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익는 마을의 책 이야기
자비에-로랑 쁘띠 지음 『마에스트로』
슬프다
가수 정훈희가 부르는 노래 ‘안개’를 듣는다. 드라마 <헤어질 결심>의 OST로 다시 유명해진 곡이다. 유튜브에서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정훈희가수가 이 노래를 부를 때 배우 탕웨이가 객석에서 눈믈을 흘리고, 그 옆에 있던 배우 박해민이 애뜻하게 이를 바라보는 장면을 보았다. 나는 가사의 의미와는 다르게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슬퍼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주변인들이 떠올려졌다. 죽음은 죽어가는 과정의 고통을 뒤로하고 안개 속 같은 무진공간으로 사라져 가는 것이다. 슬프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터진 부차의 학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이 말도 안 되는 갈등과 격돌. 차라리 그 대결에 사람의 비참한 숨결만은 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1세기 기후위기, 지구종말 어쩌구하는 시대에, 화성이주, 우주시대 저쩌구하는 시대에 야만의 인류를 보고 있다는 것이 슬프다. 어쩌면 노래 ‘안개’의 서정과 서사도 사치다. 학살된 이스라엘 키부츠 아이들을 생각하면, 폭격에 팔레스타인의 무너진 회색 벽돌 건물들을 보면 내 몸에 묵직하게 느껴지는 염증과 통증도 고맙고 감사할 일이다.
마에에스트로
20세기 중반 언제쯤 볼리비아에 독재정권이 있었다. 도시 빈민가에서 어린 여동생과 살고 있는 12살쯤 되는 친구가 있다. 아버지는 광산에서 일하다가 파업에 지도부로 참여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는 분쇄 작업장에서 일하다가 사고로 죽었다. 이 친구는 외국인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구두닦이를 하고 동생은 엽서를 팔았다. 어느 날 소매치기를 하다가 민병대원에게 들켜 두드려 맞고 잡힐 위기에 처했다. 그때 어느 한 할아버지가 그 친구를 구해줬다. 독재자 대통령의 친구라 하고 민병대원을 물리친 것이다. 할아버지는 친구와 친구의 동료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초대했다. 그 곳은 악기로 가득찬 음악 건물이었다. 할아버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 대연주자 마에스트로였다. 할아버지는 빈민가의 부랑아들을 모아 제자들과 함께 첼로, 바이올린, 트럼펫등을 가르켰다. 아이들은? 일부는 대충하고 일부는 열심히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한 두달 실력을 늘려 갔다.
볼리비아에 장마가 오랫동안 지속됐다. 물가는 오르고 먹을 것은 부족했다. 빈민가 부랑아 아이들은 더욱 굶주렸다. 그러나 길 건너 상점에는 먹을 것이 넘쳐났다. 어느 날 시나브로 모인 사람들이 상점들을 공격했고 식료품을 약탈했다. 음악 학교 아이들도 참여했다. 그러다 쫓긴 아이들이 음악 학교로 피신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은 보호했다. 절뚝이라는 친구가 민병대원들의 구타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사람들은 절뚝이의 장례를 치뤘다. 십여 일이 지나 할아버지의 친구라는 독재자 대통령이 찾아왔다. 둘은 죽마지우였다.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했던 둘은 어른이 되어 생각과 삶의 길이 달라졌다. 할아버지와 아이들은 미뉴에트와 모차르트 소나티네를 연주했다. 대통령은 “이 망나니들을 데리고 뭔가 하기는 한단 말이지?‘ 말하자, 할아버지는 총으로 무장한 호위병들을 보며 반문했다. ”자네는 이 사람들한테서 뭔가 이끌어 내나?“
연주회 도중 밖에서는 군중들이 모여 들었다. 대통령 반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시위는 폭동으로 번졌고 할아버지와 대통령은 급히 피신하게 되었다. 음악 학교 건물은 시위대에 의해 불에 탔다. 망연자실한 상황에 아이 중 한 명이 잿더미 건물 계단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알트로 논 아모~(나는 달콤한 평화만을 사랑한다네 나는 자유만을 갈망한다네 조심하시오 운명은 잠잠해 보일 때라도 태풍을 숨기고 있다오) 아이들은 불타는 곳에서 겨우 빼낸 악기들을 집어 들어 수리했다. 어느 덧 나타난 할아버지가 이들을 모아 연주를 시작했다. 모차르트의 소나티네. 기자들은 이 연주를 ’부랑아들의 오케스트라‘라고 이름 붙였다.
삼 년이 지났다. 할아버지는 콘서트 직후 심장발작으로 사망했다. 친구는 일할 나이가 되어 광산으로 돌아갔다. 동생은 중학교에 입학했다. 노래를 불렀던 아이는 세상에서 유명한 테너가 되어있었다. 오케스트라 멤버는 그 이후 흩어져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독재자 대통령이 죽고 볼리비아에는 정직한 대통령이 국민의 뜻대로 집권했다.
인생의 의미와 재미
우울한 맘으로 빛바랜 이 책을 꺼내 읽었다. 다 읽은 지금도 맘은 좋지 않다. 그럼에도 소설의 의미를 내 기억에 담고 싶다. 지금도 비루하고 비참한 처지에 몰린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인생의 의미와 재미가 신의 가호와 더불어 함께 하기를 소원한다.
책 익는 마을 원 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