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대여 외 1편
복효근
마음도 한 자리에 못 앉아있는 마음일 때*
산에 가자
가서 임금님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쳐나 보자
산행길 나서는데
산 아래 계곡 민박집 입구에
평상대여 하루 오만 원 팻말이 눈에 띈다
내 이리도 애타게 찾는 평상을 대여한다니
그것도 오만 원에 하루
늘 비상 아니면 이상인 나날에
계곡물 흐르는 그늘에 잃어버린 평상을 빌려주겠다니
오만 원이면 싸다
애써 땀 흘리며 산에 오르지 않아도
죽이고 싶던 이름 죽고 싶은 나날 다 잊고
아무 걱정 없던 날들을 찾을 수 있을까
그 평상이 아닌 줄은 나도 안다
거기라고 평상만 있겠나
계곡에 평상은 어쩌면 반쯤은 법에서 비켜나 있어
저 민박집 주인의 일상도 늘 비상 아닐까
에라 산에나 가자
어제 일 미안했노라 카톡문자를 보냈지만
답신 대신 이름 모를 새가 운다
평상은 없다 아니면 멀다
가파른 산 나무들은 비탈을 평상으로 산다
*박재삼
침묵의 힘
철로 한켠에 침목들 쌓여있다
하나 같이 일자로 입을 다물고 있다
세상은 열차처럼 떠들어대는 자들의 몫인 것 같지만
달리는 자들의 세상 같지만
침묵하는 자들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것을
한 생을 한 자리에서 누워 침목은 침묵으로 말한다
침목은 지축을 울리며 달리는 열차의 굉음을
제 몸으로 받아내어 잘게 잘게 땅으로 분산시키고
이윽고 침묵을 남긴다
지반이 꺼지지 않도록
철길을 받치고 종착역까지 옮겨주는 것은
저 말 없는 것의 힘이려니
저 켜켜이 쌓여있는 침목들은 어디론가 실려가
누군가의 길이 될 것이다
떠들 게 없어서가 아니라
떠들어서는 안 되는 것을 안다
침목 혹은 침묵
복효근
1962년 전북 남원 출생. 전북대학교 졸업.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예를 들어 무당거미 중심의 위치 등이 있다.