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지는데 / 서순희
삼학동 사무소에서 문해교실이 8월 중순 시작됐다. 여덟 분이 참여했다. 남자도 한 명 있다. 교재로는 시청에서 보내준 소망나무 1,2로 초보적인 성인 문자 지도를 하도록 만들어졌다. 수업은 글자에 중점을 두고 반복적으로 진행한다. 할머니는 조금은 달랐다. 상식적인 표현도 가능하고 세상의 이치도 두루 안다. 어린이, 다문화 부인, 장애아동과는 출발점에서 달라 10월까지 여러 가지 방법이 수업에 도입됐다.
나이는 일흔에서 아흔 살 조금 못 되고 전부 홀로 지낸다. 억지로 권한 것은 아니지만 마지못해 공부하면서 큰 일 하는 것처럼 유세도 한다. 지금은 제법 글씨도 반듯하게 쓰고 숙제도 잘해 온다. 처음처럼 집에 가서는 쉬라고 해도 언제 또 공부하겠냐며 해 본단다. 수업 중에 혼자 떠들어 대는 사람에게는 조용히 하라며 규율을 잡기도 한다. 누구랄 것도 없이 열심이다. 남 지원자는 병원에서 수술 중 신경을 잘못 건드려 몸 균형이 깨지면서 장애인이 돼 버렸다. 손을 벌벌 떨면서 글씨를 쓴다. 걸을 때도 비틀비틀 균형을 잡지 못하면서 긴장한다. 현재 개인택시를 몬다. 어둡고 말이 없다. 초등학교 중퇴자가 아니라 글쓰기도 제법 한다. 속사정을 11월 가서야 알았다. 무언가 해 보고 싶은 것은 공부였다. 학원은 낯설어 편한 동사무소에 왔다. 늦게라도 수업 내용을 바꾸었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뿐이다. 지금은 한국어 토픽 중급을 공부한다. 능력에 맞게 문해 교실을 운영하는 것은 내 몫이다. 택시 기사님은 할머니 묻는 말에 대꾸하며 차도 마신다.
문화체험활동을 하는 날이다. 삼학동 사무소 문해 교실 지원 선생님은 빠짐없이 참석하라고 했다. 장소는 고하도로 정했다. 소풍 가듯 닭백숙으로 차린 점심을 먹고 해상 케이블카를 탔다. 관광객이 의외로 많았다. 늦가을의 유달산 풍경이 발아래에 있었다. 아름다운 산은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렸을 때 가 봤던 일등바위를 쳐다보며, 옛날에는 돌조각들로 길을 내어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주변이 잘 다듬어져 올라가기 쉽게 됐고, 산 아래 집들이 사라졌다는 목포에서 뼈가 굵은 할머니 추억담이다. 케이블카가 너무 좋고, 신난다고 했다. 고하도에 도착하자 걷기가 힘든 분은 대합실에 남았고, 나머지는 산에 갔다. 30분 정도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단풍이 든 수줍은 산이 우리를 반겼다.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털었다. 진도 조도, 영암, 비금, 압해도에서 목포로 시집왔고 나머지 분은 이곳이 고향이다. 공부할 나이였던 5,60년대 집은 가난하고, 형제자매가 너무 많아 학교는 꿈도 꾸지 못했다. 몸에 쫓아다녔던 가난과 고생 중에 제일 힘들었던 것은 시어머니 시집살이였다.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며느리에게 온갖 궂은일을 다 시켰다. 열 명이 넘은 시집 식구, 허드렛일까지 하고 나면 깊은 밤이다. 평생을 이렇게 살았다. 구순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말이다. 다른 분들도 손발이 문드러졌다. 엄마 대신 집안일도 하고, 식모살이를 하고, 나중에는 공장도 조금 다녔다. 지금은 좋단다. 이렇게라도 공부도, 구경도 하면서 재미나게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세상에 제일이라나. 할머니 시간이 살아났다. 자식조차도 무심하지만 섭섭하지 않다고. 그저 잡초같이 세상을 살아왔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읽고, 적어보는 것이란다. 그것이 제일 하고 싶단다. 해는 져 가는데, 유서를 간단하게 써 보겠다는 결심이다.
‘주님 이 어르신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