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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대로 지난 연말에 말레이+인도네시아를 20일 정도 다녀왔다.
나의 여행은 볼거리, 먹거리보다 사람부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예상치 않게 초반부터 조그만 얘깃거리가 터져 나왔다.
이야기하나/ 인연
말레이시아 항공기에 탑승해 쿠알라룸푸르로 출발하고 뒷쪽에 자리를 잡았는데, 바로 뒤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대부분이 말레이시아 승무원인 가운데 유일한 한국 승무원이,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뒤의 빈 좌석을
차지하려는 노인을 제지하려다 격한 말씨의 억센 저항에 부딪치는 상황이 벌어졌다. 느닷없는 소란에 여러 나라의
많은 승객들이 불편해 하는 것을 속히 해소시켜야 겠다는 생각에, 망서림없이 점잖은 한마디 말로 사태를 수습해
주었더니, 당황한 여자 승무원으로써는 무척이나 고마웠던 모양이다. 간략히 나의 여행일정 등을 물어 보더니
땅콩이랑 안주꺼리를 조금 준비해 주겠단다. 괜찮다고 말하고 잊어 버리고 있었는데 비행기 내릴 시간이 다가 오자
여러 가지 먹거리를 한 보따리 가져다가 조용히 놓고 갔다. 비행기를 여러번 타 보았지만 이런 인연도 있구나 싶어
여러 길벗들에게 얘기도 하고 나누어 먹으며 다녔다.
20일쯤 지나 돌아 오는 비행기도 말레이시아 항공으로 인천으로 돌아 왔다.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어쩌면 그 승무원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언뜻 스쳤는데, 자리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그녀가 있었고 둘이는 오래된 친구마냥
두 손을 맞잡고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내 좌석을 확인하고는 뒷쪽에 네자리 비는 곳을 만들어 놓을테니
누어서 편히 자면서 가라는 배려를 또 베풀었다. 비지네스석도 아니고 완전히 일등석으로 초대되어 편히 잘 쉬면서
왔고. 그 뒤의 얘기는 생략해도 잘 알겠지만, 얘기하자면, 이번에는 포도주와 작은 위스키 병들이 든 커다란 선물이
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와서, 한국에 가면 식구들 모두 식사 한번 초대하고 싶다고 얘기했더니
말씀만으로도 고맙다며 내 뜻을 거두어 들였다. 돌이켜 보면 진심어린 말 한마디나 행동이, 나와 이웃을 나아가서는
우리 사는 사회를 아름답고 따뜻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며 고마운 인연의 풋풋함에 여행의
피곤함을 말끔히 잊을 수 있었다.
이야기 둘/ 善業--惡業
이번 여행에는 가이드는 없고 길잡이 1명을 포함해서 19명의 동반자가 함께 했다. 길잡이는 단순히 숙소와 이동 하는
MAIN TRANSPORTATION만 안내해 주고 여행지에서의 움직임은 각자의 선택에 따른다.
물론 관광할 곳이 뻔한 곳에서는 비용을 SHARE하는 잇점때문에 같이 움직이기도 하지만, 나는 많이 걷는 편이라
주요 관광지를 보고 나서 어떤 때는 좋은 목적지를 정해서 혼자 트레킹을 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10여명이나 20여명이 모이다 보면 눈에 띄게 튀거나 앞자리만 챙기는 등 조금 못된 사람들이 꼭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60대 후반의 부부가 모두의 눈에 포착되었다.이들은 곧 엑스(X 또는 Ex) 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좀 심해서 남을 배려하는 게 전혀 없고, 주위에서 눈치를 주면 오히려 당연한 듯 몰상식한 언사로 찌뿌리게 하거나
여행을 많이 다녔고 수준 높게 산다는 식의 자랑이나 여행 여건의 불편함에 대한 푸념을 쏟아 댔지만 말을 받아 주는
팀원은 거의 없었다. 자기네만 따로 놀아도 모른체 할텐데 이건 완전히 공해 수준이라 문제인데, 왕따를 당하는 걸
눈치채고도 부끄러워 하고 고치려 들지를 않으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이런 경우는 대개 온실 속에서 조현아같이(?)
고생 모르고 산 경우가 대부분이라 나이가 7-80이 되어도 세상살이에 대해 깨닫지를 못하는 큰 병이 있는 것이다.
이번에도 나는 75세 다음으로 No.2가 되었는데 하기 싫어 극구 사양함에도 불구하고 종전 여행의 대장이나 회장
호칭처럼 CAPTAIN의 별칭으로 불려 매사에 내 의견을 물어 가며 선배 대접을 해 주었다. 나는 CAPTAIN이
아니더라도 전체 분위기에 거스르는 동반자는 좋게 선도해서 끝까지 좋은 분위기가 되도록 애쓰는 편인데, 이번에도
여행 말미에 이들을 따로 만나 남을 배려하며 사는 아름다운 자세등을 조용히 얘기해 주니 그제서야 자기네 성격이나
언동이 좋지 않아서 폐를 끼쳣슴을 인정하고 잠시나마 스스로를 볼 수 있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여행이 조금 힘들어지는 종반에 들어서서는 다혈질의 5-60대 경상도 사나이간의 말다툼이 있었다. 밀양과 대구의
억센 사투리로 맞불이 붙었는데 분위기 깨는 걸 못보는 나는 이 때도 몸싸움 일보 직전의 상황을 부드러우면서도 따끔한
몇마디 말로 잠재우며 전체의 분위기를 차분해 지도록 유도하는 캡틴의 첫번째 덕목에 충실하려고 애를 썼다.
말로도 善業이나 惡業을 쌓을 수 있는데 아직도 우리네 상당수가 말로 많은 것을 잃는 모습을 가끔 본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의 본래 심성이나 인품이 나타나는 것은 좋을 때가 아니고 힘들고 어려울 때이며, 나쁜 모습은
대개 껄끄러운 말이나 행동으로 시작이 된다. 나는 종교도 잘 모르고 불교도 잘 모르지만, 사찰에서 예불을 시작하면,
천수경의 첫 구절인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즉 입으로 짓는 업을 맑게 하는 진언) 인 "수리수리 마하수리-----"가
처음에 나온다. 말하자면 나부터 좋은 말로 오늘을 시작하겠다는 얘기인 셈이다. 불교에서는 또 개개인의 습관, 생각 등
사는 모습 일체를 뭉뚱그리고 아울러 습(習)이라고 한다. 그러니 자연이 千山萬紅으로 다르듯이, 사람도 千人萬習으로
각자 다른 모습과 습관, 생각을 가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習이라는 것이 좋게 바꾸어 보려고 해도 하루 아침에 쉽게
바꾸기는 어렵다. 그래서 평소에 긍정과 웃음과 여유를 내 習의 일부로 하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 한 좋은 버릇이나
생각이 내 몸이나 마음의 일부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天 地 人, 하늘이 열리고 땅위에 인간이 자리하며 모두가
하나같이 하늘을 경배하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를 우러르는 방식은다소 다른 점이 있어 보이는데, 어떤때는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처가 고행하며 깨달은 것을 엿보는 것이니 哲(밝을) 學(배울) ---
나 자신을 찾아 깨달으며 밝게 사는 길을 배우는 것이라고 보아서 말이다. 이번 동반자중 한명은 캐나다 뱅쿠버에서
혼자 왔는데 20여년전 처음 이민가서는 교민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교회를 다녔는데 요즘은 불교 서적을 보면서
흠뻑 빠져들고 있다고 했다. 이는 상당수의 캐나다인이나 미국인들도 마찬가지인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교나
부처 말씀의 깊은 맛에 심취해 가고 있는 일종의 사회 현상이라고 했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제법 오래도록 말을
나눌만해서 많은 얘기를 편하게 나누며 지냈다.
이야기 셋/ 이웃 사촌들
나는 여행중 가급적 살아 온 큰 것만 얘기하고 출신학교등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혹시라도 나의 모습으로
위대한 모교의 인상에 누를 끼치는 경우가 생길까 하는 염려때문이다. 그러나 여행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때로는 본의
아니게 어디선가 내 몸에서 나에 관한 냄새를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두세다리만 건너면 모두가
이웃이라는 말이 현실화되고 그러면 서로의 공통점을 얘기나누며 즐거워 하고 좋은 살림정보도 나누게 된다. 시골로
귀농해서 농사짓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의 사는 모습을 심도있게 얘기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에는 전라도 광주에서 온 모자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담양에 화실을 가지고 있는 현역 서양화 작가이고,
아들도 그림을 전공하고 애니메이션과 게임 제작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참 미술 얘기를 하다가 그만
내 신분이 조금 더 드러나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며느리와 사위가 그림을 전공한 것 등이 얘기로 이어지다가, 그 아들이
자기 은사도 나와 나이가 같다는둥 하면서 그 스승 이름이 이동진이며 우리 모교를 거명하기에 이르렀다.
옆의 한 친구도 같이 끼어 들면서 결국 내가 S교 출신이고 이동진이 동창이라는 게 다 수면으로 떠 올랐다.
참으로 좁은 세상이다. 네바다에 이름을 휘날리는 우리 동창이 여기서 또 나올 줄이야! 이후로 모자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밝은 색감으로 그린 아름다운 화풍의 어머니 그림도 사진으로 잘 감상해 보았고, 이동진이 지금은 충청도
증평에서세상 욕심 다 버리고 자연과 초연히 지내고 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나중에 여수에 있는 조기철한테
갈 때 한번 담양 화실을 들르겠다는 약속도 하면서 또 한번 가까운 이웃의 정을 느껴 보았다.
이야기 넷/ 유적과 화산
나의 이번 여행의 메인 포인트중 하나인 보로부드르 사원과 프람바난 사원이 있는 자바섬 족자카르타 얘기다. 다른 큰
도시나 유적지 얘기는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2억5천만) 큰 나라인데
동남아의 다른 나라보다 여행 인프라 구축이 덜 되고 여행 상품이 적은 편이다. 주로 발리에 여행객이
몰리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위의 두 사원은 나름대로 이름은 널리 알리고 있는 편인데 특히 보로부드르는
전부터 꼭 한번 가고 싶었던 곳이다. 이들 사원 모두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아름다웠지만, 세계 3대 불교 성지
중에서 나의 느낌으로는 "미얀마의 바간" 이 드넓은 평원에 수없이 흩어져 세워져 있는 각양 각색의 사원의 풍광 등으로
제일로 손꼽을 만하고, 위의 "보로부드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왓"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모습과 정취와
규모 등이 비슷한 걸 느낄 수 있었다.
자바섬 동남단의 "브로모화산"과 "이젠화산"은 새벽 4시와 새벽 1시에 각각 기상해서 산행을 시작했는데, 브로모 화산은
얼마 전에 가스와 연기 분출이 심해져서 분화구까지 올라 가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근처 산에 올라 멀리서 활화산이
뿜어 내는 연기와 가스의 치솟음과 흩어지는 연무를 보는 것도 흔치 않은 경험이었고, 이젠화산은 유황가스 분출과
가스에서 흘러내려 응고된 유황을 볼 수 있는 분화구 속까지 내려 갈 수가 있어서 심하게 코와 폐를 자극하는 가스를
참아가며 자연의 살아 있는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시간을 오랫동안 만끽했다. 객기로 땅에 떨어져 있는 유황도 한 두 덩어리
줏어서 가져 왔고, 백두산 천지만큼 커다란 분화구와 호수도 연무가 바람결에 걷힐 때마다 연방 카메라에 담으며 즐거워
했다.
여행 마지막에 발리에서 하루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좀 남아 있다. 발리 해변은 파도가 드세서 수영은 금지된 반면,
써핑은 맘껏 즐길 수 있다. 떠나는 날 오전 몇 시간을 비치를 혼자 거닐며, 하루만 더 있어도 써핑을 좀 배워볼 수 있을텐데
하는 욕심이 좀 생겨났었다. 그러다 보면 나한테는 정녕 써핑을 해 볼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가누나 하며 발길을 돌렸다.
이야기 다섯/ 재미있는 사건 2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로 얘기되고 있지만 발리는 유독 대부분의 주민이 힌두교도이고 유적도 거의 힌두교 사원이다.
그래서 울루와뚜 절벽 사원등을 둘러보는데도 이틀이나 걸린다. 거기에는 좁은 길과 많은 차량으로 하루 종일 교통 체증이
나타나는 발리의 교통환경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 한 요인이 된다.
그 사원 중 한 곳에는 악명높은 원숭이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다. 여러번의 여행을 통해서 각지 원숭이들의 횡포(?)는
잘 알고 있는 터이지만, 이번에는 단순히 바나나나 모자, 핸드백을 노리는 무리들이 아니고 전문적으로 안경을 털어가는
원숭이에 대한 얘기이다. 미리 얘기를 듣고 각자 조심해서 다니고 있었는데, 운동 신경도 좋은 한 사람은 썬그라스를
처음 강탈 당했고, 먹을 것을 급히 바치는 등 해서 바로 찾았는데, 얼마 안 가서 다른 놈한테 또 빼앗겼다. 그러나 이 사람은
운좋게 이번에도 간신히 안경을 회수할 수 있었다.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다. 그런데 다른 쪽에서 모 대학 교수는
썬그라스가 아닌 도수있는 안경을 빼앗겨 버렸다. 당황해 하며 부리나케 바나나를 구해서 뒤쫓아 갔지만, 원숭이는
절벽 아래로 내려가 버렸고 끝내 이를 찾지 못해서 여행 말미의 며칠간을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까지 도수있는 썬그라스로
어둠을 끼고 사는 웃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는 재담있는 화자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각색되어 원숭이 주인이
원숭이들에게 고급 썬그라스 위주로 훔쳐 오라는 교육을 하면서 맛있는 먹을 것을 줄꺼라는둥의 이야기로 돌아 다니곤 했다.
또 다른 얘기는 보로부드르사원을 한껏 감상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사원의 옛 향기를 만끽하며 윗쪽을 더듬어 걷고 있는데,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국기를 펼쳐 들고 단체 사진을 찍으며 왁자지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외국 여인이 다가서더니
인도네시아 국기를 빌려 달라며 훔쳐가듯 가져가서,국기를 거꾸로 펼쳐 들면서 동반자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학생들이 왜 자기네 국기를 거꾸로 뒤집어서 사진을 찍으려나 하고 놀라며, 여인 손에 있는 국기를 뒤집어서
바로 세우려고 손을 댔다. 그랬더니 곧 이어 그 여인이 하는 말에 금방 모두가 빵 터져서 웃음바다가 되어 버렸다.
"나는 폴란드에서 왔는데 우리나라 국기는 너희 국기를 위아래로 뒤집으면 바로 우리 국기가 되는거야"
아마도 사진 찍는 걸 보면서 순간적으로 그 생각이 나서 센스를 발휘한 모양이다.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는 국기를
절반으로 나누어 윗쪽은 붉은 색 아래는 흰색인데, 폴란드국기는 위가 흰색 아래가 붉은색으로 정반대였다. 나중에 혹시나
하고 집에 와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여행을 좀 했다는 나도 이렇게 어수룩하구나 생각했지만,
폴란드 여인의 재치있는 발상도 정말 마음 비우고 다니는 여행자의 순간적인 100점짜리 위트였다.
이야기 마무리/ 행복지수
나는 말레이+인도네시아를 다니며 정말 많은 현지인들과 조우했다.그러면서 그들이 느끼는 삶의 깊이가 어느 정도일까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비록 수치상으로 비교되는 물질적인 생활 형편은 떨어질지 몰라도 그들의 표정에서 읽는 삶의
만족감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아주 높다는 걸 여행내내 느끼며 다녔다. 내가 길에서, 산에서, 관광지에서 교차한
사람들의 90% 이상이 모두 활짝 웃으며 행복한 얼굴을 보여 주었고, 웃기 좋아 하는 나도 똑같이 웃음을 교환하며 다니다
보니 무척 행복했고 20여일을 하루도 찡그리며 지낸 날이 없었다.
게다가 현지에서는 마침 연말 연시 방학철로 접어 들었는지 유적지 수학여행 비슷하게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는데,
한국에서 온 걸 알고는 환호성도 터뜨리고, 빅뱅, 엑소, 슈퍼 주니어를 들먹이며 환대하는 분위기였다. 전에 동남아를 다녀 보면
삼성,현대의 위상과 반기문, 박지성이 정말 나라 위상을 많이 올려 주고 있다고 느끼곤 했는데, 요즘은 정말 K-POP의
효과가 동남아 젊은이들의 가슴 속까지 파고 드는 것이 엄청난 감흥으로 다가왔다. 한편 아시아권 여러 나라에서는
학생들에게 영어를 연마하는 PRACTICE의 일환으로 외국인을 만나면 말을 걸어 보라는 교사의 지도가 하달되어 있는듯
--------(실지로 어떤 교사는 나에게 말을 걸어 그런 취지의 부탁도 해서 기꺼이 응했지만)----
마주치면 둘러싸서 말을 걸어 오고 얘기의 끝은 기념촬영으로 마무리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젊은 그들과 대하는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한 겨울의 추위를 잠시 피해 따뜻한 나라를 다니며 행복지수 높은 사람들과 어울리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래서 젊은이들에게는 만날 때마다 거듭 얘기해 주었다.
"당신들이 당신네 나라의 미래예요."라고.
변변치 않은 글을 끝까지 읽어 주어 고맙군요. 워드 작업도 서툴고 오자 탈자도 많을텐데 잘 새겨 보아 주시고
모두 건강하고 활기찬 한해가 되시기를 빌며----창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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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기행문 여러곳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언제나 부럽습니다 님의 멋진 삶이~~
졸업50주년 보내주신 자료 모두 주인에게 다 돌려 드리고 청암 것만 보관 중 입니다
기회되면 돌려 드리껬습니다.
신년새해 더욱 건승 하십시요....
진짜 여행을 하는 친구,현지인과 함께 하는 여행,옛날 생각난다.마치 내가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한 느낌을 주는 글 솜씨. 부럽다. 다음은 또 어디 인고?
재밋게 읽었구먼,1/17/일 미니츄어 남은거 있으면 시산제에서 소개 하시게 ㅋㅋㅋ
청암이 살아가는 모습, 항상 경이스럽게 바라보았는데 이번 여행기는 길지 않으면서도 많은 깨달음을 주는구려.
나는 아직 매여 있는 몸이라 해외여행을 함께 하자고 하기는 어렵고, 언제 동진이나 기철이 보러 갈 때 동행했으면 싶소.
역시 사진보다는 글이구만~
감사합니다~
멋진 삶을 조명없이 보여 주어 고마우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 하지만 그래도 즐겁게 신나게 소풍 다니는 모습 부러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