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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강응황(姜應璜) 자(字) 위서, 호 배천(白川)....이순신 장군의 친구로서 전쟁중 편지가 있다.
1393년(선조26, 계사)
1월 관리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백성들은 떠돌며 굶어죽다
10일. 정사고가 문병하는 편지와 함께 약재 두봉을 보내왔다. 박경실 형, 노지부, 강위서(姜渭瑞)도 편지를 보내 문병해왔다. 이들이 참으로 정이 도탑지않았다면, 아, 어찌 이같이 정중하겠는가?
10월 임금과 세자가 한양으로 돌아오다
6일. 노 원장, 노지부, 정사고, 정현경, 노경승, 진군술, 노빈부, 조수보, 이자반, 하자명, 강위서 등과 함께 의병소의 군기와 군량 등에 관한 일을 의논하려고 향교의 정자에 모였다
20일. 정사고, 노경승, 진군술, 강위서, 하자명과 함께 이야기하고 어사를 만나보았다.
1394년(선조27,갑오)
4월. 백성들이 굶주리고 종자가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다.
1일. 생기가 차츰 돌아와서 혼자서 그저 기뻐했다. 정사고, 강주서(姜周瑞), 강위서가 편지를 보내 문병했다.
1596년(선조29, 병신)
2월 호랑이가 집에 들어오다
15일. 성주를 만났다. 서원에 가서 문묘를 배알하고, 지부, 군술, 강위서와 대화한 뒤 헤어졌다. 또 서평에서 김찰방을 만났다.
6월 성주가 금부나장에게 잡혀가다
5일. 약속된 모임에 가기위해 강위서와 정사고를 만났더니 모두 '사자같은 명령'이 내려질까 두려워 감히 모임에 가지 못했다. 강위서가 정사고를 만류해서 모임에 가지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 말을 채찍질해서 군술을 찾아가니, 군술은 이미 모임에 가버렸다...
10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다
10일. 강경성의 장례에 가서 신주에 글자를 써 줬다. 노지부와 대화하고 오는 길에 강위서를 만났다.
11월 도망쳐 숨는 것이 나라를 위한 계책이다
30일 서원에 가서 강위서와 정첨지를 만났다. 땅거미 질때 서원에 갔더니, 노지부와 강경정이 와서 만나 정답게 이야기했다.
1597년(선조30, 정유)
1월 가파르고 험한 산성을 둘러보다
30일. 서원에 가서 지부, 경실, 경정,위서 등과 함께 잤다.
2월 의병 군량을 모으는데 항의를 받다
12일. 서원에 갔다. 조간보 형, 공간, 지부, 위서와 만나서 의병 군량일을 의논했다. 날 저물 무렵에 귀가했다.
4월. 정사고, 강원보,강위서와 더불어 시냇가에서 회를 처먹었다.
9월. 왜적이 곳곳에 진을 치고,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다.
10일. 동면에 가서 강위서를 만났다. 위서가 노친을 모시고 평안한 것을 보니 어찌나 위로가 되는지. 선영에 참배하고 신주묻은 곳을 살펴보았다...
강경정은 아들을 잃었고, 자실은 처자를 모두 잃었다.
27일. 오후에 다동에 가서 전유옥, 강위서와 대화한 뒤 스님의 움막에서 편안하게 쉬었다.
10월 왜적이 여러 고을을 약탈해 가족과 함께 피란하다.
13일 아침 무렵에 날이 갰다. 전유옥과 더불어 노지부를 만난 뒤 노 참봉, 강 목사, 노경소, 경승, 강위서, 강극수를 방문했다.
1599년(선조32, 기해)
4월 배설이 사형됐다는 소문을 듣다.
27일. 강위서와 대화했다. 박공간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윤4월. 호환과 가혹한 정사가 겹치니 백성들이 불쌍하다.
1일. 강위서와 작별하고 오후에 움막으로 돌아왔다. 강위서가 당나귀를 빌려줘서 걸어오는 것을 면하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12일. 당형과 만나서 오랬동안 소식이 없던 궁금함을 풀었다. 조태항은 합천으로 갔고, 나는 조카와 함께 돌아와서 강위서를 방문했다...
15일. 강위서와 함께 누워 조용히 담화하다가 한밤이 돼 잠이 들었다. 노예산과 박공간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1600년(선조33. 경자)
5월 향회를 열어서 죄지은 사람을 벌주다
14일. 아침을 먹고나니 날이 갰다. 오후에 전유옥과 더불어 강위서 집에 갔다. 노충보도 와서 함께 숙박했다.
27일. 날이 저물었기에 조카와 더불어 강위서 집에서 잤다.
6월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에게서 왜놈 소식을 듣다
19일. 강위서가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정담을 주고받으니 감개가 어찌나 무량한지!
28일. 대수에 가서 향회에 참석했다. 나는 유사에서 물러나고 강위서로 대신하게 했다.
7월. 명나라 군사가 모두 돌아가다.
1일. 강경정과 헤어졌다. 강위서가 찾아와서 함께 우항으로 갔다.
19일. 향교에 가서 정여개, 노경소, 강위서, 하자명등을 만나고 네 면에 글을 보냈다. 장차 책판, 쌀, 베 등을 거두려 하기 때문이다.
22일. 원장과 헤어졌다. 강위서와 함께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오는 길에 용성에서 오는 노예산을 만났다.
23일. 위서와 더불어 선생을 찾아가 뵙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침 조카가 병이 나서 출발이 늦어져 저녁에 이화언집에서 묵었다. 강경정도 왔다.
10월. 타작을 끝냈는데 소출이 적어 걱정하다.
10일 소문을 들으니 '강위서가 매 한마리를 잃어버리고 다른 한마리는 병들었다'했다. 강위서가 부모를 위해 새들을 놓아먹였는데, 이렇게 잘못돼버렸으니 탄식이 나오는구나!
11월 명나라 도망병들이 행패를 부리다가 체포되다
20일. 강위서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길에서 하대수를 만나 선생 소식을 들었다.
29일. 강경정, 강위서, 양치숙, 양형언 등 여러사람이 조문해왔다.
12월. 죽은 막내딸의 장사를 지내다
20일. 박순명이 붙들려서 옥에 갇혔다. 정사연과 함께 가서 만났다. 또 강위서와 대화했다.
21일. 노예산이 천변에 도착했다. 가서 여러시간 동안 대화했다. 하위재, 자순, 강위서 또한 만났다.
1601년(선조34, 신축)
1월 쉰 가까운 나이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과거에 응시하다
2일. 서원에 가서 문묘에 인사드리고, 여러 벗과 대화했다. 노경승과 정극승도 왔다. 황혼이 돼 강위서 집에 가서 함께 잤다.
12일. 양형언, 강경정과 대화한 뒤 경정과 함께 강위서를 방문했다. 진주에서 온 황언시와 만나서 오랫동안 대화했다. 저물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2월 과거에 떨어지고 계집종을 잃어버리다
16일. 아침에 강경정과 박윤경이 찾아왔다. 오후에는 강위서와 정사연을 두루 방문했다.
26일. 강위서, 정사연 등과 만나서 대화했다. 집안일은 잊고서 밤에 술마시며 매우 즐거워하다가 자리를 마쳤다.
27일. 개평사는 노참봉을 방문해서 한나절 대화했다. 노경승등과 이야기했다. 그리고나서 강위서와 함께 돌아왔다.
3월 좌의정 이헌국이 어진이를 훼방놓고 나라를 병들게 한다
14일. 대수에 가서 강위서를 찾아보고 잇따라 최규보를 방문했다...
비가 왔다. 술마시고 취해서 서원에는 못가고 강위서와 함께 정문원 집에서 잤다.
15일. 위서와 더불어 서원에 가서 경소, 형언, 충언 등을 불러서 대화했다. 오후에 척서에 가서 원장과 함께 송림과 관어대를 두루 살펴보았다. 노예산을 방문한 뒤 저물 무렵에 귀가했다.
29일. 강위서가 천변에 도착해서 오랫동안 대화했다.
4월 벗들과 함께 월암정에서 즐기다
11일. 정여계를 조문하고는 남촌에서 강위서와 잠깐 대화했다. 날 저물어 귀가했다.
25일. 대수촌에 있는 강위서를 방문했다. 강원보, 여수, 상경과 더불어 술마시고 크게 취해 정자에 가 촌집에서 잤다.
26일. 위서와 말고삐를 나란히해서 노 원장을 방문했다. 북면의 벗들이 모두 모여 대화했다. 원장이 신복 개울가에 계단을 쌓고 정자를 만들었다. 또 물을 막아 못을 만들었는데 물고기 수십마리가 활발하게 노닐었다. 한가하고 그윽한 정취가 사람을 즐겁게 했다. 정자의 이름은 '만수(晩修)'다.
5월. 부음정에 가서 내암 선생을 뵙다.
8일. 노예산, 강위서와 약속하고 함께 합천에 갔다. 오후에 진목정에서 말먹이를 주고, 저물어서 이화언집에 묵었다.
9일. 김응구를 방문했다. 오후에 부음정에서 선생을 뵈오니 도체가 아주 평안하셔서 얼마나 기쁜지, 선생께서 강위서와 함께 계셨기에 해인사에서 묵었다. 최덕구는 노예산을 만난 뒤 성주로 돌아갔다.
7월 제주에서 역적모의를 하던 길운절이 스스로 고변하다
4일. 강위서와 임극신이 찾아와서 나를 초대해 대수촌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날이 저물어 강위서집에서 잤다.
7일. 병이 깊어진 머슴이 죽었다. 종들을 시켜서 매장했다. 신분이 비록 종은 아니지만 매우 섭섭하고 서운했다.
8월 서원 옮길 터를 척서정으로 정하다
27일. 강위서의 화답을 받고 평안함을 알고나니 얼마나 기쁜지!
9월 조정에 왜와 강화하려는 의논이 있다.
2일. 대수촌에 있는 강위서를 방문해서 경치를 즐기며 술을 마셨다. 그러고나니 사연 집에서 잤다.
22일. 강위서가 말을 보내 나를 초청했다,. 참봉 노예산, 채 찰방과 함께 술마시다가 날 저물 무렵에 마쳤다.
10월 기축옥사를 일으킨 사람들 벌주기를 청하다
15일 노예산,경승, 강위서와 함께 와서 원장을 방문하고 저녁무렵에 귀가했다.
11월 강화가 이뤄지지않으면 왜적이 다시 침입한다는 소문이 돌다
10일. 아침에 서원에 가서 강경정, 조계수와 대화했다. 오후에 강위서를 방문하니 하자의도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12월 이귀가 상소해 내암 선생을 공박하다
4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에서 가소로운 일이 있다고 하니 탄식할 만하다.
19일. 박여수가 와서 대화했다. 향우들이 향교에 모여 장의를 다시 뽑아는데 강위서가 뽑혔다고 한다.
1602년(선조35, 임인)
1월 임금께서 최영경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다
18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평안함을 알았다.
윤2월 내암 선생께서 임금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시다
28일. 노경승, 경후, 강위서, 최국경, 국로, 조수일 등 여러 사람이 고대에 모여 술취해서 매우 즐겁게 놀았다.
3월 가뭄이 매우 심해 백성들이 탄식하다
7일. 조카와 더불어 백토에 가서 동고례를 했다. 강군망, 강희망, 정덕옹, 노경소,경후, 임인중, 강위서, 노면재, 노빈부,여임이 와서 모였다. 당형 또한 빈객으로 참여했다. 날 저물어 비가 오다가 밤중에 갰다. 빈부 집에서 잤다.
8일. 강위서와 더불어 새벽에 길을 나서서 강극수를 방문했다. 노임중 집에서 아침을 먹고 오후에 귀가했다.
11일. 돌아와서 서원 건물을 샅샅이 살펴보니, 많이 무너져 내려서 안타까웠다. 오후에 강위서가 찾아와서 최규보와 함께 대화했다. 날 저물어 귀가했다.
5월 내암선생께서 사직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시다
22일. 향교에 가서 노경승, 강위서, 임극신과 함께 잤다.
6월 내암 선생께서 사퇴하시자 소인배들이 기뻐하시다
28일. 아침에 권준, 박문영 등과 만나서 잠깐 대화했다. 두 사람은 곧 별거를 보러간다고 했다. 낮에는 강위서를 만나 보았다.
7월 선조와 인목왕후의 가례날이 정해지다
22일. 강위서가 나를 부르면서 말을 보냈다. 그래서 취한정으로 가서 온종일 대화했다.
30일. 대수에 가서 강위서와 대화하면서 선생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땅거미가 질 때 서원에 가서 잤다.
8월 남계서원 이전 공사를 시작하다
6일. 재계하기 위해 향교에 가서 경소, 강위서와 횡당에서 함께 잤다. 조용히 친밀하게 이야기했다.
12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를 만났다. 선생께 편지를 올리고 강척, 초부와 대화했다.
10월. 서원공사를 보살피다.
22일. 강위서를 방문했다. 강위서가 정제룡에게 욕을 당했다고 한다. 정제룡의 사람 됨됨이가 한양 성문 앞에서 사람을 막아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1월 서원 이전으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다
21일. 나촌에 가서 공사를 감독했다. 강목사와 강위서가 찾아와서 대화했다. 땅거미질 때 귀가했다.
27일. 원장을 찾아가서 만났다. 공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과연 뒤쫓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강경정이 찾아왔고 강위서도 왔다.
12월
6일. 강위서, 노임중과 더불어 성주가 자리에 없었을 때 말한 내용을 진술해 주려고 성주를 만나려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1603년(선조36, 계묘)
1월 합천에 가서 내암선생께 새해인사를 드리다
12일. 합천에 가서 강위서, 노임중을 만났다. 중로에 비를 만나 옷이 모두 젖었다.
2월 주변 권유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다
22일. 강위서를 방문해서 대화했다. 정사연도 왔다.
3월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잇따르니 나랏일이 걱정이다
16일. 강위서를 찾아가서 만났더니 볼이 아파서 안색이 좋지않았다. 그러나 원기는 오히려 씩씩하니 어찌 걱정만하랴!
4월 서원의 두 사당 지붕덮기를 끝내다.
1일. 진시에 일식으로 해가 반 이상 가렸다. 하늘의 변고가 여기까지 이르니 사람일을 가히 알겠다.
상(喪)때문에 머물렀다. 이화언과 강위서가 와서 만나보았다.
13일. 서원에 머물렀다. 강목사, 강극수, 노경후와 강위서가 와서 대화했다. 날 저물어 귀가했다.
24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아직도 병이 다 낫지않았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5월 양홍주가 내암선생을 헐뜯는 상소를 올리다
19일. 강위서를 찾아갔다. 노임중이 오기로 약속했으나 오지않았다. 머물러 있다가 취한정에서 대화했다.
20일. 위서와 함께 머무르며 대화했다. 식후가 되자 비가 와서 앉아서 경치를 감상했다.
6월 잡혀간 사람들이 일본 사신과 함께 돌아오다
24일. 강위서, 정사연, 노여임이 와서 대화했다.
7월 양홍주 벌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다
15일. 서원에 가서 문묘에 배알했다. 노원장, 강위서, 노면재, 경후, 강극수 등 여러 사람이 와서 만났다.
26일. 돌아가신 어머니께 햅쌀을 올려드렸다. 병이 조금 나았으나 두통은 그치지 않았다. 강위서 편지를 받아보니 노익산의 병이 전보다 더 중해졌다한다. 탄식이 나는구나!
9월 서인들의 행태에 대해 통탄하다
2일. 노참봉(노경안) 장사에 가서 참례했다. 정덕옹과 강위서 등 여러 벗과 더불어 여임의 정자에서 잤다. 조계수가 딸을 잃었다고 한다.
18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를 방문했다. 들으니 '선생께서 병환때문에 덕산서원에 조남영 선생 위패를 봉안하는 데 가시지 못했다'한다.
11월 10년동안 맡은 유사 자리에서 물러나다
6일. 강위서가 송천에 가는 편에 선생께 문안편지를 올렸다. 한강선생께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11일. 복통은 조금 나았지만 두통이 그치지 않는다.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1604년(선조37, 갑진)
1월 북쪽 오랑캐가 침범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다
21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26일. 위서 편지를 받아보았다.
3월 왜적과 무역을 재개한 소식을 듣고 분개하다
14일. 판관 박공간과 강위서가 찾아왔다. 들으니 '강극수가 고을수령에게 곤욕을 당했다'했다.
30일. 강위서를 방문했다.
4월 영의정 이덕형이 임해군의 비행을 직언했다가 파직당하다.
3일. 송천으로 가고자 작정하고 저물어서 강위서 집에 가서 잤다. 위서는 어른께서 편찮아서 함께 가지 못했다.
12일. 위서와 함께 합천에 가기로 했으나 병때문에 못가서 한스러웠다.
19일. 강위서를 방문했다.
5월 유일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다
3일. 운고에 가서 극수와 위서를 만났다. 상소하러 갈 유생을 의논해서 결정했다.
7일. 뇌계정에 가서 놀았다. 하첨지 생일 잔치날이라서 강위서와 함께 참석했다.
16일. 소문을 들으니 '거창 상산에서 땅이 갈라지고 불덩어리가 날아올랐는데 모양이 큰입과 같았고, 가조쪽으로 가다가 떨어졌다'한다. 괴변이다, 괴변!
27일. 향교에 모여 상소올리는데 함께 갈 유생을 뽑고, 보낼 물건을 의논했다. 강극수와 강위서도 함께했다.
7월 명나라 장수가 와서 무명을 바치라고 요구하다
9일. 익승, 강위서, 하자명 등과 하루 종일 대화했다. 저녁무렵에 귀가했다.
11일. 개평에 가서 노문보를 호상했다. 강위서와 함께 노임중 집에서 잤다.
12일. 성복한 후에 강위서와 더불어 돌아오니 이미 황혼이 지났다.
8월 전주 선비들이 회재의 억울함을 풀고자 상소하다
9일. 노경소, 강위서, 박여수가 와서 대화했다. 병이 조금 나았다.
9월 새로 집지을 터를 살펴보다
6일. 서원에 머물면서 공사를 보살폈다. 저물면서 돌아오다 길에서 정사연과 강위서를 만났다.
12일. 위서와 더불어 산으로 놀러가기로 약속하고 서계에서 만났다. 그런데 임중 등 여러사람이 오지않아서 중도에 그만두었다. 한탄이 나왔다.
20일. 귀가했다. 붙들러 간 사람들을 위해서 소고대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부르며 위로했다. 그런데 성주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크게 노해서 최함정에게 곤장을 때리고 정덕옹을 꾸짖었다. 나와 강위서 등이 성주에게 그 곡절을 변명했는데, 이른바 '관뚜껑을 덮고나서야 일생의 일이 마침내 끝난다'는 것이로구나.
22일. 강위서, 조카와 더불어 우평에 갔다. 땅을 살펴보기 위해 지남철을 띄워보니까 신좌을향에 동남쪽이 무너지는 형상이다.
26일. 강위서와 새터에 가서 살펴보고 날 저물무렵에 박공간을 방문해서 함께 잤다. 문상 또한 왔다.
9월 전라병영 이전 관련 뇌물사건이 터지다
1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를 만나보았다.
4일. 이른 아침에 용유담으로 갔다. 오익승, 노경소, 강위서, 우혜보, 손관부 등 여러사람을 엄천에서 만나 서로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갔다.
오후에 용담에 도착해서 용당에 모여서 숙박했다. 여러사람이 술을 가져와 매우 즐기다가 마쳤다. 그런데 술마시는 도중 박군수가 익승에게 거슬리는 말을 많이 했는데 편협한 허물을 차마 볼 수 없었다.
5일. 식사 후에 경치를 둘러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익승에게 새로 정한 집터를 함께 둘러보자고 청했으나 거절하고 가버렸다. 강위서와 함께 저물어서야 귀가했다.
19일. 익승과 더불어 새 터에 가서 살펴본 뒤 강위서 집에서 함께 잤다.
25일. 강위서, 고몽삼과 더불어 서원짓는 새 터를 살펴보았다. 저녁에 새 서원에서 잤다.
10월 임금의 병이 낫지않는다니 걱정이다
8일. 한양으로 가는 강극수를 전별하기 위해 잤다.
9일. 새 터에 도착해서 강위서, 치숙, 빈부와 대화했다. 안음사는 신영이 찾아왔다.
12일. 호상(노익상)하기 위해 가서 경소, 강위서와 함께 잤다.
11월 순찰사가 탐학이 심한 창녕수령을 꾸짖어 내쫓다.
3일. 오후에 무지개가 나타나고 비가 갰다.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5일. 강위서가 찾아와서 반나절 동안 이야기했다.
20일. 강론시험보는 조카들을 살펴보기 위해 조계수와 더불어 안음에 갔다. 함양에서는 강론에서 떨어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어찌나 기쁘고 다행인지! 날 저물어서 강위서, 강희망, 노경후와 더불어 덕옹 집에서 잤다.
22일. 강위서와 함께 노임중,경선을 방문하고 저물어서야 귀가했다.
24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와 대화했다. 양치숙과 하자익도 왔다.
12월 아내가 세상을 떠나다
27일 강위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찰방 박공간이 편지를 보내면서 말안장 등도 보내왔다.
1605년(선조38, 을사)
1월 아내의 장례를 준비하며 여러 사람의 조문을 받다
1일. 친구들에게 부음을 알렸다. 관만들 재료를 유을에게 얻었다. 강위서가 먼저와서 호상하고 오후에 찰방 박공간이 조문해왔다.
4일. 강목사가 조문왔다. 강극수가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을 들으니 강위서가 병을 얻었다고 한다.
5일. 김응구가 작별하고 떠났다. 강위서에게 편지를 내 문병했다.
8일. 조카가 강위서를 문병했다.
11일. 박공간과 서로 작별하고 오는 길에 강위서를 방문했다. 찰방 강언룡(姜彦龍)이 찾아와서 대화했다.
23일. 동면에 가서 임인백, 극신을 만나보고 조계수도 만났다. 오는 길에 강위서를 방문했다.
2월 아내를 매장하고 제사를 지내다
16일. 닭이 두번 울고 발인해서 진시에 산소에 도착해 하관했다. 관위에 회를 한자쯤 폈다. 오후에 강위서가 제주를 썼다. 유시에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우제를 지냈다.
30일 강목사 형제, 노경승, 강위서, 노임증이 함께 모여 일을 의논했다.
3월 새 서원으로 세 선현의 신주를 옮겨모시다
15일. 최규보, 강찬보, 강위서가 와서 대화했다.
25일. 강위서와 양형언이 와서 대화했다. 소문을 들으니 '승냥이와 호랑이 일곱 여덟마리가 중국에서 우리 국경안으로 들어와서 대낮에 사람을 잡아먹었다'한다. 깜짝놀랄 일이다.
4월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다
3일. 최국경 형제와 더불어 개심사에 놀러갔다. 양치숙과 강위서가 절로 가는길을 찾기 위해서 오랜시간 대화했다.
5일. 덕봉에 가서 계모임 일을 돌보았다. 노경승, 임중, 경소, 강위서와 함께 잤다.
6일. 경승, 임중은 개평으로 가고, 나는 경소, 위서와 함께 돌아왔다.
7일. 나는 ...일찍이 제멋대로 함부로 하는 잘못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현인이 되기를 희망했으니 옛 서적에서 스스로 깨친바가 조금 있었다. 박공간, 박경실, 노지부, 정현경, 강극수 등과 서로 친하게 지냈다.
경자년(1600)에 초야의 높은 선비 노씨 어르신께서 원장이 돼 서원옮기는 논의를 함께 내고 좋은 땅을 찾아 일을 시작했다...내가 하던 일을 강극수에게 맡겼다.
갑진년(1604)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예법을 여쭤 장례를 치러서 아내 잃은 그르침을 면할 수 있었다.
사생을 함께하는 벗 강위서와는 우산언덕에 함께 묻히기로 정해 두었으니 정이 한가지요, 뜻이 한가지요, 스승과 벗이 한가지요, 궤안이 한가지요, 방훼가 한가지로다....
상을 당한 뒤 을사년(1605)에는 사람 일에 뜻을 잃었으나, 그저 '세 선현을 모신 사당'이 풀숲에 파묻힐까 걱정됐다. 그렇지만 일을 맡은 강극수가 성균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으니 언제 신주를 봉안해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엿보고 있다가 잘못될 경우 함정에 빠뜨리려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위서, 강극수와 더불어 비방하고 헐뜯는 말이 함께 들어왔는데 그 끝이 없구나! 이는 외로운 학은 무리가 적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무리가 많은 것과 같다. 이로부터 인사를 사절하고 문을 닫아 걸고서 허물을 살피려한다.
허물이 있다면 고칠 것이오, 없다면 웃고 살피지 않음과 같구나!
5월 북쪽 오랑캐가 함경도 종성부를 점령하다
22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6월 북쪽 오랑캐를 막기위해 남쪽에서 정병을 뽑다
12일. 강위서가 보낸 하인을 만나보았다. 위서는 평안하게 지낸다고 한다.
15일. 죽은 아내의 망제를 지냈다. 강위서 편지를 받아보고 그가 평안함을 알았다.
25일. 조수일과 강위서가 찾아왔다.
7월 좌도에 큰물이 져서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많이 죽다
8일. 개평에 가서 노문보의 초기를 보았다. 강위서, 임중 등과 더불어 여임 집에서 숙박했다.
30일. 최규보등 여러사람과 더불어 강위서를 방문했다.
8월 순찰사(이시언)가 파직되니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다
12일. 과거급제 방이 붙었는데, 진사에는 영해사는 남경훈이 급제했다. 생원에는 단성사는 이유열, 함양사는 김득용, 이공한, 강위수(?) 등이 합격했다.
9월 일본에 잡혀간 친구가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다
1일. 죽은 아내의 삭제를 지냈다. 노면재, 강위서와 고대에서 대화했다.
10월 장원급제한 사람이 상중에 고기를 먹어 사판에서 삭제되다
3일. 오후에 강위서를 방문한 뒤 날 저물어 서원에서 강극수와 자면서 친밀히 이야기를 나눴다.
11월 정병을 뽑는 공문이 도달하니 인심이 두려워하다
3일. 새 집터에 가서 흙집을 지었다. 강위서와 정담을 나눴다.
12월 가솔들이 새로 지은 초막집으로 옮기다
5일. 강위서 편지를 받아보았는데 권청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진실하고 정이 두터운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죽다니 슬프구나!
17일. 새 집터에 가서 온돌을 만들고, 강위서와 함께 잤다. 방항진과 잠깐 대화했다.
1606년(선조39, 병오)
1월 선비사회의 갈등이 심해지다
12일. 강위서가 송천에 갔다. 선생께 편지를 올리고 박공간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2월 새집을 짓기 시작하다
16일. 강위서가 부모님 장수를 비는 잔치를 열어서 밤새도록 크게 즐겼다.
24일. 강위서가 진주에 갔다. 저녁에 비가와서 나무를 심었다.
3월 새로지은 집에 입주하다
15일. 강위서와 함께 대고대에 가서 구경했다. 조카와 강극신도 왔다.
4월 중전이 대군을 낳으니 세자가 물러나겠다고 상소하다
1일 강위서와 더불어 취한정에 가서 놀았다.
22일. 혈계에 가서 놀았다. 강위서, 규보, 사연, 경소, 인백과 함께 만났다.
5월 탐학하는 관리가 파직되다
13일. 강위서가 진주에 갔다.
6월 고을수령이 고과에서 하를 받아서 위로해주다
23일. 강위서와 더불어 개평에 가서 호상을 맡았다. 길에서 정덕옹을 만나 잠깐 대화했다.
7월 선현들 위차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다
21일. 새집으로 돌아왔다. 선수희가 대수촌에 왔다고 해서 강위서와 함께 만나보고 조용히 담화했다.
9월 내암 선생을 만나러 덕산서원에 갔으나 헛걸음하다
11일. 선생께서 곧 덕산서원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강위서, 강극수와 더불어 덕산서원으로 출발했다. 산응향교에서 함께 잤다.
16일. 서원에 머무는데 이 원장이 서원에 도착했다. 함께 자면서 오래 만나지 못한 회포를 풀고 평강함을 위로했다. 위서와 경소는 먼저 돌아갔다.
10월 임금이 임해군 일로 대신들을 나무라다
6일. 종형을 찾아가서 조문했다. 하예산께서 보내신 답서를 보니 강위서, 정휘원, 강극수, 오덕홍 등이 유사가 됐다고 한다.
11월 산음에 가서 한강선생을 만나다
12일. 강위서와 더불어 산음 도사헌에 가서 한강선생을 뵈었다. 얼굴뵙지 못한지 이제 12년이 됐는데, 형용이 윤택해 조금도 쇠한 모습이 없으시니 어찌 후학에게 다행이 아니겠는가?
다음 날 서원터를 둘러본 뒤 저물어서 공손히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박방부 형집에서 숙박했는데 강경정, 강극수, 임중과 함께 잤다.
24일. 고대에 갔다. 좌도로 가는 강위서 편에 선생께 안부여쭙는 편지를 올렸다.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12월 나를 헐띁는 근거없는 말이 전라도에까지 전해지다
26일. 새 집으로 돌아왔다. 들으니 '향인들이 나와 강위서, 강극수의 죄를 꾸짓기위해 근거없는 말을 억지로 꿰어맞췄다. 이말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으니 전라도에까지 이르렀다. 개평 사람들이 말을 만들었고 유사 하, 정 두사람이 서명했다. 노충보가 남원향교에도 전했다'했다.
1607년(선조40, 정미)
2월 딸의 혼례를 치르다
15일. 정사연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강위서가 생일잔치를 했다.
26일. 딸의 혼례를 치렀다. 강극수와 박덕중이 와서 보았다.
3월 도사행차에 바라지하는 행렬이 줄을 잇다
19일. 취한정에 가서 정사연, 강위서 등과 대화했다.
4월 북쪽 오랑캐를 대비해서 군사를 뽑다
7일. 강위서와 더불어 냇가에 놀러갔다가 비가 와서 돌아왔다.
8일. 고령사는 박주가 찾아왔다. 박주는 강위서의 조카다.
5월 임금께서 건강이 좋지않으시다고 해서 걱정이다
19일. 임인백을 조문하고 강목사를 방문했다. 강극수를 만나보고 강위서와 동행해서 돌아왔다.
28일. 위서와 함께 혈계에 가서 회를 쳐서 먹었다. 하자순, 노경소, 경후 등 여러사람이 모였다.
10월 어진 고을수령이 억울하게 파직돼 상소하다
12일. 돌아와서 강위서, 최국경과 냇가에서 꿩을 구워먹었다.
1608년(선조41, 무신 광해군 즉위)
1월 내암 선생께서 영의정 유영경을 공박하시다
24일. 박 첨청을 방문한 뒤 날저물 무렵 귀가했다. 강위서가 돌아와서 선생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2월 내암선생께서 귀양길에 오르시고 임금께서 승하하시다
3일. 강위서가 용성으로 간다고 해서 용성수령 성정보에게 편지를 보냈다.
11일. 강위서와 함께 금릉으로 가다가 무촌에 이르렀다. 길가는 사람이 헛소리를 지껄이기에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따지려했다.
3월 내암선생께서 용서받고 판윤을 제수받으시다
1일. 강위서와 함께 거창 상소모임에 갔다. 문군변과 대화했다.
23일. 강희망 형과 노경소가 찾아왔다.
4월 영창대군을 추대하려던 유영경 일파가 귀양가다
11일. 선생을 뵈러가려고 하자순, 강위서와 함께 강양으로 갔다. 하경위집에서 잤다.
18일. 하자순, 강희망 형, 강위서와 더불어 보국사에 가서 놀았다. 황덕장을 방문해 함께 잤다.
8월 역모가 드러난 임해군이 서인으로 강등되다
3일. 강위서와 사근 운사 김백후를 운고에서 만나 대화했다. 노경소도 함께 와서 잤다.
9월 유영경 일파에게 사약을 내리다
27일. 강위서와 더불어 송천에 가서 운수집에서 잤다.
10월 임금을 속인 무리의 죄를 상소하기로 하다
1일. 강위서, 여수와 더불어 서원에 갔다. 강극수를 만나서 안음에 글을 냈다.
11월 벗들과 교외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다
1일. 강위서와 더불어 세마 하성원을 만나보고 해가 진 뒤에 귀가했다.
15일. 정사연, 박군수, 강위서, 박여수와 더불어 교외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했다.
12월 서원에 사액이 내려오다
21일. 선수희가 찾아왔다. 강위서와 대화했다.
25일. 정병사 편지를 받아보고 평안함을 알게 돼 기뻤다. 하자열 부인의 장례를 가서 보았다. 강위서가 백천으로 이사했다.
1609년(광해1. 기유)
2월 내암선생께 상례에 대해 묻다
17일 가족을 거느린 강위서가 새로 정한 편안한 곳으로 돌아왔다. '공산의 한 늙은이'와 같구나! 강경정이 와서 하루종일 대화했다.
23일 백천에 가서 강위서와 술마시며 대화했다. 박문구 찾아와서 과거에 한 말을 스스로 사과했다.
26일 강위서가 와서 대화했다.
3월 고을수령의 유임을 청하는 향인대회를 열다
12일 서당에 가서 강위서와 대화했다. 사람들이 고을 수령의 유임을 위해 관문에서 향인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17일. 선생께 문안드리는 글을 올렸다. 강위서가 강양에 갔다.
4월 간관이 재상들을 비판하다
1일. 조수일과 강위서가 찾아왔다.
4일. 곽재우가 통제사가 됐다.
5일. 정택수, 강위서와 더불어 소고대에서 잠깐 놀았다. 이어서 하첨지와 하자순을 만나보고 잘저물 무렵 돌아왔다.
8일. 노자문, 임중이 달밤에 찾아왔다. 밤에 서당에서 대화하고 다음 날 헤어졌다. 강위서와 여수 또한 함께 했다.
19일 고대에 가서 고을수령에게 인사했다. 돌아오는 길에 조수일과 함께 강위서 집에 가서 술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6월 명나라 사신이 은을 챙겨가다
11일 강위서가 베푼, 부모님 장수를 비는 잔치에 참석했다.
7월 내암선생을 만나고 해인사에서 숙박하다
6일. 강위서 집에 가서 조수일, 박여수와 더불어 개고기를 삶아 먹었다.
25일. 하자순, 강위서, 박윤경과 더불어 합천에 갔다.
9월 임금께서 벼슬과 녹봉으로 내암선생을 얽어매려 하시다
7일 경서, 경후, 강위서와 더불어 서원에서 함께 잤다. 박숙빈이 대간이 됐다고 한다.
<고대일록> 정경운 지음, 문인체,문희구 옮김, 2016년, 서해문집
정경운(鄭慶雲 1556년 - ?) : 본관 : 진양, 자 덕옹, 호 고대(孤臺)
1556.경남 함양 출생,
1581.내암 정인홍 문하에 들어감
1592.함양에서 의병을 일으킴. 초유사 김성일의 소모유사와 의병장 김면의 소모종사관으로 활약
1597.남계서원 복구
1617.남계서원 원장에 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