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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시진핑이네.”
누군가 말하자 식당 안이 조용해졌다. 이곳은 홍대 앞쪽의 먹자골목 안이다. 오후 11시 반, 워싱턴 시간은 오전 9시 반이 될 것이다. 부대찌개 식당은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모두 2차로 온 취객들이다. 근처 클럽에서 1차를 했기 때문에 떠들썩하다. 그때 워싱턴의 아시아 태평양경협 정상회담장 입구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나타났다. 정장 차림의 시진핑이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오르고 있다. 그 위쪽 현관 안에서 주빈국 대통령 크램프가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크램프가 한 명씩 정상들을 맞는다.
“중국 황제 나가신다!”
술에 취한 40대쯤의 출판업자가 커다랗게 소리쳤다. 앞에 앉은 친구들이 웃기만 했다. 과연 시진핑은 13억 인구를 거느린 대국(大國)의 군주다웠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간 시진핑이 잔잔한 웃음이 밴 얼굴로 크램프의 손을 잡았다. 크램프가 어깨를 한껏 젖혔지만 분위기는 시진핑이 낫다. 지금 식당 안에서는 그것을 평가하고 있다. 시진핑 전에 뉴질랜드,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정상들이 지났지만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때 이번에는 아베가 나타났다.
“옳지, 아베다!”
다시 누군가 소리쳤고 떠들썩했던 식당의 시선이 위쪽 TV로 모였다. 안쪽 윗부분에 TV가 걸려 있어서 사방에서 다 보인다. 계단을 올라오는 아베의 표정은 조금 굳어 있다. 대마도를 ‘탈취’당한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뒤늦게 ‘대마도 탈환’ 데모가 일어나고 있다. 이윽고 계단을 오른 아베가 크램프와 악수를 나누었다. 크램프가 한 손으로 아베의 어깨를 감싸 안는 시늉을 했고 아베는 웃는다.
“좀 미안한 모양이지?”
이번에 소리친 사내는 30대쯤으로 천호동에서 이곳까지 원정 나온 자동차 판매원이다. 이번에도 앞쪽 일행이 웃기만 했다. 아베가 들어갔을 때 화면이 다시 현관을 비췄다. 서동수다. 누가 소리치지 않았어도 식당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요즘 장사는 잘된다. 한랜드가 번성하고 대마도를 수복하는 바람에 나라가 열기에 떠 있다. 어떤 시인은 나라가 ‘술에 취한 것 같다’고 했다. 이렇게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그때 서동수가 계단을 올라온다. 차분한 표정, 단정한 진청색 양복 차림에 머리도 잘 손질되었다.
“잡놈같이 안 뵈는구먼 그려.”
합정동에서 철물점을 하는 40대 사내가 말했는데 앞에 앉은 일행은 웃지 않았다. 그때 계단을 올라온 서동수가 크램프에게 다가갔다. 크램프가 웃음 띤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그때 식당 안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지난날 대한민국, 아니, 남한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장면이 떠올랐다. 모두 당당했다. 모두 어깨를 편 채 손을 내밀었고 시선을 똑바로 미국 대통령과 맞췄다. 5000만 국민의 대표인 것이다. 기가 죽으면 국민의 기를 꺾는 것과 같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그랬다. 모두. 그때다. 서동수가 크램프의 손을 잡았는데 왼손을 오른손목 밑에 받쳤다. 두 손으로 황송하게 잡은 것이다. 그리고 보라. 서동수가 손을 쥔 채 허리를 90도로 꺾어 절을 했다. 머리가 크램프의 배에 닿을 정도였다. 당황한 크램프가 서동수의 어깨를 잡으려고 하다가 말았다. 그때 허리를 편 서동수가 다시 한 번 허리를 꺾어 절을 하고는 그때야 손을 놓았다. 크램프는 당황한 표정이다. 식당 안은 조용해져 있다. 그때 어디서 울음소리가 났다.
“쇼는 내가 안 한 거야.”
그날 밤, 숙소인 워싱턴호텔 방 안에서 서동수가 말했다. 밤 11시 40분, 방 안에는 홍보수석으로 수행해온 하선옥과 둘뿐이다. 서동수는 방금 크램프가 주최한 만찬장에서 돌아왔다.
“다른 분들이야 어쨌는지 모르지만 나는 꾸미지 않았어.”
“그래요.”
하선옥이 다가와 서동수의 재킷을 받으면서 웃었다. 방금 하선옥은 화제가 되고 있는 서동수와 크램프의 인사 이야기를 한 것이다. 외국 기자들은 그것이 과장되었다고 했다. 서동수의 앞으로 다가온 하선옥이 넥타이를 풀면서 말을 이었다.
“내일 아침에는 기자들이 나한테 어젯밤 어디서 잤느냐고 물을걸요?”
“뭐라고 할래?”
“여기서 잤다고 할까요?”
하선옥이 눈웃음을 쳤다.
“한국에서는 어젯밤 각하께서 크램프와 인사하는 장면을 보고 다 울었대요.”
“왜 울어?”
“그냥요.”
다가선 하선옥이 서동수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안았다. 턱을 서동수의 가슴에 붙인 하선옥이 서동수를 보았다.
“저도 그 장면을 보고 울었어요.”
“글쎄, 왜?”
“불쌍하고 고맙고 자랑스럽고… 등등.”
하선옥이 시선을 내리더니 얼굴을 가슴에 붙였다.
“허세를 부리는 것보다 훨씬 나았어요.”
“난 무릎 꿇고 큰절이라도 할 수 있어. 이번에 관세를 올리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서동수가 하선옥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엉덩이가 단단해진 걸 보니까 거기가 준비된 모양이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머리를 든 하선옥의 입에 입술을 붙였다 뗀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그걸 하고 나면 굳어진 엉덩이가 풀리는 법이지.”
“기가 막혀.”
하선옥이 손을 뻗어 서동수의 남성을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여기도 벌써 굳어져 있네요.”
“같이 탕에 들어가자.”
“욕조에 물 채워 놓을게요.”
몸을 뗀 하선옥이 욕실로 들어섰다.
이제는 경제다. 냉전시대를 거쳐 미·중의 양강시대까지 70년을 지나오면서 미국은 엄청난 국방비를 쏟아부어 세계 질서를 잡았다. 세계의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대한민국과 러시아가 연합한 제3제국을 내세워 중국을 견제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크램프다운 발상이며 실리적이다. 혼자서 엄청난 국방비를 쏟으면서 세계 질서를 잡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더니 하선옥이 머리만 내밀고 말했다.
“오세요.”
자리에서 일어선 서동수가 욕실로 들어섰다. 하선옥은 이미 욕조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알몸이다. 가운을 벗어던진 서동수가 욕조에 몸을 담그면서 탄성을 뱉었다.
“좋구나.”
“힘드셨는데 보너스를 받으셔야죠.”
옆으로 다가온 하선옥이 서동수의 어깨를 주물렀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시 활기가 돌아왔어요. 이 활기로 경제를 일으키면 돼요. 그럼 모든 것이 풀리게 돼요.”
서동수가 손을 뻗어 하선옥의 허벅지를 움켜쥐었다. 내 역할이 그것이다. 활기.
다음 날 오전, 9시 10분에 본회의장인 워싱턴의 ‘링컨’호텔로 들어선 서동수가 곧장 로비 안쪽의 제2 귀빈실로 들어갔다. 기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구역이었지만 이미 정보는 다 알려져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 서동수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의 비공식 단독 회담이다.
“여, 동수 각하.”
기다리고 있던 푸틴이 그렇게 불렀는데 친근감의 표현이다. 그리고 틀린 호칭도 아니다. ‘서 각하’보다는 어울린다. 단독회담이라지만 푸틴은 메드베데프를, 서동수는 비서실장 유병선을 대동하고 있다. 인사를 마친 넷이 자리에 앉았을 때 푸틴이 웃음 띤 얼굴로 서동수를 보았다. 오늘 회담은 서동수가 갑자기 요청한 것이다.
“각하, 무슨 일입니까?”
“예, 대한민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문제인데요.”
푸틴이 시선만 주었고 서동수가 말을 이었다.
“미국 측에 우리가 미군 주둔 경비를 다 지불하겠다고 제의할 예정입니다.”
푸틴과 메드베데프가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이다. 남북한이 연방제로 통일되었지만 주한 미군은 아직 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 측은 대한민국 측이 철수하라고 할까 봐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미군 주둔 비용을 다 내다니.
“아니, 그러실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은 오히려 나가라고 할까 봐 겁내는 것 같던데 말입니다.”
지구에서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은 서동수와 푸틴뿐일 것이다. 그때 서동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미국이 중국과 대한민국의 수입 관세를 100% 증액한다는 안을 이번에 결정할 것 같습니다.”
푸틴이 시선만 주었다. 사실이다. 미국도 예고했고 이번 회의에서 관철시킬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치명타를 맞는다. 경제성장률이 대번에 3%대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 미국 의존도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타격은 받겠지만 중국만큼은 아니다. 서동수가 머리를 들고 푸틴을 보았다.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 각하, 부탁이 있습니다.
“뭡니까?”
“한랜드 서남쪽 일부 지역을 미 공군 기지로 임대하도록 허가해 주시지요.”
“…….”
“비행장과 기지, 미군 숙소와 미군 가족까지 살 수 있도록 타운을 건설해 주려고 합니다.”
“…….”
“제가 크램프 대통령 사위 쿠슈너한테 한시티 서북방 3000만㎡를 무상임대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쿠슈너가 제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각하.”
“…….”
“그렇게 되면 미국은 한랜드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경제 제재를 받지 않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푸틴의 시선이 메드베데프에게로 옮아갔다. 그때 메드베데프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말했다.
“각하, 이것은 중국이 동북3성을 내놓을 도박보다 더 안전합니다.”
푸틴의 눈이 더 번들거렸지만 아직 입을 열지는 않는다. 메드베데프의 목소리가 열기를 띠었다.
“각하, 러시아로서는 전혀 손해가 없는 장사입니다.”
그때 푸틴이 입을 열었다.
“총리, 동수 각하 앞에서 장사 이야기는 하지 말아.”
그러더니 푸틴이 서동수를 향해 웃었다.
점심시간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중국 주석 시진핑은 방으로 총리 저커장, 외교부장 우린, 비서 왕춘을 불렀다. 시진핑의 표정은 굳어 있다. 오전 회의 때 미국 대통령 크램프는 미국은 더 이상 ‘제 살을 깎아서 타국의 배를 채우게 하는 미친 짓’은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희생’만 해왔으며 그것을 ‘이용하는’ 국가들의 ‘먹이’가 되었다고 화를 내었다. 상당 부분 맞는 말이어서 반발하는 국가는 없었고 일부 국가원수는 머리를 끄덕여 공감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후에는 미국 측의 충격적인 ‘선언’이 예상되었다. 그것은 중국과 대한민국 등 선진국 대열에 오른 국가의 미국 수입품 관세를 100% 올리는 것도 포함될 것이었다. 국가 간 회의에서 불쑥 돌출되는 사건이나 문제는 없다. 모두 사전에 실무자들이 내놓고 협의하고 결정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시진핑도 예상은 하고 있다.
“유예기간을 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어. 최소한 5년은 받아야겠지?”
시진핑의 시선을 받은 저커장이 한숨을 뱉었다.
“정보를 모아본 결과 2년 이상은 안 될 것 같습니다, 동지.”
“나도 보고를 받았지만 2년이면 너무 촉박해. 구조조정할 시간이 모자라네.”
눈을 크게 뜬 시진핑이 왕춘을 보았다.
“한국하고 같이 크램프를 밀어붙였으면 좋겠는데 서 대통령은 아침에 푸틴을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지?”
“별다른 동향은 없습니다.”
시선을 내린 왕춘이 대답했다. 정보를 캐내지 못했다는 말이었다. 온갖 기기를 동원해서 적극적으로 도청, 미행, 도촬을 해대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또한 상대방은 결사적으로 그것을 막고, 방해한다. 서동수와 푸틴의 만남에 대해서는 방어하는 쪽이 승리한 셈이다. 입맛을 다신 시진핑이 셋을 둘러보았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관세 제재를 받으면 제3세계 대세가 꺾이겠군.”
“당연하지요.”
저커장이 대답했다.
“세상은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는 법입니다. 한쪽이 불리하면 유리한 부분도 있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옛 말씀에 새옹지마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오후에 열린 회의 때 크램프 대통령이 오전에 설명한 미국 정부의 방침을 발표했다.
“미국은 중국산 수입제품에 대하여 전 품목 100% 관세를 적용할 것이며 그 시기는 다음 달 초부터로 정할 것이오.”
시선을 든 크램프가 길게 숨을 뱉고 나서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은 한랜드와 중국의 동북3성까지 연결되어 중국, 러시아 경제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므로 관세부과는 무기한 보류합니다.”
크램프의 시선이 시진핑 쪽으로 돌아갔다.
“중국의 동북3성의 생산품은 이번 관세 적용에서 제외하게 됩니다. 다만…….” 말을 잠깐 그친 크램프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이제는 서동수 쪽을 보았다.
“동북3성 제품은 한랜드의 관인이 찍혀야 인정을 합니다.”
회의장이 수선거렸지만 중국 측 대표단도 아직 영문을 확실히 알지 못한 터라 낮게 수군거리기만 했다. 시진핑도 옆에 앉은 저커장, 왕춘에게 물었지만 아직 손익과 내막을 파악하지 못했다. 회의장의 분위기는 어수선해졌다. 강대국 중 아베는 앞쪽만 보았는데 딴생각을 하는 것 같았고 푸틴은 하품을 했다. 서동수는 앞쪽 방글라데시 대통령만 보고 있었는데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이 커졌다. 웃음을 참으면 그렇게 된다.
“동북3성 제품의 무관세 수입이라.”
크램프가 벽에 붙은 지도를 보면서 감탄했다. 오후 6시, 크램프는 백악관으로 돌아와 집무실에 앉아 있다. 주위에는 국무장관 존슨, 안보수석 레빈스키와 측근들이 둘러서 있다.
“서동수가 신의 한 수를 두었군.”
크램프의 말을 레빈스키가 거들었다.
“각하께서 두신 것이지요.”
“아부하지 마.”
이맛살을 찌푸린 크램프가 레빈스키를 노려보았다.
“나한테 두라고 시킨 게 서동수다. 그럼 내가 서동수 심부름꾼이란 말이냐?”
“죄송합니다, 각하.”
그렇지만 레빈스키는 그런 표정이 아니고 크램프도 화를 낸 것 같지는 않다.
“이제 동북3성이 타깃이 되었군.”
다시 지도를 노려보면서 크램프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지도로 모였다.
“동북3성 제품에 관세가 면제되면 생산공장이 몰려들겠지?”
“이뿐만 아니라 타 지역 생산품도 동북3성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경제보좌관이 거들었다.
“일일이 다 확인할 수는 없으니까요.”
“나도 사업을 한 사람이야, 캐빈.”
경제보좌관에게 웃어 보인 크램프가 말을 이었다.
“창고가, 수송업체가 몰려들겠군, 캐빈.”
“한랜드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되니까 한랜드의 도로와 철도, 대한민국의 창구로 돈이 쏟아질 것이고요.”
캐빈이 맞장구를 쳤을 때 질세라 레빈스키가 나섰다.
“동북3성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램프의 시선을 받은 레빈스키가 말을 이었다.
“동북3성은 옛날에 한민족의 영토였지요. 제가 요즘 대마도 문제 때문에 한민족의 영토에 대해서 조사를 했습니다.”
“동북3성이 말이야?”
크램프가 놀란 외침을 뱉었다.
“저 넓은 땅이?”
“예, 한민족의 고구려라는 나라의 영토였습니다. 수도는 평양이었고요.”
“그럼 저기도…….”
동북3성에서 시선을 뗀 크램프가 정색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사업하면서 느낀 건데 다 내놓고 덤비는 놈이 가장 무서워. 서동수가 바로 그런 놈이야.”
크램프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저 자식이 순 오입쟁이인 줄만 알았는데 나한테 인사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어. 아, 내가 이놈보다 한 수 아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
“그러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거야. 그래서 잘 때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도대체 이유가 뭔가 하고 말이야. 그랬더니…….”
주위를 둘러보는 크램프의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그건 바로 진심이었어. 나에 대한 서동수의 진심.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진심을 느낄 수가 있더라고.”
“…….”
“우리를 일본놈들한테서 해방시켜 주고 북한 침략으로부터도 구원해준 미국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키겠습니다 하는 진심이 보이더라니까?”
어깨를 부풀린 크램프가 말을 이었다.
“이런 건 정치만 해온 인간들은 느끼지 못해. 사업을, 그것도 생사를 걸고 사업을 한 인간들이나 느낄 수 있다고. 바로 서동수하고…….”
크램프가 엄지를 구부려 제 얼굴을 가리켰다.
“나 같은 인간들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