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카파르나움 평원에서 장정만도 5천 명이 넘는 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오한 6,1-16)을 일으키시어 네 번째 표징을 보여주셨다. 기적은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는 일이었으되, 이것이 의미하는 표징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으로 사람들을 영적으로 양육하는 능력을 보여주신 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창조될 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시던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에 오신 존재임을 드러내셨다.
이 기적 사건이 일어났던 무렵 예수님께서 이미 갈릴래아 지방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그 복음을 들으러 모인 이들 가운데에서 병자들을 보면 우선적으로 그들의 질병을 고쳐주셨고 마귀 들린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그들을 마귀의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그러한 기적들이 일어날 때마다 놀라워하는 군중을 대상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의 복음에 대해 가르치셨기 때문에, 군중은 며칠씩이나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로 그분의 가르침을 듣고자 머물러 있던 참이었다.
어느 덧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허기를 채워야 할 식사가 걱정되셨다. 장정만도 5천 명쯤 되었다(요한 6,10)고 하니 전체 군중의 수효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을테니, 당연히 그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음식의 양 또한 엄청나게 많았을 것이다. 각자가 애초에 지참했던 음식이 떨어갈 무렵이니 주체 측에서라도 먹을 것을 마련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 중 필립보에게 물으셨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요한 6,5) 그곳이 카파르나움 근처의 너른 들판이어서 인가가 있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을 감안하면, 이 물음은 실제로 빵을 살 수 있는 장소를 물어보시려고 했다기 보다는, 무언가 복음적으로 대처해야 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일깨워주실 겸 필립보를 떠보려고 하신 말씀(요한 6,6)이었다고 요한은 알려주고 있다. 비상 대책이라도 마련해야 할 상황임을 이미 알고 계셨던 그분은 일상적인 어려움에 부딛치자 이를 계기로 당신의 정체를 알릴 기회로 삼고자 하셨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스승이 물으시는 뜻을 눈치채지 못한 필립보는 곧이곧대로 대답하였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2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 6,7ㄴ) 200데나리온이라면 노동자 한 사람이 1년에 200일 가량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주5일 근무하는 요즘의 기준으로 환산하자면 열 달치 임금에 해당되는 큰 돈이다. 이 큰 돈을 갑자기 마련하기도 어렵거니와 설명 마련한다고 해도 그 한적한 곳에서 그만큼 많은 빵을 사 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결국 주최 측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각자 집으로 돌려보낼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가르침은 중단되어 버리고,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이런 상황에서 당신의 정체를 드러내실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실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안드레아가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를 찾아냈다. 요즘으로 치면 상황실장 격의 역할을 맡았던가 보다. 기지를 발휘해 음식을 가진 아이를 찾아내서 보고하기는 했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요한 6,9) 하고 부연한 것을 보면, 그 자신도 긴가민가 하면서 보고한 모양새였다. 제자들 모두가 어쩔 줄 몰라 하는 형국이다보니 그나마 그중에서 안드레아가 보여준 발 빠른 행동이 돋보이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작정하신 듯 "사람들을 자리 잡게 하여라."(요한 6,10) 하고 이르시고는 아이가 가져온 빵과 물고기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셨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고작 빵 다섯 개와 물고리 두 마리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치셨는데, 이를 제자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자 그 많은 사람들에게 모자라기는 커녕 남은 빵을 모아 담았더니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요한 6,13)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치유나 구마 기적과는 또 다른 기적이었다. 이를 포시(布施) 기적이라고 한다.
이 기적을 목격하고 체험도 한 군중은 열광하며 말을 하였다 :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된 그 예언자시다."(요한 6,14) 여기서 '그 예언자'란 유다인들이 익히 알고 있던 듯한데, 과연 그는 누구였을까? 그는 일찍이 모세가 후대에 출현하리라고 내다본 인물을 말한다 :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15) 모세가 남긴 이 당부는 유다인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빵의 기적이 일으키시자마자 군중이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5)고 기록해 놓았다. 그 이유는 그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을 찾은 군중 앞에서 그분이 밝히신 말씀에서 밝혀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요한 6,26ㄴ-27ㄴ)
이렇게 해서 빵의 기적에 담긴 표징의 뜻이 밝혀지는데, 그 장소는 평원이 아니라 카파르나움 회당이었다.(요한 6,59) 듣는 사람들은 그 숫자가 좀 더 줄어들었겠지만, 사방이 탁 트인 너른 평원에서보다는 군중의 시선이 한결 더 집중될 수 있었던 이 회당에서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에 담긴 심오한 표징의 뜻을 밝히셨다.
배불리 먹게 해 줄 빵을 늘 달라고 졸라대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단도직입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에 대해 선언하셨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ㄴㄷ) 이 엄청난 선언을 듣고도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52) 하며 미심쩍어하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 번 강조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른다. 그리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나도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릴 것이다. "(요한 6,53ㄴ-54. 56) 이 말씀을 바탕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만찬을 드시면서 성찬례를 제정하셨다. "받아 먹어라. 이는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받아 마셔라. 이는 너희의 죄를 사해주려고 내가 흘리는 내 피다."(마태 26,26-28; 루카 22,19-20)
오늘날 교회에서 미사 중에 거행되는 성찬례는 빵의 기적을 표징화하고 최후의 만찬을 잇는 예식으로서, 생명의 빵과 피를 이 예식에 참여한 신자들에게 나누어주는 성사이다. 이 기적에서 연원한 감사의 기도와 빵 나눔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말씀과 동작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을 모은 것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던 것처럼, 표징화된 빵의 기적인 성찬례는 믿음의 무리를 낳는다. 그래서 기왕에 '열두 명'으로 이루어진 제자 공동체에 이어 '열두 광주리'가 상징하는 많은 무리가 또 다른 제자들이 되어 그분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게 되리라는 선교적 표징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 번째 표징인 이 빵의 기적 사건은 빵을 많게 하신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더해서 이로 말미암은 교회의 출현과 믿는 이들의 증가 현상에 대해서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열두 광주리'에 담긴 예수님의 표징적 기대는 성찬례에서 빵이 성혈로 변화되는 것처럼 성사적인 거룩한 변화요, 이를 거쳐 신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인격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