 의하면 해발 1,000m가 넘지 않는 능선에는 1km 내에 적게는 하나, 많게는 두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2017년 10월 산행은 첫날 자암재에서 야영하고, 둘째 날 두타산 정상에서 야영할 계획이라, 유유자적 자암재에서 두타산으로 향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기억이 없으나, 이번 산행은 할 수 있는 한 빠르게 백복령에 도착하는 게 목적이라, 제대로 된 댓재~연칠성령 구간의 기복 정도를 파악할 수 있을 거다. 댓재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낮은 기온과 강한 바람에 손이 시려 사진도 제대로 못 찍었는데, 막상 산행을 시작하고 숲으로 들어서니, 울창한 숲이 바람을 막아주는 덕분에 생각보다 춥지는 않다. 다만, 무박 산행의 특징인, 깜깜한 새벽 산행이라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어, 랜턴 빛에 의지해 앞만 보고 갈 뿐인데, 기복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가끔 눈을 돌려 왼쪽을 보면, 도로를 따라 불빛이 이어진다. 그리고, 현 위치와 멀지 않아 보인다. 해서 저 도로에서 버스를 내려 이리로 바로 올라왔으면, 시간과 거리를 단축했을 거로 생각하며, 인증꾼들을 앞세우고 뒤에 처져 따라가 3시 55분에 햇댓등에서 오는 긺과 만나는 갈림길에 도착했다. 이정표에 의하면 두타산까지는 5.2km 거리다.
랜턴 빛에 의지해 그저 앞만 보고 가는 산행이라, 가끔 불빛이 환한 도로가 능선과 나란히 달리는 걸 보며, 왜 저기서 산행을 시작하지 못했을까 속으로 투덜거리며, 가다 보니, 봉우리 아래로 랜턴 빛 10여 개가 모여 있는 게 보인다. 위에서 그걸 보고, 처음에는 길을 잃었거나, 환자가 생긴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4시 55분에 현장에 도착해 보니, 길을 잃은 것도, 환자가 발생한 것도 아니라, 이번 구간 까만 소 인증 장소 중 하나인, ‘통골재’다. 통골재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후 까만 소에 등록하면, 인증이 된다. 고로 그 10여 개의 랜턴 빛은 번갈아 인증을 남기느라 줄 서서 기다리던 인증꾼들이다. 인증에는 관심 없는 나 같은 인간은 잠깐 이정표가 비었을 때 이정표만 기록으로 남기며, 내용을 확인했다. 두타산까지 남은 거리는 2.1km, 댓재까지의 거리는 4.0km! 산행 시작 1시간 15분 만에 4km를 왔으니, 대단히 빠른 속도다. 이런 속도로 달릴 수 있다는 건 등산로 상태가 좋고, 기복은 있으나, 높낮이가 심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속속 도착해 인증을 남기는 등산객을 뒤로하고, 다시 두타산을 향해 출발해, 5시 27분에 두타산에서 1.4km 거리의 이정표에 도착했다. 통골재까지 0.7km로, 700m를 오는데, 31분이 걸렸다. 속도가 팍 줄었다는 건, 힘겹게 두타산 정상을 향해 깔딱을 올라가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보이는 건 없다. 이정표를 통과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두타산 정상 반경 50m 내다. 5시 56분에 정상에 도착해, 2017년 이후 두 번째로 정상석을 사진으로 남기고, 두타산을 떠나려는 순간, 두타산을 향해 오는 중 기상하자마자, 치루는 과업을 해결하느라, 지체하는 사이 다른 인증꾼을 다 보내고 만난 (두타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다른 등산객이 도착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둘이, 제일 후미라 생각한), 여성 산꾼이 도착해, 인증용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필요 없다는데,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 나도 기록용 인증을 남겼다. 물론 어두운 랜턴 빛에 의지한 사진이라 제대로 찍히지는 않았다. 기록용 사진을 찍은 후, 지난번 방문 때 간이 텐트를 설치했던 주변을 둘러본 후 구 정상석도 기록으로 남겼다.
이후 구 정상석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청옥산으로 향하는데, 여성 산꾼의 등산 앱이 경로를 이탈했다고 경고음을 발한다. 애초 청옥산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신 정상석 옆으로 난 걸 알고 있었으나, 구 정상석 옆으로 난 길도 그 등산로로 합류할 거로 생각하고 내려갔는데, 아니었다. 해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 신 정상석 옆으로 난 정규 등산로를 따라 청옥산으로 향해, 6시 44분에 청옥산에서 1.4km 거리의 박달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은근히 '햇댓등'을 버리라고 권할 때 청옥산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거로 얘기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서둘러 올라가면 정상에서 일출을 볼 수 있을 거 같아. 아직 일출 전이나, 랜턴 빛에 의지하지 않아도 모든 걸 볼 수 있어, 랜턴을 끄고 배낭에 넣은 후 급경사 깔딱으로 올라가며, 가끔 고개를 돌려, 두타산과 그 뒤로 보이는 여명을 확인했다.
청옥산 정상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서둘러 올라가는데, 정상이 가까워져 오자, 생각지도 못한 눈길이 반겨준다. 문제는 생각보다 미끄러워, 산악회 버스에 두고 온 아이젠이 아쉬워진다. 분명 대장은 아이젠이 필요 없다고 했는데, 내 감을 믿었어야 했다. 어쨌든 미끄러져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급경사를 오르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청옥산 정상 반경 50m 내다. 정확히 7시 24분에 청옥산 정상에 도착해, 먼저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막 인증을 찍은 등산객에게 부탁해, 정상석을 배경으로 기록을 남기려고 하자, 그 등산객이 정상석 뒤에서 사진을 찍으라는 거다. 앞이든 뒤든 상관없어, 폰을 꺼내 그에게 주려는 순간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폰이 꺼졌다. 다시 부팅하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오래 걸리니, 이 추위에 그 등산객을 잡아놓을 수 없어 죄송하다고 사죄하자, 그가, 왜 뒤에서 인증을 찍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청옥산 정상을 떠났다. 청옥산 신 정상석은 다른 정상석과는 달리 앞뒤가 같게 한글로 ‘청옥산’이라 음각되어, 어느 쪽에서 찍어도 같았으나, 뒤에서 찍으면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넣을 수 있었다. 그런 거까지 헤아린 그 등산객에게 감탄했다.
마침 폰이 부팅 후 정상이 됐을 때 여성 산꾼이 도착했다. 정상까지 올라오는 동안 눈길에 몇 번 꽈당하는 바람에 조심조심 올라오느라 늦었다며, 인솔 대장에게 아이젠 필요하냐고 물었을 때 눈이 오지 않았으니, 필요 없다고 했던 그를 원망했다. 어쨌든 그가 도착해 앞선 등산객이 알려 준 방법으로 일출을 배경으로 인증을 찍어주고, 나도 몇 장 인증을 남겼다. 이후 한자로 '靑玉山'이라 음각으로 새긴 구 정상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청옥산 정상을 떠나, 연칠성령으로 향했다. 그런데, 박달재에서 청옥산으로 올라올 때도 정상 부근의 미끄러운 눈 때문에 고생했는데, 연칠성령으로 내려가는 북 사면은 햇볕이 들지 않아, 눈이 더 많이 쌓여 있고, 오고 간 등산객이 다져놓아, 아이젠 없이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태였다. 아이젠이야 버스에 있으니, 그 대안으로 빠른 전진을 위해 가져와 아직 배낭에서 꺼내지도 않은 등산지팡이를 조립 후, 급경사 눈길에 미끄러지지 않게 그것에 의지해 청옥산에서 내려갔다.
연칠성령으로 향하며, 저 앞으로 보이는 암봉의 절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가끔은 뒤로 돌아 막 내려온 청옥산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역광이라 원하는 사진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낮은 기온과 강한 바람 속에서 앞. 뒤의 경치를 감상하며, 계속 북진하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연칠성령이다. 그런데 막상 연칠성령에 도착한 시각은 등산 앱이 메시지로 알려준 거보다 8분 늦은 8시 정각이다. 고로 메시지가 나온 위치가 연칠성령 반경 50m가 아니라 최소 200m가 넘는 곳이다. 등산 앱의 오류인지, 처음 위치를 설정한 등산객? 산꾼? 의 실수인지는 모르겠지만, 앱이 이나라 사람의 실수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어쨌든 댓재에서 산행 시작 후 4시간 22분 만에 연칠성령에 도착했다. 이정표 상의 거리로는 11.1km로, 2.5km/h 정도의 속도다. 오늘 산행은 11시간 30분 이내에 마감해, 1시간 30분의 하산주 시간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럼 2.6km/h의 속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조금 못 미친다.
댓재~백복령 구간에서 높은 봉우리는 다 지나왔으니, 비록 남은 구간에 천고지 봉우리가 몇 개 있다고 해도, 이미 지나온 두타산, 청옥산에 비할 바가 아니라, 속도를 높이는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다만, 천고지를 넘지 않는 능선 위에 늘어선 수많은 봉우리와 댓재에서 연칠성령까지는 기억은 나지 않으나, 한번 달렸던 길이나, 앞으로 남은 구간은 초행이라, 등산로의 상태나 기복을 알지 못하는 게 변수다. 연칠성령의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기고, 떠나려 하는데, 같이 가던 산꾼이 잠깐 쉬면서 뭘 좀 먹고 가잔다. 하긴 나도 배가 고파, 여기까지 오면서 컵라면 먹을 만한 곳을 찾고 있었으나, 멈추면 저체온증이 걸릴 거 같은 날씨라, 쉬지 않고 달려왔다. 다행히 여기는 바람이 강하지 않아, 컵라면은 아니라도, 비상식으로 들고 다니는 걸 꺼내 먹으며 잠깐 쉬는 건 문제가 없어 보여 그렇게 했다. 에너지바와 초콜릿 등으로 당을 보충하며 잠깐 휴식 후 다음 봉우리인 고적대로 향했다.
연칠성령을 떠나 초행의 백두대간을 따라 30분가량 가자, 다시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고적대'다. 그런데, 이번 산행에서 처음 만나는 암봉으로, 바위에 철봉을 박아 그 철봉 사이에 밧줄을 연결해 잡고 오를 수 있도록 했다. 물론 바위에는, 쌓인 눈을 대간꾼이 밝고 다니며 다져놓아, 최고 상태의 빙판이 깔려있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다, 뒤를 돌아보니, 두타산과 청옥산이 마치 쌍봉처럼 나란히 보인다. 역광이라 잘 나오지는 않으나, 사진으로 남겼다. 물론 지나온 백두대간의 모습도. 그리고 8시 38분에 고적대 정상에 올라서니, 앞서 대간꾼 2명이 주변 경치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다. 그들을 방해하지 않게 조심하며, 먼저 정상석과 그 옆 고적대 소개문을 사진으로 남긴 후 같이 가던 산꾼을 기다렸으나, 쉽게 올라올 수 없을 거 같은 분위기라, 먼저 고적대를 떠나 다음 봉우리인 갈미봉으로 향했다. 물론 수많은 봉우리 중 그나마 이름을 가진 봉우리만 거론하는 거다.
고적대를 떠나자, 어디까지 일지는 모르는 기복이 심하지 않은 평탄한 등산로가 이어지고, 갈미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가 능선에서 약간 솟아 나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백복령까지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를 빌며, 갈미봉으로 향하는데, 바람이 잦아들어서인지, 관목 숲 사이에 그나마 쉴만한 곳에는 앞선 대간꾼이 자리를 잡고 앉아,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먹는 모습이 보였다. 해서 나도, 준비한 컵라면을 먹고 가기로 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며 전진하다가, 등산로에서 약간 벗어난 관목 숲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아, 배낭에서 컵라면, 김치, 뜨거운 물이 든 보온병을 꺼냈다. 그리고 준비가 끝난 컵라면 용기에 보온병의 물을 부었는데, 기대보다 뜨겁지 않다. 어제 저녁 22시 20분경 막 끓인 물을 넣었으나. 영하 7도의 이하의 기온에서 외부에 10시간 이상 있었으니, 아무리 보온병이 좋아도, 물의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었을 거다. 어쩔 수 없이, 말 그대로 물에 불린 과자 맛이 나는 라면으로 브런치, 즉 아점을 먹었다. 비록 현재 시각 9시 11분이나, 다시 따뜻한 무언가는 산행 마감 후 백복령에 있다는 식당에서 먹어야 하는데, 3시인 목표 시각에 도착할지도 미지수니, 아침과 점심을 겸한 한 끼다.
따뜻한 물에 불린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모든 흔적을 없앤 후 다시 길을 재촉해, 9시 24분에 무릉계곡 갈림길을 지나, 9시 42분에 바위 전망대에 도착해 뒤를 돌아보니, 두타산에서부터 이어진 백두대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긴 후 다시 백복령을 향해 북진하고 있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갈미봉’이다. 그리고 메시지를 확인한 2분 후인 9시 56분에 갈미봉 정상에 도착했다. 고적대와 함께 갈미봉도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장소 중 하나라, 서너 명의 인증꾼이 지자체에서 세운 거로 보이는 정상 표지를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어, 그들을 방해하지 않게 조심하며, 정상 표지만 사진으로 남긴 후 숲 사이로 보이는 동해안에 접한 도시도 기록으로 남겼다. 사실 이번 산행을 시작하고 밝은 도로가 백두대간과 나란히 달린다고 했는데, 나중에 그 도로를 유심히 살펴본 후 도로가 아니라 동해시라는 걸 알았다. 동해안을 따라, 늘어선 건물 불빛이 마치 도로의 가로등 같이 보였던 거다. 와중에 아주 가깝게 보이는 착시까지.
괘병산(수병산) 갈림길이기도 한 갈미봉 정상을 떠나, 다음 목표인 이기령을 향해 9시 58분에 출발했다. 그런데, 댓재로 오는 버스에서 인솔 대장이 연칠성령에서 이기령에 이르는 8km 구간에는 자갈길도 있어, 쉽지 않다고 했는데, 그 말을 듣고, ‘자갈?’, 너덜을 말하는 건가? 했는데, 예상대로 거의 1km에 육박하는 너덜이다. 청옥산에서 하산할 때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꺼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등산지팡이가 너덜에는 방해만 될 뿐이라, 배낭에 넣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내가 잘하는 끌기 신공을 발휘해 지팡이를 끌고 너덜을 지났다. 그리고 다시 흙길을 따라 15분가량 가자, 이번에는 잘 다듬은 돌을 깔아 만든 포장 인도다. 처음 그 길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해서 혹시 사람이 사는 게 아닌가 주변을 둘러봤으나, 길을 제외하고 어떠한 인적도 없다. 그럼 길 끝이 이기령이 아닐까 생각하며, 지팡이를 끌며 돌길 끝에 도착했는데, 쉼터만 있을 뿐이고, 이기령은 흙길을 따라 1.1km를 더 가야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도대체 왜 돌길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용도가 뭘까?
정체불명의 돌포장 보도를 떠나, 조리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이기령을 향해 하산을 시작하며, 전면을 보니, 오른쪽 아래로 시멘트 포장 임도가 보인다. 그 포장 임도와 포장 보도가 어떤 연관이 있을 거 같은데, 리조트 비슷한 뭔가를 만들려다가 그만둔 게 아닐까? 내려가면 그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산행의 원칙에 따라, 이기령을 향해 계속 내려가는 걸 저어하며 가, 11시 4분에 도착했다. 탈출하려면 여기서 삼척 이기동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다만, 버스가 기다리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 그리고 백복령까지는 10km가 남았다. 곳곳에 평상과 의자가 있어 등산객이든 관광객이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평상에는 앞선 대간꾼 셋이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세 쌍의 중년 부부가 이기령 이정표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일단 이정표를 기록으로 남기고, 의자에 앉아 보온병을 꺼내 따뜻한 차를 한 모금하며 휴식을 취한 후 11시 9분에 이기령을 떠나 백복령으로 향했다.
이기령을 떠나며, 얼마나 올라가야 할지 감을 잡기 위해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했다. 822m다. 생각보다 높다. 이기령을 향해 내려오며, 800m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를 빌었는데, 다행이다. 지금까지 백두대간 연결뿐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달린 백두대간 포함해, 모든 백두대간 산행 중 가장 힘들었던 산행으로 천고지 삼봉산, 대덕산에 오르기 위해, 빼재에서 부항령까지 달린 무박 산행이다. 당일 산행으로 빼재, 덕산재 구간 산행이 있는지 몰라, 함께한 산행으로, 무박으로 빼재에서 출발해 덕산재를 지나 부항령까지 달린다. 그런데, 덕산재에 도착하는 순간 산행을 중지하고, 택시로 산악회 버스가 있는 부항령으로 가고 싶었으나, 여의찮아, 5.2km 거리의 부항령으로 출발했다. 버스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한 채, 해발 1,000m가 넘는 산을 세 개나 넘어, 체력이 바닥인 상태에서 부항령까지 달렸다. 달리는 중에도 하지 말아야 할 산행을 하는 기분이었는데, 결국 마감 시각을 맞추지 못하고 12분 늦어, 낙오했다[산행기]. 그런데, 이기령을 떠나는 순간, 빼재~부항령 산행이 떠올랐다. 마치 덕산재, 부항령과 같이 이기령, 백복령 구간도 하지 말아야 할 산행을 하는 듯한 기분!
이기령을 떠나, 상월산 깔딱을 오르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댓재에서 백복령 구간은 빼재, 부항령 구간과 달리 둘로 나누는 게 쉽지 않았다. 댓재에서 이기령까지 20km 가까운 거리라, 무박 산행이 아니면 답이 없다. 즉 무박으로 댓재에서 이기령까지 달린 후 접속 구간인 5km 아래의 삼척, '삼화가든'으로 내려가면, 24km가 조금 넘는다. 그런데, 이기령에서 10km를 더 가면 백복령으로 총거리는 29.1km다. 결과적으로 5km 내외를 더 가면 된다. 어차피 무박 산행이라면, 둘로 나눌 이유가 없었다. 혼자서 이런 결론을 내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깔딱을 오르는데,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상월산'이다. 그리고 정확히 2분 후 정상에 도착해 보니, 상월산 역시 까만 소 백두대간 인증 장소라, 예닐곱의 인증꾼이 정상석 대신 지자체가 설치한 거로 보이는 정상 표지를 배경으로 인증을 찍고 있었다. 까만 소 인증에는 관심 없으나, 초행의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으니, 기록은 남겨야 해, 먼저 정상 표지를 사진 찍고, 주변에 있던 대간꾼에게 부탁해 인증을 남겼다.
이후 상월산을 떠나며 진행 방향을 보니,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가 앞을 가로막고 있고, 그 봉우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급경사를 한참 내려가야 했다. 혼자 투덜거리며 급경사를 내려가, 다시 급경사 봉우리를 오르는데, 추운 게 아니라 땀이 난다. 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바람막이 안에 입고 있던 패딩 조끼를 벗어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봉우리 정상에 도착해, 대간꾼이 쉴 수 있도록 설치한 의자에 앉아 따뜻한 차가 아니라, 추위에 얼어붙은 500mL 생수를 꺼내 얼음을 깨고 마셨다. 한숨 돌리고 아래로 내려가지, 백복령까지 7.4km 거리의 ‘원방재’라는 고개, 사거리로 두세 명의 대간꾼이 의자에서 쉬고 있다. 1시간 이상의 하산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정표와 관광안내도 등을 기록으로 남기고, , 12시 26분에 서둘러 백복령으로 떠났다.
12시 37분에 원방재에서 1km 거리의 이정표를 지났으니, 백복령까지 남은 거리는 6.4km다. 덕산재~부항령 구간의 악몽을 떠오르게 하는 자잘한 봉우리를 수없이 지나자, 전면에 거대한 봉우리가 길을 막고 있다. 멀리서 그 봉우리를 보며, 제발 대간 상에 있는 게 아니길 빌었는데, 역시 신은 없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고갈된 체력을 박박 긁으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데, 쉽지 않아, 20m가량 올라가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현재 시각 1시 19분이나, 9시 10분경 먹은 컵라면 외에 먹은 게 없어,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등산로에서 벗어나, 배낭에서 먹거리를 다 꺼냈다. 몇 년 전에 배낭에 넣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영양갱을 꺼내 먹고, 이어 에너지 바와 초콜릿 등을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 생수를 깨서 마셨다. 이후, 힘이 좀 나는 거 같아,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자, 등산 앱이 고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백두대간 까만 소 인증 장소 중 하나인, 1,022봉이다.
고지에 도착했다는 등산 앱의 메시지가 나오고 3분 후인 1시 29분에 1,022봉 정상에 도착했다. 대개 높이를 봉의 이름으로 삼는 건, 봉우리에 뚜렷한 특징이 없어, 주변 마을 사람마저 언급하는 일이 없는 게 대부분인데, 이 봉우리는 까만 소의 백두대간 인증처 중 하나라 그나마, 지자체에서 정상 표지도 설치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백두대간 인증꾼은 댓재에서 백복령까지 한 번의 무박 산행으로 목통령(통골재), 두타산, 고적대, 갈미봉, 상월산, 1,022봉 등 총 6곳의 인증을 남길 수 있어, 가성비 최고의 산행이다. 33.6km로 대간 구간 중 가장 길다는 지리산 섬삼재, 중산리 구간도 노고단고개, 삼도봉, 연하천대피소, 세석대피소, 천왕봉 등 총 5곳에 불과하다. 까만 소 인증처답게 많은 인증꾼이 정상 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중에 정상 표지만, 사진으로 남기고 하산주를 위해 바로 떠났다. 백복령까지 남은 거리는 3.5km에 불과하지만, 가장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코스라는 걸 다년간의 산행 경험에서 터득한 때문이다.
정상을 떠나, 급경사 등산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등산로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소나무로 둘러싸인 전망대가 있다. 그런데, 그 전망대에서 보이는 거라곤, 이름도 얻지 못한 1,022봉이 다라, 전망대로 가지 않고, 그 전망대만 사진으로 남기고 계속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1시 30분에 1,022봉 정상을 떠나, 41분을 달린 2시 11분에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백복령까지 남은 거리가 3.5km로 정상에서 본 거리와 같다!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그럼 41분 동안 열심히 달린 건 뭐냐? 애초 국립공원이 아니면, 이정표를 신뢰하지 않고, 이정표가 틀렸다고 남은 거리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 무시하고 계속 북진했는데, 역시 정상을 떠나면 예상한 그대로다. 저 앞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뻗어나가는 능선이 보여, 저 능선을 따라 좌회전하면, 백복령이 아닐까 기대했으나, 막상 그 봉우리에 도착하면 계속 직진이다.
이러한 경우를 3번 정도 당하고, 2시 51분에 백복령까지 1.3km 남았다는 이정표에 도착했다. 물론 믿을 수 없으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믿고 싶었다. 다만, 비록 1.3km에 불과한, 그 내에 최소 2개 이상의 봉우리가 있다는 건 한국 산의 특징이라, 쉽지 않지만. 다행히 이번에는 계속 직진이 아니라,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튼다. 기쁜 마음으로 가다 보니, 역시 한국 산은 끝까지 안심하지 못하는 게 뾰족한 봉우리가 앞을 막고, 있고 오른쪽으로 콘크리트로 한 사면이 덮인 산이 보인다. 2020년 5월 16일 천고지 석병산에 오르기 위해 백두대간 종주 34기와 같이 백복령에서 삽당령까지 달릴 때[산행기], 한창 산을 깎고 있었는데, 그 공사가 끝난 모습이다. 그런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게, 멀리서 보면 거대한 댐처럼 보이나, 댐은 아니고, 그렇다고 산사태 때문에 사면 전체를 콘크리트로 처바른 것도 아닌 거 같고, 뭘까? 해서 이 글을 쓰며 구글링했다. 채석장으로, 돌을 캐느라, 자병산이 사라졌다고. 그럼 내가 본건 콘크리트가 아니라, 깎여나가고 남은 암벽이다.
당시만 해도 그게 채석장인 줄 모르고, 공사장 인부를 위해 백복령에 식당이 생긴 거로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깔딱을 올라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해 보니, 정상에 쉼터가 있고, 안내문이 있는데, 풍파에 다 사려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정상에 도착한 시각이 3시 8분으로, 1시간 30분의 하산주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는 이미 실패라, 1시간으로 변경했다. 이제부터는 백복령까지 하산이라, 얼마나 내려가야 하나 감을 잡기 위해 등산 앱으로 고도를 확인했다. 해발 878m로 생각보다 높지 않다. 해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서둘러, 백복령을 향해 내려가는 앞에 송전탑이 가로막고 있다. 삽당령으로 향할 때도, 송전탑이 중요 표지 중 하나였는데, 이 동네 산은 송전탑이 다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송전탑을 지나, 급경사 등산로로 아래로 내려갈수록 오가는 차량의 소음이 점점 커진다. 차량 소음을 감상하며, 아래로 내려가, 3시 16분에 백복령에 도착하는 거로 2022년 21번째 백두대간 연결인 댓재, 백복령 산행을 마쳤다.
3
백복령에 도착해 백두대간 표지석을 기록으로 남기고, 식당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으나, 보이지 않는다. 다만 나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대간꾼들이 삼척 방향으로 올라갔는데, 그쪽이 아닐까 하는 기대로 따라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갔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그걸 보고, 속으로 '역시 식당은 없는 건가?' 생각하고, 그중에 이번 산행으로 친해진 대간꾼에게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그러자 '버스가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없어서 반대편으로 찾아간다.'라고 했다. 그럼 '식당은?' 하고 다시 묻자, 조금만 올라가면 되고, 영업 중으로 같이 온 대간꾼이 식사 중이라고 했다. 귀가 번쩍 뜨이는 소리다. 버스야 급한 거 없어, 그들과 헤어져 식당을 찾아 올라가자, 벽면 끝에 메뉴가 붙어 있고, 입구라 생각되는 곳 앞에 "영업 중"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는, 간이 건물이 있다.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앞선 대간꾼 세 팀이 각각 테이블을 차지하고,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해서 나도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뭘 먹을지 메뉴를 봤는데, 찌개 종류도 없고,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없어, 묵사발과 이슬이를 주문했다. 그리고 밖에서 씻고 들어와 묵사발을 안주로 이슬이를 마셨다. 그런데 묵사발에 밥이 없다. 해서 공깃밥을 주문했더니, 밥이 없단다. 인솔 대장의 전화를 받고, 안주는 준비했는데, 식사에 관해 언급이 없어 밥은 준비를 안 했다고. 어이가 없지만, 인제 와서 어쩔 수 없어, 이슬이를 홀짝이는데, 두 명의 등산객이 앉아 제육볶음을 주문한 옆 테이블에서 합석하자고 해, 묵사발과 소주를 들과 그들과 합류해 이번 댓재, 백복령 구간 산행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식당에 있던 모든 등산객의 공통된 의견이 백두대간 구간 중 가장 힘들었다는 거다.
합석한 두 등산객뿐만 아니라 식당의 모든 등산객과 산행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밖이 소란스러워 문을 열어보니, 아래 주차장에 있던 버스가 우리를 찾아 올라왔다. 그리고 그 버스를 찾아 내려갔던, 대간꾼들이 식당 주차장에 판을 벌이고 있다. 해서 합석한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이번에 친해진 대간꾼이 이번 기수 총무로, 먹거리를 준비해 왔다는 거다. 본인은 이 기수에 합류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 어울리지 못한다고. 하긴 나도 이 기수와 대간을 달린 건 지난 7월 31일 조령 3관문, 하늘재 구간[산행기] 이후 두 번째라 얼굴이 익은 사람이 없다. 이번 산행뿐만 아니라, 전체 백두대간 산행에 관한 얘기를 나누는, 와중에 주인장에게 식당이 언제 문을 열었는지 물었다. 돌아온 답이 놀랍다. 40년이 넘었단다. 하긴, 백복령을 통과하는 도로가 동서를 연결하는 주요 국도 중 하나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게 셋이 소주 5병을 마시고, 마감 시각에 맞춰 4시 20분경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버스로 갔다.
모든 등산객이 공지한 마감 시각보다, 일찍 버스 탑승을 마쳐, 마감 시각인 4시 30분보다, 이른 시각에 버스는 서울을 향해 출발했다. 역시 대간 종주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특이 무박이 주고, 어쩔 수 없는 구간만 당일 산행으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기수라는데, 이렇게 힘든 구간에 낙오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에 감탄할 뿐이다. 버스가 출발하자, 바로 잠이 들어, 휴게소로 들어간다는 인솔 대장의 마이크 소리에 깼다. 날머리로 향할 때는 자느라, 어느 휴게소에서 정차했는지 모르나, 서울로 향할 때는 볼일을 보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 문막 휴게소라는 걸 알았다. 문막이면 목적지가 멀지 않다는 얘기다. 휴식이 끝나고 버스가 다시 서울을 향해 달려, 7시 38분경 어제 24시에 출발한 양재 국립외교원 앞에 도착하는 거로, 백두대간 댓재, 백복령 무박 산행을 마감했다.
안내산악회 백두대간 종주 63기 계획대로 '댓재 → 목통령(통골재) → 두타산 → 박달령 → 청옥산 → 연칠성령 → 망군대 → 고적대 → 갈미봉 → 이기령 → 상월산 → 원방재 → 1,022봉 헬기장 → 백복령'의 30.10km(트랭글)를 11시간 45분 동안 달렸다. 이동 11시간 2분, 휴식 43분!
4구간의 백두대간 연결 산행이 남아 있으나, 중복 포함 내가 달린 총 61구간 중 가장 힘든 산행이었다. 두 번째는 백두대간 연결에 관심 없던, 2020년 12월 12일 천고지 삼봉산과 대덕산, 초점산에 오르기 위해 흥수와 달린 빼재에서 부항령까지다. 물론 이 또한 무박 산행이었다.
와중에 고적대에 오른 것과 생각지도 못한 이번 겨울 첫 눈산행은 큰 수확이다.
이번 산행으로 민주지산 삼도봉에서 동대산까지 백두대간이 연결됐다. 가능하면 2023년 1월 말까지 나머지 네 구간을 연결하려 했으나, 지리산 서북 능선 고리봉에서 주촌마을은 2023년 5월 철쭉 철에나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